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55)
배드 본 블러드-55화(55/197)
055
대련장의 타일 바닥은 푸른 조명만큼이나 차가운 질감이다. 가볍게 통통 뛰면 반발력이 기분 좋게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내가 몸을 푸는 동안, 키누안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보온병에 차를 담아서 대련장까지 가져왔다. 어지간히도 차를 좋아하는군.
‘키누안은 내게 아키에스 전투술을 제대로 가르치려고 한다.’
그 의도야 어쨌든 간에 잘 배워둬야 한다. 처음에는 아키에스 전투술과 레기온이 호환되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했지만, 결과적으로 아키에스 전투술은 나를 여러 번 살렸다.
“루카, 아키에스 전투술의 기원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겠지?”
키누안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눈을 감았다.
“노엘 뮬리즈카가 반란군의 간부를 위해 만든 전투술이란 것 말입니까?”
“그게 ‘순응’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키누안이 내게 처음 가르친 개념이 순응이었다.
순응, 최적화, 적응.
이건 제국의 전투술과 반대되는 개념이었다. 제식 전투술의 틀을 같은 개념으로 정리하자면 충돌, 강화, 극복이다.
제식 전투술은 ‘더 강력한 힘’을 얻고 통제하는 것에 중점을 뒀고, 아키에스 전투술은 ‘한정된 힘’을 이용하는 방식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아키에스 전투술은 반군과 게릴라의 전투방식에 적합했다.
반란군은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의체도 제때 정비하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전투용 의체 없이 싸워야 할 때도 있다. 휘하의 병사는 제식 훈련을 받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라 불확실성이 큰 전력이다.
부족한 자원, 열등한 처지, 부족한 성능의 무기와 의체.
하지만 그들은 투덜거릴 순 없다. 싫으나 좋으나 열악한 환경에서 싸우고 나아가 승리해야 한다.
대등하게 가진 건 ‘두뇌’ 밖에 없다. 그들은 뇌에 과부하를 걸며 혹사했다. 망가지기 직전까지 격렬하게 자신을 태웠다.
난 생각한 것을 정리해서 입 밖으로 내뱉었다. 키누안은 때때로 눈을 크게 뜨며 웃기도 했다.
내 말이 끝나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노엘의 반란군은 간부조차 배경과 경력이 제각각이야. 길거리 싸움꾼부터 제국을 배신한 군인까지 다양했지. 심지어 코라와 벨라토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어. 그 모두에게 일원화된 전투술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는 게 불가능하니 ‘전투술을 활용하는 전투술’이라는 메타 전투술 개념을 노엘이 제시했지.”
난 저번부터 품고 있던 의문을 꺼냈다.
“교관님은 제게 아키에스 전투술을 깊게 익힐 재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장기부터 제국의 시술을 받아 신경계가 강화된 군인입니다. 이 정돈 돼야 아키에스 전투술을 습득할 수 있었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저 정도 되는 사람이 반란군 간부급으로 수두룩했다는 겁니까?”
내 지적에 키누안이 서늘하게 웃었다.
“루카, 위험만 감수할 수 있다면 방법은 여럿 있네. 아주 많지. 한 가지 말하자면, 반란군의 간부들 태반은 각성제 계통의 약물을 치사량까지 달고 살았네. 뇌수 대신에 약물이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야.”
키누안은 그 말을 하며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이론조차 검증되지 않은 뇌 신경계 강화 시술을 서슴없이 받기도 했지. 지금 우리가 제국에서 받은 신경계 화학 처리는…… 그런 자들의 죽음으로 완성된 거네.”
키누안의 눈빛이 아련했다. 나는 가만히 그를 관찰했다. 저 아련함조차 기만이며 거짓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수업은 이론이 전부입니까?”
내가 빈정거리듯 말하며 키누안을 기다렸다.
나는 대련을 기다렸다. 이번엔 자신이 있었다. 키누안의 의체는 전투 사양이 아닌 일상용이다. 물론, 그런 키누안에게 과거의 나는 번번이 당했다.
‘이제는 다르다.’
아무리 키누안이라도 일상용 의체로 지금의 나를 당해내진 못한다. 물리적 한계라는 건 존재한다. 키누안도 말했다시피 아키에스 전투술은 기적을 일으키는 마법 따위가 아니다.
“날 두들겨 패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
“제 성격이 고약해서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키누안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의 걸음은 차분했다. 기이할 정도로 좌우의 균형이 잘 맞았다.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백지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자네는 내 생각보다 발전이 빨라. 이 정도로 빨리 미스타(Mysta)에 가까워질지는 몰랐어. 재능도 재능이지만…… 지나칠 정도로 치열했던 실전 경험이 자네를 키워낸 거지.”
“미스타?”
“아키에스 전투술을 남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자를 말하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아키에스 빅티마의 위계를 세분화해서 여럿으로 나눴다고 하지. 하지만 지금은 계보도조차 사라졌으니 의미가 없는 구분이 됐네.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것 정도만 기억해둬.”
계보도 따윈 관심도 없었다. 난 키누안의 말을 곱씹었다.
“미스타에 가깝다는 말은 아직 미치지 못하는 뜻이군요.”
“말보단 몸으로 익히는 게 빠르지, 늘 그랬듯이. 오늘은 내 기량을 자네에게 보여줄 생각이네. 병원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면 머리와 몸통을 지키게나.”
키누안이 왼손으로 뒷짐을 졌다. 그리고 오른팔만 앞으로 뻗었다. 그의 오른 소매가 팔꿈치까지 내려왔다.
