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5)
배드 본 블러드-45화(45/197)
045
장남 니콜라오스와 차남 쥬페는 엘리트 군인과는 거리가 멀다. 장남은 제국의 관료이며, 차남은 일반 장교다.
일반 장교라고 출세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차남 쥬페는 복무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별다른 공적을 세우지 못했다. 이미 미래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쥬페가 정말로 재능있는 군인이었다면 지금쯤 공적을 세워 무공훈장이라도 여럿 받았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상급 부대나 특수 부대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고 있어야 한다.
“니콜라오스는 태어날 때부터 신경 다발이 가늘었어요. 선천적으로 신경계가 허약한 건 제국의 기술로도 어쩔 수 없죠.”
지젤이 장남에 대해 말했다. 이건 내가 모르는 정보였다. 가족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신경계가 약해 고출력 의체를 쓰지 못하니, 군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겠네요.”
아무리 후방 보직이라도 최소한의 전투력은 갖춰야 한다. 신경계가 선천적으로 약하다면 군인으로 가망이 없다.
“쥬페는 원래 군인이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하지만 첫째에 이어서 둘째마저 일반 관료로 보낼 수 없으니 어떻게든 군인으로 만든 거죠.”
쥬페가 군인이 된 건 가문의 체면 때문이었다. 귀족이라고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지 못 한다. 가문의 뜻과 이익에 따라 직업이 정해진다. 심지어 배우자와 인생조차.
“하지만 그 두 사람이 절 경계한다는 뜻은 가주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래요. 니콜라오스는 장남이고 관료로는 능력이 우수해요. 그러니까 가주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죠. 실제로 다른 친족과 가신을 상당수 포섭했어요. 그리고 쥬페는 차남일지라도 자신이 군인이니까 형 대신에 가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보수적인 성향의 친족들은 능력은 조금 부족해도 군인 신분인 쥬페를 지지했고요.”
“다들 가주로서의 결점이 하나씩은 있네요. 그러니까 양자라는 약점을 가진 제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군요.”
사실 가능성이 없다. 나는 거래를 통해 양자가 된 몸이다. 냉철한 헤일라스라도 핏줄이 끌릴 테니 나를 차기 가주로 삼진 않을 것이다.
“지금 쿠스토리아 가문의 사람이라면 당신의 이력을 꼼꼼히 읽어보고 검토하고 있을걸요.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면 당신은 상당히 뛰어난 군인이에요. 군인으로 출세할 가능성이 아주 높죠. 혈연보다 군인으로서의 능력과 명예를 중시하는 친족, 특히 원로 쪽에 그런 분들이 다수 있어요.”
말투로 보아하니 지젤도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는 편이 내게도 나았다.
“혹시 암살 시도를 제가 조심해야 합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이건 중요한 사항이다. 만약 그렇다면 대비해야 했다.
“없다곤 장담하기 힘들지만, 확률 자체는 매우 낮아요. 들켰다간 지위는 물론이고 목숨조차 위험할 테니까요. 암살 시도를 한다면 정말 완벽하게 준비해야 하겠죠.”
나를 죽이려면 꽤 대단한 실력자를 데려와야 할 것이다.
“그럼 일단은 다른 수단을 통해 저를 뭉개려고 하겠군요.”
“망신을 주려고 할 겁니다. 특히 출신을 이유로요. 아버지의 성격상, 당신을 직접 데려왔을지라도 적극적으로 지켜주진 않을 거니까요.”
내 힘으로 경쟁자의 모욕과 공격을 헤쳐 나가야 한다. 헤일라스도 그걸 원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군요.”
“네?”
“경쟁적인 가풍 말입니다. 고아였던, 제가 늘 바라던 가족의 형태입니다.”
자신감이나 허세가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있던 보육원에는 경쟁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근위대 훈련소에 와서야 난 진정한 의미의 경쟁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젠 훈련소에서도 나와 겨룰 자가 없었다. 기껏해야 일레이 카르티카 정도다.
경쟁의 방식은 달라도, 쿠스토리아 가문에는 날 짓밟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있는 힘껏 발버둥 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승자는 내가 되겠지.
내 발밑에 쓰러진 그들의 표정을 상상하니 벌써 등골이 짜릿하다.
