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7)
배드 본 블러드-7화(7/197)
007
창에 머리가 꿰인 클로드의 이목구비에선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뇌는 죽었지만, 몸은 사념과도 같은 잔류 신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명복을 빌 시간도 없었다.
우우웅.
클로드의 머리에 박힌 창이 다시 빛났다. 저 빛은 포스 오라였다. 오라의 실낱이 기사의 손과 이어져 있었다. 전신이 갑주라서 뭐가 포스의 촉매인지 구분조차 힘들었다.
성기사의 창은 다시 빛으로 변하더니 클로드의 머리에서 빠져나왔다.
쏴아아아!
빛이 공간을 가르며 지나갔다. 어느새 물리적 형태를 갖춘 창은 기사의 손으로 돌아갔다.
끼릭, 끼릭.
나는 두통을 느꼈다. 내 오른쪽 의안은 전투 상태로 진입해 창의 궤도를 예측하려 했다. 무수히 많은 에러만 떠올랐다.
계산될 리가 없다. 물리법칙에서 벗어난 포스의 능력은 계산할 수 없었다. 코라 신성국의 성기사는 공간을 왜곡하고 물질을 빛으로 바꾸었다.
‘무의미한 계산은 관둬.’
나는 오른쪽 의안의 궤도 예측 기능을 무시하며 껐다. 컴퓨터의 계산이 아니라 나의 육감과 직관에 의존해야 한다.
탕!
총성이 일었다. 나와 클로드를 엄호하던 생도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기동 사격하며 내 쪽으로 접근하려 했다.
우린 유능한 군인이다. 그러나 완전무장한 성기사라면 우리의 전투력으로 어찌해 볼 상대가 아니었다. 놈의 전투력은 레기온을 착용한 근위대원에 버금간다.
어차피 도망치더라도 성기사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싸워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근위대원의 지원이 올 거야.’
우릴 지켜보고 있을 근위대원이 지금 달려오고 있을 터다. 그 기다림은 고작 십여 초다. 그러나 그 십여 초가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우우웅!
성기사의 창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뻔히 보고도 언제 피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머뭇거릴 순 없다.
나는 다리와 몸을 웅크리듯 숙였다. 그리곤 무작정 옆으로 뛰며 굴렀다.
휘익!
창이 내 머리가 있던 곳에 나타났다. 포스의 빛이 뒤늦게 궤적을 꼬리처럼 끌며 따라왔다.
나는 성기사의 다음 동작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당장 내 등을 노리는 창을 피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끼릭!
부유하는 창이 회전하며 방향을 바꿨다. 그 끝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대론 피하기 힘들 것 같았다. 클로드 다음에는 내가 죽는다.
……그렇다. 나는 싸우기 전부터 패배했다. 당해내질 못할 거라 생각하고, 도망만 치다가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다.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가 따로 없었다.
적이 칼을 휘두르면 나도 칼을 휘둘러야 한다. 그게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등을 보였다간 뒤통수에 총알이 박힐 뿐이다.
나는 칼자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내 의수의 회로가 인공 피부 아래에서 혈관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출력을 전부 끌어올렸다.
창이 사라지기 전에…… 내가 먼저 친다.
카- 앙!
나는 나아가며 허공에 뜬 창을 칼로 내리쳤다. 포스의 빛이 창을 완전히 감싸기 전이었다.
콰아앙!
내 간섭으로 포스 폭발이 일었다. 포스의 통제를 잃은 창이 빙글빙글 돌다가 땅바닥에 꽂혔다.
파직, 파직.
내 의수의 인공 피부가 덕지덕지 벗겨졌다. 폭발에 휘말린 손가락은 부러지고 꺾여서 너덜너덜했다. 삐져나온 전선에선 전류가 튀었다.
‘창은 일단 멈췄어.’
성기사와 창의 연결이 끊어진 듯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성기사를 보았다.
스르릉.
성기사는 창 대신에 칼을 꺼내더니 아래로 끌었다. 빛이 칼을 감싸고 있었다.
휘릭!
기사가 허공에 칼을 연거푸 휘둘렀다. 칼날의 궤적을 따라 빛이 초승달 형태로 모여들었다. 그 초승달 검기는 셋이었다. 생성된 검기가 온전한 형태를 갖추자마자 대지를 가르며 질주했다.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창보단 예측하기 쉬웠다.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날 노리는 게 아니었다. 초승달의 검기는 날 엄호하던 생도들을 덮쳤다. 내 뒤에서 신음과 비명이 낮게 흘러나왔다. 몇 명이나 당했고 죽었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불과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매초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패색이 짙어갈 무렵,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구원자가 도착했다.