‘전투의체?’
나는 눈썹을 치켜떴다. 키누안의 오른팔에서 모터음이 미미하게 들렸다. 일상용 출력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오른팔만 전투용으로 교체했어.’
키누안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를 도발했다.
난 지금까지 키누안의 오른팔이 전투용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그는 사용 감각과 무게가 완전히 다를 텐데도 좌우의 위화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감탄만 나오는 통제력이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지금 내가 뱉은 말은 한치의 가식도 없는 진심이다.
키누안의 망가진 뇌 신경계는 고출력 의체를 견디지 못한다. 키누안은 날 위해 막대한 위험을 감수했다.
오늘 같은 기회는 드물 것이다. 아니, 앞으로 다신 없을지도 모른다.
난 스승을 향한 경외를 담아 정중하게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츳!
내 발이 타일 바닥을 스치듯 미끄러졌다. 나는 자세를 숙이며 빙글 돌았다. 상체는 낮지만 내 발끝은 높다.
내 첫 공격은 머리를 노린 뒤돌려차기. 참고로 힘 조절 따윈 하지 않았다. 스치기만 해도 키누안은 뒈진다.
* * *
쿵!
세상이 꺼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나는 패배했다.
‘또 졌군.’
키누안과의 대련은 5초로 끝났다. 우리에게 5초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근접전투에서는 전력을 쏟아붓고도 남는 시간이다.
내게도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 모든 기량을 키누안에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팔 하나에 처참하게 막혀 이렇게 누워있었다.
키누안은 누워있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건만 따지면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어. 지금까지도 늘 그랬지.’
키누안의 전투의체는 오른팔 하나가 전부였다. 성능도 내 의체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불쾌한 위화감.’
내가 느끼기엔 키누안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주먹과 발이 어디에 도달할지 아는 것처럼 최적의 공방을 펼쳤다.
합을 짠 것처럼 내 발차기와 주먹은 키누안의 오른팔에 가로막혔다.
이윽고, 내 빈틈을 간파한 키누안이 내 팔목을 잡아당겨 바닥으로 내쳤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등을 쑤시는 고통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괴감이 더 아팠다.
예전에도 이렇게 당했었다. 그땐 그저 경험과 기술의 차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따지고 보면 기술의 차이가 맞긴 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전투 기술이 아니라 그 이상의 고차원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교관님은 미래라도 보는 겁니까?”
느낀 바를 솔직히 내뱉었다.
난 머리만 살짝 들어 키누안을 보았다. 그는 의자에 앉으며 차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이 고생을 하겠나?”
“하기야 그렇긴 하죠.”
나는 바닥에 앉으며 한쪽 다리에 팔을 걸쳤다.
“루카, 아키에스 전투술은 훔쳐서 배우는 거네.”
거, 참 어렵군.
나는 투덜거림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참았다. 내 불만을 느낀 키누안이 웃더니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지금까지 자네는 눈을 더 만드는 법을 익혔지. 감각을 확장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꿔서 말이야.”
나는 저 말은 무슨 의미인지 잘 안다.
우리는 확장한 감각, 특히 시각 정보를 통해 3차원 입체로 머릿속으로 정확히 그려낸다. 그러면 눈동자가 굴리거나 고개를 돌리면서 주변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된다. 이를 통해 동작과 동작 사이의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시뮬레이션 능력이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 난 보조연산 장치의 도움도 없이 탄도를 직관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 이게 내가 선택받은 이유였다.
“근위대원은 레기온을 쓰기 위해 훈련받는 군인이네. 자네의 뇌에는 아직 가용자원이 남아있어. 그 활용법을 익혀보게. 다음 수업은 그때 계속하도록 하지.”
난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키누안은 냉혹한 스승이다.
스스로 익히지 못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자격이 없다. 내 아키에스 전투술은 여기서 끝인 것이다.
“먼저 나가보게, 루카.”
키누안이 앉은 채로 말했다. 일어선 나는 문 앞까지 걸어갔다가 우뚝 섰다. 나는 뒤돌아서 키누안의 앞으로 돌아왔다.
“……어깨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움직이기 힘드실 테니까요.”
난 아까부터 키누안의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리는 걸 알았다. 그의 동공은 초점도 간헐적으로 흐려졌다. 그가 계속 앉아있는 건 일어서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아마 나와 대화하면서도 의식이 고장 난 기계처럼 몇 번이나 꺼졌을 것이다.
키누안은 망가진 뇌로 전투의체를 다루며 고속전투를 벌였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키누안은 벽을 짚으며 일어서더니 넘어지듯 내게 기댔다.
“그럼 신세 좀 지겠네.”
“천만의 말씀.”
나는 키누안의 집무실까지 그를 부축했다. 그에게 묻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많았다. 토라와의 관계나 과거에 하층 구역에서 무얼 했는지 말이다. 귀찮게 따로 조사할 것도 없이 모든 걸 아는 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묻는다고 키누안이 대답해 주진 않을 것이다. 나도 그걸 바라지 않는다.
대신, 나와 키누안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했다. 여자친구라도 만들어 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는 생체와 의체의 감각은 미묘하게 다르니 전신의체 시술을 받기 전에 성적 경험해 보라는 말을 했다. 뭐,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평범한 사제관계 같기도 했다.
‘언젠가는…….’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파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유대는 가냘프기 짝이 없었다. 나도 키누안도, 언제든 서로를 끊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슬프진 않다. 그러나 씁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내 손으로 키누안을 직접 처분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