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0)
배드 본 블러드-60화(6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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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이는 그간 임무를 연달아 수행했다. 복귀하지 않고 연이어 임무를 맡기도 했었다. 훈련소에서 권장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편이 오히려 실전에 더 가깝긴 했다.
‘실전에선 최상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지 못한다.’
너덜너덜한 채로 연전 격전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군용 전투의체는 고출력만큼이나 내구성도 중시한다. 내구성과 신뢰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리 출력이 좋더라도 실전에서 쓰지 못한다.
일레이는 여러 임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최고의 전리품을 내게 자랑했다.
……그 정체를 본 순간 나도 눈을 크게 떴다.
유리창 너머로 온갖 전극과 케이블을 달고 있는 ‘금속 생물’이 보였다.
우리 곁에는 연구원이 모니터링을 하느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없는 신호들이 화면 너머로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기계수.’
피와 살 대신에 금속과 기계로 이뤄진 짐승이다. 노바스 행성에 종종 발견되는 생물이었는데 그 생태는 아직도 미궁 속에 있었다.
그르릉…….
기계수가 몹시 지친 듯이 낮게 울었다. 늑대를 닮은 듯이 날렵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기다란 꼬리는 세 갈래였고 그 끝이 뾰족했다. 형태를 보니 꼬리를 무기로 쓰는 것 같았다.
“자랑할 만하네.”
난 솔직하게 말했다.
기계수 생포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일단은 약물을 통한 마취가 먹히지 않는다. 거기다가 전자기 차폐 외피를 가지고 있어서 전자적 무력화도 힘들었다.
이놈을 어떻게 생포했는지는 나중에 일레이의 보고서를 봐야 할 것 같다. 나도 꽤 궁금하다.
“신기하지?”
일레이가 설렌 미소를 지으며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난 그 표정에서 순수한 호기심을 읽을 수 있었다.
“기계수도 아케인 문명과 관련 있는 거야?”
변하긴 했어도 일레이는 일레이다. 아케인 문명에 대한 집착은 여전할 것이다.
“뭐,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기계수는 기계부품으로 이뤄졌을 뿐이지, 생물처럼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심지어 어떤 원리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성장하고 번식까지 한다는 말도 있더라고.”
일레이가 신나서 떠들어댔다. 나는 그런 것까진 관심이 없었기에 한 귀로 흘렸다.
일레이는 연구원에게 다가가 기계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유리 감옥에 갇힌 기계수를 관찰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기계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
우리처럼 점층적으로 사이버네틱 의체에 적응할 필요도 없었다. 기계수는 타고난 신체에 걸맞은 전자두뇌와 신경계통을 가지고 있다.
크륵.
기계수가 고개를 들어서 내 쪽을 쳐다봤다. 기계수의 눈동자는 두 쌍이었다. 가시광선 파장이 다른지 안광의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흥미로운 생물이었다. 같은 기계라도 딱딱한 안드로이드와는 달랐다. 생물처럼 불수의적인 움직임이 많았다. 눈꺼풀이 주기적으로 내려오며 렌즈를 닦아냈고, 세 갈래의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놈도 길들일 수 있습니까?”
내가 문득 말했다. 연구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가능성에 대해 확답할 순 없지만, 일단은 전례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그리 말하며 유리창에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기계수도 내게 관심을 끄듯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우린 연구실을 나왔다.
“내가 저놈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황실 직속 연구부서 쪽으로 이송되거든.”
“이송이 아니라 이감이겠지.”
저 기계수는 다신 자신의 고향을 보지 못할 것이다. 어딘지 모를 곳에 갇혀 실험체로 생을 마감하겠지. 동정하는 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뿐.
“아, 그리고 두 번째 전리품은 이거야. 이건 선물로 줄게. 쿠스토리아 가문의 도련님으로 출세한 걸 축하하는 겸해서 말이지.”
“비꼬는 건지 진심인지 모르겠네.”