쾅!
폭발이 성기사의 머리 옆을 강타했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휘날렸다.
키잉, 키잉.
난 그 소리를 따라 동공을 움직였다. 수풀을 헤치고 나오는 안광이 붉었다.
전갑의체 레기온에 깃든 근위대원이 유적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에 불필요한 나약한 기관을 전부 제거하고 스스로 무기가 된 존재다. 갑옷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내 오른쪽 의안이 근위대원을 인식했다. 눈앞에 정보가 떠올랐다.
근위대의 제식 전갑의체 레기온, 세부 모델명은 헥토르. 제국 첨단기술의 집약체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웅.
레기온의 동체를 가리던 망토가 펄럭거렸다. 팔다리는 길고 허리는 좁았다. 소화기관 따윈 없었으며 당연히 입도 없었다.
갑주 형식의 의체는 인간의 얼굴이 없기에 표정도 짓지 못한다. 그 때문에 최소한의 감정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식사, 수면, 번식에 필요한 부위와 기능조차 없다.
인간적인 행위 따윈 고려치도 않고, 오로지 전투만을 위해 설계된 전갑의체 레기온이지만 투쟁 본능만큼은 남겨둔 듯이 사나웠다. 극도의 실전성과 효율만을 추구한 전투 병기다.
퉁!
레기온, 근위대원이 손을 뻗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손에는 투박한 리볼버 권총이 들려 있었다. 말이 권총이지 그 구경과 위력은 포탄이나 다름없었다.
콰- 앙!
근위대원이 쏜 총알이 성기사를 연달아 두드렸다. 그러나 기사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폭발이 일 때마다 포스 방어막이 반투명하게 빛났다. 청백색 갑주는 그을림조차 없었다.
철컥.
근위대원이 총을 바닥에 내던지더니 자신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끼리릭!
등의 무기 결합부가 열리더니 망토에 가려졌던 도끼창이 묵직한 자태를 드러냈다. 자신의 몸만 한 도끼창을 가볍게 휘둘렀다.
쿠웅!
근위대원이 도끼창의 날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성큼성큼 성기사를 향해 걸어갔다.
기이이잉!
성기사도 칼을 쥔 채로 근위대원을 마중하듯 나아갔다. 성기사는 근위대원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았으나 가시적 빛으로 보이는 포스 오라의 위압감 때문인지 덩치가 비슷하게 보였다.
두 괴물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적이며, 목숨을 빼앗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숙적을 향한 살의와 적의만이 오갔다.
카- 앙!
근위대원의 도끼창과 성기사의 칼이 부딪쳤다. 푸른 빛무리와 붉은 불티가 서로를 향해 튀었다. 그들의 무기와 팔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소리와 움직임에서 불일치가 일었다.
콰직!
도끼창에 부딪힌 성기사의 어깨 갑주가 부서졌다.
키이익!
칼날이 근위대원의 가슴팍을 베었다. 금속 외피가 옷자락처럼 찢겨 나갔다.
콰드드득!
도끼창과 칼이 정면으로 마주치면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끼이이이-익!
근위대원이 도끼창을 한 손으로 쥐더니 성기사를 밀어붙였다. 비틀거리던 성기사의 몸이 쓰러질 듯이 뒤로 꺾이고 있었다. 완력은 기계 신체를 가진 근위대원이 우세인 것처럼 보였다.
콰득!
근위대원이 남은 손으로 성기사의 안면을 움켜잡았다. 성기사의 투구에서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두개골을 깨부숴 뇌를 움켜잡을 기세였다.
겉보기엔 근위대원이 이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기사가 칼자루를 붙잡던 양손 중 하나를 옆으로 뺐다. 한 손을 뺐는데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양손으로도 밀렸던 기사가 한 손인데도 버티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계략?’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기사는 밀리는 척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를 내주면서까지 허를 찌르는 공격을 노리고 있었다. 그 정도까지 도박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 정도로 두 괴물은 비등비등했다.
휘릭!
성기사가 빼낸 손을 움직였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날아갔던 창을 포스 오라로 다시 엮고 있었다. 창이 포스 오라에 엮인다면 또다시 빛으로 화할 것이다.
기사가 창을 조종하는 걸 막아야 한다.
나는 칼을 쥐려고 했으나 손가락이 죄다 부서져서 잡을 수가 없었다.
우우웅!
내가 움찔하는 사이에 땅에 박혔던 창이 흔들리며 떠올랐다. 빛이 강해지더니 창을 감싸고 있었다. 창이 곧 근위대원의 머리를 노릴 터다.
……여러모로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내 뇌리에는 극단적인 방법이 떠올랐다.
