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73)
배드 본 블러드-73화(73/197)
073
연회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내겐 하층 구역을 방문할 시간이 생겼다.
나는 하층 구역으로 내려가는 승강기에 탑승했다. 혼자였기에 내려가는 동안 사색에 잠길 시간이 있었다.
‘릭 실바 누네즈를 해치운 생도,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이 사건으로 난 이번 기수의 수석을 확정 지었다. 그 누구도 더 대단한 공적을 세우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키에스 도미니.’
이건 비공식 직위다. 나는 황제의 눈이자 감시자다. 비록 수습이지만 말이다.
‘비공식적인 임무는 제국 내부의 적을 감시하는 것.’
내 스승이자 선임인 키누안은 천재적인 기만으로 모두를 속였다. 나도 그런 존재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근위대장에게 받은 임무는 키누안을 감시하며 뒷조사를 하는 것.’
나는 엇갈린 두 가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웃기게도 둘 다 따지고 보면 비공식적인 임무다.
내 처지는 아직도 위태롭고도 위태롭다.
비공식 임무는 때론 수행원의 흔적조차 죽음으로 지워야 한다. 난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 사태를 대비하며 각오했었다.
‘내게 감시자의 자질이 부족하거나 윗선에서 내 존재를 지워야 한다고 판단하면…… 나는 처분당한다.’
쿠스토리아 가문이라는 방패조차 날 지켜주지 못한다. 내가 발을 내디딘 영역은 그만큼 깊고 어두웠다.
‘난 키누안의 뒤를 계속 조사하는 척하면서 근위대장 헤일라스를 속여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헤일라스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몇 번이나 내 거짓말을 파훼하려 했다. 어떤 건 알면서도 넘어갔을 수도 있다.
끼익.
승강기가 멈추면서 문이 열렸다. 나는 검문소를 통과해 하층 구역으로 들어갔다.
험상궂은 가브리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미리 호출했기 때문이다. 날 발견한 그가 곧바로 투덜거렸다.
“왜 여기까지 오라는 거야? 이쪽은 내 동네가 아니라고. 다들 쳐다보잖아. 드론도 계속 날 따라다니고.”
상층과 하층을 연결하는 구역은 일종의 중간 지대다. 행정 분류상으론 하층 구역이지만, 실질적으론 하층 구역과는 구분된 중산층 구역이다.
쉽게 축약하자면 가브리엘과 거리가 먼 동네다.
위이이잉.
순찰 드론 한 대가 가브리엘을 겨눈 채로 따라다녔다. 가브리엘이 허튼짓하면 드론이 바로 총알 세례를 날릴 것이다.
“익숙해지라고. 앞으로 여기까지 자주 오갈 수도 있으니까.”
“나는 부자 알레르기가 있어서 이런 곳은 질색이야. 벌써 목이 부어서 간질간질하다고. 술이라도 한잔해야 가라앉을걸.”
“헛소리 말고. 그간 일이나 보고해.”
“아, 예, 예, 보스.”
나는 되도록 구두로 정보를 습득하려 했다. 단말기를 통한 메시지는 노출 위험성이 크다는 걸 똑똑히 배웠다.
근위대장 헤일라스조차 지젤을 통해 내게 정보를 전달했다. 아무리 꽁꽁 싸매더라도 네트워크는 보안이 취약하다.
“투기장 갱단은 쥴렉이라는 또라이가 접수했어. 그 새끼가 투기장 간부를 싹 다 모아놓고 총질을 해대서 실무자가 다 뒈졌거든. 일단은 쥴렉 말곤 투기장 업무를 할 수 있는 새끼가 없어진 거지.”
알레프는 현장 복귀가 영영 불가능할 듯했다.
“쥴렉이 우리에게 호의적일 것 같아?”
“표면적으론 그래. 일단은 켄 노마의 습격을 막은 게 우리잖아. 투기장 경비 업무의 일부를 우리에게 외주로 맡기겠대.”
“당분간 지켜봐. 일이 있으면 일단 네 선에서 해결하다가 안 되면 날 부르고.”
내 미적지근한 태도에 가브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게 전부야?”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하층 구역 관리에 대한 열의가 식었다. 키누안의 뒤를 캐낼 이유가 없어진 이상에야 하층 구역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훗날에는 하층 구역의 일손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어.’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가브리엘은 갱단원 후보 명단을 종이 서류로 내게 내밀었다. 나는 빠르게 동공을 움직여 서류를 읽고서는 찢었다.
“다 좋은데 바이얀은 빼. 똑똑해 보여.”
“똑똑하면 좋은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빡대가리뿐이라서 고생이잖아.”
“갱단 초창기잖아. 너보다 똑똑한 녀석이 들어오면 잡아먹혀. 실권을 빼앗길걸.”
난 내가 없어도 가브리엘이 갱단을 유지하길 원했다. 그러려면 조직의 바닥부터 단단히 다져야 한다. 라비앙로즈처럼 말이다. 쉽진 않은 일이지.
* * *
나는 가브리엘과 함께 켄 노마가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켄 노마는 구금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제대로 된 병원인지라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치료비가 제법 부담이 됐다.
‘나도 성인군자는 아니야.’
켄 노마가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저 밑바닥 병원으로 다시 보낼 생각이었다.
난 복도를 걸어서 켄이 입원한 병실 앞에 섰다. 나는 문을 열다가 움찔했다. 내 직관이 위화감을 인식했다.
단련된 직감은 느낌으로 먼저 뇌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세부적인 정보는 뒤늦게 뇌가 해석한다. 일종의 선조치 후보고인 셈이다.
‘우리보다 먼저 방문한 자가 있다.’
켄 노마를 찾아온 면회인이 있다면 병원에서 우리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비공식적인 방문이었다.
