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51)
배드 본 블러드-51화(51/197)
051
하층 구역의 병원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병실의 문을 닫고 열 때마다 거미줄이 낀 전등이 삐걱삐걱 흔들렸다. 가격이라도 싸면 불만을 누그러뜨리겠지만, 이딴 병원조차 하층 구역 기준으로는 거금을 받는다.
수술을 마친 가브리엘이 마취약에 절은 얼굴로 깨어나더니 나를 보았다.
“입원비는 하루치만 지불했어. 내일 퇴원해.”
내가 가브리엘에게 말했다. 가브리엘은 흉부와 복부에 총알을 네 발 맞았다. 다행히 목숨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야. 나도 돈귀신의 배를 불려줄 생각은 없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경고를 당했어. 요즘 이쪽 바닥 분위기가 험악해서 말이야. 서로 세력 불리기를 시작했다고.”
“넌 갱단 소속이 아니잖아.”
가브리엘은 폭력으로 먹고사는 프리랜서였다. 투기장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해결사처럼 일거리를 맡기도 한다.
“아니니깐 문제가 된 거지. 평온할 때야 나 같은 놈을 그냥 두지만, 세력 싸움이 시작되면 아군 아니면 적이거든. 다짜고짜 까불지 말라고 총질하더라고. 어떤 새끼들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
가브리엘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널 죽일 생각은 없었나 보네. 머리를 쏘지 않았으니까.”
난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서 내 관자놀이를 짚었다.
“어디까지나 경고니까. 이 정도만 해도 대부분은 재기불능이거든. 아니면 겁을 집어먹고 자신을 보호해 줄 세력을 찾든가.”
“너도 갱단에 몸을 담아. 하는 꼬락서니 보니 혼자선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내 나름의 충고였다.
“죽으면 죽었지. 그건 싫어. 그쪽은 별별 쓰레기 같은 새끼들 밑에서 일해야 한다고. 그보다 넌 왜 날 찾아온 거야? 몇 달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이쪽에 볼일이 있어서. 내일 이 시간에 찾아올 테니까. 진통제 제일 센 거 맞고 대기해.”
“나 방금 수술한 사람이야.”
“그래서 진통제 맞으라고 했잖아. 뭐 문제 있어?”
난 팔짱을 끼며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내가 노려보자 가브리엘은 인상만 더욱 팍팍 구겼다.
“그래, 그래. 이깟 총상 정도야 문제없지, 아무렴!”
가브리엘은 불만을 내뱉으면서도 내 지시를 따라줄 것이다.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빚을 진 상대를 배신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브리엘에게 계속 ‘투자’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입원한 가브리엘을 놔두고 병실을 나왔다. 병원에는 무장한 경비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선 가브리엘도 안전할 것이다.
‘하층 구역에서 키누안이 남긴 흔적을 찾아낸다.’
나는 일전에 키누안이 ‘옛 투기장 관리자’와 꽤 친밀하게 지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다.
‘키누안이 과거에서 하층 구역에서 무얼 했는지 안다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겠지.’
나는 상층 구역의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며칠은 하층 구역에 체류하면서 머물 생각이었다.
사설 병원에서 나오자 번화가가 나왔다. 의료 거리인지라 다른 병원과 사이버네틱 정비소가 주로 늘어져 있었다.
‘카이멘 사의 신형 전투의체, 특가 판매. 정품 보장! 이 가격에 다신 구할 수 없다! 전신의체 구매 시에 추가 할인!’
‘제7복지센터에서 알려드립니다. 우리의 친구, 레번 퓨린이 오늘 죽었습니다. 하지만 레번의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고, 폐는 종양 하나 없이 건강합니다. 레번 퓨린의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신선한 장기를 구매하세요.’
‘우린 무지개를 직접 제조합니다. 살구색부터 적록색까지만 싸게 팝니다. 아시는 분만 연락하세요.’
싸구려 홀로그램 광고가 걸을 때마다 내 얼굴에 부딪히며 통과했다. 난 눈을 찌푸렸다.
다른 사람들은 눈을 찌르는 광해가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이걸 보면 나도 상층 구역의 삶에 물들긴 했나 보다.
우우웅!
규모가 꽤 큰 병원에서는 낡고 녹슨 공중차량이 옥상을 통해 응급이송을 하고 있었다. 나와 가브리엘이 타고 온 것도 저런 차량이었다.
