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56)
배드 본 블러드-56화(56/197)
056
이틀 뒤, 나는 하층 구역으로 내려가 가브리엘과 접선했다.
“루카, 사람을 구해왔어. 돈만 주면 뭐든 해줄 놈들이야.”
가브리엘이 골목길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싸구려 사이버네틱 장치를 몸 여기저기 심은 사내 다섯 명이 흡입기로 기화된 액체를 흡입하고 있었다. 저 액체가 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약쟁이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고 했잖아.”
내가 타박하자, 가브리엘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날 쳐다봤다.
“이 바닥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고? 장난해? 그나마 성실한 놈을 고른 게 저 정도야!”
가브리엘이 역정을 냈다. 생각해 보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신의성실한 인간이 이 바닥에 몇이나 있겠는가.
나는 가브리엘이 구한 아지트로 걸어갔다. 아지트는 골목길 안쪽에 있는 조그마한 건물이었다. 여긴 길다의 정비소와도 가까웠다.
앞으로 가브리엘 갱단의 사무실이 될 곳이다.
“아, 보, 보스! 왔어?”
약쟁이 하나가 가브리엘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풀린 눈동자를 보니 벌써 내 머리가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가브리엘이 모은 사람들은 내 예상보다 훨씬 질이 나빴다. 중요한 일은 맡길 수 없는 부류였다. 조금만 수가 틀리면 배신할 놈들이다.
“켄 노마는?”
“아지트 안에 방을 마련해줬어.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켄을 병원에서 빼낸다고 돈 좀 많이 썼어. 아지트하고 사람도 구하고 나니 이제 빈털터리야.”
돈을 더 달라는 소리였다.
난 크레딧칩을 꺼내 금액을 입력하고선 가브리엘에게 던졌다. 가브리엘이 씨익 웃으며 칩을 낚아챘다.
‘헤일라스가 내게 지출을 얼마나 허용할지 모르겠네.’
아직까진 허용 범위일 것이다. 근위대의 재정은 넉넉한 편이다.
“애들에게 널 뭐라고 소개할까?”
“후원자라고 말해.”
하층 구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갱단의 뒤를 봐주는 재력가나 귀족이 종종 있다. 이상할 건 없다. 사실이기도 하고.
가브리엘이 먼저 다가가더니 사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서 민머리 사내가 날 보며 눈을 빛냈다.
“도련님이 보스의 보스란 말이군, 헤헤.”
민머리의 사내가 손바닥을 비비며 내게 다가왔다. 뭐라도 얻어먹고 싶은 모양이다.
“평소엔 뭘 하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일할 땐 제정신으로 해.”
“아이고, 물론입죠.”
나는 민머리 사내의 후두부를 응시했다. 이 사내의 뒤통수에는 개폐형 약물 주입구가 있었다. 가끔 머리를 열고 약물을 직접 뇌에 투여하는 모양이다.
“넌 지금부터 빡빡이. 거기 너는 들창코, 그 옆에는 개눈깔, 털보…….”
난 이름 대신에 특징에서 딴 별명으로 사내들을 지칭했다. 그들은 이런 방식이 익숙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호하는 켄은 키누안의 행적을 쫓는데 중요한 인물이다. 난 사내들에게 2교대로 켄과 아지트를 지키라고 명했다.
나는 아지트 내부를 살폈다. 1층은 전체가 하나의 방이었고, 2층은 중앙 복도를 두고 좌우로 방이 네 개 있었다. 낡긴 했어도 아지트로 쓰기 나쁘지 않은 구조였다.
2층 안쪽 방이 켄 노마의 거처였다. 나는 문을 삐걱 열고 켄의 상태를 확인했다. 침대에 앉아있는 켄은 침을 흘리고 있었다. 여전히 인지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아직 병원의 명부에 켄의 이름이 남아있을걸? 누가 면회 오지 않는 이상에야 사라진 지 모를 거야. 매수한 경비와 간호사 빼고는 말이지.”
가브리엘이 문틀에 어깨를 기댄 채로 말했다. 나는 가브리엘의 영리한 일 처리에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라비앙로즈였나? 그쪽 갱단과는 어떻게 됐어?”
“이틀 내로 찾아오라고 하더군. 아니면 날 죽이겠다고 협박했어. 아마…… 진담일 거야.”
“길게 끌 것 없어. 지금 출발한다. 가는 동안, 라비앙로즈에 대해 아는 걸 말해.”
아직도 믿기 힘들지만, 라비앙로즈의 보스 마르티나는 가브리엘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가브리엘은 마르티나에게 죽거나 부하가 될 것이다.
