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1)
배드 본 블러드-61화(61/197)
061
죽음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나 같은 군인에겐 더욱 그렇다.
군인은 전장에 나서거나 전투에 임할 때마다 생사의 경계에 선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더라도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슬퍼해 주기만 해도 감지덕지다.
그러나 니콜라오스 쿠스토리아의 죽음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의 죽음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으니까. 본인도 자신의 죽음이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을 터다.
‘니콜라오스…….’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눈을 떴다. 검은 상복을 입은 쿠스토리아 혈족과 가신이 수두룩하게 서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쿠스토리아 가문의 묘지였다. 장례식은 엄숙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아, 아빠아아…….”
니콜라오스의 아들, 에밀리오가 비석 앞에서 울먹거리고 있었다. 내게 총구를 겨눈 싸가지였지만 지금은 좀 불쌍했다.
난 눈동자를 움직여 차남 쥬페를 살폈다. 기뻐하는 기색 없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기쁘더라도 내색하지 않는 게 맞겠지. 아니면 경쟁자를 허무하게 보내 정말로 씁쓸한 것일 수도 있다. 싫으나 좋으나 일단은 친형제이기도 했고.
웅성, 웅성.
쥬페의 주변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강력한 후보였던 니콜라오스가 죽었으니 다음 가주는 쥬페가 유력했다.
장례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들은 벌떼처럼 꿀을 쫓고 있었다.
니콜라오스의 사인은 교통사고로 인한 압사였다. 공중차량이 니콜라오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좀 더 자세한 사유는 지금도 조사하고 있었다.
‘운 나쁘게 벌어진 사고…….’
……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말로 사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확률은 너무나 낮다.
‘누군가의 사주로 인한 암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쥬페가 암살을 사주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아니, 짚이는 게 있으니까 저들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지.
‘내가 부탁한 조사 때문인가…….’
헛다리를 짚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는 그걸 우연이라 치부할 정도로 둔감하지 않다.
‘만약 나 때문에 죽은 거라면, 조사하다가 알아선 안 될 걸 안 거지. 고위 관료조차 입막음을 당할 정도의 정보.’
내 추측으론 그게 유령 회사의 자금이 흘러간 종착지다. 나도 이게 이 정도로 위험한 정보일 줄은 몰랐다.
현 근위대장의 장남이 죽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가슴 한구석이 무겁다.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차라리 내 추측이 기우이고, 니콜라오스의 죽음이 우연한 사고거나 쥬페가 사주한 거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까.
‘자식을 잃은 아비.’
난 근위대장 헤일라스를 응시했다.
묘비를 보는 헤일라스는 거석처럼 미동이 없었다. 언뜻 보이는 옆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는 약점이 될 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헤일라스에게 나와 니콜라오스 사이의 거래를 보고해야 한다.’
나는 키누안을 뒷조사했고, 니콜라오스는 내 부탁으로 키누안의 유령 회사를 추적했다. 니콜라오스의 죽음이 키누안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헤일라스라도 장남이 죽었는데 키누안을 추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쨌거나 판단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보고부터 해야 한다. 뒤늦게 관계성이 밝혀진다면 나까지 공범 취급받을 수도 있다.
“루카.”
난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지젤을 보았다. 우린 인파를 빠져나와 나무 그늘에 섰다.
“이상해. 지금 니콜라오스가 죽는 건 아무리 봐도 앞뒤가 맞지 않아.”
지젤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슬픔보다도 의문이 더 큰 모양이었다. 아니,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만큼 혈육의 정이 옅었던 모양이다. 하긴 니콜라오스조차 친자식을 도구처럼 썼으니 말이다.
나와 니콜라오스의 거래를 지젤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나는 침묵하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쥬페가 사주한 건 아닌 것 같아. 아직 아버지의 은퇴는 멀기도 했고. 루카, 넌 뭔가 아는 게 없어?”
지젤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숨기는 게 있다면 찾아낼 기색이었다. 미안하지만 아가씨, 감정과 생각을 숨기는 건 내가 한 수 위야.
