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50)
배드 본 블러드-50화(50/197)
050
장기 휴가는 특권이었다.
일레이는 좋은 가문의 자제였고, 생도 생활 내내 모범적이었으며 훈련 성적도 우수했다. 그렇기에 생도 신분으로 장기 휴가를 허가받을 수 있었다.
“일레이가? 그런 녀석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웃는 얼굴로 야욕을 숨기고 있었던 거지. 보통내기가 아니잖아.”
나는 동기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들은 귀족 사회에 대한 정보가 빨랐다. 무늬만 귀족인 나와는 다르다.
‘일레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군.’
오늘은 일레이가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복귀한 일레이는 지금쯤 여러 검사를 받고 있을 것이다. 심리 검사도 포함해서 말이다.
“무슨 일인데?”
일레이와 만날 때까지 참기 힘들었다. 나는 휴게실에서 떠드는 동기들에게 다가갔다.
“루카, 너도 몰라? 가기 전에 일레이가 말하지 않았어?”
“모르니까 묻는 거지. 내가 그 자식 마누라야? 뭐든 다 알게?”
내가 짜증스레 말했다. 동기들은 이런 내 태도에 익숙했기에 어깨만 으쓱했다.
“일레이가 자신의 형을 재기불능…… 그러니까 반병신으로 만들었어. 이제 카르티카 가문의 유력한 차기 가주는 일레이라고 하더군.”
나는 다른 이들처럼 웃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일레이는 가주 자리나 출세에 관심이 없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얼핏 듣기론 형제끼리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그랬던 일레이가 형을 반 죽여놓고 차기 가주를 노리고 있었다.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릴리안 라모네스의 죽음이 일레이의 심경을 뒤흔든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목표조차 바뀔 정도로.
나는 일레이의 방문 앞에서 녀석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검사를 마치고도 남을 시간인데도 일레이는 복귀하지 않았다.
‘심리검사에서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본 일레이의 심리 상태는 몹시 불안정했었다.
나는 계단 난간에 걸터앉은 채로 천장을 응시했다. 차가운 타일이 얼룩 하나 없이 반들거렸다.
“루카? 아니, 이제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라고 불러야 하나?”
일레이가 계단을 올라오며 말했다.
“그냥 루카지. 루카우스는 무슨…….”
“조금만 기다려. 가방만 던지고 나올게. 복귀 날에 이렇게 기다려 주다니 감동인걸.”
일레이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숙소 건물 바깥에서 그가 나오길 기다렸다.
우린 대화를 건물 밖에서 주로 한다. 간혹 불온한 말이 오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만 특별히 그런 게 아니었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대화 장소가 훈련소 곳곳에 암묵적으로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곳에 있으면 자리를 피하는 게 생도 간의 예의였다.
“형을 죽였다면서?”
나는 일레이가 오는 걸 보며 말했다.
“안 죽였어. 그냥 적당히…… 손 좀 봤을 뿐이지.”
“카르티카의 가주가 되려고?”
“뭐, 한 번 해보려고.”
일레이는 취미 생활이라도 결정하듯 가벼이 말했다.
“그 여자 때문에?”
난 릴리안의 이름을 직접 꺼내진 않았다. 일레이는 눈을 감았다가 가늘게 떴다.
“루카, 난 이제 도망치지 않을 거야. 가문에 문제가 있다면 내가 가주가 돼서 고칠 거고…… 제국에 불만이 있다면 그걸 바꿀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설 거야.”
듣기에 따라 문제가 있을 법한 말이다. 하지만 난 일레이의 진취적인 발언이 마음에 들었다.
내 친구는 불평불만만 지껄이며 손가락 까딱하지 않는 머저리가 아니었다.
일레이가 결심했다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능력은 충분한 녀석이다. 지금까진 계기와 동기가 없었을 뿐이지.
“용케도 형을 두들겨 패고 가주 후계자가 됐네. 카르티카가 그렇게 막돼먹은 가문이었어?”
“정식 절차를 걸친 결투였어. 형은 예전부터 단순해서 도발에 잘 넘어갔거든.”
“어떻게 도발했는데?”
어지간해선 형제끼리 결투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목숨이 오갈 정도의 수준까지는 더더욱.
“형의 애인과 잤어. 내가 더 잘 생겨서 그런지 금방 넘어오더라고.”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너도 대단한 쓰레기네.”
