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7)
배드 본 블러드-47화(47/197)
047
쿠스토리아 가문에는 은월관이라는 별채가 있다. 다른 건물과 조금 떨어져 있었고 주변은 몹시도 고요했다.
“은월관은 일선에서 은퇴한 노인네들이 머무는 곳이지.”
헤일라스가 근위대 제복을 입은 채로 앞서 걷고 있었다. 나와 그는 은월관으로 가고 있었다.
“하인이나 다른 친족은 은월관 근처로 오지 않는군요.”
은월관까지 오는 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심부름꾼은 안드로이드면 충분하지. 그리고 원로들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삼가는 편이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 안 되니까. 어디까지나 원로는 조언자일 뿐이거든. 가주가 폭주하지 않도록 제지하는 역할이지.”
원로가 의사결정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는 듯했다. 하기야 그렇게 된다면 가주는 허수아비가 될 테니까.
헤일라스는 은월관의 원로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의 숫자는 일곱 명이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원로 취급을 받을 정도로 오랫동안 살아남는 자는 가문 내에서 드문 편이네. 여러 이유로 죽고 사라지거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원로가 될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
“입양을 반대하신 분은 없었습니까?”
“두 명은 반대, 넷은 침묵, 한 명만 찬성.”
“찬성보다 반대가 많군요.”
“침묵은 가주의 뜻에 따른다는 말이네. 이 때문에 어지간해선 가주의 결정이 통과되지. 반대조차 그저 우려를 표명하는 정도니 진지하게 생각할 건 없네.”
나와 헤일라스는 은월관 정문에 섰다. 문이 좌우로 절로 열렸다. 내부는 어두컴컴했으나 우리가 들어가자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고택 특유의 낡은 먼지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실제로도 쿠스토리아 저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다.
1층에선 위로 올라가는 곡선 계단이 좌우로 하나씩 뻗어있었다. 나는 헤일라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삐걱.
원목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의체의 중량을 견딜 수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생각보단 튼튼하니 걱정 말게.”
내가 머뭇거리자 헤일라스가 웃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우린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커다란 세 발 향로였다. 2층 복도에서부터 어렴풋이 느껴지던 냄새의 정체였다. 향로가 방 중심에 있었고 그 너머로 그림자와 같은 원로들이 앉아있었다.
향로의 연기가 커튼처럼 원로와 우리 사이를 막고 있었다.
“아, 헤일라스가 왔군.”
“어허, 가주님이라고 불러야지.”
“내 손자인데 뭐, 어때서.”
“그렇게 따지면 당신은 내 조카뻘인데.”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끼리, 쯧…….”
중후하고 멋스러운 분위기가 달리 오가는 말은 꽤 평범했다. 나는 실소를 참으며 무표정을 일관했다.
“크흠.”
헤일라스가 헛기침했다. 그제야 원로들의 잡담이 멎었다.
어둠과 연기 너머로 보이는 원로의 모습은 성별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발까지 가리는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었고, 이목구비가 드러나지 않는 베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목소리도 변조했는지 다들 비슷했다.
“이 아이가 루카…… 우스입니다.”
헤일라스가 날 소개했다. 그도 내 새 이름이 입에 익지 않는 모양이다. 보아하니 날 계속 루카라고 부르겠지. 그편이 나도 편하긴 하다.
“그래, 그 아이로군.”
“똘똘하게 생겼어. 얼굴을 보아하니 아비와 어미를 잡아먹고서라도 아득바득 살아남을 놈이야.”
방금의 말을 꺼낸 원로는…… 제법, 통찰력이 있군.
원로들이 웅성거리며 나에 대해 한 마디씩 내뱉었다. 웅성거림이 커졌고, 나와 헤일라스는 가만히 서서 기다릴 뿐이었다.
“가까이 와보렴, 루카우스.”
원로 중 하나가 말했다. 나는 중앙에 있는 향로 가까이 접근했다.
“향로를 지나도 된다.”
날 부른 원로가 팔을 뻗어 손짓했다. 다른 원로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더 가까이.”
나는 기계적으로 걸어갔다. 앉아있는 원로들과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스륵.
원로가 로브를 길게 끌며 일어섰다. 그는 손을 뻗더니 내 뺨에 얹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지만 베일 너머의 표정은 알 수가 없다.
“아이야, 부디 오래 살아남거라. 그러려면 혼돈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삼켜야 한다. 목구멍이 갈기갈기 찢기더라도 말이야.”
원로가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들은 많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주변을 둘러싼 복잡한 환경도.
“……그럴 생각입니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그냥 가장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난 직감했다. 내 뺨을 매만진 원로가 내 입양에 찬성한 사람일 거라고.
원로가 자리에 앉더니 내게 가보라 손짓했다. 나는 향로를 지나 헤일라스 곁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는 원로들의 잡담이 다시 오갔다.
어차피 내 입양은 결정이 끝난 일이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얼굴을 비추기 위해서였다. 나는 한참이나 덕담인지 험담인지 모를 말들을 듣고 있었다.
“다들 그 입 좀 다무시지요.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갑시다, 가주님.”
오른쪽 맨 끝에 선 원로가 참다못해 말했다. 헤일라스도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부터…….”
“아, 그 전에 루카우스를 내보내야지. 지금부턴 회의해야 하니까.”
원로의 말을 들은 나는 뒤돌아서 나가려 했다.
툭.
헤일라스가 내 어깨를 잡으며 제지했다.
“루카우스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원로들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자기네들끼리 속삭였다.
“가주님께서 그리 결정하셨다면야 계속하겠네.”
나는 그 자리에서 원로와 가주의 회의를 한 시간이나 들었다. 흥미로운 것도 있었으나 태반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끼익, 쿵.
