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77)
배드 본 블러드-77화(77/197)
077
나와 헤일라스는 공중차량을 타고 있었다. 근위대 차량이 아니라 쿠스토리아 소속의 차량이다.
“경호 임무는 어땠나?”
헤일라스가 내게 넌지시 물었다.
“기이했습니다.”
난 솔직히 대답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조언하자면, 우리의 상식과 잣대로 생각하지 말게. 자네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노파심에서 말하는 거네.”
헤일라스도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키누안에 대한 조사가 현재는 미진합니다. 더는 흔적을 찾기 힘듭니다.”
“릭을 생포했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아직 시간은 남아있네. 릭이 죽었으니 테러리스트들도 어떤 행동을 취할 거야. 자넬 암살하려고 할 수도 있어.”
우린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상 키누안에 대한 조사는 정지 상태였다. 단서와 흐름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열의가 식었다.
“지금은 본가의 저택으로 가는 게 아니군요.”
나는 어두워지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쿠스토리아 저택은 이쪽이 아니었다.
“루카, 지금부터 우린 근위대 업무가 아니라 집안일로 움직이는 거네. 난 가주로서, 자넨 쿠스토리아의 일원으로서.”
그리 말하며 헤일라스가 전자식 마스크를 내밀었다. 안면부를 전부 가리는 형태였다. 표면은 밋밋했고 회로만 일부 드러나 있었다.
기잉.
나는 군말 없이 마스크를 얼굴에 댔다. 마스크가 내 얼굴의 형태를 인식하더니 미세하게 움직이며 턱부터 관자놀이까지 뒤덮었다.
마스크를 쓰고 평복을 입었기에, 외부인이 우리의 출신을 알아차리긴 힘들 것이다.
“집안일이라면 쥬페도 불러야 하지 않습니까?”
마스크에 갇힌 내 목소리는 주파수가 바뀌어 있었다. 나와 같은 마스크를 쓴 헤일라스도 마찬가지다.
“쥬페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일에 맞지 않아. 음지보다 양지의 인간이지.”
헤일라스가 낮게 웃었다. 이번 일의 성향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우리가 탄 공중차량은 공터에 착륙했다. 검문소와 공공 비행장을 이용하지 않기에 기록에 남지 않는 방문이었다.
기이잉.
나와 헤일라스가 내리자마자 공중차량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벅, 저벅.
발자국이 우릴 향해 오고 있었다. 나는 칼자루를 잡으며 경계했다.
“괜찮네, 루카.”
헤일라스가 내 어깨를 잡으며 어두운 골목길을 응시했다.
거리의 노숙자 같은 빈민이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깊게 눌러쓴 두건 아래에는 일자 고글이 안구를 대신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주인님. 옆에 계신 도련님은?”
“내 아들이네.”
“아아, 그 소문의 양자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파이곤입니다.”
일자 고글의 사내가 나를 보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내가 그의 정체를 추측해 보기도 전에 헤일라스가 직접 소개했다.
“비공식적이지만, 내 개인 종사네. 하층 구역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
“헤일라스 님의 눈과 귀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루카우스 도련님.”
파이곤이 히쭉 웃었다. 그의 몸에선 지독한 악취도 났다. 쿠스토리아 가주의 종사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추레한 늙은이였다.
‘헤일라스의 감시자, 파이곤.’
황제의 감시자가 키누안이라면, 헤일라스의 감시자는 파이곤이었다.
권력자에게 비공식적인 수하는 필연이었다. 그 위치에선 남에게 공개하지 못할 음지의 일도 해야 하니까.
파이곤은 헤일라스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 중 하나일 것이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따라오시죠.”
파이곤이 골목길로 들어갔다. 여긴 하층 구역에서도 외곽이었다. 갱단조차 오지 않는 무법지대였다.
‘갱단은 이권에 따라 움직인다. 합법과 불법을 오가는 사업의 이권을 주로 다루지.’
이런 변두리 폐허는 이권 다툼할 사업조차 없다. 잃을 게 없는 무법자와 부랑배가 사는 곳이었다.
이곳의 지배 세력들은 ‘도적 떼’나 다름없었다. 규율이 있는 라비앙로즈나 투기장 갱단 따위와는 성향이 달랐다.
‘그렇기에 제국에서 가장 핍박받는 이들이 살고 있지. 예컨대…… 테러리스트라든가.’
제대로 된 인간은 없다시피 하기에 범죄자가 몸을 숨기기엔 적합했다.
“루카, 지금부터 우리가 추적할 자는 네메시스의 연락책이네. 니콜라오스가 죽는 날, 활동한 흔적이 있는 자야. 한 번 놓치면 언제 다시 쫓을 수 있을지 장담키 어려운 상대지. 이번만큼은 실패를 용납할 수 없어. 이건 훈련도 아니고, 생도 신분의 임무도 아니야. 다시 말하지만, 쿠스토리아 가의 일원으로서의 일이네.”
