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69)
배드 본 블러드-69화(69/197)
069
나는 지하 공동을 벗어나 통신이 가능한 범위까지 이동해 지원대를 호출했다. 나와 같이 있던 키누안은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그는 황제의 감시자이며, 제국의 유령이다.
오늘 키누안이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설해선 안 된다.
“릭 실바 누네즈를 사살했습니다.”
난 통신으로 근위대장 헤일라스에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보고의 흐름은 이러했다. 데드로닌을 조사하던 와중에 릭과 마주했다. 교전 끝에 나는 그를 죽였다.
머지않아 근위대의 공중차량이 상공에 보였다. 제국군의 출현에 폐허의 부랑자들은 지하 깊숙이 숨어들기 바빴다.
“……정말로 네메시스의 릭이로군. 대단한 전공이야, 루카.”
도착한 근위대원들이 릭의 시신에서 유전자 대조를 하더니 날 쳐다봤다. 묵직한 제복의 망토가 바닥까지 길게 끌렸다. 멀리서 보면 시체를 발견한 까마귀 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근위대원들은 내 경력과 무장 상태를 알기에 놀랄 뿐이지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순간이동 능력을 제외하곤 릭과 비등비등하게 겨뤄볼 만했어.’
내가 릭을 죽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지금 내 전투 능력은 생도 수준을 넘어섰다. 아키에스 전투술 덕분에 상위 수준의 근위대원이나 마찬가지다.
‘레기온을 착용한다면 나도 평범한 근위대원 중 하나겠지만…….’
아키에스 전투술은 전갑의체 레기온에 적용하지 못한다. 내 강점은 전갑의체가 아니라 전투의체를 다룰 때 나온다.
끼릭, 끼릭.
안드로이드들이 릭의 시신을 들것에 실어 호송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4급 십자검 훈장감이야. 4급 십자검이면, 근위대 생도 역사상 최초겠군. 임무를 훌륭히 끝마친 걸 축하하네.”
근위대원들은 그간 내가 특수한 임무를 맡고 있을 거라 추측했다. 그게 이번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끝난 게 맞긴 하지.’
난 키누안의 뒤를 캐는 시늉만 할 것이다. 키누안의 정체를 알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공중차량에 올라탔다.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나는 움찔했다.
‘업데이트?’
내 망막 디스플레이에 단말기의 업데이트 안내가 떠올랐다. 데이터 서버는 놀랍게도 제국의 상위 네트워크였다. 이건 제국의 고위 관료들이나 쓸 수 있는 네트워크였다.
근위대의 공중차량이 상위 네트워크 중계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탑승하자마자 업데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내 정보열람 권한이 올라갔어. 정말로 감시자가 된 거다.’
나는 망막 디스플레이를 확인했다. 증강 인터페이스에선 다른 근위대원의 개인정보까지 나왔다. 이름과 나이, 소속, 세부적인 특기까지 작은 글씨로 옆에 떠올랐다. 초점을 집중하면 상세한 이력까지 보였다.
“루카, 무슨 일이지?”
내 앞에 탄 근위대원이 물었다. 그의 이름은 레인 볼테가 소르즈다. 근위대원이 된 지 14년 차였고, 4급 십자검 무공훈장을 두 개 받았고, 그보다 낮은 등급의 훈장은 세기가 귀찮을 정도였다. 특기는 전자전과 초장거리 저격이다.
“긴장이 풀려서 그렇겠지. 지금 저놈의 신경계는 너덜너덜해졌을걸.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아.”
다른 근위대원이 날 대신해 대답했다. 그리고 저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난 간신히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아마 반나절 이상 자야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나는 의례적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곧 내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릭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근위대원 사이에서 릭은 유명 인사였던 모양이다. 하기야 근위대원 출신의 배신자니까.
새로운 시야가 낯설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의 밀도가 높았다. 적응하려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끼릭.
