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54)
배드 본 블러드-54화(54/197)
054
우린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도 매캐한 연기가 우리의 몸에 배어 있었다.
“환자분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시죠? 법적 보호자가 아니시면 면회가 안 돼요.”
간호사가 귀찮아하는 얼굴로 말하며 우릴 보지도 않았다. 그녀의 컴퓨터 화면에는 쇼핑 카탈로그만 수두룩했다.
“아가씨, 이거면 되겠지? 예쁜 옷이나 한 벌 사 입어.”
가브리엘이 능숙하게 크레딧칩을 꺼내서 내밀었다. 간호사가 무신경하게 손을 뻗어 크레딧칩을 품에 넣었다.
둘 다 이런 흥정에 익숙해 보였다.
“노마 씨는 401호 병실에 있어요.”
우리가 찾는 토라의 측근 이름은 켄 노마다. 그는 토라의 전담 경호원 역할을 했었다.
병실이 있는 복도에 들어서자, 약품과 체취가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났다. 닫힌 병실 안쪽에선 절규와도 같은 신음이 간간이 들렸다.
정신병원은 사실상 격리를 위한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치료할 생각이라면 이런 곳에 환자를 두지 않을 것이다.
난 401호 병실 앞에 섰다.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잠금장치가 열렸다.
끼이익.
문을 자주 열지 않는지 녹슨 소리가 귓구멍을 긁듯 불쾌했다.
“켄 노마?”
내가 안으로 들어가며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병실의 침대에는 켄 노마가 앉아있었다. 눈동자에는 총기가 없었고 뺨은 홀쭉하게 말라 있었다. 침대의 시트와 베개는 누런 자국이 퀴퀴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켄은 내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켄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따라 들어온 가브리엘은 벽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제 이름은 루카입니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서 켄의 눈앞에 흔들었다. 동공이 내 움직임을 따라오곤 있었다.
“루, 카?”
켄은 의식의 각성이 상당히 늦었다.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무척이나 떨어진 상태였다.
딱, 따닥, 딱딱.
켄의 팔다리 의체가 경련하듯 떨렸다. 근육과 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뇌 신경계가 맛이 갔다는 뜻이었다.
“루카, 제대로 된 답변을 얻을 수 있겠어? 딱 봐도 뇌가 스펀지처럼 구멍 났네. 신경도 불탄 전깃줄이나 마찬가지일 거고.”
가브리엘조차 진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켄은 망가져 있었다.
“토라에 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난 말을 느리게 내뱉었다. 이번엔 켄의 대답이 없었다.
켄의 의식은 고장 난 모니터처럼 간헐적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러 먹었어. 알레프가 완전히 사람을 뭉개버렸네. 이래서야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가브리엘이 초를 치듯 옆에서 계속 말을 거들었다. 난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나는 근위대 훈련소에서 배운 지식을 하나씩 떠올리며 더듬었다.
근위대원은 뇌와 신경계를 극도로 혹사한다. 뇌 신경계 손상의 증상에 따른 임시대처법도 여럿 가르친다. 물론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다.
‘켄은 근접 무기, 특히 나이프를 잘 다뤘어.’
켄은 투기장 관리자의 전담 경호원이었다. 실력은 좋은 편이었다. 근위대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약물을 통한 신경계 강화 처리도 받은 모양이었다.
“이만 가자고. 시간 낭비야.”
가브리엘이 한쪽 다리를 떨며 말했다. 나는 여전히 가브리엘의 말을 무시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키잉.
난 호신용 나이프를 꺼냈다. 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의 동공이 나이프를 좇아오고 있었다. 반응 속도가 아까보다 빨랐다.
인간은 평생 업으로 삼은 일에 관해선 신경계의 결합이 강력하다. 특히 전투 같은 강렬한 업은 몸에서 쉬이 떠나지 않는다.
휘릭.
난 나이프를 손아귀에서 돌려서 손잡이 부분을 켄에게 내밀었다.
부들부들.
켄은 경련하는 손으로 나이프를 잡았다. 그 순간, 그의 떨림이 멎었다. 동공의 초점도 아까보다 또렷했다.
휙!
난 손을 뻗어서 켄을 공격하려 했다.
캉!