가브리엘이 없으면 내가 곤란하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하층 구역의 일이 두서너 배는 많아질 터다.
‘투기장의 알레프는 가브리엘을 대체하지 못해.’
알레프가 떠올랐다. 하지만 난 곧 그 이름을 지웠다.
알레프도 내 명령을 따르겠지만, 내 행적을 노출할 정도로 그 사내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날 팔아먹을 자다.
* * *
예전에 키누안이 말한 게 떠올랐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라도 나름의 역할이 있지.’
길다를 납치했었던 갱단원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 말 덕분에 놈들은 내게서 목숨을 건졌다.
하층 구역에는 크고 작은 갱단이 여럿 있었다. 특히 제국의 행정과 치안이 닿지 않는 음지일수록 갱단의 입지는 컸다.
라비앙로즈처럼 이름이 따로 붙을 정도의 갱단이면 보스가 여러 번 바뀌었다는 소리이고,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소리였다.
“라비앙로즈는 매춘부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갱단이야. 사창가의 양대 세력 중 하나지.”
가브리엘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히쭉 웃었다.
사창가는 대낮인데도 감각을 교란케 하는 자극이 많았다. 보기 싫어도 강제로 코앞까지 들이미는 홀로그램 광고가 대로변에 퍼져 있었다.
여성의 나신과 교성이 가득 담긴 영상이 대다수였지만, 가끔은 남자도 있었다. 심지어 제국에서 보기 드문 ‘외계인 창부’까지도 보였다.
어지러운 광고를 피해 구석진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이상성욕 광고가 자그맣게 내 눈을 때리며 지나갔다.
‘동물은 지구에 살던 시절부터 우리 인간의 친구였습니다. 개, 고양이, 그리고 말. 모두가 우리의 친구들이죠. 당신이 상상하던 모든 것이 이곳에…….’
그 뒤의 내용은 상상하기도 싫군. 다행히 이건 영상이 없었다.
“루카, 잠깐 들렀다가 갈래?”
가브리엘이 골목길의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늘진 골목길에 자리한 가게에선 야릇한 냄새가 났다. 가게 내부에선 은은한 색 조명이 순차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반투명한 창 너머로 흐느적거리는 그림자는 행인을 유혹하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보여주지 않기에 더 자극적이었다.
“야, 싫으면 얼굴을 찡그리지 말고 말로 해.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우정이나 다져보려고 했지.”
가브리엘은 내 표정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헛소리 말고. 설명이나 계속해.”
“……라비앙로즈에서 제일 중요한 첫 번째 계율은 이거야. 라비앙로즈 갱단원은 ‘인형’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해를 끼쳐선 안 된다.”
인형은 매춘부를 뜻하는 은어다. 저 규율이 라비앙로즈가 사창가의 지지를 얻는 이유이며 조직의 정체성이리라. 저것만큼은 무조건 지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브리엘의 말을 기다렸다.
“첫 번째 계율을 어기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처참한 꼴을 당하지. 뭐, 그래도 어기는 경우는 거의 없어. 라비앙로즈의 구성원은 대부분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이거나 매춘부 출신이거든. 이곳 사람들이 가족이나 마찬가지란 소리지.”
“보스 마르티나는?”
“마르티나 디바, 참고로 라비앙로즈의 보스는 디바라는 호칭을 대대로 이어받아. 그리고 항상 여자여야 하지. 그래야 매춘부의 지지를 쉽게 얻을 수 있거든.”
갱단은 기반 세력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 여자가 널 좋아한다는 건 만난 적이 있다는 거잖아.”
“일 때문에 몇 번 얼굴을 본 게 다야. 내가 부업으로 그쪽 가게의 경비를 서주곤 했거든. 내가…… 좀 남자답게 생겨서 위압감이 있잖아.”
들어보니 가브리엘도 마르티나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다.
어느새 우린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제국에서 보기 드문 동양풍의 3층 건축물이 보였다. 예스러운 목재현판에는 ‘청해루’라고 새겨져 있었다.
“마르티나를 만나러 왔다.”
가브리엘이 청해루 입구에 서며 말했다. 경비를 서던 갱이 누군가와 연락했다.
“못생긴 상판을 보니 네가 가브리엘이로군. 그 옆은?”
곧장 청해루에서 간부로 보이는 여자가 걸어 나왔다. 왼쪽 눈을 가리는 안대를 차고 있는 게 특이했다.
“내 친구야. 불만 있어? 난 너희들 때문에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고. 그런데도 혼자 와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무기도 가지고 들어갈 거야. 그게 싫다면 여기서 한 판 하든가.”
