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8)
배드 본 블러드-68화(68/197)
068
난 릭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턱과 정수리의 관통상에서 회백질과 뇌수가 흘러나왔다. 그의 죽음은 확실했다.
나는 릭의 죽음을 보고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난 크루시스를 쥔 채로 키누안을 응시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보다시피 내가 제국의 적을 죽였지.”
키누안이 능청을 피워댔다. 그는 릭의 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걸 묻는 게 아닙니다!”
키누안은 내 말을 무시하며 릭의 품을 뒤졌다. 그는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했는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끼릭.
생각을 마친 키누안이 릭의 헬멧을 벗겼다. 산전수전 다 겪은 릭의 얼굴이 드러났다. 무수히 많은 흉터가 투쟁에 찌든 삶을 증명하고 있었다.
딸깍.
키누안은 릭의 안구를 엄지로 눌러서 빼냈다. 그리고 텅 빈 구멍으로 손가락을 깊게 집어넣었다. 물컹한 살점을 헤집는 소리가 질퍽하게 났다.
“……릭, 보물을 어지간히도 애지중지한 모양이로군. 죽어서도 가져갈 셈이었나?”
키누안은 릭의 뇌에서 구슬 하나를 꺼냈다. 핏빛 얼룩이 묻은 구슬은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구슬 표면에는 복잡한 회로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저런 독특한 무늬와 푸른 빛은 아케인 문명의 양식이었다.
‘아케인 유물.’
릭은 자신의 머릿속에 아케인 유물을 심어놓은 상태였다. 순간이동 능력은 저 유물의 힘인 듯했다.
“자네가 릭의 제안을 수락했다면, 난 릭을 죽이지 않아도 됐겠지. 테러리스트에 합류한 자네를 감시 대상에 넣고 상황만 보고하면 되니까.”
키누안이 릭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두 사람이 친구라는 건 사실이었을 것이다. 릭은 키누안의 우정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무방비하게 당했다.
친우의 칼날이 자신의 턱을 파고드는 순간, 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교관님은 이중 첩자였군요.”
그러나 그는 테러리스트의 편이 아니라 제국의 편이었다.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는 없네. 아까 내 입으로 말했지, 난 이중 첩자라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전 당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비난의 의미로 말하는 거겠지만, 내겐 달갑게 들리는군. 자네가 겪는 혼란은 내가 아직 이중 첩자로서 녹슬지 않은 현역이라는 증거지.”
나는 머릿속의 혼란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간 키누안의 언행이 떠올랐다. 그는 은연중에, 때론 직접적으로 제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모든 게 연기였습니까?”
“연기만으로 자네와 릭을 속일 수 있을 것 같나? 제국이 완벽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 제국을 비난하던 것도 진심이네. 하지만 제국은 무너져선 안 돼.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방파제를 무너뜨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키누안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모두를 기만했다. 그게 그의 역할이었다.
꾸욱.
난 자신도 모르게 칼자루를 세게 쥐었다. 내 의체는 전투 신호를 받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전투태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대답하기 전에 말할 게 있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자네는 옳고 그름조차 모호한 현실 속에서 위태로이 걸었지. 한 치도 보이지 않는 혼돈의 무해를 헤쳐 나가며,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맞서며, 희망조차 사라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나침반을 잃어버리지 않았어. 자네가 겪었을 불안과 동요를 이해하기에 기꺼이 존경을 표하겠네.”
키누안이 잘 배운 귀족처럼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손바닥은 가슴팍에 두고, 허리를 숙이며.
“그리고 자넨 마침내 제국의 편에 섰네. 제국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이해했으면서도 말이야. 자네의 경험과 의지로 결정한 것이지.”
키누안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닙니다. 저는…….”
긴장이 풀린 내 어깨와 팔이 처졌다.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하하, 인류의 수호자, 건국의 아버지, 제국의 초대 황제 디노 크라치아를 찬양하라.”
키누안이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저 말이 비꼬는 건지 진심인지 모르겠다. 그는 내 앞에 섰다.
“……나는 현 황제, 유리 크라치아의 종사다. 황제의 눈이자 감시자이며, ‘아키에스 도미니’의 직위를 받았지. 내 말이 곧 폐하의 명이니, 무릎을 꿇을지어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키누안의 목소리가 중간부터 바뀌었다. 울림이 깊어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신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난 눈을 감았다. 무릎이 땅에 닿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념이 지나갔다.
여전히 나는 옳고 그름을 모른다. 방황할 뿐이다. 제국, 테러리스트, 상층과 하층, 특권층, 빈민, 어딜 보아도 불합리한 뒤틀림만이 그득하다. 하지만 제국만 그러한 게 아닐 것이다. 식견이 좁은 나도 알 수 있었다.
세상이란 게, 이 우주란 게…… 그런 것이리라.
툭.
내 무릎이 땅에 닿았다.
“루카로 태어나, 쿠스토리아의 루카우스가 된 자여. 정언으로 명하되, 아키에스 도미니의 직무를 수행할지어다. 우린 그 어디에도 없으며, 그 어디에도 있다.”
“……그 어디에도 없으며, 그 어디에도 있다.”
난 마지막 문구를 따라 말했다. 미리 연습한 듯이 자연스러웠다.
“일어나라, 어린 감시자여.”
* * *
나와 키누안은 폐허의 건물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옛이야기에서 종종 나오는, 스승이 제자에게 구전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장면 같았다.
황제의 눈이자 감시자, 아키에스 도미니.
그 직위와 존재는 기록에 남지 않는다. 유령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종사라는 것도 비공식적인 지위였다.