켄이 나이프를 움직여 내 공격을 막아냈다. 내 손과 나이프가 몇 차례 부딪히며 공방을 이어갔다.
전투와 나이프 기술을 담당하는 뇌 신경계를 중심으로 다른 기능도 활성화될 것이다. 그 정도의 여력이 남아있다면 말이다. 이마저도 완전히 고장 났으면 더는 방법이 없다.
“무, 무슨 일이지? 루, 루카라고 했나?”
켄이 드디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아마 두통도 꽤 있을 것이다.
“어, 어어? 어떻게 한 거야?”
가브리엘이 팔짱을 풀며 벽에서 등을 뗐다.
간단한 원리다. 비유하자면, 고장 난 스위치를 대신해서 다른 회로로 우회해 기계를 작동한 셈이었다. 일시적인 각성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서 망가진 뇌에 무리가 더 갈 것이다. 하지만 치료는 어차피 내 목적이 아니니 상관없다.
“정, 정말 오랜만이군. 이, 이렇게 맑은 정신이라니, 아니, 맑진 않아. 머릿속에서 누가 불꽃놀이를 하는 기분이군. 그, 그래도 늪에 빠져 있을 때보다는 나아.”
나는 켄이 반응하기 좋은 속도로 팔을 뻗어 공격했다. 켄은 나이프를 움직여 내 손을 계속 막아내며 때론 반격도 했다.
끼릭!
나는 손가락 사이로 나이프를 끼워 막아냈다. 켄은 나이프를 잽싸게 빼내며 흥미가 생겼는지 입술을 비틀었다.
캉!
계속 공격과 방어를 하면서 뇌의 활성화를 유지해야 한다. 전투 상황이 끊어지면 켄의 의식은 다시 가라앉을 것이고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알, 알레프의 부하인가? 아, 아직도 내게 궁금한 게 남아있나 보군.”
“알레프 때문에 온 건 아닙니다. 알레프에겐 정보만 제공받았죠. 제가 궁금한 건 토라의 주변인에 관한 겁니다.”
“보, 보스의 주변인?”
아마 키누안이 토라와 어울렸다면 본명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키누안의 특징을 설명했다. 키누안 같은 분위기를 가진 사내는 드물다. 특히 하층 구역에서는 더욱 보기 힘들지.
켄이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반대편으론 나이프를 휘둘렀다. 생각을 마친 그가 나를 응시했다.
“알 것 같기도 하네. 하, 하지만 내가 왜 가, 가르쳐줘야 하지?”
켄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하층 구역의 갱이지. 아무런 보상도 없이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 병원에서 빼내 주겠습니다. 가브리엘, 너희 집에 방이 하나 남지?”
“뭐? 나보고 치매 걸린 할배의 수발이라도 들라는 거야?”
“며칠만 고생해줘. 아, 그리고 아지트를 하나 구해. 믿을 만한 사람도 모으고. 지금부터 널 보스로 하는 갱단을 만들 거야.”
“잠깐만! 루카, 그게 무슨 소리야?”
“싫으면 말해. 다른 사람을 찾아볼 테니까.”
“아니, 싫은 건 아니지만…….”
저번부터 생각했던 계획이었다. 하층 구역에서 내 손발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가브리엘 하나로는 부족하다. 갱단과 같은 조직이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마 키누안도…….’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키누안이 하층 구역에서 비공식 임무를 하려면 손발이 될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토라를 내세워 갱단을 꾸린 것이다.
즉, 키누안과 토라의 관계는 나와 가브리엘 사이와 흡사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추론이지만 심증은 거의 확실했다.
“정말로 날 빼내 줄 건가?”
“믿든 안 믿든 간에 켄 노마, 당신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죠.”
“똑, 똑똑한 친구로군. 맞아, 내겐 네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 밑져야 본전인 상황이니까.”
어차피 내 제안을 거절하면 켄 노마는 여기서 썩어 문드러질 뿐이다. 수락하면 여길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캉!
켄이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팔을 움직였다. 그의 나이프가 내 목을 노린다. 아까보다 느려지고 있었다. 일시적인 각성도 효력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네, 루카.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군.”