가브리엘이 으름장을 놓았다. 제법 위압감이 있었다. 진심으로 화가 나기도 했을 것이다.
“……알았다.”
안대 여자가 그리 말하며 우릴 안내했다.
청해루의 1층은 무대가 있는 클럽이었다. 영업시간이 아닌지라 청소부만 오가고 있었고, 라비앙로즈의 갱단원들이 우리를 흘겨봤다.
2층은 VIP실과 용도를 알 법한 방들이 붉은 융단이 깔린 복도를 따라 이어졌다. 그 끝에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가브리엘.”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안대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왜? 뭔데? 여기서 붙자고?”
가브리엘은 두 주먹을 맞부딪히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철커덩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퍼졌다.
“경고하는데 이번엔 디바를 거부하지 마라. 그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다.”
“이봐, 안대녀. 나는…….”
가브리엘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안대 여자는 3층 입구로 올라가더니 문을 열었다. 입구를 열자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강렬한 향이 났다. 톡 쏘는 듯한 자극적인 냄새와 달큰한 향이 뒤섞였다. 자칫하면 역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균형을 잘 잡아 혓바닥 밑에 침이 고일 정도였다.
안대 여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가브리엘도 그녀를 따라 문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런 거군.’
나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지나칠 정도로 강한 향은 감각을 교란하는 성분이 들어있었다. 몇 가지 마비성 약물을 같이 증발시켰을 것이다. 그 효력은 감각을 미미하게 둔탁하게 하는 정도라서 쉽게 눈치채기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이걸 아냐고?
나 정도 되는 군인조차 문 옆에 매복한 갱을 뒤늦게 눈치챘으니까!
철컥!
내 관자놀이에 권총의 총구가 닿았다. 갱 하나가 나를 겨누고 있었다. 내겐 주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훈련으로 새겨진 전투 반사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신체를 움직였다.
지금의 나는 태엽이 감긴 자동인형과 다를 바가 없었다. 팽팽한 고무줄을 놓듯이 내 몸이 빠르게 움직이며 위협을 타개했다.
끼릭!
갱이 방아쇠를 당긴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타- 앙!
총성이 귓가를 찢을 듯이 지나갔다. 나는 눈을 감지도 않고 총을 쏜 갱을 응시했다. 라비앙로즈에는 여자 갱단원이 많았다. 눈앞의 갱도 여자였다. 그러나 난 여자도 잘 때린다.
휙!
나는 총을 든 갱의 손을 낚아채듯 잡아당겼다. 갱이 앞으로 고개를 숙이듯 넘어진다.
우드득!
내 주먹이 아래에서 위로 갱의 턱을 강타했다. 충격은 턱에서부터 정수리까지 관통했다.
퍼- 억!
갱의 머리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턱은 내 주먹을 따라 찌그러졌고, 두개골 위쪽은 뚜껑이 날아간 통조림처럼 붉게 열렸다. 피곤죽이 된 뇌는 자리를 이탈해 솟구치더니 천장에 철퍼덕 둘러붙었다.
라비앙로즈는 날 바로 죽이려고 했다. 날 방해꾼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날 제거하고 가브리엘과 협상할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난 죽어줄 생각이 없다. 이들이 날 죽이고자 한다면 반격해 돌려줄 뿐이다. 내 몸은 다음 동작을 이행하고 있었다.
휘릭!
나는 머리가 터진 갱의 권총을 빼앗았다. 드디어 주변을 온전히 훑어볼 찰나가 생겼다.
가브리엘과 나는 방 입구에 서 있었다. 내 옆에는 죽은 갱이 쓰러지고 있었고, 우릴 안내한 안대 여자는 우리보다 다섯 걸음 정도 앞서 있었다.
그리고 안대 여자 뒤쪽에는 총을 빼든 갱 일곱 명이 서 있었다.
“전부 움직이지 마. 손가락이라도 까딱하면 대가리 터진다.”
내가 경고했다. 갱 하나가 내 말을 무시하며 총구를 내게 겨누려 했다.
탕!
내 사격이 더 빠르다. 난 약속대로 갱의 머리를 터트렸다. 이 자리에 시체가 벌써 둘이나 생겼다.
우리 사이에 전투적 긴장이 터질 듯이 커지고 있었다. 곧 살육이 벌어질 것이다.
“……그만둬. 누가 손님에게 실례를 범하라고 했지?”
안쪽 내실의 문이 열리며 목소리가 퍼졌다. 목소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타고난 미성인지 아니면 성대를 개조한 건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마 이 목소리의 주인이 마르티나 디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