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9)
배드 본 블러드-49화(49/197)
049
……제국의 기술력은 최고다. 제국의 군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공중차량의 추락과 폭발 속에서도 나는 살아있었다. 생체 부위의 타박상과 인공피부의 찰과상 정도가 부상의 전부였다.
‘잊지 못할 경험이로군, 정말로.’
우린 충격흡수 젤 덕분에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고 멀쩡했다. 젤은 충격과 폭발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사용이 끝난 젤은 세 겹으로 구분되었다. 충격과 폭발을 직접 받아낸 겉 부분은 딱딱했고, 중간층은 여전히 말랑말랑했다. 우리 피부와 맞닿는 내측은 고무처럼 적당히 굳은 상태였다.
나는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칼을 꺼내 문을 틀어박은 젤을 잘라서 걷어냈다.
콰직!
그리고 찌그러져서 열리지 않는 문을 앞발로 밀 듯 찼다. 문짝이 날아가면서 바깥이 보였다. 매캐한 연기가 코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먼저 나가서 안전을 확인했다. 아직까진 주변에 적이 없었다.
“우리의 추락을 보고 습격자가 몰려올 거네.”
헤일라스가 점잖게 공중차량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나는 공중차량에 붙은 불꽃이 커지는 걸 보며 불안함을 느꼈다.
‘곧 폭발한다.’
나라면 뛰어서라도 공중차량과 멀어질 터다. 실제로도 나는 이미 거리를 상당히 두고 있었다.
콰- 앙!
추락한 공중차량이 화마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후폭풍이 헤일라스의 등을 휩쓸고 지나갔다.
헤일라스는 바닷바람이라도 쐬듯이 옷깃을 잡아당겨 펄럭거리는 걸 막았다. 불티가 들러붙은 옷자락이 잔불로 이글거렸으나 이내 잦아들었다.
키잉!
헤일라스가 외투 안쪽에 손을 넣더니 팔뚝 길이의 봉을 꺼냈다. 그가 팔을 힘껏 휘두르자, 봉의 상하가 길어지더니 위쪽에선 창날까지 튀어나왔다.
창은 헤일라스의 키만큼이나 길었다. 숙련자가 아니라면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길이였다.
휘릭!
헤일라스는 뽑아 든 창을 돌리며 가볍게 손을 풀었다. 그의 왼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권총이 있었다. 전자식 이중 총신의 구조를 봤을 때, 소형 레일건인 것 같았다.
소형 레일건은 위력은 강하지만 발사까지 지연이 있었다. 즉발이 아니라서 예측 사격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개인용 화기로는 쓰기가 까다로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양산 사례는 없었고, 주문 제작으로나 볼 수 있는 무기였다.
근위대의 수장답게 기본적인 근접 무기와 총기의 조합이었다.
‘근위대장의 전투.’
어지간해선 보기 힘들었다. 저 정도 지위에 이르면 현장에서 싸우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정말로 중요한 전투만 나선다.
기잉.
헤일라스가 고개를 돌려 서쪽을 응시했다. 그의 동공 테두리가 붉게 빛났다.
투- 웅!
헤일라스가 사격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한 박자 늦게 투사체가 궤적을 남기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나는 헤일라스가 무얼 쏘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사격하는 게 아닐 터다.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영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루카, 자네도 12초 뒤에 적을 식별할 수 있을 거네.”
헤일라스가 그리 말하며 사격을 반복했다. 의안의 성능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시야 바깥에서 적을 쏘고 있었다.
‘어떻게?’
나는 문득 위를 응시했다. 저물고 있는 하늘이 보였다. 구름은 없어서 깨끗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야. 잘 보이는군.”
헤일라스가 레일건의 탄창을 갈며 말했다.
“위성 좌표로 사격하시는 겁니까?”
“그래도 명색이 근위대장이니 군용위성 하나 정도는 개인용으로 할당을 받을 수 있지.”