“알면 말했겠지. 그보다 앞으로 방침은 어떡할 거야? 니콜라오스가 죽었으니 쥬페가 독주하는 게 아니야? 아까 보니 친족들이 쥬페에게 우르르 붙던데.”
“당장은 쥬페를 막을 방법은 없지. 나보단 네가 걱정해야 하는 문제 아니야? 넌 얼마 전에 쥬페에게 망신을 줬잖아. 쥬페가 가주로 확정되면 널 밀어낼 거야. 죽이려고 할 수도 있지.”
나는 목을 긁적이며 어깨만 으쓱했다.
“쥬페에게 당한다면 그게 내 그릇의 크기인 거지.”
사실은 쥬페가 뭘 하더라도 내가 당할 것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난 니콜라오스와 다르다. 사고사 따위로 위장해 날 죽이지 못한다.
“하지만 너는, 아, 왜? 읍!”
“쉿, 쥬페가 이쪽으로 온다.”
나는 검지와 엄지를 뻗어 지젤의 입술을 닫았다. 쥬페가 곧장 우릴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는 거지? 동생님들? 나도 좀 끼자고.”
“별건 아닙니다. 장례 예법을 몰라서 지젤에게 물어보는 중이었죠. 제가 예절에는 능하지 못해서요.”
내 말을 들은 쥬페는 얼굴을 찡그리려다가 폈다. 내게 식사 예절을 지적했다가 망신당한 기억이 떠올랐겠지.
“그래, 모르는 게 있으면 형제에게 물어보면 되지. 우린 언제나 널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그렇지 않아? 지젤?”
“……뭐, 그렇죠.”
지젤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녀는 니콜라오스는 물론이고 쥬페와도 친하지 않았다.
“이제 내가 제일 맏이가 됐지. 그간의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다면 털고 싶군. 아니, 긴말할 것 없지. 앞으로 변수는 없을 거다, 루카, 지젤. 니콜라오스 형님이 사라졌으니 다음 가주는 나야. 불온한 생각이 있었거든 오늘부로 집어넣어라.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내 아량으로 다 넘어가 줄 테니까.”
쥬페가 우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자신의 밑으로 순순히 들어오라는 소리다.
“무례하군요, 쥬페 오라버니. 지금 우린 상을 치르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이르지 않나요?”
“상 중에 빠져나와 작당 모의한 년이 할 말이 아니지 않나? 웃기는군.”
쥬페가 되받아쳤다. 놀랍게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박수치고 싶은 심정을 참았다.
일단은 내 동맹은 지젤이다. 그리고 쥬페보단 지젤이 더 마음에 든다. 예쁜 여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 쥬페가 더 재수 없을 뿐이다.
“저도 니콜라오스가 죽은 김에 말하겠습니다.”
나는 형님이라고 붙이지도 않았다. 사실 형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될 분위기이기도 하고.
“너…….”
쥬페가 끼어들기 전에 나는 말을 이어갔다.
“니콜라오스는 제 성향과 반대에 있는 사람이라 까다로웠죠. 하지만 쥬페, 당신은 저와 같은 군인입니다. 양자와 친자의 차이를 뒤집을 정도로 제 기량은 당신을 능가합니다. 그걸 알아두시죠. 아직 시간은 남았습니다. 제가 군부 내에서 인정받고 진급하기엔 차고 넘치는 시간이죠.”
나는 정면으로 경쟁을 선언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쥬페가 꼴사납게 굴길래 그저 콧대를 누르고 싶었다. 이건 내 고질병이기도 하다. 가끔 불필요하게 적을 늘리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길바닥 고아 새끼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쥬페의 목소리가 사납다. 괜히 장교는 아닌지 위압감을 풍기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겁을 먹을 것이다.
“루카우스 도련님,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때마침 하인 중 하나가 다가왔다.
“……아버지의 호출이니 가봐라, 루카. 하지만 오늘의 일은 잊지 않으마.”
나는 대꾸하지 않고 하인을 따라나섰다. 지젤도 눈치를 보며 나를 따라오다가 인파와 합류했다.
헤일라스는 묘지에 마련된 별실에 있었다.
