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6)
배드 본 블러드-66화(66/197)
066
나는 헤일라스가 보낸 자금 세탁의 정보를 확인하고선 움직였다.
아크바란 외곽에는 폐허가 많았다. 폐허엔 여러 이유가 있다. 개발계획이 취소되어 그대로 방치된 곳도 있었고, 갱단에서조차 쫓겨난 질 나쁜 무법자가 쥐 떼처럼 창궐해 치안을 포기한 곳도 있다.
내가 서 있는 곳도 버려진 폐허 중 하나였다. 하층 구역의 거주민도 여긴 얼씬도 하지 않았다. 갱단에 의한 최소 질서조차 없는 무법지대다.
‘무리한 개발로 인해 불안정해진 지반.’
나는 울퉁불퉁하게 솟구친 땅을 보았다. 걷다 보면 움푹 꺼진 곳도 있었다. 심하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지반이 가라앉아 있었다.
지반의 불안정을 확인하자마자 개발에 참여한 기업들은 철수했다. 그 이후로 여긴 줄곧 폐허였다.
원래는 사무지구로 개발하려고 했던 터라 고층 건물이 촘촘하게 솟아있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짓다 만 건물이 다수 보였다. 녹슨 골조만 스산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기쯤인가?”
나는 망막 디스플레이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화려한 건물의 흔적에서 과거의 영광이 드문드문 보였다. 지반 불안정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촉망받던 사무지구였다. 본사를 이쪽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기업도 여럿이었다.
“이, 이보쇼.”
등이 굽은 노파가 허름한 차림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노파를 쳐다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쥐새끼처럼 그늘 사이를 오가는 부랑자와 무법자가 보였다.
“무슨 일로?”
내가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뭘, 뭘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안내라면 도와주겠수다. 그, 적절한 보, 보상만 있다면…….”
노파가 그리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지저분한 손이 매달리듯 내 팔을 잡으려 했다.
콰직!
나는 노파를 걷어찼다. 무슨 귀족적인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더러운 손으로 내게 손대지 마라! 그런 심보는 더욱더 아니다.
노파의 속셈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저 측은하게 굽은 등에는 살인 병기가 숨어 있었다.
드드득, 드득!
날아간 노파의 등에서 거미 다리와 같은 기계 팔이 넷이나 나왔다. 그녀는 기계 팔을 이용해 건물 난간에 매달렸다.
“킥, 킥킥…….”
노파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더니 건물 외벽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반병신 만들 생각으로 걷어찼는데…….’
나는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허공을 쥐어 차는 느낌이었다. 저 정도의 반사 신경이라면 불법적인 개조를 어마어마하게 해댔을 것이다. 수명과 영혼을 갉아가면서 말이다.
기습이 실패하자 날 응시하던 눈동자가 상당수 사라졌다. 만만한 손님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쉬운 먹잇감을 찾는 이들이라면 내게서 관심을 끊을 것이다.
저벅, 저벅.
나는 망막 디스플레이의 안내를 따라 계속 걸었다.
‘흘러간 자금의 종착지.’
이곳이 폐허가 되기 전에 경호업체 사무실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헤일라스의 조사에 따르면 세탁한 자금이 모인 곳이 바로 그 업체였다. 업체명은 데드로닌이었다.
‘비밀보장이 필요한 VIP를 위한 프리미엄 경호업체.’
데드로닌을 설명하자면 이랬다. 그들은 크레딧을 받지 않았다. 대신 가치 있는 골동품이나 예술품, 때론 정보와 같은 무형의 자산을 대금으로 받았다. 그 때문에 자금 추적이 불가능했다.
‘비밀보장을 요구하는 VIP들은 추적이 불가능한 형태의 대금 지급을 선호했을 거고.’
투기장과 연결된 유령 회사들은 크레딧을 추적이 불가능한 자산으로 바꾼 뒤에 데드로닌과 띄엄띄엄 거래했다. 어떨 때는 다른 업체를 끼고 간접적으로 대금을 주고받기도 했다. 제국의 고위 관료가 아니었으면 그 흐름을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니콜라오스도 추가 조사를 하려고 했지.’
전모가 밝혀지니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났다.
우뚝.
