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3)
배드 본 블러드-63화(63/197)
063
투기장은 암시장의 중심에 있다. 암시장은 하층 구역에서도 행정과 치안이 유독 닿지 않는 곳이다.
암시장의 상공은 불법 증축한 건축물이 얽혀 있어서 공중차량으로도 접근이 쉽지 않았다.
키이잉, 끼이이이이익!
우리가 탄 블랙 택시가 비좁은 건축물들 사이를 지나갔다. 긁히고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보통 택시라면 암시장 상공에 접근하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다. 밥벌이 수단인 차량이 멀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집 다 무너지겠다! 이 새끼들아!”
창문은 열고 삿대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불법 건물의 거주민이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의 아우성 따윈 아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콰득!
블랙 택시는 좁은 틈새를 비집다 못해 부수며 지나갔다. 걸리적거리던 건축물 일부가 부서지더니 내부가 드러났다. 하필이면 화장실이었다. 용변을 보던 사람이 멍하니 우리를 봤다.
위이잉, 위이잉.
지상과 가까워진 블랙 택시가 법적 권리가 있는 것처럼 사이렌을 울려댔다. 지상의 인파가 블랙 택시를 보며 욕을 내뱉었다.
우우우웅!
짧은 경고를 마친 블랙 택시는 사람이 있건 없건 간에 그대로 착륙했다. 뒤늦게 피하다가 다리가 깔린 사람도 있었다.
-결제 부탁드립니다.
우린 운전석을 보지 못한다. 시커먼 철판 너머에서 변조된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워낙 원한을 많이 사는 직업인지라 철저하게 사생활을 숨겼다.
참고로, 블랙 택시는 결제하지 않으면 내리지 못한다. 미정산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단말기로 크레딧칩의 금액을 입력하곤 투입구에 꽂아 넣었다. 정산이 끝나자마자 숫자가 사라진 크레딧칩이 이쪽으로 배출됐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제가 끝나자마자 문이 열렸다.
철컥!
나와 가브리엘은 내리자마자 무장을 확인했다. 가브리엘은 묵직한 권총 두 자루를 장전하더니 하나씩 쥐었다.
“그레이스, 넌 싸울 필요가 없어. 이건 우리의 일이니까.”
나는 우리를 따라온 그레이스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디바께서 적극적으로 도우라 하셨으니까요. 특히 가브리엘을 지키라고 했죠.”
그레이스가 입꼬리를 정말 살짝 올리며 말했다. 디바와의 잠자리가 예정된 가브리엘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젠장! 그냥 여기서 총 맞고 뒈지고 싶네.”
우린 투기장 건물을 응시했다.
투기장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암시장의 사람들도 아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람? 아까 알레프 애들이 총 들고 들어가던데?”
“나도 몰라. 투기장의 맹수라도 탈출했나 보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우린 사무실로 향하는 입구에 섰다.
쾅!
가브리엘이 문을 걷어차며 안쪽으로 총구를 뻗었다. 몇 번이고 봤던 통로지만 지금은 낯설 정도로 어두웠다. 투기장 내부의 전력이 나간 것 같았다.
“내가 먼저 갈까?”
가브리엘이 물었다.
“아니, 내가 가지. 넌 아직 총상이 다 아물지도 않았잖아.”
“이야, 신경 써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내가 앞장서며 걸어 나갔다.
첫 번째 모퉁이에서 시신이 있었다. 몇 번인가 봐서 낯익은 경비였다. 반쯤 잘린 목이 쩍 갈라져 있었다. 솜씨가 얼마나 깔끔한지 선혈이 피슛피슛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 중엔 시체 따위를 보고 겁먹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죽음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들이다.
“마약상이 죽은 이유가 이거로군.”
나는 바닥에 떨어진 앰풀을 보았다. 약물의 종류는 바로 알 수 없었지만…… 전투 각성제 종류일 것이다. 빈 앰풀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켄은 오늘만 살 셈인가?’
켄은 작정하고 약물을 몸에 꽂아 넣고 있었다. 망가진 뇌에 기름칠해 가며 억지로 굴리고 있다. 이대로는 고장이 아니라 박살 날 것이다.
철퍽, 철퍽.