헤일라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재차 사격했다. 이제 폭발하는 소리와 비명이 내 귀에도 어렴풋이 들렸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흉내가 힘든 영역의 저격이었다. 군용위성은 물론이고, 막대한 연산보조까지 붙어야 한다. 보기엔 간단해 보여도 전술병기급 지원이었다.
황무지의 지평선 너머로 습격자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형 전갑의체 셋이 보였고, 그 옆으로는 무장한 반군이 서른두 명이었다. 원래는 더 많았겠지만 헤일라스의 저격에 꽤 많이 당했을 것이다.
탕!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총알이 내 미간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넋 놓고 있었으면 죽었을 것이다.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정교한 저격이었다.
저들은 제국의 근위대장을 죽이러 온 자들이다. 단단히 준비하고 왔을 터다.
카앙! 킹!
헤일라스는 한 손으로 창을 휘두르며 돌리면서 투사체 무기를 튕겨내고 있었다. 습격자들의 화력은 헤일라스에게 집중됐다.
“전갑의체는 내가 맡겠네. 자네는…… 뭐, 적당히 살아남게나.”
“두리뭉실한 지시와 명령은 상관의 부덕이잖습니까.”
내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헤일라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휘두르던 창을 아래로 길게 끌었다. 묵직한 창끝이 바닥을 긁으며 지나갔다.
“루카! 개떡 같은 명령을 찰떡처럼 알아먹어야 출세할 수 있다네. 세상은 부덕한 자들로 가득하기 때문이지.”
반박할 수 없이 맞는 말이다.
습격자들은 화기를 퍼부으며 빠르게 다가왔다. 이윽고 근접전투가 시작됐다. 적과 아군 할 것 없이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며 창칼을 휘둘러댔다.
‘습격자들의 실력은 좋다. 그리고 과감해.’
이들은 아군이 맞는 걸 개의치 않고 사격했다. 결사대처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치고는 제법 괜찮은 전사들이었다.
“크라치아의 사냥개!”
우릴 가리키는 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근위대는 황제의 사냥개라는 사실을 자랑스레 여긴다. 경멸이 아닌 표현을 경멸로 쓰는군.
내게 들러붙은 습격자는 네 명이었다. 나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자존심이 상할 것도 없다.
근위대장 헤일라스는 제국 최강의 군인 중 하나다. 전갑의체 레기온이 없어도 괴물이나 마찬가지다. 습격자 대다수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게 붙은 네 명의 전사도 다시 말하지만 실력이 좋았다. 일격에 바로 제압할 수 있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아키에스 전투술?’
나는 한 명의 움직임을 보고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의 움직임에는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는 확장한 감각으로 3차원 지도로 주변을 사전인식해 움직임을 최적화하고, 몇 번이나 합을 맞추고 연습해야 가능한 동작을 실전에서 사용한다.
나와 전투술 사용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정말로 테러리스트와 연이 깊군.’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힐 정도의 재능과 실력이라면 제국군에서도 출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군. 내 손에 죽을 테니까.
탕!
나는 권총을 사격하면서 총을 세차게 휘둘렀다. 총알의 궤적을 불규칙하게 뒤틀렸다.
이런 거친 사격으론 정밀하게 목표를 노리진 못한다. 하지만 정직하게 쏘면 총에 맞지도 않을 놈이다. 요행이라도 바래야 한다.
“카악!”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가 피를 토했다. 운이 좋게도 내 총알은 그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나도 이게 통할 줄은 몰랐다. 정말로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그래도 총에 맞은 녀석이 조금만 더 아키에스 전투술에 숙련됐다면 맞진 않았겠지. 키누안이라면 이런 조잡한 임기응변에 당하진 않을 것이다.
날 노린 놈 중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자가 당했다. 중심이 무너지니 나머진 오합지졸처럼 흐트러졌다. 항상 넷이서 팀을 꾸려 움직인 듯했다.