내게 남은 건 두 다리뿐이다. 한숨을 쉴 시간도 없었다. 나는 바닥을 박차며 뛰어올라 빙글빙글 돌았다.
공중에서 회전하던 나는 발꿈치로 창대를 내리찍었다.
끼이이잇!
내 회심의 내려찍기에 창이 갸우뚱하며 흔들렸다. 그리고 창을 감고 있던 빛이 전염병처럼 내 발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빛의 균열이 내 다리로 번져 나갔다.
당장이라도 내 발에서 폭발이 일어날 것 같았다.
촤아아아!
빛에 감긴 창이 사라졌다. 반동으로 폭발이 일었고, 나는 땅바닥을 뒹굴었다. 내 몸 여기저기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쓰러진 나는 눈동자만 황망하게 움직여 상황을 확인했다.
‘어떻게 됐지?’
창은 근위대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빗나간 것이었다. 내 개입이 도움은 된 모양이었다.
우득! 우득!
근위대원의 손아귀에 잡힌 성기사의 투구는 찌그러져 반으로 줄어들었다. 투구의 틈새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근위대원의 승리가 코앞에 있었다.
기이이잉!
성기사의 갑옷에서 빛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그의 왼손에서 포스의 빛이 강해졌다.
성기사가 빛에 휘감긴 손을 근위대원의 머리 옆으로 뻗었다. 근위대원은 머리를 젖혀 피하려 했으나 폭발이 더 빨랐다.
콰-아아앙!
근거리의 포스 폭발이었다. 그 위력은 어마어마해서 성기사 본인조차 휘말렸다. 말 그대로 동귀어진의 수였다.
땅이 들썩이면서 먼지와 연기가 자욱하게 솟아올랐다.
깡! 까앙!
연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쇳덩이가 부딪히고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폭발의 여운이 사라지자 모든 게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피가 그득한 입을 벌리며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
성기사의 왼팔은 자신이 만들어낸 폭발에 휘말려 어깨까지 증발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 시선이 근위대원에게서 정지했다.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콰직! 콰직!
근위대원이 성기사의 위에 올라탄 채로 무자비하게 투구를 주먹으로 연타했다. 찌그러진 기사의 투구는 어느새 쟁반처럼 납작했다. 부서진 두개골과 살점이 근위대원의 주먹에 묻어 반죽처럼 질척거렸다.
잔혹한 광경 따위에 내가 놀란 건 아니다. 내가 눈을 떼지 못한 까닭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근위대원의 머리가 없어……?’
근위대원의 머리는 포스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 상태였다. 목과 하관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 생체 부위인 뇌가 사라졌다. 그 말은…… 즉, 근위대원은 생물학적으로 죽었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레기온은 움직이고 있었다.
오오오오오…….
근위대원이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목구멍의 관을 타고 공허한 외침이 퍼졌다. 뇌를 잃고도 근위대원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끼이이잇!
근위대원이 일어섰다.
사이버네틱 의체는 두뇌를 잃고도 잔류 신호로 움직이곤 한다. 그러나 지금의 근위대원은 잔류 신호 따위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끼릭, 끼릭.
전갑의체 레기온이 걷는다. 총괄하는 인간의 두뇌가 없어 팔다리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으나 분명히 어떤 의지에 끌려 움직이고 있다.
나는 생리적 거부감을 느꼈다. 저 꼴을 보니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인간이 주인으로서 기계의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인간의 두뇌마저 기계의체의 일부이자 부품인 것 같았다.
근위대원은 쓰러진 내 머리맡에 섰다. 마치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듯이 손을 뻗었다. 자신이 죽은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유령이 있다면 이러할까…….
나는 근위대원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해선 안 될 말을 내뱉었다.
“……그 꼴로도 살아있는 겁니까?”
근위대원이 움찔했다. 그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려 했다.
휙! 휙!
손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근위대원은 자신의 머리가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는 머리가 있던 자리를 몇 번이고 휘젓다가 절규했다.
우오오오오오…….
발성 기관을 잃은 목구멍의 관에선 쉰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털썩!
근위대원이 내 머리맡에서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는 타고난 육신의 마지막 조각마저 잃었다. 그걸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 그는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의체의 움직임을 보조하던 연산장치의 모든 신호가 정지했다.
“나는 지금까지…….”
나는 누운 채로 머리를 잃은 근위대원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괴물이 되려고 한 건가?”
전신 기계화 시술을 받고, 나아가 근위대의 상징인 레기온을 하사받는 것.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다른 생각이 일었다.
레기온은 나약한 육체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정신의 감옥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불온하도다,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