헤일라스가 신신당부했다.
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일단은 온갖 잡념과 추론을 억눌렀다. 당장 주어진 임무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입구를 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파이곤이 막다른 골목길에 섰다. 그는 바닥을 뒤지다가 하수도 뚜껑을 열어젖혔다.
하수도에선 꿉꿉한 증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왔다. 지열로 미지근하게 데워진 구정물의 악취가 지독했다. 벌써 속이 메슥거렸다.
“확실히 쥬페는 이런 임무를 견디기 힘들 것 같군요.”
내가 중얼거렸다. 앞장선 파이곤이 사다리를 타고 하수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하하, 자네에게도 쉽지 않을 거네.”
헤일라스도 내려가며 말했다. 그 말이 맞다. 하층 구역 출신인 나도 망설이게 되는 출입구였다.
질퍽.
그냥 하수도도 아니었다. 오물이 늪처럼 고여 있었다.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통로다.
“벌레가 들러붙고 피부도 간질간질하겠지만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도련님. 일일이 떼어 놓다간 끝이 없을 테니까요.”
파이곤의 말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내가 이런 일을 겪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스륵.
파이곤은 하수도의 지도를 꺼냈다. 일일이 손으로 그린 지도였다.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지도 없이는 길을 찾기 힘들어 보였다.
우린 파이곤의 등을 보며 하수의 늪을 헤쳐나갔다. 이쯤에서 고백할 게 하나 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우읍! 웩!”
토사물이 내 목구멍을 역류하며 바깥 구경을 시원스레 했다.
결국, 한 번 토했다.
“우웨에에엑!”
아니, 두 번.
……어쩌면 세 번일지도.
* * *
“자넨 아직 몸뚱이가 생체니 구토 반사는 어쩔 수 없지.”
헤일라스가 잔뜩 토한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 내가 나약한 게 아니다. 헤일라스와 파이곤은 오장육부까지 기계인 전신의체였기에 생리적 반사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위액의 시큼한 맛도 입안에서 느껴지지 않을 무렵이었다. 드디어 파이곤이 걸음을 멈췄다.
따라가던 나와 헤일라스도 숨을 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우우웅.
파이곤은 일자 고글이 환하게 빛났다. 그가 안광으로 주변을 차례대로 비추며 잠깐잠깐 멈췄다. 그의 시선이 멈출 때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가 보였다.
“주인님은 이쪽으로 돌입하시고, 도련님은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출입구를 전부 봉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옥상에서 엄호하겠습니다.”
파이곤이 손가락을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며 접었다. 그의 왼쪽 의수가 뒤집히면서 총구가 튀어나왔다.
“속전속결이 중요하네. 상대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면 자결할 거야.”
헤일라스가 말했다. 그는 전기마취탄을 장전한 전자식 권총을 내게 넘겼다.
위이잉.
전자식 권총을 단말기에 스치듯 부딪혔다. 내 데이터를 인식한 전자식 권총의 가늠쇠가 저절로 미세하게 움직이며 조준 보정을 했다.
‘네메시스의 연락책을 생포해 정보를 캐낸다.’
이번 임무의 목표였다.
‘근위대의 임무가 아니라…… 쿠스토리아 가문의 일이다. 헤일라스는 그동안 니콜라오스의 죽음을 따로 조사한 거야.’
쿠스토리아 가문의 장남이 죽었다. 릭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헤일라스는 더 큰 보복을 감행하려고 했다.
‘다신 쿠스토리아 가문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헤일라스의 말을 미뤄볼 때, 이번 일은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다. 헤일라스 개인이 네메시스의 꼬리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면 테러리스트는 진작 박멸됐을 것이다.
“놈은 수시로 얼굴을 바꿔대서 외모로 구분이 불가능합니다. 체격과 움직임 패턴으로 식별해야 하죠.”
파이곤이 단말기의 홀로그램을 띄었다. 인간 형상의 모델이 나와서 보행을 비롯해 여러 가지 움직임을 반복했다.
나와 헤일라스는 눈꺼풀도 깜짝하지 않고 삼십여 초의 영상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후우.”
정보 입력을 마친 나는 눈을 감으며 호흡했다. 짧은 명상으로 신경계를 정갈하게 가다듬었다.
곧 나는 신경계와 감각을 확장할 거고, 과도한 정보 입력으로 뇌가 비명을 질러댈 것이다.
매번 하는 일이지만 괴로운 건 사실이다. 아마도 난 말년을 편히 보내진 못할 것이다.