“이 자식이이이이!”
동료가 당하자 감정에 복받친 자가 나를 공격했다. 한 방에 내 머리를 날릴 수 있는 산탄총이 날 조준하고 있었다.
캉!
나는 칼을 휘둘러 산탄총의 총신을 옆으로 쳐냈다.
퉁!
총성이 일었고, 산탄총은 나 대신에 놈의 동료 가슴을 관통했다.
감정에 몸을 맡기더라도 전투 사고를 멈춰선 안 된다. 나는 그런 훈련을 받은 엘리트 군인이고, 저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 결과, 저들은 내게 생채기조차 남기지 못했다. 내게 부상이라곤 공중차량 추락 시에 받은 충격이 전부였다.
나는 옆을 응시했다. 헤일라스의 주변에는 시체가 수두룩했다. 그는 내가 넷을 상대하는 사이에 나머지 습격자를 대부분 해치웠다.
콰직!
그리고 마지막 전갑의체가 턱에서 정수리까지 창날에 꿰인 채로 전류를 흘리고 있었다.
‘아쉽네.’
내 몸을 건사하느라 헤일라스가 싸우는 걸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쿵!
창날을 빼내자 전갑의체가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근위대장을 노린 것 치고는 허술하네요.”
“저 멀리 릭 카이저가 대기하고 있었네. 내가 추락이나 전투 중에 부상을 입었으면 잽싸게 합류해서 날 공격했겠지. 제시간에 날 해치우지 못하면 오히려 역으로 잡힐 테니까 관망하고 있었던 거야.”
테러리스트 집단 네메시스의 릭 카이저.
나는 근위대장이 보는 방향을 응시했다. 내겐 위성 시야가 없으니 당연히 릭이 보이지 않았다.
이건 네미시스에게 중요한 기회였으나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릭 카이저 같은 거물을 사살하거나 생포했다면 엄청난 소득이다.
“그럼 릭을 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역으로 함정을 파는 게 좋지 않았습니까?”
헤일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릭도 상부에서 보자면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네. 릭을 잡으면 타격을 입히겠지만 네메시스를 괴멸시킬 순 없어. 어쨌거나 바바라의 입지를 높이는 게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지. 만약 우리가 릭을 잡으려고 함정을 파뒀다면 잠입시킨 바바라가 죽었을 거네. 상부의 오랜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거지.”
수도 아크바란의 방향에서 뒤늦게 공중차량이 오고 있었다.
‘근위대장조차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
나는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제국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재라는 게…….”
나는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불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헤일라스는 이미 내 질문을 알아챘다. 그가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딱, 한 분이 계시지.”
나와 헤일라스 같은 이들은 수십여 명이 죽고 사라져도 괜찮다. 고작해야 제국이라는 성벽에 벽돌 하나둘 빠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황제가 죽으면 제국이 무너진다.
그렇다면 제국의 전복을 꿈꾸는 테러리스트라면, 그들의 목적은 한 점으로 모여들 것이다.
‘황제의 목숨.’
나는 괜히 등골이 오싹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렇게 실감이 간 적은 처음이었다.
결국, 머리를 노려야 한다. 머리만 벨 수 있다면 팔다리 따윈 얼마든지 내줘도 상관이 없었다.
위이이잉!
지원부대의 공중차량이 우리의 머리 위에 섰다. 병사들이 재빨리 뛰어내리더니 사방을 경계하며 나와 헤일라스를 호위했다. 혹시 모를 제2차 습격에 대비한 것이다. 이미 다 끝난 판국에 와서 저러는 꼴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저들도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나와 헤일라스는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근위대로 복귀했다.
나도 당분간은 개인 정비를 해야 했다. 의체의 업그레이드와 조율도 해야 했고, 주문한 전용 무기도 수령해야 한다.
이런저런 일로 한동안 조용히 지내나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카르티카 가문의 본가로 장기 휴가를 갔던 일레이가 근위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