회의가 끝나고 나와 헤일라스는 방을 나섰다. 은월관 정문을 나가자마자, 나는 헤일라스에게 물었다.
“절 내보내지 않고, 회의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마도 니콜라오스와 쥬페조차 원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을 것이다.
“답은 스스로 찾아야지, 루카.”
헤일라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이게 헤일라스의 교육 방식인 것 같았다. 자식들이 고생할 만하군.
* * *
본가 체류 마지막 날의 아침이었다.
내가 방문을 나서자,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꼬맹이가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빠가 그러는데 너 같은 애들은 총알도 피할 수 있다고 하던데, 진짜야?”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애를 응시했다. 난 그 애의 얼굴과 이름을 잘 알고 있다.
‘장남 니콜라오스의 아들, 에밀리오 쿠스토리아.’
조카라고 불러야 하나 그러고 싶지 않다. 겁대가리 상실한 하룻강아지라고 불러야겠다.
“에밀리오, 내가 네 삼촌이라는 건 알고 있지?”
“응, 알아. 하지만 넌 피가 더러운 하층민 출신이잖아.”
하룻강아지라는 말도 과한 칭찬이다. 돼먹지 못한 버러지라고 부르자.
에밀리오가 두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내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피할 순 있지만, 실수하면 죽을 거리이긴 하다.
“그 총 안 치우면 엉덩이에 불나도록 처맞을 줄 알아.”
내가 경고했다.
“너 따위가? 내 몸에 손을 댄다고? 웃기고 있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니콜라오스는 똑똑해 보이던데 자식 교육은 개판으로 시킨 모양이다.
끼릭.
총기의 부품이 맞물리는 소리가 난다. 이 미친 애새끼가 정말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타- 앙!
총성이 퍼졌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빗나갈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왜 안 피해! 움직여서 피했어야지!”
에밀리오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화를 냈다. 녀석은 다시 나를 향해 총구를 조준하려 했다.
탁!
나는 손을 뻗었다. 총구가 내 손가락에 걸려 위로 솟구쳤다. 나는 그대로 총을 반대로 돌려 빼앗았다.
‘고작해야 여덟, 아홉 살…….’
난 에밀리오 나이일 때…… 빵 하나 때문에 보육원의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괜히 화가 나는군.
“때, 때릴 거야?”
에밀리오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빼앗은 총을 에밀리오의 미간에 겨누었다.
“아니, 죽일 거야.”
내 말에 에밀리오의 동공이 커졌다. 녀석의 다리에 힘이 쭉 풀리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은 에밀리오의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바닥에 박혔다.
“아, 아, 으, 진, 진짜로 쐈어?”
주저앉은 에밀리오가 멍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녀석의 바지는 누런 액체로 축축했다. 냄새가 노릿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가서 아빠한테 일러. 삼촌이 널 죽이려고 했다고.”
나는 에밀리오의 가슴을 발로 밀어서 계단으로 떨어뜨렸다. 동글동글한 에밀리오가 계단을 뒹굴었다.
총성을 들은 하인들이 사방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에밀리오! 괜찮으냐?”
니콜라오스도 달려오더니 에밀리오를 안았다. 에밀리오는 눈물 콧물 다 빼며 니콜라오스의 품에 안겼다.
“이게 무슨 일이지? 루카.”
니콜라오스가 나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총을 어른에게 겨누길래 교육을 좀 했습니다. 다신 이런 짓을 하지 못하게요.”
나는 권총을 손아귀에서 돌려서 손잡이 부분을 니콜라오스에게 내밀었다. 니콜라오스가 권총을 확인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된 건가? 하지만…….”
“하지만?”
나도 조금 화가 났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저 애새끼는 타인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아랫사람을 장난감처럼 여길 것이다.
“……후, 잠시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겠나?”
니콜라오스는 에밀리오를 유모에게 맡기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니콜라오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쿵.
문이 닫혔다.
“좋아, 루카. 바깥에선 우리가 심각한 갈등을 빚는다고 생각하겠지.”
니콜라오스는 언제 심각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웃으며 창가의 의자에 앉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건지 대번 알 것 같았다.
“단둘이 따로 만나면 동맹을 맺는다고 남들이 생각할까 봐, 이런 식으로 저와 단둘이 볼 기회를 만든 겁니까?”
어젯밤, 니콜라오스가 에밀리오의 돌발행동을 부추겼을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자네는 우수해. 쥬페보다 머리가 세 배는 빨리 돌아가는 것 같군.”
“자칫하면 에밀리오의 목숨이 위험했을 겁니다. 어디서 주워 온 애라도 되는 겁니까?”
“아니, 친아들이 맞아. 하지만 사고가 생기더라도 애는 또 낳으면 되는 거지. 아직 남은 정자도 많으니까.”
만약 에밀리오가 내 앞에서 죽기라도 했다면, 그 이유야 어쨌든 나도 상당히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쿠스토리아 가문의 장손이 죽는 셈이니까.
“절 함정에 빠뜨려 놓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나는 문을 열려고 다가갔다. 니콜라오스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자네가 이미 지젤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것 정돈 알고 있네.”
나는 문고리를 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요?”
“지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지는 대충 예상이 돼. 그 애는 내가 유리한 것처럼 말했겠지. 하지만 실상은 다르네. 이대로 가면 차기 가주는 쥬페야. 그렇게 되면 난 목숨을 건사하지 못할 수도 있어. 사소한 건 무시해야 하는 상황인 거지.”
니콜라오스에게 아들의 목숨 따윈 ‘사소한 문제’인 듯했다.
솔직히 말해서, 니콜라오스에게 조금 흥미가 생겼다. 난 니콜라오스의 맞은편에 앉으며 벽시계를 보았다.
“오 분입니다.”
“귀한 시간을 내줘서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