잘 풀려봐야 뇌 기능 장애를 앓고 사는 키누안 꼴이고, 운이 나쁘면 켄 노마처럼 살 것이다.
“돌입한다.”
말을 내뱉은 헤일라스가 하수도 뚜껑을 열고 나갔다. 다른 입구에 서 있던 나도 손으로 뚜껑을 밀며 올라갔다.
드르륵.
올라가니 보일러 장치가 보였다. 웅웅 울리는 기계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건물의 뒷문 겸 보일러실이었다.
“도련님, 조심하십쇼.”
파이곤이 나를 따라 올라오더니 비상용 계단으로 나갔다. 그는 벽을 타고 옥상까지 올라갈 것이다.
‘헤일라스는 정문 쪽에 위치한 하수 처리실에서 잠입한다.’
헤일라스가 가장 어려운 역할을 맡았다. 그는 나보다 5초 정도 늦게 도달할 것이다.
3, 4, 5…….
시간을 센 내가 보일러실의 문을 열었다.
“누, 누구야?”
복도에서 멀뚱히 서 있던 사내가 날 보곤 당황했다. 꼴을 보니 네메시스의 연락책은 아니었다.
피슛!
난 방아쇠를 당겼다. 전기마취탄이 상대의 목덜미에 꽂혔다. 전류가 튀더니 사내가 기절했다. 전기마취탄은 생체든 의체든 먹히는 게 장점이다.
이 건물은 장기 숙박 시설이었다. 호텔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방이라곤 조그마한 단칸방이 전부다. 샤워 시설도 다 같이 써야 한다. 신분이 불명확한 이들이나 머무는 하급 숙박 시설이었다.
그래도 숙박 시설인지라 외부인의 침입이 쉽진 않다. 정문에는 보안 장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굳이 하수도를 이용한 것도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절대로 실패해선 안 된다.’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우린 그 역한 하수도를 헤쳐나왔다.
벌써 열의가 샘솟는다. 나조차도 토할 정도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실패한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났다.
기이잉.
내 오른쪽 의안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나온 건물 내부의 지리 모조리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수년을 여기서 산 것처럼 망설이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콰직, 덜컹!
난 복도를 지나치는 족족 방문을 부수며 열어젖혔다. 다행인 점은 이 건물에는 창문이 없었다. 감금 용도로도 쓰인다는 뜻이다. 나는 봐선 안 될 장면도 중간중간 보면서 방 사이를 오갔다.
“키이이이잇!”
제국에서 보기 드문 외계인도 있었다. 돼지와 파충류를 반반 섞은 듯한 외모의 이족보행 외계인은 날 보자마자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참으로 못생긴 종족이었다.
하기야 우리 기준으로 보자면 외계 종족 대다수는 추한 외형을 가졌다. 그들도 우리를 그렇게 보겠지.
피슛, 피싯!
난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외계인의 덩치가 커서 한 발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전기마취탄을 두 발 맞은 외계인이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헤일라스는 벌써 끝내고 올라갔군.’
반대편은 이미 헤일라스가 정리한 뒤였다. 그는 나보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나도 2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건물은 총 3층이었다.
쿠르르릉!
나는 걸음을 멈췄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콘크리트 잔해가 쏟아졌다. 뿌연 먼지 사이로 그림자가 비틀거렸다.
누군가 바닥을 부수고 내려온 것이다.
‘연락책?’
그자가 연락책이라는 확신은 내게 없다. 이런 숙소에는 범죄자나 도망자가 많다. 소란을 듣자마자 다짜고짜 도망가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끼릭.
난 방아쇠를 당겼다. 연락책이든 아니든 일단 전부 기절시키고 볼 일이다.
피슛!
적은 총알에 맞지 않았다. 전자식 권총인지라 조준 보정은 확실하다. 내가 빗맞힌 게 아니다.
놈은 저 먼지 속에서 탄환의 궤적을 인식하고 피했다. 그것도 시야를 이용하지 않고 말이다.
“똑-딱.”
적은 혓바닥을 튕기는 소리를 냈다. 난 저런 행동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켄 노마가 나와 싸우기 전에 혀를 튕겼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쓰는 놈이다.’
나는 먼지 속의 적이 네메시스의 연락책이라 확신했다.
촤아아아!
적이 연막탄을 터트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매캐한 연기가 좁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적은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놈의 흐릿한 총구가 내 미간을 노렸다.
타- 앙!
적의 총성이 퍼졌다. 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띵!
내 손등을 맞고 찌그러진 탄두가 바닥에 떨어졌다. 난 펼친 손가락 사이로 달려드는 그림자를 응시했다.
‘하, 제법이군.’
난 총을 집어넣었다. 권총 따위로 제압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