우린 핏물을 밟으며 사무실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복도에서는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죽어있는 갱단원이 벌써 열 명이 넘었다. 전부 다 칼로 인한 자상이었다.
뒤로 갈수록 솜씨가 더 나았다. 절단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깔끔했다.
‘켄의 실력이 이 정도였나?’
심지어 켄은 죽은 갱의 총을 노획하지 않았다. 오로지 칼로 복도를 돌파했다.
아무리 전투 각성제를 다량 복용했다지만 잘 봐줘야 현역 시절로 돌아간 수준일 것이다. 하층 구역의 갱치고는 실력이 지나치게 좋았다. 그에게 그레이스처럼 근위대 생도 출신이라는 비범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상치 않은걸, 루카. 조심하는 게 좋겠어.”
가브리엘의 표정도 딱딱했다. 우린 서두르지 않았다. 정황을 볼 때, 켄이 알레프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이미 늦었다. 서둘러봐야 우리만 위험하다.
‘정말 혼자서 알레프 갱단을 헤집었군.’
이 정도 전투력이면 생도 2년 차 수준은 족히 된다. 상당한 인재다.
끄아아아아아아-!!
통로 끝에서 비명이 메아리 울리며 퍼졌다. 우린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알레프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그대로 속도를 높였다. 가브리엘과 그레이스와 호흡을 맞추지 않았다.
난 가브리엘과 그레이스를 놔둔 채로 알레프의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다시피 했다.
“도련님께서 오셨군.”
켄 노마가 활짝 핀 웃음을 내보이며 나를 반겼다. 활짝 핀 건 그의 미소만이 아니었다.
“끄, 어, 으으으…….”
나는 의자에 묶인 알레프를 보았다. 꽤 참신한 고문이었다.
알레프의 얼굴 가죽은 꽃이 피듯 바깥쪽으로 벗겨져서 너덜거렸다. 도축자처럼 멀끔한 솜씨였다. 피부 아래에 숨어 있던 근육의 결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에서 새어 나온 핏물은 꿀처럼 끈적끈적하게 흘렀다.
딸깍.
켄은 앰풀을 하나 더 꺼내서 목덜미에 꽂아 넣었다. 그의 눈동자는 붉다 못해 검게 물들고 있었다.
“……나와의 약속을 어겼군, 켄.”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지? 난 가브리엘 갱단의 보호에서 이미 벗어났어. 그쪽의 보호는 이젠 필요가 없으니까, 내 목적을 이루려고 여기에 온 거야.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다.’ 요즘 수명과 시간관념을 감안해 보면 당시의 십 년이 지금의 이, 삼십 년 정도로 보면 되겠군.”
켄이 유창하게 말했다. 그토록 심했던 뇌 기능 장애가 거짓말 같았다.
‘아무리 각성제 과용하더라도 전투가 불가능할 텐데…….’
난 의문을 구석에 집어넣었다.
“어이, 루카! 우리도 왔어! 혼자서 그렇게 가는 게 어딨어?”
가브리엘과 그레이스도 사무실로 들어오려 했다. 나는 손을 뻗어서 제지했다.
“켄을 생포할 거야. 너흰 방해되니까 물러나.”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동선이 꼬인다. 내가 연산할 게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난 불필요한 변수를 차단하고 싶었다.
“내가 방해된다고? 아무리 네가 잘났…… 컥! 씹, 이 망할 년이!”
그레이스가 가브리엘의 배를 때렸다. 가브리엘은 과거의 총상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가브리엘은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루카 님.”
그레이스는 가브리엘 앞에 서며 산탄총을 들었다. 그레이스 같은 부하가 내 밑에 서넛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군. 지금은 마르티나 디바가 좀 부러웠다.
“흐음, 날 빼낸 준 보답으로 조언하는 건데 날 생포할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아. 난 독벌레 같은 인간이거든.”
켄이 앰풀을 하나 목에 더 꽂으며 말했다. 그는 사무실 벽에 걸린 장식용 장도를 집어서 뽑았다.
카- 앙!
장식용이 아니었군. 날이 매끄럽게 서 있었고, 쾌청한 소리로 보니 금속의 질도 우수했다.
키이잉.
나도 간만에 칼을 뽑았다. 날이 무거워서 소리가 길게 끌렸다.
고압축 중량병기, 이름은 ‘크루시스’ 형태는 칼.