나는 밤새 걸으며 하층 구역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도시의 흐름을 몸으로 익히듯 번화가에서 우범지대로 걷다가 때론 상층 구역이 우러러보이는 경계지대에 머물기도 했다.
그리고…… 내 발걸음은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서 멈췄다.
‘제72보육원.’
내가 자란 곳이다. 옆으로 긴 4층 건물은 외벽이 벗겨져 콘크리트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주변으론 놀이터 겸 공터로 활용되는 부지가 보였다. 한쪽에는 창고도 있었다.
밤중이라 건물의 불빛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보육원엔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이 있었다. 한밤중에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벌을 받는다. 물론 안 걸리면 그만이지만.
내가 보육원에서 나온 건 4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흐릿했다. 생도 생활은 그만큼 밀도가 있는 삶이었다. 하루를 사나흘처럼 보냈다.
내 기억 속의 보육원 생활은 풍요롭지 않았다. 그러나 보육원에도 오지 못한 길거리 고아들보단 사정이 나았다. 적어도 보육원은 비좁지만 잘 곳이 있었고, 부족하지만 음식도 있었으니까. 생존의 최소요건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나는 도로 건너편에서 보육원 건물을 응시했다.
키이잉.
트럭 한 대가 보육원 앞에 멈춰 섰다. 보육원의 정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간 트럭은 뒤꽁무니를 창고 가까이 댔다.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뚱뚱한 보육원장이 트럭 기사와 거래하더니 크레딧칩을 받았다.
‘또 횡령이로군. 돼지 같은 새끼.’
내게도 익숙한 광경이다. 보육원장은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보급을 민간 시장으로 빼돌렸다. 횡령을 감시해야 할 하급 관료들은 보육원장에게 뇌물을 먹었기에 눈을 감고 있다.
내가 여기서 참견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다. 기껏해야 이곳 보육원장도 몇 달 정도만 조심하겠지. 누군가 계속 지켜보지 않는 이상에야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설사 바뀌더라도 이곳뿐이다. 내가 제국에 있는 수많은 다른 보육원을 일일이 찾아가서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세상은 바뀌지 않아.’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
나는 눈을 들어서 창문을 바라봤다. 잠에서 깬 아이들이 얼굴만 내밀어 바깥을 보고 있었다. 머리가 꽤 굵어진 아이들은 지금 보육원장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것이다. 내가 알아챘듯이 말이다.
하지만 저들에겐 횡령을 막을 힘이 없었다. 보육원장에게 달려들어 봐야 몇 배로 무서운 체벌로 돌아올 뿐이다. 어쩌면 길거리로 쫓겨나 며칠 뒤에 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약자인 아이들은 강자인 보육원장을 거스를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도로를 건너 보육원으로 들어갔다. 공터와 창고에서 보급품을 옮기던 이들이 나를 쳐다봤다.
‘무의미한 짓이지.’
알고 있다.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고작해야 이곳 아이들이 수어 달 정도는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정도 변화라면, 내가 움직일 가치가 있었다. 난 지금 그렇게 생각했다. 물러졌구나, 루카.
“너, 뭐 하는 새끼야? 저리 안 꺼져?”
짐을 옮기던 사내가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싸움꾼이 아니었다. 그저 짐을 나르는 노동자다.
콰직!
나는 사내의 무릎을 걷어찼다. 사내의 무릎이 꺾이다 못해 부서지면서 터졌다. 부품이 사방팔방 튀었다.
“어, 어어?”
트럭 기사와 사내들이 나를 쳐다봤다. 일부는 어설프게 총을 뽑기도 했다.
내 손이 움찔했다. 나는 전투 반사를 억눌렀다. 억누르지 않았다면 나를 조준하는 사내의 머리가 내 주먹에 맞아 터졌을 것이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집어넣어. 팔다리로 끝나고 싶으면 말이야.”
내가 검지를 뻗어 총을 든 사내에게 경고했다. 나도 안다. 말뿐인 협박이 먹힐 리가 없지.
탕!
총성이 퍼졌다. 나는 손바닥을 뻗었다가 주먹을 쥐었다.
“아…….”
총을 쏜 사내는 입만 쩍 벌렸다.
