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8)
배드 본 블러드-48화(48/197)
048
“자네의 통찰력이면 나와 쥬폐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했을 거네. 지젤의 조언도 있었을 거고.”
니콜라오스가 운을 떼듯 말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가주 쟁탈전에서 니콜라오스가 쥬페에게 밀릴 것 같지 않았다.
쥬페에 비하면 니콜라오스는 냉정하고 머리도 좋았다. 언변도 있어서 친족과 가신을 자신의 편으로 잘 끌어들일 것이다.
“계속 말씀하시죠.”
나는 니콜라스의 앞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쥬페 녀석이 가주가 된다면, 난 아마 죽을 거야.”
“가주가 됐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형제를 죽일까요?”
실제로 헤일라스와 가주 자리를 두고 다투던 아르투르는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처지만 조금 초라할 뿐이었다.
“누구 하나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경쟁자를 제거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나와 쥬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누가 가주가 되든 간에, 상대가 가문을 이끌 때 걸림돌이 될 게 뻔하거든.”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납득했다.
“특히 쥬페가 이긴다면 더욱 그렇겠군요. 쥬페보다 형님 쪽이 더 계략에 능한 것 같으니까요.”
“말이 잘 통해서 좋군. 내가 가주가 되면 쥬페를 살려둘 수 있어. 하지만 쥬페는 날 살려두지 않을 거야.”
지배력의 차이였다. 쥬페의 역량으로는 니콜라오스를 부하로 두지 못한다. 하지만 니콜라오스는 쥬페를 밑에 둘 수 있는 기량이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왜 쥬페에게 밀린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지젤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제가 봐도 쥬페가 가문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지금은 사람을 많이 회유한 내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겠지. ‘확실한’ 내 편은 쥬페보다 분명 많아. 하지만 막상 가주 선출에 들어가면 쥬페를 지지하는 세력이 더 많을 거네.”
“쥬페에게 특출한 인망이라도 있는 겁니까?”
“복합적인 이유네. 군인 출신을 원하는 친족이 있고, 계략에 능한 나보다는 단순한 성격의 쥬페를 원하는 이들……. 그리고 현 가주인 아버지에 대한 반동으로 강력한 가주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중립을 표명하는 이들이 마지막엔 쥬페를 지지할 거야.”
경험과 지식이 다르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본다.
니콜라오스는 정치에 능했다. 그래서 그의 시야는 나와 지젤과 달랐다. 그는 유동적인 중립세력을 쥬페의 편으로 보고 있었다.
‘배울 게 있군.’
니콜라오스가 관료로 괜히 승승장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세력의 판도를 볼 줄 알았다.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간단하네. 나와 대립하는 척하며 가문 내에서 평판을 올리고 인망을 쌓아주게나.”
나는 등골이 오싹해 웃음을 흘렸다. 니콜라오스는 정말로 영악한 사내다.
“제 입지가 높아질수록 쥬페가 약해진다는 말이군요.”
“군인 출신의 가주를 원하는 친족들은 자네에게 마음이 쉽게 기울 거야. 나와 크게 대립할수록, 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자네를 지지할 거고. 자네가 쥬페의 지지세력을 빼앗아 나눠 가진다면 부동층이 확고한 내가 가주가 될 수 있지.”
날 만난 지, 이틀 만에 니콜라오스는 자신의 승리를 위한 계획을 세워 행동으로 옮겼다.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지젤의 말대로 니콜라오스는 헤일라스를 많이 닮았군.’
니콜라오스는 뱀과 같은 사내였다. 그러나 나는 쥬페보다 니콜라오스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유리한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승리할 자격은 쥬페가 아닌 니콜라오스에게 있었다.
“……그러다가 제가 가주 자리를 넘볼 정도로 강해진다면요?”
“자네에게 정말 그럴 생각이 있으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겠지. 그리고 설사 자네가 가주가 되더라도…… 날 죽이진 않을 거야.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가주님이 가문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건 나 같은 참모니까. 그렇지 않나? 자네는 날 다룰 역량이 있어.”