끼익.
내가 문을 열고 별실로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헤일라스는 창가에 서 있었다. 창문을 통해 나와 쥬페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쥬페를 너무 놀리지 말게, 루카.”
헤일라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냥 좀 욱했습니다. 혹여나 싸울까 봐 저를 부르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문이 살짝 열렸군. 잘 닫게.”
나는 뒤돌아서 문을 당겨 완전히 닫았다. 그리고 다시 실내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헤일라스는 어느새 내 코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다가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내 아들이 왜 죽은 거지?”
헤일라스의 어조는 평온했다. 그러나 내뱉은 말은 모호하면서도 무거웠다.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진실만 말해야 한다. 거짓을 고했다간…….
‘……죽는다.’
간담이 서늘하다. 백골의 사신이 내 목덜미에 낫을 들이미는 것 같았다.
난 헤일라스의 내면에 깊게 자리 잡은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제국 최고의 군인 중 하나다. 그 분노는 결코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 * *
헤일라스는 가만히 서서 내 말을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하층 구역에서 내가 했던 일을 설명했다. 조사의 편의와 영향력 확장을 위해 가브리엘을 내세워 갱단을 조직한 일, 키누안과 토라의 관계를 파고들어 켄 노마를 찾은 것, 그리고 토라의 장부를 통해 유령 회사의 자금줄을 추적했고…….
……그 조사를 니콜라오스 쿠스토리아에게 맡겼다. 그 직후, 니콜라오스는 사고사당했다.
“……이상입니다.”
나는 허리 뒤쪽에 양손을 바짝 붙이며 경직된 태도로 보고를 마쳤다.
“그런 건가…….”
내 설명을 들은 헤일라스가 중얼거리며 턱을 매만졌다. 말투는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내 심장이 멈출 줄 모르고 두근거렸다. 헤일라스의 고요한 잔불이 언제 겁화로 번질지 모른다.
‘장남이 죽었다.’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지. 헤일라스가 아무리 공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초인이라도 말이다.
헤일라스는 훌륭한 군인이지, 미치광이 사이코는 아니다. 냉혹한 군인의 가면 아래에 잠들어 있는 그의 인간성을 나는 종종 보았다.
“하지만 아직 토라의 후원자가 키누안이라는 확실한 물증은 없습니다. 심증만 있을 뿐이죠.”
나는 키누안과 헤일라스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고 싶었다. 그게 현실이 된다면 내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루카, 토라의 후원자는 키누안이 맞을 거네. 자네가 그렇게 판단했으니까.”
“근위대장님은 저보다 저를 더 믿으시는군요.”
“유능한 부하이자 아들의 능력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이 신뢰를 감사해야 할까, 두려워해야 할까.
“……그럼 방향성을 바꾸지 않고, 임무를 속행하겠습니다.”
“이대로 파고들면 자네도 니콜라오스를 습격한 자에게 공격받을 거네.”
“저는 형님과 달리 군인입니다.”
“그래, ‘일개 군인’이지. 그래서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어. 니콜라오스는 제국의 관료야. 더군다나 하급 관료가 아니지. ‘적’은 니콜라오스의 데이터베이스 열람 기록을 본 거네.”
이야기를 듣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머릿속에서 용납하기 힘든 결론이 나왔다.
“제국의 적이 관료 집단 내부에도 뿌리박혀 있다는 겁니까? 그것도 고위직에서요?”
“이상할 건 없네. 제국의 역사는 길지. 그 내부 집단도 마찬가지고. 썩은 부위를 매번 도려내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분노가 치밀다 못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하층 구역의 사람이나 빈민이 제국에 반기를 드는 건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위 관료가 제국의 적이라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특혜를 누린 자들이다.
“우린 키누안을 통해 내부의 적을 색출할 거네. 니콜라오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아이가 죽었다는 건 우리가 꽤 핵심까지 다가갔다는 소리지.”
어느새 헤일라스는 냉철함을 되찾았다.
“개인적으로 니콜라오스 형님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빚을 갚을 방법은 하나뿐인 듯합니다.”
누군가는 니콜라오스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