그래, 난 상당히 삐뚤어진 인간이다. 누군가가 날 짓누르려고 할수록 더 격렬하게 튀어 오른다.
“……지금 즐거워하고 있는 건가요?”
내 미소를 본 지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차피 난 그녀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지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두 오빠의 이야기만 했죠.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생각인 거죠? 가주가 될 생각이 없습니까?”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감정이 눈에 드러날 것이다.
“제가 그것까지 당신에게 이야기할 이유는 없을 것 같네요.”
지젤은 날 처음 봤을 때처럼 차갑게 말했다. 나는 더욱 미소를 깊게 끌어올렸다.
“전 일가를 이끄는 가주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제 앞길에는 쿠스토리아라는 이름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절 짓밟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냥 두진 않겠죠. 그 후의 일? 제 알 바가 아닙니다. 기회가 온다면 잡으세요, 지젤 쿠스토리아. 오빠로서의 충고입니다.”
참고로, 난 지젤보다 나이가 많다.
지젤은 처음에는 오빠라는 소리에 어이가 없어 하다가 곧 웃었다. 그녀의 해맑은 웃음은 보기가 힘들기에 귀하다.
“그때가 오면 절 지지할 건가요?”
“약속했으니까요. 절 적대하지 않는다면, 제가 당신을 미워하거나 해를 끼칠 이유가 없죠.”
내 말을 들은 지젤이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난 그쪽을 동맹으로 생각하고 행동할게. 잘 부탁해, 루카 오라버니.”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웃었다. 그리고 앉은 채로 그녀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오라버니라고?”
“이렇게 부르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잘됐네. 나도 낯간지러운 건 별로거든.”
뎅, 뎅.
벽시계의 종이 고풍스럽게 울렸다.
이제 저녁 시간이다.
* * *
아무리 귀족이라도 매일 성대하기 차려 먹진 않을 것이다. 오늘은 쿠스토리아 가문의 사람이 대거 모인 날이었다. 그리고 나를 소개하는 자리다. 특별한 날이기에 만찬회가 열렸다.
60여 명은 족히 앉을 식탁은 일직선으로 쭉 이어져 끝과 끝의 목소리가 잘 닿지 않을 정도였다.
식탁 뒤로는 앉은 사람보다 두 배는 더 많은 하인이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이미 차려진 것만 해도 세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음식 접시가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자리의 위치로 친족의 서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헤일라스를 비롯해 그 일가 직계가 가장 앞에 앉았다. 아주 영광스럽게도 나도 포함이다.
그리고 차례대로 헤일라스의 형제자매, 조카, 그리고 끝 쪽으로 갈수록 사촌과 관계가 먼 친족이 앉아있었다. 말석에는 가신도 일부 있었다.
“그래, 네가 루카로구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단다.”
나긋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를 얼마 만에 듣는지 모르겠다. 아니, 들어본 적이라도 있었던가? 내가 아는 중년 여성이라곤 다들 억척스럽기 그지없었다.
‘에바 쿠스토리아.’
내 양어머니다. 식사 시간이 돼서야 난 그녀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겉보기엔 다정다감하고 서글서글한 태도였다.
‘에바는 나를 싫어하는군.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양어머니 에바의 목소리에는 무미건조하다 못해 따가운 가시가 느껴졌다. 그녀에게 나는 자신의 친아들을 위협하는 적이다. 달가울 리가 없었다.
실망할 건 없다. 따스한 어머니 따위를 기대한 적도 없다. 날 불쌍하게 여겨 동정하는 것보다 적대하는 게 백 배는 낫지, 아무렴.
“가족이 된 걸 환영한다, 루카. 난 장남 니콜라오스고, 이쪽이 차남 쥬페다.”
말쑥한 사내, 니콜라오스가 가슴에 손바닥을 올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관료지만 눈매는 군인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겉보기엔 신경계가 약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 본인도 병약자로 치부될까 봐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니콜라오스가 소개한 쥬페는 전형적인 제국 장교의 모습이었다. 다부지고 위압적인 체격이었으며 제복에는 다년차 장교라면 누구나 받는 일반 훈장 몇 개가 달려있었다.