난 손바닥을 펼쳤다. 찌그러진 탄두가 내 발아래로 떨어졌다. 저런 저위력 권총은 내 의체를 뚫지도 못한다.
“비켜.”
나는 사내들과 트럭 기사 사이로 걸어갔다. 그들은 감히 날 공격할 생각도 못 하며 주춤주춤 거리를 벌렸다. 행동을 동반한 위협은 효과적이다.
“너, 루, 루카?”
보육원장을 날 알아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간만입니다, 원장님.”
“정말로, 근…… 카아악!”
나는 원장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치며 말을 막았다. 원장은 혀라도 깨물었는지 기겁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직도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 사시는 겁니까? 돈도 모을 만큼 모으셨잖아요.”
“왜, 왜 이래? 루, 루카. 난 자네에게 잘해줬네. 나중엔 배급도 남들보다 많이 해줬잖나.”
선별검사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나도 특별대우를 받았다. 예전처럼 굶주리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나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원장님의 목을 분지르지 않고 있잖습니까.”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 살벌한 말에 트럭 기사와 사내들이 도망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난 등을 돌며 트럭 기사를 쳐다봤다. 내 안광이 그들을 관통할 듯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린 빠지겠소.”
“현명하군. 난 위에서 왔다. 앞으로 이 보육원과 거래하는 정황이 발각되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고 있겠지?”
나는 손가락을 위로 뻗으며 사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했다.
내게 이들은 제지할 권한은 없다. 앞으로 이곳을 일일이 감시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목숨이 아깝다면 알아서 사릴 것이다. 그 효과는 길어야 1년 정도겠지만.
트럭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내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은 보육원장만 남겨둔 채로 자리를 벗어났다.
“내,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무엇이 마음이 들지 않았는지 말해주게! 내가 다 사죄할 테니까!”
보육원장은 홀로 남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얼굴로 외쳤다.
“딱히 사과를 받거나 그러려고 한 건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가 와본 김에 짜증이 나서 끼어든 겁니다. 전부 우연이죠.”
난 사명감을 가지고 내가 자란 보육원을 챙길 생각이 없었다. 봉사활동은 부자들의 변덕과 위선 정도면 충분하다.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네. 반, 반성하고 있어. 지금까지 누구도 날 말려주고 벌을 줄 사람이 없었지. 지금 난 다시 태어났네. 자네 덕분에 말이야.”
나는 보육원장의 헛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내일은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세요.”
기운이 빠진다. 때리거나 죽일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 어차피 보육원장이 바뀌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창문에서 구경 중인 아이들을 쳐다봤다. 누군가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난 등을 돌리며 보육원을 빠져나오려 했다. 괜히 끼어든 것 같았다. 내 성격에 맞는 짓은 아니었다.
우뚝.
난 정문에서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굶주리던 유년기가 떠올랐다. 난 배가 고파서 밤에 몰래 빠져나가 길가의 쓰레기통을 뒤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 머리를 쓰다듬던 보육원장의 손가락은 관절 부위가 접힐 정도로 통통했다.
아, 화가 조금 나는군.
“루카?”
나는 뒤를 돌아서 보육원장에게 다가갔다.
콰드득!
난 보육원장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주먹 모양을 따라 얼굴이 움푹 무너졌다. 압력에 밀린 안구가 반쯤 빠져나오고, 충격으로 앞니는 몽땅 부러졌다. 주먹에 닿은 코뼈는 으스러지면서 파편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힘 조절은 했다. 죽진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때렸다면 머리통이 터졌을 테니까.
“꾸으윽, 꿉.”
보육원장이 얼굴을 감싸며 피가래가 끓는 신음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열이 좀 받아서요.”
나는 망가진 원장을 내버려 두고 보육원을 나갔다. 도로는 고요했다.
난 이제 가브리엘이 있는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거기서 한숨 자고 가브리엘과 함께 투기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밤거리를 되돌아가 병원까지 돌아갔다. 나는 병실에 마련된 보호자용 의자에 기대서 잠을 잤다. 원래 훈련 때문에 숙면을 잘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의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잠을 잘 잤다.
난 간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눈을 뜨자마자 본 게 가브리엘의 못생긴 얼굴인데도 화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 숙면의 이유는 나도 알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을 쥐어패는 건 정신건강에 좋은 일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