난 잘생긴 쓰레기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형에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가주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해놓고 뒤통수를 친 격이니까.”
이름도 모를 일레이의 형님은 동생의 역량도 파악하지 못하고 도발에 넘어갔다. 애초에 뛰어난 가주가 될 재목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카르티카 가문에서도…… 포부를 드러낸 일레이를 반기고 있겠지. 자식 중에서 일레이가 가장 뛰어날 테니까.’
대충 예상이 갔다. 일레이도 집안의 분위기를 알기에 과감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우린 그간 있었던 일을 말로 교환했다. 나는 말할 수 있는 내용만 내뱉었다. 바바라 사건의 내막 같은 건 일레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바바라 사건의 내막이 새어나가면 나와 일레이는 둘 다 처분당하거나 준하는 벌을 받을 것이다. 제국의 상층부에서 수어 년을 준비한 작전이니까.
“너, 어떤 위험한 거래를 한 거야? 어지간한 조건으로는 명문가의 양자로 편입시키진 않을 텐데.”
자세한 내용은 당연히 말하지 못한다. 일레이도 그걸 기대한 건 아니다.
“어차피 내 인생은 늘 외줄타기였어. 그건 지금도 다를 바 없지.”
“재주꾼도 한 번 정도는 머리부터 떨어지는 법이야.”
“그렇다고 재주꾼이 재주를 안 부릴 순 없잖아?”
내겐 다른 방도가 없다. 애초에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일레이처럼 결심하고 말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리고 쿠스토리아 가문의 편입 정도면 나도 만족할 만한 대가였다.
“어쨌든…… 복귀를 환영한다, 일레이. 가주가 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굴러야지.”
“두 배가 아니라 네 배 정도 더 구를 생각으로 왔어.”
일레이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다음날 바로 자진해서 임무를 맡아 분대를 꾸렸다. 임무는 노바스 행성의 토착 생물 토벌이었다.
* * *
나는 드디어 제국의 공방을 방문했다. 공방의 기술자는 무기 시험실로 나를 안내했다.
시험실에는 이런저런 더미와 방호구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난 주문한 고압축 중량병기를 들었다. 내가 선호하는 칼의 형태지만 지금까지 쓰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길이가 더 긴 데다가 날도 외날이었다.
미리 듣긴 했으나 처음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드르륵.
묵직한 칼날이 저절로 바닥에 끌렸다. 나는 의체의 출력을 더 높여서 칼을 들어 올렸다.
‘찌르기.’
내 생각과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쉭!
찌르기를 주력으로 생각하고 만든 칼은 아니다. 하지만 찌르는 것도 무리는 없었다. 효율이 좀 떨어질 뿐이다.
부웅!
나는 칼을 들어서 아래로 베었다. 칼에 이끌리듯 내 동작이 평소보다 컸다. 하지만 위력도 그만큼 높았다.
어지간한 방호 장비는 내 칼의 파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질 것이다. 겉보기엔 중량병기라는 걸 알기 힘드니 허를 찌르기에도 좋았다.
‘아마…… 나보다 강한 상대와 싸울 일이 생길 거야.’
릭 카이저의 경우도 그랬다. 정공법으로 이기기 힘든 상대다. 그러면 아키에스 전투술을 이용한 변칙적인 임기응변에 기대야 한다.
더도 말고, 딱 한 번만 먹히면 된다. 두 번, 세 번은 바라지도 않는다.
“어떤가?”
“들고만 있어도 의체가 팽팽하게 당겨진 느낌이 좋네요. 조금만 출력을 낮춰도 떨어뜨릴 것 같아요.”
“그 아이의 이름은 크루시스네.”
공방의 기술자가 한쪽 눈만 찔끔 뜨며 말했다. 마치 내게 똑바로 기억하라는 듯이 말이다.
공방의 기술자 중에선 자신이 만든 무기 하나하나에 이름을 짓는 자가 있다고 들었다. 내 무기를 만든 기술자도 그런 감성적인 부류인 듯했다.
“봤어요. 칼날 아래쪽에 작게 적혀 있던걸요. 크루시스는 무슨 뜻이죠?”
“옛 언어로 재앙, 파멸…… 대충 그런 뜻이지. 총은 루이나네. 그 의미는 파괴. 둘 다 여자애니 애인처럼 아껴주게나.”
내 첫 여인이 총과 칼이 될 줄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칼과 총을 양손에 하나씩 쥐었다. 칼은 크루시스, 총은 루이나였다. 어느 쪽이 정실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기잉.