난 동공을 움직여 정보 노출 등급을 낮췄다. 지금은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어느 정도냐면 상급자 앞에서 코를 골며 잠들 정도였다.
* * *
잠에서 깨어난 나는 익숙한 천장을 응시했다. 여긴 내 방이었다.
아직도 모든 게 믿기지 않았다.
키누안은 모두를 기만하고 속였다. 그러나 그렇기에 효과적이었다. 헤일라스조차 그가 테러리스트와 내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테러리스트 릭 카이저는 키누안을 친우라 믿었다.
키누안 같은 감시자 덕분에, 제국은 불온 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제국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해소할 출구조차 제국의 감시하에 있었다.
‘……생각할수록 무시무시하네.’
근위대장 헤일라스는 마녀 바바라를 네메시스 조직에 잠입시킨 전적이 있다. 그런 근위대장조차 키누안이 이중 첩자라는 걸 몰랐다.
‘이 모든 혼란과 얽힌 관계, 복잡한 구도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황제 한 명뿐인 건가?’
한 명만이 아니더라도, 제국 내부의 난해한 흐름을 전부 이해하는 자가 몇이나 될까 싶었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아닐까.
‘꼬박 열여섯 시간을 잤군.’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이 정도로 잤다는 건, 일반인으로 따지면 사나흘은 혼절한 거나 마찬가지다.
톡.
난 탁자를 두드려 홀로그램을 띄웠다. 쌓인 일정이 보였다. 가장 상위 항목은 근위대장 헤일라스의 호출이었다.
당연한 거긴 하다. 기록으로 남겨선 안 될 보고가 다수니까 말이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여러 생도가 오가고 있었다. 내가 시선을 움직일 때마다 생도의 이력과 정보가 상세하게 보였다.
우뚝.
난 헤일라스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여태껏 하던 대로 매무새를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다.
‘헤일라스 쿠스토리아…….’
앉아서 업무를 보던 헤일라스가 보였다.
내심 기대감이 내게 살짝 있었다. 헤일라스의 개인정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역시 근위대장은 근위대장이로군.’
헤일라스의 개인정보는 열람할 수 없었다. 근위대장은 황제와 가장 가까운 군인 중 하나니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앉게.”
헤일라스가 홀로그램을 하나씩 누르며 업무를 차근차근 정리했다.
난 헤일라스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일단은 부모와 자식이니까.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나는 출세하더라도 근위대장이 되고 싶진 않았다. 저 자리는 나와 맞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격무, 그것도 사무업무로 종일 시달리는 게 근위대장의 일상이었다. 차라리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이 나아 보였다.
“시작하게, 루카.”
헤일라스가 다리를 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는 헤일라스가 이미 알고 있을 내용부터 보고했다.
“릭과 단둘이 대면한 건가?”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릭은 제게 제국을 배신하라고 종용했으나 저는 거절했고, 바로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릭 실바 누네즈는 그간 제국이 잡지 못한 일급 수배범이네. 그리고 과거엔 뛰어난 근위대원이기도 했지.”
“아키에스 전투술의 덕을 보았습니다. 그러고도 간발 차였죠. 키누안 교관 밑에서 그간 배우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 했을 겁니다.”
헤일라스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키누안에 대한 다른 정보는?”
입이 근질근질하다. 내가 아는 걸 이 자리에서 털어놓고 싶었다. 혼자 감당하기엔 묵직한 진실이었다.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후원자 노엘이 키누안이라는 증거조차도요.”
데드로닌 사무실에서 입수한 칩과 서류는 별 볼 일 없는 정보였다.
“……그렇군.”
“그래도 릭을 사살한 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능력 이상의 일을 해냈죠.”
나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릭을 죽인 건 내가 아니지만 말이다.
“자네의 전공은 칭찬받아 마땅하지. 예상하지 못한 수확이야,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감정을 발산하지 마라, 루카.