“진심이야, 인마.”
일레이가 나이프를 하나 꺼냈다. 칼집은 검은색 가죽이었다. 가죽은 몹시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휙.
일레이가 나이프를 뽑더니 양손으로 번갈아 돌렸다. 곡예라도 하듯이 움직임이 현란하고 빠르다.
“뼈?”
나는 그 와중에 나이프의 재질을 알아챘다. 일레이가 동작을 멈추며 내 쪽으로 나이프를 내밀었다.
“내가 이번에 처치한 외계인의 무기야. 에퀘시안 알지? 용병 종족으로 유명한 놈들 말이야.”
“이름은 들어봤어.”
나는 나이프를 응시했다. 손잡이는 끈과 가죽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뼈로 된 날의 색깔은 기이할 정도로 깨끗한 백색이었다.
“에퀘시안의 지휘관급 전사만 소지한다는 나이프야. 희소성도 희소성이지만, 예술적 가치도 높아서 수집가 사이에서 비싸게 팔린다고 하더라.”
“그렇게 보이긴 하네.”
내 예술적 심미안이 평균 이하다. 그러나 내 눈에도 나이프가 보통 물건이 아닌 것 정돈 알 수 있었다. 속된 말로 비싸 보이긴 했다.
“에퀘시안들의 모성에만 서식하는 토착 짐승의 뼈야. 지금은 멸종해서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고 하더라. 대단히 포악하고 강한 짐승이었는데, 창이나 칼 하나만 들고 사냥에 성공하면 에퀘시안 사이에서 대전사 취급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일레이가 유래를 설명했다. 귀한 물건이라는 건 나도 이해했다. 다신 구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당연한 거겠지.
나는 나이프를 받아들곤 날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의전용처럼 보이는데 실전에서 쓸 순 있어? 그래 봐야 뼈잖아.”
“잘 봐.”
일레이가 나이프를 다시 가져가더니 자신의 칼로 내리쳤다.
캉!
경쾌한 울림이 퍼졌다. 뼈 나이프는 부러지지 않았다. 다만, 날의 이가 나가면서 실금과도 같은 흠집은 났다.
“귀한 물건이라고 했…….”
나는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날의 흠집이 저절로 아물고 있었다. 세포가 재생하듯 실금과 이가 빠진 부분이 메꿔졌다.
“에퀘시안의 모어로는 ‘그라켄 부트’. 정확한 대응은 아니지만, 우리말로는 불멸? 아니, 영원한 백색 정도의 의미라고 하더군.”
일레이가 나이프 ‘그라켄 부트’를 내게 던졌다. 그라켄 부트는 너무 기니까 그라켄이라고 부르자. 원래 의미야 내 알 바가 아니니까.
휘릭.
나는 그라켄 나이프를 돌리면서 양손으로 번갈아 쥐었다.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뼛속에는 나노 크기의 유기체가 휴면 상태로 살아있다고 해. 충격을 받거나 손상을 입으면 깨어나서 원래 형태로 뼈를 복구하는 성질이 있지. 에퀘시안들은 특수한 가공으로 그 복원의 형태를 칼날로 고정했어.”
“……마술 같군.”
“큰맘 먹고 네게 주는 거야.”
나는 깨끗한 백색으로 돌아간 나이프를 유심히 쳐다봤다. 흠집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무기로서의 위력이 대단한 나이프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사라면 탐낼 만한 물건인 건 사실이다. 내 눈동자가 탐욕으로 빛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잘 쓸게.”
그라켄 부트, 그 뜻은 영원한 백색.
선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우린 누구나 영원과 불멸을 좋아한다.
자신의 명성이 역사에 남길 원하고, 한정된 삶도 완결되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영원하길 바라지, 그게 우정이든 뭐든 간에.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가 영원과 불멸을 바라는 건…… 무한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성도 삶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조차 유한하다.
