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74)
배드 본 블러드-74화(74/197)
074
가브리엘 갱단은 순조롭게 성장했다. 사창가와 투기장을 비롯해 자질구레한 경비 업무를 주력 사업으로 삼았다. 수익의 규모가 커지면 조만간 사업체로 인가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조직의 참모가 될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하겠지.
‘그레이스.’
나는 갱단 사무실에 머무는 그레이스를 보았다. 그녀는 우리 쪽 갱단원에게 기본적인 전투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일종의 외부 강사 역할이었다.
휘릭!
들창코가 그레이스의 술수에 균형을 잃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하반신이 항상 풀려있어, 들창코.”
그레이스가 들창코의 종아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들창코는 이때다 싶었는지 히쭉 웃으며 농을 던졌다.
“아, 그건 매일 밤에 허리를 많이 써서 그렇…… 컥! 시, 이, 개…….”
그레이스가 들창코의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다. 들창코는 신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다음.”
그레이스는 들창코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다른 갱단원에게 손짓했다.
“이보쇼. 총을 쓰면 되잖아. 굳이 이렇게 귀찮은 기술을 배워야 해?”
털보가 불만을 토했다. 그레이스가 가브리엘을 쳐다봤다.
가브리엘은 한숨을 쉬더니 털보의 가슴 털을 쥐어 잡아당겼다. 털보가 찔끔 눈물을 흘리며 가브리엘에게 딸려 갔다.
“닥치고 똑바로 연습이나 해. 사창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전부 쏴 죽였다간 손님의 씨가 마를걸. 맨손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알, 알았어, 보스.”
가브리엘이 위압감을 조성하자 갱단원들은 얌전히 말을 들었다.
가브리엘은 하층 구역 기준으로 전투력이 평균 이상이고, 투기장에서는 상위 등급의 투사로 등록되어 있다. 일반적인 갱에겐 무시하기 힘든 상급자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하진 않아.’
가브리엘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지닌 갱은 하층 구역에 많다. 갱단 하나를 운영하려면 그 이상의 힘이 필요했다.
‘가브리엘이 켄처럼……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울 수 있으면 좋지만, 그 정도 자질은 아니야.’
가브리엘이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우려면 각성제 중독자가 되거나 신경계 개조가 필요하다. 어느 쪽도 좋은 방편은 아니다.
내가 없으면 가브리엘을 챙겨줄 능력과 동기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마르티나 디바.’
나는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레이스, 디바를 만나게 자리를 마련해줘.”
내 말을 들은 그레이스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그녀는 바로 라비앙로즈 쪽과 통신하더니 약속을 잡았다.
시간은 오늘 밤이고, 장소는 라비앙로즈의 가게 중 하나였다.
저녁 무렵, 나와 그레이스는 거리로 나왔다. 한참이나 우린 말이 없었다.
나와 그레이스는 둘 다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엔 어색한 침묵도 우리에겐 편했다.
안락한 침묵을 깬 건 그레이스였다.
“루카 님, 근래 디바와 접촉한 적이 있습니까?”
그레이스는 눈치가 빨랐다. 나와 마르티나 디바가 어디선가 접촉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실제로 나와 마르티나는 상층 구역의 연회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생도 시절의 성적이 상위권이라는 건 사실인가 보군.”
“전 허세를 싫어합니다. 그런 걸로 거짓말할 이유는 없죠.”
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잠깐 여흥을 즐기자고. 근위대 생도를 관둔 계기와 사정을 말해주면 디바와 만난 이야기도 해주지.”
그레이스가 응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이건 단순한 흥미다.
“전 하층 구역 출신의 이레귤러로 근위대 생도가 됐습니다. 한 자리 숫자의 보육원 출신도 아니었죠.”
마치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대단한 출세의 기회를 잡았군. 흔치 않은 기회잖아.”
이 말은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전 다른 생도보다 훨씬 더 절박했죠.”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난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레이스는 나와 비슷했다. 근위대 생도로 뽑히는 이레귤러는 대체로 비슷한 성향일 것이다. 선별검사란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도 관둔 이유는?”
그레이스가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기다렸다.
“그 전에 설명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저보다 한 기수 위에도 이레귤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기수가 다르면 교류가 대체로 없는 편이지만, 연달아 이레귤러가 있는 경우는 몹시 드물기에 우린 교류가 잦았습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이레귤러는 대체로 성적이 뛰어나지. 기량 부족으로 떨어진 사례는 한 건도 없어. 너처럼 자진해서 관둔 자면 몰라도.”
“루카 님은…… 아주 충성스러운 부류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가 불온한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웃기게도 그래서 내가 황제의 감시자가 된 것이다.
“순종적이라는 말을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긴 해.”
“그 이레귤러 선배와 저는 남매처럼 절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감정적으로 말하면 서로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 정도로요.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선배는 정식으로 근위대원이 됐습니다. 근위대원이 되고 나서도 절 종종 찾아왔죠.”
그레이스가 말하는 그 이레귤러는 아직도 근위대에 있을 것이다. 죽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근위대원은 중요한 임무와 전투가 있을 때면 종종 전갑의체 레기온을 입고 출전하죠.”
레기온을 사용하려면 전투의체의 수십 배가 되는 과부하를 감당해야 한다. 근위대원조차 신호 감쇄기와 보조 연산장치를 덕지덕지 달아야 레기온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히 해. 너답지 않게 빙빙 돌리지 말고. 난 하층 구역의 일개 갱을 불온분자로 고발할 만큼 시간이 남아돌지 않아.”
그레이스는 중요한 말을 머뭇거리며 삼키고 있었다. 그래서 난 확답해서 말했다. 무슨 말이든 그냥 한 귀로 듣고 넘기겠다는 뜻이었다. 이걸 믿고 안 믿고는 그녀의 자유다.