쥬페는 자신을 대신 소개한 니콜라오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원래 니콜라오스와 쥬페는 경쟁하던 사이였다.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난 늘 군인 형제가 생기길 바랐지. 오늘 소원을 하나 성취했군. 반갑다, 루카.”
쥬페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대놓고 니콜라오스를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아무래도 둘이서 동맹을 맺지 않은 듯했다.
재미있군, 재밌어.
분위기가 달아오를수록 가족 간의 갈등은 오래된 흉터처럼 붉게 드러났다.
“저도 듬직한 형님이 있으면 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아부가 내 입에서 나왔다. 사교성이 제법 늘었구나, 루카.
다음으론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헤일라스의 자식들을 정리하자면, 장남, 차남, 나, 지젤 정도가 나이 찬 자식이고. 그 밑으론 남자애 둘과 딸 하나가 있었다.
어느 정도 얼굴을 튼 다음에는 양어머니 에바가 다가오는 사람을 제지했다. 내게 인사하려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자, 쿠스토리아의 새로운 가족,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를 소개합니다.”
에바가 내 뒤에 서더니 내 어깨를 잡으며 따스하게 웃었다. 가식과 연기에 익숙한 여인이었다.
루카우스는 내가 새롭게 받은 이름이다. 루카라는 이름이 너무 하층 구역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이름은 애칭이 되었지만 불만은 없다, 어차피 루카나 루카우스나. 이름 따위가 뭐가 중할까.
짝, 짝, 짝.
박수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면밀하게 살폈다. 권력과 거리가 먼 말단 친족일수록 내게 관심이 없었다. 누가 가주가 되든 상관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가신들이 내게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줄을 잘 서야 하는 입장이었다. 날 출세의 기회로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게 잘해서든 날 공격해서든 말이다.
“인류의 수호자, 건국의 아버지, 그리고 제국의 초대 황제, 디노 크라치아 폐하를 칭송하라.”
헤일라스가 기도하듯 읊조렸다. 일종의 기도가 맞긴 하지.
만찬 시작에 앞서 사람들은 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식사가 시작됐다.
달그락.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퍼졌다.
나는 나를 노려보는 쥬페의 시선을 느꼈다. 그의 눈길은 내 손에서 멈춰있었다.
‘트집이라도 잡고 싶은 모양이군.’
내가 식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귀족의 식사에는 예법이 있었다. 식기를 다루는 방식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식사 예절 정도는 예습하고 왔다. 여기서 조용히 예법을 지키며 쥬페의 기대를 무너뜨리면 된다.
그러나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싸움을 피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나는 자른 고기를 칼로 찍어서 입에 게걸스레 넣었다. 쥬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뗐다.
“루카.”
나는 가금류의 다리를 손으로 집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죠? 쥬페 형님. 아, 음식이 참 맛있네요.”
난 말하면서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니콜라오스는 미소를 지으며 침묵하고 있었다. 쥬페만 나를 지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예상대로다. 조심해야 할 적은 니콜라오스다. 쥬페는 머저리다.
“루카, 첫 만남부터 이러고 싶진 않지만…….”
쥬페가 느글느글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말꼬리를 끌며 다른 친족의 이목이 모이길 기다렸다.
“……식사 예절은 지적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이런 건 손위 형제의 역할이지. 같은 군인이기도 하고. 자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예법 정돈 지켜야지. 널 인정해 준 아버지와 나아가 쿠스토리아 가문의 이름에…….”
나는 쥬페의 말을 잘랐다.
“10년이나 복무하면서 십자검 훈장 하나 받지 못한 사람보다야, 생도지만 무공훈장도 받은 제가 쿠스토리아 가문의 이름을 더 빛내고 있을 겁니다. 이깟 식사 예법보다요.”
나는 이름도 모를 가금류의 다리를 흔들며 웃었다. 내 말에 몇몇 친족이 웃음을 터트렸다가 황급히 입을 막았다.
쥬페의 얼굴이 단숨에 새빨갛게 변했다. 뜨거운 물이라도 끼얹은 것 같았다. 그는 감정 통제조차 미숙했다. 헤일라스의 핏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바보였다.
“이, 익, 너 감히…….”
내가 말대꾸하며 반격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 그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