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7)
배드 본 블러드-67화(67/197)
067
투웅!
충격권총 루이나가 연달아 포효했다. 에너지 입자가 연기와 뒤섞여 너울거렸다.
릭은 잔상을 남기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사선에서 벗어나려 했다.
‘릭의 방호등급으론 충격탄을 막지 못한다.’
충격탄은 전갑의체조차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전신 전투복은 아무리 방호등급이 높아도 충격탄을 버티지 못한다.
휘릭!
나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서 재주를 넘었다. 그리고 칼을 그대로 휘둘러서 무게가 실린 일격을 가했다.
우드드득!
내 칼, 크루시스는 콘크리트를 깨부수며 쇠도 가볍게 찢는다.
루이나와 크루시스, 둘 다 화력과 파괴력을 우선했다. 이 때문에 릭은 내 공격을 막지 못하고 피하기만 해야 한다. 적의 행동 패턴 중 하나를 완전히 봉쇄한 것이다.
패턴 하나를 배제하면 상대의 움직임을 읽기가 훨씬 쉽다.
투- 웅!
더 빨라져야 한다, 루카.
신경계와 감각을 확장한다. 정신을 날카롭게 가다듬고, 감각 기관이 전달한 정보를 뇌로 쑤셔 박는다. 머릿속에선 화학물질과 호르몬이 둑이 깨진 듯 흘러넘쳐 뇌를 적신다. 불필요한 감정이 마비된다. 자비심은 사라진다. 공포도 없다. 기괴하게 비대해진 공격성과 호전성이 나를 전투 기계로 바꿨다.
전투 사고와 논리만이 내 뇌리에 퍼즐 조각처럼 그득그득 쌓여갔다. 난 그 퍼즐을 맞춰가는 중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중사고를 통해 전술 사고만 떼어놓았다. 나를 보는 내가 생겼다.
좋아, 상태는 최상이다. 오늘의 나는 모든 걸 쏟아붓는다.
기이이이잉-!!
출력을 한계까지 높이니 내 전투의체가 기분 좋은 비명을 질렀다. 조율과 정비가 완벽했기에 이물감과 걸림이 찰나의 영역에서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사이버네틱 의체 특유의 둔탁한 감각조차 사라졌다. 이 순간만큼은 이 쇳덩이가 타고난 피와 살인 것 같았다.
난 할 수 있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미끄러졌다. 이윽고 무릎과 상체를 굽히며 호흡을 정돈했다.
콰- 직!
바닥을 내리찍듯 박차며 나아갔다. 내가 있던 자리에는 균열이 생겼다.
난 탄창이 빌 때까지 루이나의 방아쇠를 당기며 릭의 움직임을 제약했다. 여섯 발의 충격탄을 받아낸 사무실은 벌레가 파먹은 과일처럼 듬성듬성 구멍이 나서 휑했다.
휘리릭!
내 발은 바닥에 거의 붙어있지 않았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연달아 도약하며 가속을 유지했다. 벽과 천장을 오갈 때마다 난 점차 빨라졌다.
‘뒈져라, 제국의 적.’
그리고 펠릭스의 몫까지.
……크루시스가 릭을 따라잡았다.
키이이이이잉-!!
쇠가 쇠를 절단하는 소리가 났다. 불티가 화려하게 튀었다. 전진하던 나는 릭의 옆으로 빠져나오며 참았던 호흡을 내뱉었다. 달아오른 입김이 흘러나온다.
투웅!
릭의 왼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난 크루시스로 그의 어깻죽지를 절단했다.
쏴아아아.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하다.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격은 지금까지 없었다. 팔 하나를 벤 것만으로도 이러할 텐데, 릭의 목을 벤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성취감으로 뇌가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하하…….”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난 쾌락에 젖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크루시스를 다시 곧추세우며 팔을 잃은 릭을 응시했다.
찰칵.
한 손으로 루이나를 돌리며 탄창도 갈았다. 사격하면서 떨어진 냉매 탄피가 아직도 벌겋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자넨 이제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된 근위대원이로군.”
릭이 어깨의 절단면을 매만지며 말했다. 작디작은 부품이 툭툭 떨어졌다.
“황제 폐하와 제국 신민을 대신해 너를 심판하겠다, 릭 실바 누네즈.”
난 들뜬 감정을 겨우 누르며 기계적으로 말했다. 승기를 잡고도 자만하지 않고 릭을 관찰했다.
내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는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를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기를 숨기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놈이 무기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릭 정도의 전사가 무기를 들면 훨씬 강해진다. 팔을 잃은 지금까지도 무기를 쓰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루카, 네 성장에 대한 선물로 내 재주를 하나 보여주마.”