“가브리엘, 바깥에서 기다려. 나 혼자 들어간다.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으면 막아.”
내가 딱딱하게 말했다.
가브리엘도 내 표정과 분위기를 읽더니 군말 없이 명령을 수행했다. 점점 가브리엘과 합이 잘 맞기 시작했다. 그는 내 의도를 잘 알아먹는 수족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치이익.
병실의 문은 전자식이다. 외부의 출입이 있다면 기록에 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엔 유령처럼 기계와 컴퓨터를 속이는 자가 많다.
……키누안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키누안이 켄의 병실에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날 쳐다봤다.
“앉게, 루카.”
키누안은 자신의 방인 것처럼 내게 권유했다. 나는 맞은편에 앉고선 구속 상태인 켄을 응시했다.
“켄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하지만 켄은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야. 저번 사태에서 자네도 봤듯이 기회만 된다면 돌발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지. 그냥 놔둬선 안 된다고 난 판단했네.”
“역시, 교관님이 토라와 켄의 후원자이고…… 켄에게 아키에스 전투술을 가르친 겁니까?”
묻는 게 민망할 정도의 기정사실이다.
“내가 토라와 켄을 이용해 투기장 갱단을 운영한 건, 네메시스의 자금줄로 쓰기 위해서였네. 릭이 네메시스 핵심 간부로 출세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지. 당시 나와 릭은 반제국주의자로 위장해 네메시스에 잠입 수사하라는 비공식 임무를 맡았거든.”
“릭은 임무 도중에 정말로 변절했군요. 교관님은 변절한 척하며 제국 내부에서 계속 내통하고 있었고요.”
“릭은 바깥에서, 나는 근위대 내부에서, 함께 제국을 무너뜨리자고 결의했지. 물론, 내겐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아마 당시에도 키누안은 감시자였을 것이다. 그는 도대체 언제부터 감시자였을까. 어쩌면 생도가 되기 전부터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에 네메시스에 잠입한 마녀 바바라의 경우도 있다. 제국과 황실의 역량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켄은 전투 재능을 가졌습니다. 삶이 잘 풀렸다면 군인으로 출세했겠죠.”
“그렇기에 난 켄을 선택했네. 아키에스 빅티마 적합자답게 신중하기까지 했지. 위험을 분산하려고 토라를 보스로 내세웠을 땐 나도 감탄했어. 난 켄을 좋아했네.”
“하지만 파멸할 걸 알면서도 켄의 곁을 떠났죠.”
“릭이 정말로 변절하면서 내 임무도 끝났으니까. 상부에선 나조차도 변절할까 봐 서둘러 복귀를 명했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날 의심하고 있네.”
황제를 제외하면 키누안의 정체를 아는 자는 없다. 키누안은 자신에게 쏟아진 온갖 의혹을 꿋꿋하게 인내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줄타기였다. 이렇게 보니, 진정한 충신이 키누안이었다.
스륵.
나는 켄을 다시 쳐다봤다. 그는 몽롱한 눈동자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와 키누안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 켄을 죽일 생각이시군요. 제가 개입하면 다시 제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여기까지 키누안이 온 까닭이었다. 그는 켄을 죽여서 자신의 자취를 완전히 지울 생각이었다.
나는 다소 마음이 무거웠다. 켄 노마를 심연에서 끌어올린 건 나다.
내 기색을 눈치챈 키누안이 빙긋 웃었다.
“자네가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켄은 잠시나마 맑은 정신으로 바깥세상을 누볐지. 그전까진 죽은 거나 다름없었네. 나는 켄을 잘 알고 있어. 설사 죽더라도 그편을 선택했을 거야. 실제로도 그랬고.”
켄은 죽음을 각오하고 알레프에게 복수를 감행했다. 그 정신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 정신력 때문에 여기서 죽는 것이다.
스륵.
키누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켄의 앞에 섰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와 가브리엘이 계속 떠올랐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와 저 두 사람이 겹쳐 보였다.
‘키누안은 거짓으로 유대를 나누지 않는다.’
단지 사명감으로 감정을 억누를 뿐이다. 그는 임무를 위해선 진심을 나눈 친구라도 죽일 수 있는 자였다.
진심이 아닌 거짓으로 교류하며 사람을 속이긴 힘들다. 특히 릭 같은 거물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혀 통찰력이 뛰어난 켄도 마찬가지고.
릭과 키누안이 친우였듯이…… 켄 노마도 키누안의 친구였을 것이다.
“교관님.”
내가 입을 떼며 일어섰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 옆에 섰다.
“……켄 노마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건 내 책임이자 역할이네.”
키누안은 켄 노마를 처리해야 한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켄 노마가 재기불능이 됐다는 핑계로 죽이지 않고 내버려뒀다. 철두철미한 키누안조차 위험을 감수해다.
나는 이제 안다. 드디어 키누안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켄 노마라는 위험인자를 오랫동안 놔둔 것. 그게 키누안의 양심이었다.
“아무리 교관님이라도 자신의 손으로 단시간에 친우를 두 명 죽이는 건 내키지 않으실 겁니다. 정신건강에도 좋진 않을 거고요.”
내가 그리 말하며 키누안의 허락을 기다렸다.
“늘 말하지만, 자넨 좋은 제자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군. 간혹 성장이 빨라서 무섭기도 해.”
키누안이 한 걸음 물러났다. 허락받은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이며 풀었다.
까드득, 까드득.
출력이 올라간 손가락의 관절에서 흉흉한 소음을 새어 나왔다.
“켄 노마, 제국의 안녕을 위해 널 처분하겠다.”
키누안이 등을 돌렸다. 내 손이 움직인다.
우둑!
난 켄의 생명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