켄은 토라에게 오래된 친구이자 후원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 정체불명의 사내는 갱단의 일원도 아니었고 대외적인 활동도 없었다. 그렇기에 최측근인 켄 정도만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 후원자가 바로 키누안일 것이다.
토라의 갱단은 실질적으로 키누안이 소유하고 있던 셈이었다. 토라의 몰락 시점도 아마 키누안이 현역에서 물러나면서 연락이 끊긴 뒤겠지. 이건 조사해 보면 금방 나올 거다.
* * *
난 가브리엘에게 몇 가지 지침을 전달하고 바로 상층 구역으로 올라갔다. 가브리엘은 켄의 휠체어를 밀며 투덜거렸지만 내 지시를 잘 따랐다.
나는 근위대의 데이터베이스실을 찾아갔다. 폐쇄 네트워크인지라 외부에선 접속은 불가능하고 물리적인 접촉만 가능하다.
단말기를 컴퓨터에 연결한 나는 키누안의 이력을 재차 살폈다.
‘키누안이 교관이 된 시점과 토라의 몰락이 겹쳐.’
키누안이 은퇴하고 나서 토라의 갱단은 급속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3년 뒤에 토라는 투기장을 빼앗기며 사망했다. 원래는 비자금을 들고 도망치려 했던 모양이었다.
“키누안은 토라를 버린 건가?”
나는 가브리엘과 내 관계를 생각했다. 갱단을 만들더라도 가브리엘이 혼자서 꾸려나가진 못한다. 내 조언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갱단의 규모가 커진 뒤에…… 내가 그냥 손을 떼면 그땐 가브리엘이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 하는 상태가 되지. 토라처럼 서서히 몰락하다가 죽을 거야.’
듣기론 토라는 탐욕스럽긴 해도 하층 구역의 갱치고는 굉장히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켄도 끝까지 토라의 곁을 지켰다.
‘신의를 중시하는 성격 때문에 토라는 키누안의 선택을 받은 거다. 그리고 버림도 받았지.’
키누안이 딱히 뭔가 잘못한 건 아니다. 오히려 토라는 키누안 덕분에 대단한 출세를 한 셈이었다. 갱단의 보스이며 투기장 관리자까지 됐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키누안은 토라가 몰락할 걸 알면서도 방치했다. 그 정도 되는 사내가 토라의 미래를 모를 리가 없다.
‘나는 키누안의 자취를 쫓아가면서 동시에 재현하고 있는 건가.’
기분이 미묘했다. 조사할수록, 과거의 키누안과 현재의 내 행보가 비슷했다. 똑같은 하층 구역에서 비공식 임무를 수행했고, 현지의 추종자를 포섭해 세력을 형성했다.
정보수집을 마친 나는 켄의 재활을 위한 자료도 찾아서 단말기에 저장했다. 근위대에는 뇌 기능 이상이 생긴 군인을 대상으로 한 여러 치료 사례가 많았다.
나는 켄의 상태를 호전시켜 볼 생각이었다. 잠깐이지만 이야기해 보니 켄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 키누안에 대해 들어볼 이야기도 더 있었다.
단말기의 연결을 해제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데이터베이스실에는 책장처럼 솟구친 대형 컴퓨터들의 반복적인 공진만 퍼지고 있었다.
컴퓨터의 기계음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감각이 흐릿해지는 느낌이다. 규칙적인 소리는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저벅, 저벅.
나는 나보다도 큰 컴퓨터 사이를 지나가며 입구 쪽으로 걸었다.
기이잉, 기이잉.
잡음이 퍼진다. 나는 컴퓨터의 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뭔가 기이하다.
보랏빛 전등의 빛 사이로 먼지가 흐느적거렸다. 난 먼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먼지는 환풍기의 흐름 말고도 다른 인력에 끌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모퉁이에 숨어 있었다.
“누구십니까?”
“훌륭해, 루카. 자넨 아키에스 빅티마의 기초를 끝냈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로군.”
기척을 감췄던 키누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복잡미묘한 심정을 무표정으로 숨겼다.
솔직히 말해서, 난 키누안을 존경하고 있다. 그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키누안이 날 꿰뚫어 보는 것 같아서 불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키누안.’
키누안은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강인하고 교활한 사람이었다. 그는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자신만의 안전영역을 확보했다. 혼돈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자였다.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키누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