그 말과 함께 릭의 전투복이 빛났다.
우우우웅!
전투복의 이음새와 테두리를 따라 실낱같은 빛이 피어올랐다.
내 의안이 기현상을 분석하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오류만 떠올랐다. 난 이런 현상을 몇 번이나 보았다.
팟!
릭이 사라졌다. 고속 이동 따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존재가 증발했다!
“루카, 뻔한 말은 하지 않겠다. 제국은 충성할 가치가 없느니 뭐니, 민중의 목소리니 어쩌니 하는 말 따윈 네게 의미가 없겠지. 넌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니까.”
목소리는 내 뒤에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들렸다. 나는 간담이 서늘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능력이었다.
‘포스 능력?’
릭은 순간이동을 했다. 그 에너지 파장의 패턴이 코라 신성국의 성기사가 쓰던 기술과 비슷했다.
휙!
내가 뒤로 돌며 칼을 휘둘렀다. 릭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내 칼은 빛의 잔상을 벨 뿐이었다.
릭은 재차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갔다.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변수의 존재가 내 예상을 까마득히 벗어나 있었다. 지금까지 준비했던 전투 사고와 논리를 모두 폐기하고 새롭게 쌓아 올려야 한다.
……절망적이다. 몇 번을 검토해도 마찬가지다.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릭을 꺾을 방법이 없었다.
릭은 내 굳은 표정을 보더니 헬멧 뒤편을 긁적였다.
“이걸 본 이상에야 널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요행은 바라지 마라. 저번과 달라. 확실하게 뇌를 짓이겨 죽일 거니까. 마지막 제안이다, 루카. 기계로 살 것이냐, 인간으로 살 것이냐. 아직 네겐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어.”
릭이 하나 남은 팔을 내게 뻗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난 기계니 인간이니 어려운 소리는 모른다.
나는 절박한 상황에서 눈을 감았다. 상념은 찰나였다. 승산은 미력하다. 가슴이 떨린다. 릭은 제안을 거부하면 날 죽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제국을 향한 내 충성심은 순수했었다. 부모는 무조건 옳을 거라 믿는 아이의 순수함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도 이제 안다.
제국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추악한 어둠도 많다. 그러나 제국은 날 인정했다. 헤일라스도 날 받아들였다. 일레이 카르티카는 내 친구다. 지젤은…… 일단은 가족이지. 뭐, 가브리엘과 길다도 있다.
누가 뭐래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제국이다. 내가 있을 곳은 내가 만들고 사수한다.
“내 이름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제국의 검이자 방패다. 제국의 적은 나의 적이지.”
난 루이나를 집어넣었다. 크루시스를 앞으로 뻗으면서 반대편 팔로 칼날을 받쳤다.
“평생 더러운 일이나 맡다가 처분당할 셈이냐?”
릭이 빈정거렸다.
내 동공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난 그를 노려봤다. 가능성을 포기하지 마라, 루카. 아키에스 전투술, 아니 내가 쌓아온 기량을 믿어야 한다.
“제국을 위해 누군가 더러운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게 내 역할이겠지.”
난 내게 거창한 정의와 신념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그 비슷한 게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릭은 하나 남은 손을 허리에 올리며 바닥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가 천천히 위를 보았다.
“그렇다는데? 들었어? 키누안, 네가 아끼는 애인 건 알겠지만 글러 먹었어.”
반석처럼 다졌던 내 마음이 깨질 것처럼 흔들렸다.
왜, 여기서, 키누안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난 릭을 따라 위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사내가 저곳에 있었다.
키누안이 깨진 창틀에 서 있었다. 그의 옷자락이 밤바람에 펄럭거렸다. 그는 발부터 아래로 떨어뜨리며 자유낙하를 했다.
탁.
학처럼 고고하게 떨어진 키누안이 릭의 곁에 섰다. 그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아래로 떴다.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그래, 알고 있다. 언젠가 키누안이 내 적이 되리라는 것 정도는 말이다. 그러나 머리론 알아도,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모양이다.
“당신도…… 역시, 제국의 적이었습니까?”
난 감정을 억누르려 했다. 제대로 억눌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 표정을 내가 볼 방법은 없으니까.
* * *
키누안은 명백히 릭의 편이라는 듯이 그의 곁에 섰다. 날 보는 키누안의 눈빛이 차가웠다.
“루카.”
키누안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나는 상급자에게 반응하듯 움찔하며 그에게 집중했다. 습관이란 무서운 법이다.
“적입니까? 아군입니까? 그것 말곤 다른 대화는 필요 없습니다.”
“난 자네의 편이 되고 싶네.”