나는 ‘충격권총’을 쥔 손을 뻗어서 조준했다. 방금 이름을 들었지만, 루이나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했다. 장난감 놀이하는 애새끼도 아니고 말이다.
충격권총은 에너지 카트리지와 실탄을 동시에 사용한다. 단점은 에너지와 실탄이 결속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물질인지라 미리 결속해 뒀다간 총기가 터지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탄창 하나 단위로는 연속 사격이 가능했다.
나는 조준한 채로 에너지 결속이 끝나길 기다렸다.
위잉.
옅은 진동이 선명하게 팔을 타고 전해졌다.
투- 웅!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가 솟구쳤다. 내 예상보다 반동이 훨씬 강했다. 이것도 쓰는 법을 제대로 익혀야 할 것 같았다.
냉매 탄피는 열을 잔뜩 머금은 채로 총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열기로 공기가 일그러질 정도였다. 참고로 냉매 탄피를 쓴 총알은 더럽게 비싸다. 방금 내 일당이 허공에 증발했다.
그러나 위력은 만족스러웠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박살 난 더미를 보았다. 방호구를 입은 사람 모양의 표적은 빗맞은 것만으로도 박살 나 있었다. 그을린 파편에는 전류와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야. 제법이다, 루이나.
나는 나도 모르게 낯뜨거운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벌써 반할 것 같았다.
“죽여주지?”
공방의 기술자가 내 표정을 보고선 싱글벙글 웃었다. 난 내 얼굴이 상기됐다는 걸 알곤 머쓱하게 웃었다.
내 넉살이 조금만 더 좋았어도 눈앞의 기술자를 장인어른이라 불렀을 것이다.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많이 죽이게. 무기로 태어난 아이들답게 피를 원할 테니까.”
나는 살벌한 덕담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제국의 공방에서 나갔다. 당분간 여기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자, 이제 무얼 해야 할까.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키누안을 다시 따라다니는 것. 다른 하나는 혼자서 하층 구역에 내려가는 것.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은 뻔했다. 당장은 키누안 곁에 있어도 뭘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가 하층 구역까지 단독으로 오갈 수 있는 통행권을 얻었으니 한 번 써봐야겠지.
난 고속 승강기를 통해 검문소까지 내려갔다. 통행증이 등록됐기에 검문소에선 날 제지하지 않았다.
“으음.”
나는 하층 구역의 매캐한 공기를 마시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키누안 없이 내려오니 뭔가 낯설었다. 나도 상층 구역에 어지간히 익숙해진 모양이다. 특히나 근래는 아카데미니 쿠스토리아 저택이니 뭐니 고급스러운 양식의 건축물만 봤었다.
삭아서 바스러지는 콘크리트와 녹슨 금속 타일이 보인다. 거미줄 수십 겹을 겹쳐둔 듯이 복잡하게 얽힌 전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결됐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나아가자 인파가 많아졌다. 상층 구역과 멀어질수록 멀끔한 사람은 줄고 허름한 부랑자가 늘어갔다.
“한, 한 푼만 줍쇼. 도, 도련님.”
부랑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주머니에 은근슬쩍 손을 넣으려 했다.
콰직!
난 부랑자의 손을 잡아서 비틀었다. 손목이 뜯겨나가며 전선과 부품이 튀었다.
“크, 카악!”
비명을 지른 부랑자가 잽싸게 어두운 골목으로 도망갔다.
좋아, 익숙해지고 있다. 역시 이쪽 동네는 이런 감각이지.
나는 단말기를 꺼내 가브리엘을 호출했다. 오랜만에 부르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몇 분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다.
난 지도에 저장된 가브리엘의 거처를 찾아갔다. 아직도 여기에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약 내 호출을 무시한 채로 놀고 있었다면 코를 뭉개줄 생각이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 보이는 건 가브리엘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집에 있으면서 내 호출을 무시한 건 아니었다.
그저 호출에 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죽은 거냐?”
나는 바닥에 쓰러진 가브리엘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주변의 핏물이 아직 선명했다.
“아직은 안 뒈졌…… 어.”
가브리엘이 피를 토하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는 총에 맞은 상태였다.
“돈 없지? 치료비 대납해 줄까?”
내가 묻자, 가브리엘은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한껏 구겼다.
“시발…….”
가브리엘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단말기를 꺼내 사설 구급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