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5)
배드 본 블러드-5화(5/197)
005
포스 사용자는 내게 많은 변화를 남겼다.
폭발에 휘말린 내 등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고속기동으로 손상을 입은 골반과 고관절은 시커멓게 괴사하고 있었다.
가난한 하층민에겐 심각한 부상이었다. 합성섬유로 만든 인공 피부, 뼈를 대체할 수 있는 의료용 합금…… 이것만 해도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근위대 생도가 아니었다면 평생을 일하더라도 갚을 수 있을지 의문인 금액이다. 이 정도 부상이면 하층민 집안은 치료를 포기하고 안락사를 청할 것이다.
다행히 고아인 내겐 하층민 가족 대신에 근위대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마취에 취해서 자고 일어나길 서너 번 반복할 즈음엔 수술이 끝나있었다.
“흠.”
나는 뒤돌아선 채로 거울을 보았다. 인공 피부는 등에 말끔하게 붙어있었다. 이음새만 삐뚤삐뚤한 지도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생착이 완전히 끝나면 이음새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지.’
이 정도로 깨끗하게 해줄 필요는 없는데도 신경 써서 수술했다는 티가 났다.
끼릭.
나는 탁자 옆으로 손을 뻗어서 홀로그램으로 내 신체 지도를 띄웠다. 금속으로 대체한 관절과 뼈가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백 년도 끄떡없이 버틸 것 같았다.
‘어차피…… 버릴 몸인데.’
몇 년쯤 후에 나는 완전한 전신의체를 가질 것이다. 타고난 생체 육신은 유치와 같다. 적당히 쓰다가 버리면 된다. 이번처럼 가치 있게 소모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다.
‘어쨌든 난 목숨을 건졌다.’
나는 자그마한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 머릿속에선 포스 사용자의 최후가 반복적으로 맴돌았다.
‘포스 사용자는 마지막에 공격을 거뒀지. 날 죽이지 않았어.’
몇 번을 생각해도 결론은 같았다. 포스 사용자는 날 살려 보냈다. 그는 내 얼굴을 가까이서 보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나도 코라인 소년을 살려주려고 했었어. 하지만 그건 날 죽일 능력이 없는 비전투원이기 때문이야.’
포스 사용자가 내뱉은 마지막 말을 잊기 힘들었다. 날 보고 어리다고 했다.
‘나는 이미 전사이자 군인이다. 어리다는 이유를 날 살려준 거면…… 넌 등신이야.’
짜증이 났다. 방법만 있다면 놈을 살려내 다시 한번 싸우고 싶었다.
‘코라인의 한심한 자비 덕분에 난 목숨을 건졌다.’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싫든 좋든 그게 사실이다. 바뀌지 않는 불변의 진실.
난 사후 세계를 믿지 않지만, 만약 저승이 있다면 놈이 날 보고 있길 바랄 뿐이다.
‘나는 앞으로 코라인을 더 많이 죽일 거다. 내 손에 동포들이 죽는 걸 보며 저승에서라도 후회해라.’
그게 놈을 향한 내 복수였다. 난 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다.
* * *
나는 미세전류가 흐르는 치유액이 담긴 물탱크 속에서 꼬박 한 달을 뛰고 걸으며 재활했다. 내가 느끼기에 다 나은 것 같은데도 의사는 복귀 소견서를 써주지 않았다.
한 달이 그렇게 더 지났다. 물탱크의 치유액은 파란색이다. 그것도 우울할 정도로 창백한 푸른색!
더군다나 질감조차 불쾌하게 끈적거렸다. 그 속에서 하루에 몇 시간을 걷고 뛰자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칼에 찔리고 총알을 맞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두 달 동안 쳇바퀴의 쥐새끼랑 다를 게 없었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합니다.”
나는 홀로그램 화면 너머의 근위대장을 보며 말했다. 그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라도 있는 건가? 자네가 그런 타입은 아닐 텐데…….
“아뇨. 전투 때문은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재빨리 저었다. 고작해야 생도 주제에 이런 일로 근위대장에게 연락해선 안 된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하루라도 더 여기에 있다간…… 의사의 머리를 잡아채서 물탱크 속에 처박아버릴 것 같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근위대장이 크게 웃었다. 그는 한참을 웃다가 내게 말했다.