키누안이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그는 늘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릭이 키누안과 나의 대화를 듣다가 짜증 난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키누안, 왜 이 녀석을 선택한 거지? 차라리 카르티카의 일레이가 더 낫지 않아? 제국에 대한 반감이 있는 녀석이 끌어오기 편하잖아.”
예상대로 릭과 키누안은 내통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릭조차 일레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불순분자가 제국 내부에 있는 걸까.
“일레이는 우수하지만, 아키에스 적합자가 아니니까.”
“아키에스 전투술이 그렇게 중요해?”
“이중 첩자 역할을 수행하려면, 아키에스 빅티마의 사고방식이 필요해. 루카 같은 우수한 적합자는 흔치 않아. 이 혼란 속에서도 길을 찾아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게 그 증거지.”
키누안은 내 앞에서 중대한 비밀을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털어놓았다. 오늘 난 많은 걸 알았다. 릭은 순간이동 능력을 가졌다. 키누안은 이중 첩자다.
이걸 들은 이상, 나는 살아서 여길 벗어나지 못 한다.
……아니면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내 손으로 저들을 모두 죽이고 나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뭐, 이젠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겐 다른 길이 없다. 메마른 우물인 걸 알면서도 바닥을 긁듯, 설사 그 결과가 무의미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가능성을 쥐어짜야 한다. 기적을 바라면서 말이다.
“릭, 루카와 조금만 더 이야기하겠네. 조금만 기다려 주게나. 친구로서의 부탁이야.”
키누안이 누더기가 된 소파에 느슨하게 앉으며 말했다. 난 키누안과 이야기를 나누기 싫었다. 하지만 시간을 버는 건 내게도 나쁜 상황은 아니다.
릭은 키누안과 내가 이야기가 집중할 수 있게 한 발자국 물러나며 자리를 잡았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으마, 루카. 난 내 뒤를 이을 사람이 필요해.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제국의 배신자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절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자네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알지. 이대로 있으면 자넨 근위대원이 되네. 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군인…… 명예와 지위는 물론이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지원을 받겠지. 하지만 그 대가로 자넨 ‘기계의 일부’가 돼야 해.”
근위대원은 초고성능 전갑의체 레기온을 하사받는다.
“기계의 일부가 된다는 건 그저…… 관점의 차이입니다. 우린 레기온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겁니다. 다른 의체처럼 도구로서요.”
내 말을 들은 릭이 피식 소리 내며 웃었다. 키누안이 릭에게 눈총을 주더니 말을 이어갔다.
“관점의 차이가 아니야. 명확한 사실이네. 레기온은 다른 전갑의체와도 달라. 인간의 뇌로 통제할 수 있는 병기가 아니지. 근위대원 양성은 쉽게 말해 인간성을 축소하고 전쟁 병기로 필요한 개성과 사고만 남기는 과정이네. 레기온의 핵심 부품인 ‘생체 컴퓨터’가 바로 근위대원의 뇌인 거지. 인공지능은 현상의 다변화에 즉각 대응하지 못하니까.”
문득 헤일라스의 말이 생각났다.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불순물이 내면에 있어야 오래 버틸 수 있어. 그게 인간성이라는 상자를 여는 열쇠거든.’
근위대장 헤일라스, 내 아버지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조언한 것이다. 내가 훗날 레기온에게 잡아먹히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자네는 똑똑하니 무슨 말인지 알 거야. 눈빛을 보니 벌써 이해한 모양이군.”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그게 제국을 배신할 이유가 되진 못합니다. 제가 레기온에게 지지 않으면 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난 각오를 다졌다.
“키누안, 그 정도면 됐어. 끝내자. 설득에 당할 놈이 아니야. 그런 면이 마음엔 들지만 안타깝군.”
릭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키누안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감이로군, 정말로 유감이야.”
키누안이 쓸쓸하게 말했다. 그는 릭에게 내 처분을 맡기듯 그 옆을 지나쳤다.
팟!
그 순간이었다. 키누안의 팔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의 손바닥이 열리면서 뾰족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커, 억!”
키누안의 비수가 릭의 턱을 관통하며 정수리까지 뚫고 나왔다. 릭은 파들파들 떨더니 피눈물이 흐르는 눈동자만 굴려 키누안을 보았다.
“여기서 릭, 자네를 죽여야 하다니……. 유감스러울 따름이지.”
키누안이 팔을 비틀었다. 비수가 릭의 뇌를 헤집었다.
툭.
릭의 몸이 축 늘어졌다. 간헐적인 떨림만 팔다리에서 일었다. 키누안이 비수를 빼내며 팔을 거두었다.
릭은 무릎을 꿇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제국의 일급 수배범 릭 실바 누네즈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