크루시스의 데뷔전이다.
* * *
똑- 딱.
켄은 싸우기 앞서서 혓바닥을 튕겨 소리 냈다. 그 행동의 의미를 난 모른다.
나도 하던 대로 감각을 확장했다. 알레프의 사무실은 크지 않다. 가구와 사소한 물건조차 내 뇌리에 차곡차곡 담았다. 눈 감고도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생포.’
목을 베면 궁금한 걸 듣지 못한다. 각성제를 과용했어도 당장은 죽지 않을 테니 정보를 더 캐내고 싶었다.
‘칼에 걸리는 가구나 방해물은 무시하면 된다.’
크루시스는 지금까지 내가 쓰던 칼과 다르다. 둔기를 압축해 칼로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뭐든 다 부수며 지나갈 것이다. 사용자에게 그만한 힘이 있어야겠지만.
‘켄의 양팔을 베서 무력화한다.’
나는 천천히 나아갔다. 우리 둘 중 하나가 가속하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상식적으론 제국의 초고성능 전투의체를 가진 내가 유리하다. 켄의 의체는 보급형이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나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듯 관측하며 사고하며 내 안의 통찰을 끌어냈다.
아키에스, 그 의미는 통찰.
스륵.
켄도 묵직하게 움직였다. 서두르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전투 각성제의 다량 투여로 고양감이 장난이 아닐 텐데도 상당히 차분했다. 정신력이 평균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선공권은 내가 가지고 있지.’
의체의 성능이 부족하면, 실력과 별개로 주도권과 선공권을 상대에게 넘겨줘야 한다. 출력과 성능의 차이를 극복하려면 반격을 통한 허점을 찔러야 하기 때문이다.
쾅!
나는 발에 걸리는 책상을 걷어찼다. 바닥에 박힌 철제 책상이 그대로 뽑히며 켄을 향해 날아갔다.
이걸로 켄의 시야를 가렸다. 나는 책상에 바짝 붙듯 같이 뛰어올랐다. 이대로 책상과 함께 켄의 팔을 벨 생각이었다. 크루시스의 위력이라면 문제없다.
퓻!
그러나 책상을 관통한 켄의 칼끝이 내 미간을 노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놈의 칼끝이 내 눈앞을 지나갔다. 나도 칼을 휘둘렀다.
콰지지직!
철제 책상이 찢어지듯 부서졌다. 이미 켄은 칼을 빼낸 채로 옆으로 빠졌다. 예지에 가까운 위치 선정이었다. 움직임이 물 흐르듯 군더더기가 없었다.
난 저런 움직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반격당하기 전에 땅과 천장을 차례로 박차며 뒤로 빠졌다.
‘……아키에스 전투술! 염병.’
퍼즐 조각을 찾았다. 의문이 풀린다.
키누안으로 추측되는 후원자 ‘노엘’. 그의 지원을 받은 건 토라가 아니었다. 켄 노마가 노엘의 진짜 피후원자다! 토라는 그저 바지 사장이었다.
‘반란군의 간부들 태반은 각성제 계통의 약물을 치사량까지 달고 살았네. 뇌수 대신에 약물이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야.’
키누안의 말이 떠올랐다. 아케이스 전투술을 익혔다면 켄 노마의 빠른 재활과 치사량을 버티는 약물 적성이 납득갔다.
“네가 투기장의 진짜 보스였군. 토라는 위장이었고.”
내가 칼끝을 겨누며 말했다. 켄의 미소가 잠시 사라졌다.
“뭐,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야, 과거 따윈……. 지금은 욕망에만 충실하고 싶군. 나와 알레프를 한 시간만 같이 있게 해줘, 도련님. 난 그거면 만족할 수 있어.”
나는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며 의자에 묶인 알레프를 쳐다봤다.
“알레프가 승낙한다면야 못할 건 없지. 알레프, 어떻게 생각해?”
“으읍! 읍! 읍!”
알레프는 빈사 상태에서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벗겨진 얼굴 가죽이 펄럭펄럭 흔들리며 피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들었지? 알레프는 싫다는데?”
“쯧, 앙탈 부리긴. 조금 있다가 둘이서 좋은 시간을 보내자고.”
켄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알레프의 똥오줌이 바짓단 밑으로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