나는 필사적으로 의식과 감정을 중립에 가깝게 통제했다. 헤일라스는 아키에스 전투술 따위를 배우지 않아도 초인적인 통찰력을 가진 군인이다. 내 감정에 이변이 있다면 금방 알아챌 것이다.
‘떠보는 거다.’
헤일라스의 특기다. 사소하게라도 걸리는 점이 있으면 과감하게 찌르고 들어온다. 난 그 화법을 여러 번 경험했다.
‘헤일라스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지 마. 전모를 안다면 헤일라스도 납득할 거야. 이건 제국을 위해서다.’
헤일라스는 나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끼는 도구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날 버릴 것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제 승리는 아키에스 전투술 덕분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전공은 군인에게 추궁받을 일은 아니죠.”
난 짜증을 드러냈다. 헤일라스는 그제야 웃더니 긴장을 풀 듯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루카, 잘 알고 있겠지만 4급 십자검 훈장이 생도에게 수여된 건 이례적인 일이네. 전례가 없지. 하지만 활약이 활약인 만큼 이견 없이 심사에서 통과될 거야. 쿠스토리아 가문의 위상도 올라가는 일인지라, 본가에서도 축하 연회가 열릴 테니 준비하게. 주변 지인 중에서 초대할 사람이 있으면 초대하고.”
오히려 난 연회 소식에서 더 놀라움을 드러냈다.
지인을 초대하라고?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몇 없었다. 일레이 카르티카를 일단 후보에 넣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생도 동기는 모두 초대하면 그만이로군. 다른 지인이라곤 가브리엘과 길다 정도가 더 떠올랐으나 하층 구역 사람을 초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회…… 말입니까?”
내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자네가 주인공이네.”
난 이맛살을 찌푸렸고, 헤일라스의 입가 주름이 깊어졌다. 퍽이나 내 반응이 재미난 모양이다.
“자네가 크라치아 아카데미에서 사교댄스를 잘 배웠길 바라네.”
헤일라스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능구렁이들은 얄밉게 말하는 법을 잘 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난 자질구레한 절차를 거쳐서 4급 십자검 무공훈장을 받았다. 훈장에는 ‘IV’이라고 적힌 각인이 선명했다.
‘일급 수배범 릭 실바 누메즈 사살.’
내 이력이 한 줄 추가됐다.
“난 제국 곳곳을 누비면서 임무를 해치우고 다녔는데도, 넌 임무 하나로 점수를 이렇게 밀어버리네. 역시 루카 님이셔. 이번 기수 수석은 너로 확정이로군.”
일레이가 담배를 입에 물며 놀리듯 말했다. 멀찍이서 지나가던 교관이 일레이의 흡연을 보고서도 별 말하지 않았다.
나와 일레이는 생도라기엔 근위대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일탈 정도는 넘어가 주는 융통성 정도는 근위대에도 있었다.
‘제국이 불온분자를 알면서도 놔두듯이.’
작은 일탈 정도는 허용해야 큰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근위대 생도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억압은 4년 차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우린 눈치껏 허용 범주 안에서 자유를 누렸다.
“그래서 축하 연회에 올 거야, 말 거야?”
나는 가장 먼저 일레이를 초대했다. 내 위상을 세우기에도 좋은 인물이다.
카르티카 가문의 후계자와 내가 절친한 사이인 걸 보여준다면, 가문 내에서 내 평판은 높아지고 쥬페는 움츠러들 것이다.
“당연히 가야지. 그런 구경거리를 놓칠 수 있겠어?”
나는 일레이 말고도 동기들에게 연회 초대장을 돌렸다.
난 동기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다. 서글서글한 성격은 아니더라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치우는 사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쿠스토리아 가문의 연회는 귀족 자제라면 놓치기 싫은 행사다.
다른 일정과 임무가 있는 사람 말곤, 동기 대부분이 참석 의사를 밝혔다.
시간은 다시 흘러갔고, 내가 주인공인 성대한 연회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