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
배드 본 블러드-6화(6/197)
006
근위대 생도 생활은 4년이면 끝난다. 우린 2년 차의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 아래 기수가 들어왔고, 우릴 교육하던 교관들도 그쪽으로 이동해서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너희라면 백부장도 노릴 만하지. 황제 폐하와 제국 신민들을 위해 정진해라.”
2년간 우리를 맡았던 수석교관이 아래 기수 담당으로 보직 이동하며 말했다. ‘너희’라는 건 나와 일레이를 뜻하는 말이었다.
2년 차면 동기끼리의 서열도 완전히 정해질 시기다. 개화할 재능은 이미 전부 나왔다. 우린 기본적인 전투술은 모두 배운 상태였다. 남은 건 실전 경험을 통한 응용이다.
‘백부장…….’
근위대의 편제는 간단명료했다. 천 명의 근위대원이 있고, 그 정점에 근위대장이 있다. 근위대장은 천부장이면서도 제1백부장이기도 했다.
나머지 아홉 개의 백인대는 복무 경력과 역할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 나 같은 생도가 전신 기계화를 마치고 처음 복무하는 곳은 제10백인대였다. 가장 아래 등급의 햇병아리 부대다.
제10백인대에서 경력이 쌓이면 최종적으로 제5백인대까지 올라가다가, 그 위로는 특기와 역할에 따라 제1에서 5까지 속하는 상급 백인대로 배정받는다.
‘제10백부장이 된다면 진급도 빠르겠지. 신입 근위대원 중에서도 우수하다고 인정받는 셈이니까.’
훈련 성적이 우수한 생도라면 다들 노리는 직위였다.
“난 백부장에 별로 욕심이 없어. 루카, 너는 백부장이 되고 싶은 거야?”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일레이가 속 편한 소리를 했다.
“난 너와 달리 돌아갈 곳이 없어.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가라앉을 뿐이야.”
“근위대원 경력만 있으면 어디 가서도 엘리트 취급해 줄걸. 이제 출신과 상관없는 위치까지 왔잖아. 좀 여유를 가져봐.”
일레이가 주먹을 뻗어서 내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일레이의 말이 옳다. 나는 여유를 가져도 괜찮은 위치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불안감이 내 원동력이기도 했다. 항상 위태로이 외줄에 서 있는 감각…… 나는 그걸 잃기가 싫었다.
문득, 일레이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일레이는 왜 근위대원이 되려는 거지?’
일레이는 재능이 뛰어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보다 더 우수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레이는 나처럼 절박하게 노력하지 않았다. 매사를 설렁설렁하는 것 같았으나 결과물은 나와 비슷했다.
스륵.
나는 난간에 팔과 등을 기댔다. 그리고 팔자 좋은 도련님은 펄쩍 뛰어서 난간에 올라갔다.
휘이잉.
일레이는 난간에 선 채로 바람을 맞고 있었다. 언뜻 보면 위태로운 듯했으나 우리에겐 평지나 다름없었다.
“……우리 집안, 카르티카 가문은 제국의 장군을 여럿 배출한 명가야.”
일레이는 내 속내를 먼저 읽었다는 듯이 말했다. 이젠 저런 넘겨짚기 화법이 익숙했다.
일레이 카르티카.
보육원 출신인 나로선 카르티카 가문의 권세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저 명문 가문이구나 싶은 게 전부였다.
“적당히만 해도 네 출셋길은 열려있다는 소리로군.”
나는 빈정거리며 말했다. 반은 농담이지만, 나머지 반은 진심이다.
일레이는 웃으면서 도약하더니 좁은 난간에서 재주넘기를 했다. 그의 발끝이 깔끔한 궤적을 그렸다.
“난 원래 학자가 되고 싶었어. 옛 문명을 연구하며 불가해의 신비를 파고드는 고고학자.”
“고고학자?”
처음 듣는 직업이었다. 내 의문에 일레이가 한없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벨라토나 코라에선 나름 유망한 직업이야. 아케인 문명은 연구할 게 넘쳐나거든.”
나는 잠시 침묵했다.
일레이가 내 어설픈 자비를 감쌌듯이, 나도 일레이가 내뱉은 불온한 말을 윗사람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
감각을 확장한 나는 주변의 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곤 말했다.
“제국에선 개인이 허가 없이 아케인 문명을 연구하는 게 금지되어 있어. 더군다나 우리 가문에선 내게 군인 말고 다른 일을 허락하지도 않아. 명문가라는 건 그 분야의 인재를 계속 배출하기에 명문가라 불리는 거거든.”
일레이가 우수에 찬 눈동자로 세상의 고뇌를 전부 짊어진 듯이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게 슬프다는 거야?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는 화가 났다. 이건 진심이었다.
하루하루의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한 자들이 도시 밑바닥에는 수두룩했다. 하고 싶은 일 따윈 사치였다.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그들에겐 중요했다.
“맞아. 네게 내 말은 사치스러운 소리처럼 들리겠지. 하지만 내겐 사실이야.”
일레이는 태연하게 서 있었다.
“……넌 좀 더 고생하고 굶어봐야겠다.”