황제조차 누가 묻는다면 아키에스 도미니의 존재를 부정할 것이다.
나는 아키에스 도미니가 몇이나 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나와 키누안 두 명이 전부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수백, 수천이 있다면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다. 아무리 많아도 수십여 명이 전부겠지.
‘……제국의 역량은 깊고 넓다. 그 어딜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아.’
키누안은 불온한 근위대원이다. 출신도 그러했고, 기록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테러리스트 집단, 네메시스와 연관되었다는 심증도 다수였다. 실제로도 이중 첩자로 반제국주의자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감시를 위한 포석이다.’
제국은 내부의 적을 찾지 못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 움직임조차 잘 알고 있었다.
“제국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웠어. 경직된 사회 구조와 엄격한 통치는 강한 반발을 불러와. 그 반발을 일절 허용치 않고 짓눌렀다간, 결국 판이 뒤집히는 지경에 이르지.”
“그래서 저들 내부에서부터 감시하고 관리하는 겁니까?”
둑이 터지기 전에 물을 조금씩 빼내는 것과 같았다.
“역시 자네는 가르치기 편한 학생이야. 핵심을 잘 짚었네. 네메시스와 릭 같은 존재들이 적당히 설치게 놔두되, 통치에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규모를 통제하는 거지. 오히려 이편이 반발과 불만 해소에 도움이 돼. 작은 일탈만으로도 만족하는 자가 대다수니까. 진심으로 제국을 뒤집으려는 자는 몇 없어.”
키누안은 칭찬이 후한 선생이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했다.
릭 카이저는 제국을 진심으로 뒤집고 싶었을까?
난 궁금증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키누안은 릭의 친구다. 그는 친구의 죽음이 불과 몇 분 전에 경험했다. 당장 물어볼 이야기는 아니었다.
키누안이 물통을 꺼내더니 따스한 차를 따라서 마셨다. 여기까지 차를 가져오다니 그 집착이 대단할 따름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키누안이 말을 이어갔다.
“공산품처럼 찍어낼 수 있는 관료의 암살 소식이나, 제국 입장에선 타격도 아닌 테러나 소요 따위를 듣고 본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제국이 조금씩 바뀔 거라고 믿고, 하루하루 불만을 억누르며 살아가지.”
키누안의 시선이 죽은 릭에게 향했다. 한참이나 릭을 보던 그는 천천히 내게 시선을 두었다.
“루카, 잘 기억해둬.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느끼면 불만은 누그러지네. 누가 뭐래도 인간의 뇌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먹고살거든.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불행과 고통을 이겨내게 만들지. 끔찍한 현실조차 헤쳐 나갈 수 있게 도와줘.”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우리의 직위 명칭은 아키에스 도미니였다. 이게 아키에스 빅티마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최초의 반란을 주도한 노엘 뮬리즈카는 정말 반역자였을까? 그도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제국을 위해 일한 게 아닐까?
하지만 지금 내게 제일 중요한 의문은 따로 있었다.
“근위대장님도 감시자에 대해 모르는군요.”
근위대장 헤일라스는 황제의 감시자에 대해 모를 것이다. 난 키누안의 입에서 확답이 듣고 싶었다.
“헤일라스는 지나치게 충성스러운 게 흠이지. 조금 느슨한 편이 내게도 편했을 텐데 말이야. 자네는 계속 내 뒤를 조사하는 척하게.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됐으니 릭의 시신을 가져가게나. 평판과 진급에 도움이 될 거야. 자넨 근위대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세운 생도가 되겠군.”
나는 릭의 시신을 보았다. 세상을 뒤집을 것 같던 강인한 전사가 조용히 쓰러져 있었다. 죽음이란 이토록 적막했다.
‘내가 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가정을 해보니 소름이 돋았다. 나는 키누안의 정체도 모르고 의기투합하여 반제국 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릭처럼 어느 날 갑자기 처분당했겠지.
“교관님은 니콜라오스 쿠스토리아가 죽을 걸 알면서도 방치하신 겁니까?”
“고위 관료이자 근위대장의 장남, 니콜라오스의 죽음은 불온 세력에게 큰 위안이 됐네. 그 정도 인물을 암살하면 뭔가 해냈다는 착각이 들거든. 실상은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인데 말이야. 어쨌거나 니콜라오스의 죽음으로 당분간은 조용히 활동하겠지.”
그리 말하며 키누안은 내 안색과 태도를 관찰했다.
“효용성 면에서 니콜라오스가 죽는 게 낫기에…… 암살당하도록 놔뒀다는 말씀이시군요. 암살을 사주한 사람은 릭입니까?”
내뱉고 보니 내 목소리가 서늘했다.
“굿보이 루카, 자네는 아직 견습 감시자야. 내게서 모든 걸 알아낼 수 없을 거네. 자신의 위치를 자각해. 자넨 지금도 경계에 서 있으며 언제 처분당해도 이상하지 않아.”
키누안의 경고에도 난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지금 고뇌하는 건 당연하다. 표정을 숨기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니콜라오스는 혼돈에 휘말려 죽었다.’
다시 말하지만, 니콜라오스에게 정이 붙은 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일이 꼬여있다면, 난 누구에게 그 책임을 돌려야 하지? 키누안? 테러리스트 집단? 릭? 아니면…… 제국의 황제?
키누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때가 되면 폐하께서 자넬 부를 거네. 그전까진 무수한 의문과 불만이 고개를 치켜들겠지만, 꾹꾹 눌러둬.”
나는 경직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누안은 시퍼런 안광을 흘리며 내 곁을 지나갔다. 곧 그의 인기척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