“재밌군요.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입니다. 제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던 시절에는 귀족들이 전부 걱정 없이 사는 줄 알았거든요.”
“누구에게나 나름의 고충이 있는 법이지. 자, 쉽게 정리해 보겠네. 나와 자네의 거래는 이러하지. 둘 중 누가 가주가 되더라도 서로를 죽이지 않는 것으로 말이야. 우리 둘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능력이 있어. 그리고 그동안 자네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지원해 주겠네. 일단은 나도 고위 관료직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거든.”
매력적인 제안이다.
“아시겠지만, 전 지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젤은 신경 쓸 것 없어. 자네가 설사 지젤을 지지하더라도 그 아이는 가주가 되기 힘들 거야. 지젤은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니 제거할 이유도 없고. 의리를 지키고 싶다면, 지금 나와 이야기한 걸 지젤에게 전부 말해도 되네.”
지젤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니콜라오스의 제안은 ‘지지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다. 그저 쥬페의 세력을 빼앗으라는 것이었다.
니콜라오스의 제안이 없더라도 나는 가장 먼저 쥬페의 세력을 흡수했을 터다. 군인 출신이라는 배경이 겹치기 때문에 필연이었다.
‘니콜라오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나와 쥬페의 협력이다. 내가 쥬페를 지지하는 것이지.’
그것만 아니면 니콜라오스는 나를 적대하지 않는다. 후에 상황이 바뀔 순 있어도 당장은 그랬다.
“이건 동맹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형님. 이해관계가 맞을 때까지만 유지하는 거죠.”
“하하, 그걸 내가 있는 세계에선 보통 동맹이라 그러네. 이쪽 사람들은 이해타산으로만 움직이거든.”
니콜라오스는 용무를 마치고선 일어섰다. 대화를 시작한 지 정확히 4분 50초였다. 그는 문을 나서자마자 방에 있는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나와 니콜라오스가 대차게 싸운 줄 알 것이다.
“루카! 네가 얼마나 잘난 줄 몰라도 형들을 무시하고서 쿠스토리아로 인정받긴 힘들 거다!”
연기도 참 잘하는군. 나는 그의 열연에 박수라도 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 * *
본가의 체류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고작 사흘이었지만, 체감상 일주일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이제부턴 나도 종종 쿠스토리아의 저택에 올 것이다. 헤일라스와 같이 오는 일이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늘 나는 헤일라스와 함께 근위대로 돌아갈 것이다. 명목상 내 집은 쿠스토리아 저택이다. 하지만 나는 훈련소 숙소에 있는 자그마한 방이 벌써 그리웠다.
“어땠나? 루카.”
헤일라스는 저택에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묻지 않았다. 그는 나와 니콜라오스, 지젤, 쥬페가 어떤 행동을 하던 방관했다. 양자인 내겐 좋은 일이었다. 친자식을 감싸고 돌지 않으니까.
“다들 좋은 사람들뿐이라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농담이 늘었군.”
헤일라스가 웃으면서 공중차량을 올라탔다. 우리 뒤로는 배웅을 나온 친족들과 하인이 보였다.
목적지를 설정하자 공중차량의 하부 추진체가 움직였다. 서서히 떠오른 차량은 속력이 붙더니 금세 저택과 멀어졌다.
기이잉.
홀로그램을 띄운 헤일라스는 내 앞에서 밀린 업무를 시작했다. 본가에서도 중간중간 일을 했을 것이다.
근위대장의 업무량은 몇 번을 봐도 상상을 초월했다. 보통 사람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키잉.
나는 공중차량 하부에서 추진체가 움직이는 걸 느꼈다. 중간에 방향 전환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공중차량은 아크바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당황할 것 없네, 루카. 예정된 일이니까.”
헤일라스가 홀로그램을 모두 닫으며 일어섰다.
“다른 일정이 있었습니까?”