나는 경멸을 담아 말했다. 내 부정적 말에도 일레이는 끄떡하지 않았다.
“내 꿈은 가족들도 몰라. 네게만 말하는 거야, 루카.”
“지금 들은 걸 상부에 말하면, 넌 끝장이야.”
“넌 그러지 않을 거잖아, 내가 네 비밀을 지켜준 것처럼. 그때 너는 코라인에게 자비를 베풀었지.”
일레이가 난간에서 쪼그려 앉았다. 그는 시선을 내 눈높이까지 맞췄다.
나는 일레이의 얼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비전투원이라서 망설였을 뿐이야. 네가 손쓰지 않았어도 결국 죽였을 거야.”
“대장님은 그곳의 코라인을 전부 죽이라고 했어. 망설였다는 것 자체가 넌 상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지.”
“헛소리 마. 난 제국과 황제 폐하에게 충성하고 있어. 내 능력을 인정해 줬으니까. 제국의 적은 곧 나의 적이야.”
일레이가 나를 쳐다보다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게 나라고 해도?”
“누구든 간에.”
나는 적의를 담아 말했다. 이제 확실하다. 일레이 카르티카는 위험하다. 제국의 적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루카, 네가 정말로 충성을 넘어 복종하는 자였다면, 지금 날 바로 죽이려 했을 거야.”
일레이의 말에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날카롭게 쳐다볼 뿐이었다.
일레이는 내 침묵을 답으로 여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뒤로 넘어가듯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밑을 보니 3층 높이에서 가뿐히 착지한 일레이가 보였다.
“얼빠진 새끼…….”
나는 멀어지는 일레이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일레이는 가문과 능력,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걸 가졌으면서 본인은 정작 이상한 걸 좇고 있었다.
“……그러다가 죽어, 멍청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 * *
기초 훈련을 마친 생도 3년 차는 실전의 연속이었다. 사망자가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후두두둑!
비가 매섭게 쏟아진다. 나와 일레이, 그리고 세 명의 생도는 방수 두건을 깊게 눌러쓰며 우거진 숲을 헤쳐 나갔다.
다섯 명의 생도가 빗속을 묵묵히 걷는다.
우리의 임무는 정찰이었다. 생도 시절에는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온갖 자질구레한 임무도 도맡아야 했다. 현장 경험이 없는 자가 훗날 지휘를 맡으면 뜬구름 잡는 탁상공론을 지껄이기에 십상이다.
군인, 특히 지휘관에게 무능과 무지는 그 무엇보다 큰 죄이자 부덕이다.
스륵.
나는 손을 들어서 휴식 신호를 보냈다.
우린 비를 피할 수 있는 나무 아래에 모였다. 잠이 부족한 이는 눈을 감더니 빠르고도 깊은 수면에 빠졌다. 수면통제법도 우리가 배운 전쟁 기술 중 하나다.
으적, 으적.
나는 바 형태의 간이식을 씹어 먹으며 주변을 살폈다. 비가 오는 밤이라 시야 확보가 힘들었다. 비바람을 맞는 숲은 우릴 삼킬 듯이 휘청거리며 춤을 췄다.
‘레기온을 입은 근위대원이 저 어딘가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겠지.’
실전이라도 어디까지나 훈련의 일환이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온다면 근위대가 나설 터다.
‘저번 포스 사용자는 상부에서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 거지. 실제로도 그러했고.’
만약 일레이가 먼저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나와 일레이만으로도 상대할 만한 적이었다. 우리가 협공했다면 쉽게 처리했을 것이다.
‘이번 임무는 정찰 임무.’
나는 눈을 감으며 임무를 되새겼다.
우리가 발을 내디딘 곳은 미개척 중립지대였다. 아직 그 누구의 영토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자는 일단 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레이의 상태가 평소와 달라.’
나는 눈동자만 움직여 물을 마시는 일레이를 보았다. 일레이의 얼굴에는 피로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아케인 유적지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가?’
아케인 유적지가 이번 정찰의 목표였다. 관측을 방해하는 파장이 유적지를 감싸고 있어서 사람이 현장 정찰에 나서야 했다.
스륵.
나는 일레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우리가 경계를 설 차례였다.
“신기하지 않아? 우리 인간이 존재하기도 전에 우주를 누비던 문명이 있다는 게 말이야.”
일레이가 수다스럽게 말했다. 나는 일레이의 호기심에 공감하기 힘들어 어깨만 으쓱했다.
초고대문명 아케인.
나도 단편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다. 까마득한 과거에 우주 전역을 누비던 문명이라고 들었다. 우주 어딜 가도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난 아케인이고 나발이고 관심 없어. 이미 옛날 옛적에 뒈져버린 놈들이잖아.”
내 부정적 반응에도 일레이는 실망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루카, 과거가 있기에 지금이 있는 거야. 그리고 미래도 예측할 수 있지.”
일레이가 그럴싸하게 설명해도 내겐 와닿지 않았다. 그도 굳이 날 이해시킬 생각은 없는 듯했다.
휴식으로 몸을 추린 우리는 다시 이동을 준비했다. 출발하기 전에 생도 중 하나가 내게 접근했다.