-정신과 상담은 필요가 없겠군. 지극히 정상이니까.
다음날, 근위대원 한 명이 마중을 나왔다. 내 재활을 담당한 주치의는 불만인 표정이었으나 근위대원이 내민 서류에 서명했다.
근위대원의 복장을 보면, 멀리서도 그가 근위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검은 겉감과 붉은 안감으로 이뤄진 외투가 바닥에 끌리듯 묵직하게 흔들렸다. 가슴에는 칼 문양의 황금빛 자수가 있었다.
우뚝.
병원을 빠져나온 근위대원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는 그의 어깨와 팔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올 게 왔다.
퍽!
근위대원의 묵직한 주먹이 내 복부에 꽂혔다. 나는 몸을 구부리며 신음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왜 맞았는지는 알고 있겠지?”
근위대원의 동공 테두리가 붉게 빛났다.
“제가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나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충격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모른다고 했으면 실컷 두들겨 패서 병원으로 돌려보냈을 거다.”
한낱 생도가 근위대장에게 사적인 부탁을 했다.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사실 변명할 것도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맞을 만한 짓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겹친 양손을 허리 뒤에 대며 상체를 무방비하게 세웠다. 맞을 게 있으면 더 맞을 생각이었다.
그런 내 태도를 본 근위대원이 입꼬리만 씰룩여 웃었다.
“꼭 근위대원이 되라, 루카. 넌 교육할 맛이 있을 것 같으니까.”
근위대원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 * *
훈련소에 복귀한 지 이틀이 지났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좀 살 것 같았다.
“저승길 갔다 온 소감이 어때?”
일레이가 백 킬로그램 덤벨을 한 손으로 들며 말했다. 자유시간에는 체력단련장에 모이는 생도가 많았다.
“남 말 하고 있네. 너도 죽을 뻔했잖아.”
나는 거꾸로 선 채로 팔굽혀펴기 하며 대답했다. 일레이도 포스 폭발에 휘말려 상당한 중상을 입었었다.
나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팔로 뛰었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내가 가볍게 착지했다. 다행히 두어 달 쉬었어도 운동신경이 녹슬지 않았다. 바로 훈련에 복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출력이 정해진 사이버네틱 의체에도 단련은 중요했다. 근육의 발달이 아니라 신경계의 발달과 협응 때문이었다.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전투용 전신의체를 사용해 봐야 성능을 뽑아내긴커녕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다. 그들은 맨몸의 나조차도 이기지 못할 터다. 정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육체는 폭주할 뿐이다.
특히, 우린 훗날 전갑의체 레기온을 쓰기 위해서 특별히 신경계를 화학 처리했고, 고강도의 훈련까지 매일매일 반복했다.
“……근위대장님은 포스 사용자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았을 거야. 언질 않고 우릴 시험한 거지.”
일레이가 말했다. 그는 덤벨을 붙잡은 채로 주먹을 뻗었다. 팔이 점차 빨라지더니 백 킬로그램 덤벨로 주먹질을 해댔다. 그의 사이버네틱 의수에서 모터음이 세차게 일었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으니 된 거지. 올라와, 일레이.”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며 격투대로 올라갔다.
“루카, 난 이번에 팔이 완전히 망가져서 더 좋은 놈으로 교체했어. 감당할 수 있겠어?”
“거, 말이 많네. 팔이 아니라 혓바닥을 바꾼 거 아니야?”
나는 검지를 까닥여 일레이를 도발했다. 일레이는 덤벨을 휙 던지더니 사뿐하게 격투대로 올라왔다.
“루카, 사망자가 없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일레이가 내 앞에서 격투 자세를 갖추며 말했다.
“사망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는 주먹을 가볍게 뻗으며 대꾸했다. 일레이는 고개를 젖혀 쉽게 피했다.
휙!
우린 연달아 주먹과 발을 뻗었다. 서로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하게 몸을 푸는 정도였다. 물론 느릿하다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다. 제대로 맞는다면 뼈가 부러질 위력과 속도다.