망막 디스플레이의 화살표가 사라졌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게 맞나 싶었다.
휘우우우웅-.
주변의 공기가 지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래를 보니 지반 붕괴로 생긴 거대한 공동이 보였다. 그 지름은 백여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충격으로 부러진 고층 건물들이 함께 가라앉아 있었다.
삑, 삑.
나는 단말기를 들어 지도 안내를 다시 켰다.
재차 확인해도 여기가 맞다, 염병.
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저 아래를 응시했다. 장난감처럼 툭툭 부러진 고층 건물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저 어딘가에 데드로닌의 사무실이 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아래를 보다가 뛰어내렸다.
* * *
철퍽.
지하 공동 바닥에는 증발하지 않은 빗물이 썩어서 고여 있었다. 난 무너진 건물을 확인하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이끼와 곰팡이가 잔뜩 낀 건물 앞에 섰다. 내가 찾던 건물은 사선으로 쓰러져 있었다. 정문은 찌그러져서 엉망이었다.
촤륵.
나는 깨진 창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갔다.
당연히 건물의 전기는 끊어져 있었다. 내부는 무너질 당시의 혼란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흐트러진 가재도구가 기울어진 벽 구석에 쌓여있었다.
‘사고 후 수습도 제대로 되지 않았군.’
시체도 여럿 보였다. 후두부에서 입까지 뾰족한 철근이 튀어나온 시체도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백골과 철근이 처음부터 하나인 것처럼 얽혀 있었다.
철근 끄트머리에는 팔뚝만 한 지네가 매달려 있었다. 지네는 내 기척에 반응하더니 두개골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꽤 섬뜩한 광경이다. 괜히 머릿속이 간지러웠다.
‘데드로닌의 사무실은 9층.’
나는 벽에 걸린 안내판을 찾았다. 다행히 먼지가 쌓인 것 말고는 손상이 없었다.
쓰러진 건물이 사선으로 기울어진지라 평형이 기묘했다. 난 감각을 의식적으로 보정하며 복도를 걸었다.
뚜벅, 뚜벅.
계단 중간중간은 끊어져 있었다. 나는 벽을 타며 훌쩍훌쩍 다음 층으로 건너갔다.
7층 구간에서 건물이 부러져 꺾여 있었다. 그 덕에 복도는 미끄럼틀처럼 심하게 기울어졌다. 균형을 잃었다간 그대로 미끄러져 창문으로 떨어질 것이다.
난 발의 접지를 신경 쓰며 나아갔다. 금방 9층을 가리키는 표지가 보였다. 여긴 기울임이 더 심해서 복도가 벽이 되고, 벽이 복도였다. 문은 내 머리 위에 달려있다. 모든 게 뒤엉켜 있지만 묘한 규칙성도 있어서 기하학적인 미로 같기도 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멀미가 날 것 같네.’
우리의 뇌는 안정감 있는 대칭을 선호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이하게 뒤틀린 공간에선 답답한 불쾌함이 느껴졌다. 직관과 엇나간 구조 자체가 감각을 교란했다.
나는 천장에 붙은 문을 살피며 데드로닌의 사무실을 찾으려 했다. 다섯 개의 문을 지나자 글자 몇 개가 없는 문패가 보였다. 빈 글자를 얼추 끼워 맞혀 보니 데드로닌이었다.
콰직!
나는 가볍게 뛰어서 천장에 달린 문을 잡아서 뜯어냈다. 문이 기대듯 쌓여있던 잡동사니가 우르르 떨어졌고, 십수 년은 고인 듯한 먼지가 자욱하게 쏟아졌다.
아무리 내가 몸을 막 쓰는 사람이라도 저걸 통째로 들이마시고 싶진 않았다.
난 품에서 필터 마스크를 꺼내 착용했다. 내 턱의 윤곽에 맞게 마스크가 벌어지다가 착 들러붙었다.
필터 마스크를 쓰면 후각이 무용지물이 된다. 전투 감각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나도 어지간해선 쓰지 않는다.
툭, 툭.
난 어깨와 머리에 쌓인 회색 먼지를 털어내며 잡동사니 더미를 응시했다. 데이터칩과 서류가 드문드문 보였다.