‘클로드 라모네스.’
라모네스는 카르티카 정도는 아니라도 이름있는 가문이었다. 밑바닥 출신인 나도 귀족 도련님이 득실거리는 생도 생활을 하다 보니 귀족 가문의 미묘한 균형과 세력 구도 정도는 알았다.
“루카, 내겐 여동생이 있어.”
클로드 라모네스가 뜬금없이 말을 던졌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네게 연이 닿은 여자가 없다면, 여동생과 너를 이어주고 싶다.”
“난 보육원 출신이잖아.”
생도 중에서 내 출신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보육원 출신이든 귀족 가문이든 우린 똑같은 근위대원이 되겠지. 어쩌면 네가 내 상사가 될 수도 있고.”
나는 클로드의 얼굴을 바라봤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해보는 말도 아니었다.
‘진심이로군.’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해가 갔다.
나는 보육원 출신인지라 복잡한 정치에도 얽힌 몸이 아니다. 일레이는 내 자유로운 배경을 좋아하는 가문이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나쁜 제안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네가 일레이와 친한 건 알지만, 카르티카 가문에겐 남는 여자가 없어.”
“……아직 이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우린 임무 중이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나도 당장 대답해 달라는 건 아니다. 고려해 달라는 거지.”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나와 클로드의 대화 내용을 엿들은 일레이가 팔꿈치로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인기가 많네, 루카.”
“시끄러워.”
우린 유적지를 향해 전진했다. 숲의 중심에 가까워지자 반파된 금속 건축물의 흔적이 드러냈다.
“이게 아케인의…….”
일레이가 주변을 살피며 부서진 기둥에 접근했다.
우웅.
일레이의 손이 은백색의 금속 기둥에 닿았다. 닿은 부분부터 푸른빛이 잠시 일렁이다가 흩어졌다.
“수억 년 전의 건축물인데도 아직 에너지 반응이 남아 있어.”
일레이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레이, 우린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 미안.”
방금의 일레이는 임무조차 잊은 듯했다. 감정이 고스란히 일레이의 얼굴에 드러났다. 무방비한 어린아이 같았다.
저런 일레이의 모습은 나도 처음이었다.
휙.
내가 손짓하며 대열을 정비했다. 우린 아케인 유적지의 구조와 규모를 살핀 뒤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건질 수 있는 유물이 있다면 즉각 수집해야 한다.
우린 발자국을 죽인 채로 엄폐물 사이로 이동했다. 사방으로 갈라진 은백색 도로가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그곳이 유적지의 중심인 듯했다.
‘클로드, 이쪽으로.’
나는 클로드에게 손짓했다. 평소라면 일레이와 짝을 이뤄 첨병으로 행동하겠지만, 지금의 일레이는 붕 떠 있는 느낌이라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다른 생도들은 기둥과 담벼락 뒤에서 라이플을 겨누며 대기했다. 나와 클로드는 동료의 엄호를 받으며 유적지 가까이 접근했다.
기이이잉.
나는 오른쪽 의안을 가동해 주변을 분석하려 했다. 그러나 유적지의 고유 파장이 분석 시도를 튕겨냈다. 내 눈두덩이가 지끈거리며 이마에서 열이 올라왔다.
끼리릭.
낯선 소음이 앞쪽에서 일었다. 나와 클로드는 숨을 죽인 채로 아주 느릿하게 움직였다.
‘뭔가가 앞에 있다.’
유적지 안쪽에는 커다란 기둥 여섯 개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단과도 같은 단상이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끼리릭, 끼릭.
단상 위쪽에서는 정육면체가 허공에 뜬 채로 돌고 있었다. 정육면체의 크기는 사람 머리만 했는데 한 바퀴 돌 때마다 면의 색깔이 바뀌었다. 내부에선 기계장치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계속 퍼졌다.
그리고 그 정육면체 아래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 정체를 확인한 순간,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다 못해 일그러졌다.
‘염병…….’
신경이 곤두섰다. 본능과 이성이 동시에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제국에 근위대가 있다면…… 코라 신성국에는 성기사단이 있었다. 그 성기사단의 일원이 저 앞에 서 있었다. 복식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섬세한 장식과 세공이 돋보이는 갑주는 파랑과 흰색이 섞인 배색이었다. 등과 허리에는 창과 칼 같은 근접 병기가 매달려 있었다. 깊게 눌러쓴 투구 때문에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기이잉.
코라의 성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투구 안쪽에서 푸른 안광이 흔들렸다. 그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었다.
휘릭!
성기사가 손짓했다. 그의 등에 있던 창이 푸른 빛에 휘감기더니 홀로 부유했다. 빛이 창을 삼키듯 환하게 빛났다.
찬란한 빛이 역설적으로 섬뜩했다. 우린 저 빛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코라의 성기사는 포스 능력의 달인이기도 했다.
“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모든 건 찰나였다. 창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드득!
창날이 클로드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창은 클로드의 육신마저 그대로 꿰고 날아가더니 기둥에 박혔다.
클로드는 죽었다.
……그리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