“레기온으로 출전할 때마다…… 선배의 인격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적인 부분이 사라지고 있었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제게 두렵다고 말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을 잃을 것 같다면서 말이죠.”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군. 1, 2년 전에 나라면 충격을 받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레기온은 정신을 갉아먹어. 어지간한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병기가 아니야. 그자는 그 부분에서 자질이 부족했던 거다.”
헤일라스만 해도 레기온으로 수없이 많이 출전했어도 인격이 무너지지 않았다. 레기온을 수십 번 사용했을 다른 근위대원도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버티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루카 님의 말이 맞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전 직감했습니다. 저도 그 선배와 똑같은 말로를 걸을 거라는 걸요.”
여기서 나는 품고 있던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하지만 생도는 제국의 자산이잖아. 나오고 싶다고 나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텐데?”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면 그 부분에 답해드리겠습니다. 디바와 루카 님이 따로 만난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선배가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근위대 내부 정보를 제가 알아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이름은 로우젠입니다.”
그레이스가 숨기고 있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그녀는 그 이레귤러 선배, 로우젠을 지금도 신경 쓰고 있었다.
“로우젠을 만나거나 정보를 알게 되면 네게 말해준다고 약속하지.”
그레이스는 안대 반대편의 외눈으로 날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내 눈을 보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생도라도 가까운 상층 구역까진 외출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아시겠지만…… 라비앙로즈의 일부는 상층 구역으로도 출장을 가끔 나갑니다.”
그레이스는 나와 마르티나가 상층 구역에서 만났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저는 디바의 단골 중 하나였습니다. 전 남자에겐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정을 통한 상대이고, 마음이 해이해진 탓인지…… 저는 제 약한 모습과 걱정을 디바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대충 예상은 했다. 마르티나 디바를 향한 그레이스의 충성심에는 애정도 섞여 있었으니까.
“사연을 들은 디바가 근위대에서 널 빼낸 건가?”
“디바는 무리해서 연줄을 동원했습니다. 저도 그게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나도 조금 놀랐다. 마르티나의 인맥이 그 정도일 줄이야.
“근위대 생도 출신인 너를 부하로 둘 수 있으니 그만한 투자를 했던 거야. 순수한 선행이나 동정은 아니지. 너는 라비앙로즈의 부족한 폭력을 채울 수 있는 인재니까.”
“그런 계산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 갚아도 부족한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니까요. 저는 디바가 죽기 전까지 그녀의 곁을 지킬 겁니다.”
마르티나 디바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재밌는 이야기였어, 그레이스. 이야기 삯은 나중에 치르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녀의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근위대의 이레귤러 로우젠.
나는 그 이름을 되새겼다. 나도 그의 행방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 * *
나와 그레이스는 라비앙로즈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라비앙로즈의 가게 중 하나였는데, 내겐 상당히 불편한 공간이었다.
“하, 하, 귀여운걸.”
“내 취향이야.”
“시간 나면 싸게 해줄 테니까, 꼭 들러.”
말만 들으면 그럭저럭 참아줄 만하다. 문제는 내게 저런 말을 내던지는 게 죄다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여긴 남자만 있는 가게였다. 호리호리한 남정네부터 가브리엘만치나 우락부락한 놈까지 있었다.
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본능적으로 치솟는 생리적 혐오감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마르티나는 내 반응을 즐기려고 여기로 부른 것일 터다.
“그만 껄떡거려. 이 도련님은 디바의 손님이라고. 뒈지고 싶어?”
가게를 담당하는 갱단원이 사내들을 밀치며 길을 열었다.
“에이, 또 무섭게 군다.”
“말만 저러지. 사실 상냥하다니까.”
갱단원의 말에도 주눅 드는 사내가 없었다. 라비앙로즈 갱단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나와 그레이스는 가게 안쪽의 VIP실로 들어갔다. 드넓은 소파에서 남창 네 명을 옆에 낀 마르티나가 보였다. 남창들의 복장이 내 눈길을 나쁜 의미로 사로잡았다. 그들은 가죽끈으로 된 옷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었다 ……미치겠군, 정말.
“여기서부터 저는 디바의 곁에 서겠습니다, 루카님.”
그레이스가 내게 속삭이며 마르티나의 뒤로 다가가 경호하듯 섰다. 나와 그레이스의 대화를 본 마르티나가 요염하게 웃었다.
“흐응, 그레이스와 꽤 친해졌나 봐? 루카 도련님. 혹시 나 몰래 둘이서 한 침대를 쓴 건 아니지? 상상만 해도 질투 나네.”
“그래? 난 가브리엘하고도 잤어.”
난 짜증이 나서 자포자기하듯 말했다.
“가브리엘? 솔직히 생각보다 힘이 없더라. 얼굴값 못했어. 생긴 건 종마처럼 생겨 가지곤.”
“가브리엘의 사정도 이해해줘. 상대가 상대잖아. 할머…….”
“도련님. 저번에도 말했지만, 여자를 놀리면 못 쓴다니까.”
마르티나가 날카롭게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날 이런 곳에 불러냈을 때부터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나도 보통 성질이 아니거든.”
“공교롭게도 오늘 다른 가게는 예약이 꽉 차서 VIP실은 이쪽만 남았거든. 무슨 나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야.”
난 마르티나의 눈을 쳐다봤다. 방금 그녀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저 날 놀리고 싶었던 것이다.
내 불쾌한 기색을 알아챈 마르티나가 가식적으로 웃었다.
“가봐, 예쁜이들.”
마르티나가 접은 부채로 남창의 중요 부위와 엉덩이를 툭툭 쳤다. 흉한 몰골의 사내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