“그게 아니야. 그 포스 사용자는 아마 날 죽일 수 있었을 거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포스 폭발을 일으켰어. 덕분에 난 살 수 있었지. 폭발에 당한 다른 생도도 마찬가지고.”
일레이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솟구치는 짜증을 참지 못했다. 그 포스 사용자는 도대체 얼마나 물러터진 놈이었던 거지? 놈은 우릴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려 했다.
‘그러니까 내 손에 뒈진 거지!’
나는 분노를 실어서 주먹의 속도를 높였다. 일레이도 재빨리 반응하더니 내 주먹을 옆으로 쳐냈다.
“야, 내 얼굴을 박살 낼 생각이야?”
갑작스러운 가속에 일레이가 툴툴거렸다.
“예전부터 그 잘난 척하는 얼굴을 뭉개고 싶었거든.”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네.”
일레이의 옅은 웃음에는 여유가 있었다.
“참나, 누가 누굴 키웠다고. 이제 제대로 간다, 일레이.”
나는 동작을 멈추곤 숨을 가다듬었다. 신경계의 대역폭을 늘리는 듯한 심상을 떠올렸다. 확장된 신경계를 따라 전기신호와 화학 물질이 질주했다. 뇌와 육체가 활발하게 신호를 주고받았다.
내 눈동자는 일레이의 모공조차 볼 수 있었다. 귓가에선 그의 심장 고동마저 들렸다. 후각도 극도로 민감해져서 일레이가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조차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체 활성화를 마친 건 일레이도 마찬가지였다. 은은한 빛을 머금는 그의 눈동자가 내 뱃속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체력단련장의 쇳소리가 멎었다. 다른 생도들도 나와 일레이의 대전을 구경했다.
손과 발이 빠르게 오간다. 나는 감각을 곤두세워서 일레이의 공격을 피하고 쳐냈다. 일레이도 마찬가지였다. 공수가 빠르게 전환되어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끼이이이-.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내 팔다리에서 울렸다. 고속전투를 시작하니 의체의 한계가 금방 오고 있었다. 미묘하게 내 동작이 늦어지고 있었다. 이쯤에서 그만두든가 승부를 내야 했다.
‘일레이 녀석, 팔을 더 좋은 걸로 바꾸긴 했나 보네.’
일레이의 팔은 여전히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뻗었던 주먹을 펼쳐서 일레이의 팔을 잡으려 했다.
끼릭!
내 손끝이 일레이의 팔에 걸렸다. 나는 일레이의 팔을 끌어당기며 녀석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성공이다. 일레이가 흔들렸다. 빈틈은 아주 잠시였지만 내겐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툭!
난 일레이의 발을 걷어차면서 옆으로 빠져나왔다.
쿵!
일레이는 넘어진 채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연기가 나기 시작한 손을 휘휘 저었다.
구경하던 생도들의 입에서 탄성과 감탄이 낮게 흘러나왔다. 다들 내가 불리한 상황을 기지로 역전시켰다는 것 정돈 알 터다.
“이번엔 이길 줄 알았는데…….”
일레이가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격투술은 언제나 내가 우위였다.
“더 좋은 파츠를 달았다고 쉽게 강해질 거면 우리가 이 고생을 왜 하겠어?”
나는 넘어진 일레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 손을 잡은 일레이가 일어서면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녀석의 한결같은 미소가 살짝 흐트러졌다.
일레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루카, 그때 너는…….”
일레이가 다른 생도의 시선을 느끼며 말을 흐렸다. 마저 듣지 않아도 나는 뒷말을 알 것 같았다. 오히려 왜 이제야 묻나 싶었다.
‘내가 왜 코라인 소년을 죽이지 않고 넘어가려 했는지…… 궁금하겠지.’
일레이 덕분에 나는 실수를 무마할 수 있었다. 내 칼 대신에 일레이의 총알이 코라인 소년의 머리를 관통했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실수한 거지. 다신 그런 일이 없을 거다.”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내 말을 들은 일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친해지고 나니 녀석의 감정선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일레이는 이런 틀에 박힌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닌 듯했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