우주에는 한 가지 진실이 있다. 우주조차 영원하지 않으며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언젠가는 모든 게 끝난다. 하물며 별 위의 점에 불과한 우리는 말할 것도 없지. 티끌조차 되지 못한 생명의 반짝임이 우리의 삶이다.
오늘은 감성적이구나, 루카.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지.
누군가에게 의미가 담긴 선물을 받는 건 처음이니까.
* * *
나는 니콜라오스가 보낸 문서를 홀로그램으로 뒤늦게 확인했다.
내가 요청한 유령 회사의 창업과 폐업 날짜, 그리고 명의자의 이름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눈동자를 굴려 이름에 동공의 초점을 맞추니 신상정보가 떠올랐다.
‘내 예상보다 정보가 훨씬 많아. 일 처리가 확실하긴 하군.’
부탁하지 않은 정보도 같이 있었다. 니콜라오스는 유령 회사의 명의자가 실존 인물인지 가짜인지조차 조사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나도 니콜라오스를 위해 뭔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들었다. 그만큼 훌륭한 정보였다.
나는 홀로그램에 다시금 집중했다. 하층 구역의 정보망으로 알기 어려운 자금 흐름도 나와 있었다. 모든 유령 회사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꼬아서 돈을 굴리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돈세탁이었다.
유령 회사들은 청소, 납품, 경비 등 여러 사유로 투기장의 돈을 빼돌려 합법적인 자금으로 바꿨다. 추적과 조사를 피하려고 장기간 회사를 유지하지 않고 1, 2년 안에 폐업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난 니콜라오스가 보낸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검토했다.
하층 구역에서 이 정도로 조사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었다. 어쩌면 수개월, 연 단위의 조사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정말로 천운이 따라 내가 쿠스토리아의 가주가 된다면…….’
니콜라오스를 숙청하지 않고 곁에 둘만 했다. 그가 날 적대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참모이자 조언자가 될 터다. 그는 내게 없는 능력을 가졌다.
물론, 가주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는 한없이 가망이 낮은 미래다. 그 미래를 위해 내가 넘어야 할 벽은 지금까지 넘어온 것보다 훨씬 높다.
‘추신, 조사하다 보니 유령 회사들의 자금이 흘러간 종착지의 윤곽이 보임. 며칠 더 파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음. 하다 보니 내가 재밌어서 하는 거니 빚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됨.’
이건 문서 마지막에 니콜라오스가 덧붙인 말이었다.
“제대로 빚졌네, 정말.”
니콜라오스도 내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을 끝내뒀기에 과감하게 퍼주는 것이다. 난 신세를 지고 입 닦기 힘든 사람이다.
‘좋아, 그럼 니콜라오스가 추가적인 조사 결과가 보낼 때까진 이 일은 제쳐두고…….’
키누안이 남긴 숙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다.
‘아키에스 전투술의 다음 단계.’
일레이 카르티카는 만난 뒤로 나는 줄곧 불안감에 시달렸다. 일레이는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그는 무수한 실전으로 전투 능력을 갈고닦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노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일레이보다 약할지도 모른다.
일레이의 재능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녀석이 전력으로 내 뒤를 쫓고 있다.
나는 일레이를 좋아한다. 그러나 녀석에게 지는 건 싫다. 녀석이 날 능가한다면 전력을 다해 미워할 자신이 있었다. 내가 더 강해지기 전까지 말이다.
난 근위대 네트워크에 접속해 개인훈련실을 예약하려 했다.
삑.
단말기가 울리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아주 드물게…… 극도로 동요했다. 전장에서 옆에 있던 전우가 죽을 때만큼이나 말이다. 오히려 표정의 변화는 그때보다 더욱 심할 것이다. 지금은 전장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아니니까, 날 공격적인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호르몬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부고…….’
내 지인과 친인척 중 누군가가 사망했다. 그자는 방금까지 내가 혼잣말로 실컷 읊조렸던 사내다.
‘……니콜라오스 쿠스토리아.’
니콜라오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