“지금 우리가 탄 공중차량은 해킹됐을 거네. 곧 추락할 테니깐 그것부터 대비하지. 지금부터 임무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임무라는 말에 내 동요가 얼어붙었다.
헤일라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중차량이 가속했다. 연료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매섭게 속도를 올렸다.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쳤고, 수십여 초 만에 수도 아크바란이 손바닥으로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보였다.
덜컹.
헤일라스가 공중차량의 수납고를 열었다. 그는 수납고에 들어있던 권총과 칼을 내게 던졌다.
나는 군말 없이 무장하며 헤일라스의 말과 명령을 기다렸다. 긴급상황이라는 걸 인지하니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지. 지금부터 우린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을 거야. 십 분이면 아크바란에서 지원이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네.”
“알겠습니다. 강하를 준비할까요?”
공중차량에는 비상용 낙하산도 있었다.
“아니, 그러면 꼼짝없이 사격 표적이 될 거야. 공중차량 내부가 더 안전해. 그래도 적이 기다리는 위치까지 가면 위험하니 그 전에 착륙하도록 하지.”
헤일라스가 침착하게 통제 컴퓨터 앞까지 걸어갔다. 난 근위대장이 전자전에도 익숙한지 몰랐다. 역시 저 정도 위치에 있으면 뭐든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콰직!
……이라고 내가 생각하자마자 그는 물리적 해결책을 사용했다.
헤일라스의 팔이 컴퓨터 화면을 뚫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온갖 중요 부품과 전선 다발이 딸려 나왔다. 전류가 사방팔방 튀면서 내부에선 불꽃이 일었다.
위이잉, 위이잉.
경보가 귀를 찢을 것처럼 울렸다. 공중차량은 추락하고 있다. 이걸 헤일라스는 착륙이라 말했다.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근위대장이라고 항상 세련된 방식만 쓰는 건 아니었다.
“자네가 놀라는 걸 보니 재밌군.”
“전 재미없습니다.”
나는 벽과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으며 몸을 고정했다.
제어를 잃은 공중차량의 추진체가 멋대로 움직였다. 공중차량은 회전이 걸린 공처럼 사방으로 회전하며 중력에 이끌리고 있었다.
공중차량이 회전할 때마다 내 몸도 같이 이리저리 기울었다.
당연히 차량 내부도 엉망진창이었다. 고정되지 않은 물건들이 날아다니며 내 몸을 두드렸다.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주르륵.
내부 벽면의 이음새에서는 분홍빛 액체가 흘러나오며 굳더니 벽을 코팅하고 있었다. 충격을 흡수하는 젤이었다.
“루카, 막간에 문제를 하나 내겠네.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헤일라스는 의자에 앉은 채로 말했다. 그가 회전하는 내부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앉아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엉덩이에 접착제라도 붙어있는 건가? 나는 그게 더 궁금했지만 헤일라스의 질문으로 생각을 옮겼다.
“대장님 스스로 미끼가 되셨군요.”
답은 금방 나왔다.
헤일라스는 그런 남자다. 자식과 부하만 사지로 내보내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조차 소모할 수 있었다.
“그렇네. 이번 사건으로 바바라는 네메시스 내부에서 신임을 얻겠지. 근위대장을 습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으니까.”
또 바바라의 이야기였다. 솔직히 아군이든 적군이든 간에 그 여자의 안면을 세게 때리고 싶었다. 죽일 생각까진 없다. 코가 뭉개져서 평평해질 정도면 만족할 수 있었다.
달콤한 상상은 끝이다. 냉혹한 현실로 돌아가자.
젤로 코팅된 창문은 흐릿했다. 그러나 지면이 가까워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키- 이이이잉!
매섭게 추락한다. 그야말로 꼬라박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눈을 잠시 감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뜬 뒤에 내 팔다리와 오장육부가 제자리에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추락사를 당한 시체?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끔찍하다. 사람이 걸레가 된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콰아아아앙-!!
찢어지는 굉음이 퍼졌다. 폭발은 한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