딸그락.
나는 조사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만 일단 챙겨서 허리 가방에 집어넣었다.
드륵!
잡동사니를 뒤진 나는 천장까지 팔을 뻗어서 뒤집힌 사무실 내부로 들어갔다.
기이잉.
내 오른쪽 의안이 빛나면서 가시광선 파장을 넓혔다. 시야를 확보한 나는 내부를 둘러봤다. 아크바란 사무지구에서라면 흔히 볼 법한 사무실의 풍경이었다.
‘니콜라오스를 암살할 정도의 조직이 배후에 있다면…… 꼬리가 잡힐 만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거야.’
데드로닌 사무실 조사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쪽이 큰 실수하지 않은 이상에야 별다른 증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조사를 방해하는 적은 철저하다. 그렇기에…… 꼬리를 자르고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고 싶을 것이다.
기이잉.
나는 칼을 뽑았다. 폐허와 잘 어울리는 크루시스가 어둠을 밝히듯 빛났다.
여기 오기 전에 난 준비를 끝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근위대 정비소에서 의체를 최적의 상태로 조율했다.
……오늘의 나는 완벽한 상태다.
딸깍.
나는 턱에 손을 올려 필터 마스크를 벗었다. 탁한 공기가 내 기관지를 긁으며 폐까지 기어들어 갔다. 담배 수십 개비를 한 번에 핀 기분이다.
“후…….”
나는 입을 벌려 혀로 공기를 맛봤다.
에너지 입자의 알싸한 맛이 먼지 사이에 엄폐하듯 섞여 있었다. 극도로 민감한 감각이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량의 입자였다.
‘조사를 막으려면 나를 죽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난 데드로닌 사무실을 조사하러 온 게 아니다.
‘내가 혼자서 여기에 오면 적도 나타날 것이다.’
지금까지 정황으로 볼 때 거의 확실했다. 니콜라오스도 죽인 마당에 나를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스륵.
난 고개를 들어서 위를 응시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창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가 창틀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조차도 아주 옅은 인기척만 느낄 정도였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루카.”
난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누군지 알았다. 복장도 예전과 똑같은 밀폐형 전신 전투복이었다. 그의 붉은 안광이 흐느적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이름은 릭 실바 누네즈, 제국의 일급 수배범. 통칭 릭 카이저.
내 목을 부러뜨리고, 펠릭스를 재기불능으로 만든 사내가 저 위에 있었다.
난 근위대의 지원을 호출했지만, 폐허의 구덩이인지라 신호가 닿지 않았다. 아니면 모르는 사이에 방해 전파가 근방에 깔렸을 수도 있다.
외부의 지원을 바랄 순 없다. 자력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키이잉.
나는 충격 권총 ‘루이나’를 꺼냈다. 예열과 에너지 결속은 진작 끝난 상태다. 총신에선 에너지 입자의 푸른 빛이 회로를 따라 빛나고 있었다.
내 전용무장은 릭 카이저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패배 이후로 난 몇 번이고 그와의 전투를 가정하며 혼자 시뮬레이션했다.
불온한 반동분자와 말을 섞을 필요는 없다.
투- 웅!
방아쇠를 당겼다.
콰장창!
에너지를 머금은 실탄이 착탄지점에서 폭발했다. 충격 에너지가 사방팔방 퍼지면서 주변을 원형으로 집어삼켰다. 폭발에 휘말린 벽과 창문이 그을리며 파편으로 화했다.
그러나 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것도 예상한 바다. 난 왼발을 축으로 크게 돌면서 크루시스를 뒤로 휘둘렀다.
휘릭!
내 등에 접근했던 릭이 뒤로 물러났다. 그조차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그의 전투복 가슴 부위가 칼끝에 걸린 탓에 찢어지듯 부서지고 있었다.
난 크루시스를 손아귀에서 돌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왼손에 든 루이나를 뻗어 사선에 릭이 있도록 두었다.
릭은 가슴을 매만지며 믿기 힘들다는 투로 말했다.
“……너, 전투의 천재로구나. 단시간에 이 정도로 성장할 줄이야.”
적의 칭찬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군.
그리고 놈이 내 손에 죽어주면 더욱 행복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