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78)
배드 본 블러드-78화(78/197)
078
나는 충격권총 루이나를 뽑아 복도 전체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루이나의 파괴력이면 적이 잽싸든 간에 좁은 복도에서 피할 곳은 없다.
그러나 이번 임무의 목적은 생포와 심문이다. 죽여선 안 되지. 참아라, 루카.
치이이!
적이 뿌린 연막탄이 아직도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고 있었다. 무너진 천장의 콘크리트 가루까지 더해서 숨조차 쉴 수 없는 환경이다.
퉁!
나는 뿌연 연기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적과 나의 거리가 단숨에 가까워졌다.
처억!
연기 속의 적도 격투를 준비하듯 자세를 잡았다.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도달했다. 놈과 내가 충돌한다.
휙!
서로의 팔이 교차한다. 놈의 뾰족한 손가락이 내 안면을 노렸다. 나는 상체만 살짝 뒤로 젖히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두어 번의 공방만으로도 난 화가 났다.
‘약아빠진 새끼!’
난 놈을 죽이지 못한다. 급소를 노려선 안 된다. 그렇기에 노릴 수 있는 부위는 제한된다.
적은 그걸 잘 알고 있기에 과감하게 공격했다. 치사할 정도로 판단력이 빠르다. 나와 싸운 자들이 지금까지 이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스륵!
놈이 발을 뻗는 척하다가 뒤로 물러났다. 짙은 연기 속으로 몸을 숨겨서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똑- 딱.”
또 혓바닥 튕기는 소리다.
나도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반향정위.’
소리의 반사를 통해 지형지물을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도 지형지물을 인식할 수 있어.’
지금처럼 시야가 제한되었거나 눈 한 번 돌리기 힘든 고속전투에서는 제법 쓸만한 능력이다. 나도 연습해 둬야겠다.
‘까다롭네, 염병.’
적은 이 자리에서 이탈하고 싶어 한다. 놈이 연막에 숨어서 잠복하더라도, 나는 위험을 감수하며 따라 들어가야 한다.
나는 온갖 악조건을 덕지덕지 달고 있다. 내 실력이 우위에 있어도 승리 조건이 까다로웠기에 결판이 쉽게 나지 않았다.
위잉, 위잉.
난 오른쪽 의안의 가시광선 범위를 몇 번이나 바꿨다. 연달아 이뤄진 시야 변경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오른쪽 시야가 번쩍거리는 탓에 토할 것 같다.
그나마 가장 잘 보이는 파장을 찾았다.
‘이 망할 새끼! 거기냐!’
놈의 형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천장에 붙어서 나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득!
내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나는 오른 다리의 출력을 끌어올려서 콘크리트 잔해를 걷어찼다.
후두두두!
콘크리트 잔해가 산탄처럼 적을 덮쳤다. 고통으로 신음한 놈이 떨어지고 있었다.
휘릭!
달려간 나는 빙글 돌면서 벽을 박찼다. 나는 떨어지는 놈의 뒤로 뛰어올랐다.
‘잡았다, 개자식.’
놈의 무방비한 등이 보였다.
콰직!
난 놈의 등을 무릎으로 누르며 착지했다. 그리고 곧장 놈의 양어깨를 잡아 뜯었다.
콰드드드득!
뜯긴 팔을 따라서 부품과 전선이 딸려 나왔다. 전신의체가 아니었는지 결합부에서 피가 튀며 살점이 찢겼다.
“크어어, 으으윽!”
놈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난 미소를 지었다. 적의 비명을 들으니 두통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때가 아니다.
난 잽싸게 권총을 꺼내 놈의 목덜미에 총구를 댔다. 이 자식이 연락책이면 자결을 시도할 것이다.
피슛! 파직!
전기마취탄이 놈의 목에 박혔다. 전류가 흐르면서 놈의 동공에도 의식의 빛이 사라졌다.
“생포했습니다.”
숨을 돌린 내가 계단을 보며 말했다.
덜그럭, 덜그럭.
헤일라스가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도 의식을 잃은 사내의 머리채를 질질 잡고 있었다. 그도 연락책으로 추정되는 사내를 생포한 듯했다.
“누가 연락책입니까?”
“자네가 잡은 놈이든 내가 잡은 놈이든 둘 중 하나겠지.”
“둘 다 아니라면요?”
헤일라스가 턱을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우리가 그렇게 무능하진 않을 걸세.”
음, 맞는 말이다.
* * *
나와 헤일라스는 생포한 사내 둘을 둘러메고 난장판을 빠져나왔다. 요란한 소동으로 인파가 서서히 모여들고 있었다.
드륵.
우린 하수도로 들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헤일라스 님, 흔적은 깔끔하게 지웠습니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도 없을 거고요.”
파이곤이 단말기를 조작하며 말했다. 허름한 차림새와 안 어울리게 전자전에도 능한 모양이었다.
“고생했네, 파이곤. 그리고 루카, 자네도.”
헤일라스는 파이곤에게 별다른 추가 지시를 하지 않았다. 단단한 신뢰가 느껴졌다. 조금만 못 미더워도 확인차 이것저것 물었을 것이다.
“이 자를 심문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난 기절한 사내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내가 잡은 사내는 아키에스 전투술을 상당한 수준까지 익혔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힌 자는 심리방어에도 능했다. 보통 방식으론 정보를 캐내기 힘들 것이다.
“그건 자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헤일라스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난 무슨 방법인지 묻지 않았다.
하수도를 걷는 내내 별다른 일은 없었다. 순조롭게 귀환할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고, 파이곤과 헤일라스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주인님도 젊으셨죠. 지금의 루카우스 도련님처럼요.”
“그땐 젊은 게 아니라 어린 거였지.”
“하기야, 당시에 제게 이타노리 가문의 아가씨 뒷조사를 시…….”
“어허.”
헤일라스와 파이곤이 옛이야기를 떠들어댔다.
헤일라스의 소년기 따윈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도 내 나이였을 땐 부족했으며 실수도 했을 것이다. 그도 처음부터 강철같은 인간은 아니었겠지. 처음에는 피와 살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었을 것이다. 물리적 의미든 비유적 의미든 말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선 미숙한 헤일라스의 모습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헤일라스는 내게 완벽한 상관이며 모범이 되는 군인이었다.
스륵.
파이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헤일라스 주인님께서 도련님을 많이 아끼시나 봅니다. 제 존재를 노출 시킬 정도니까요.”
“……아니면 언제든 입막음이 할 수 있어서겠죠.”
나는 헤일라스가 내 말을 듣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기분 나빠할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매사에 신중하다고 좋아하겠지.
부정적이고 나쁜 가정부터 하는 것. 내 특기 중 하나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난 언제나 최악의 최악도 대비해야 했으니까.
“훌륭하십니다, 도련님. 그래야 쿠스토리아의 군인이죠. 요즘 귀족 아이들을 보면 세상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거라고 믿는 분들이 많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낙관적인 믿음이죠, 큭큭.”
파이곤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파이곤, 자네도 나이를 먹으니 쓸데없는 말이 느는군.”
“어디에 누군가께서 제 은퇴를 받아주지 않아 그렇습니다.”
“자네만 한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하수도의 갈림길에서 헤일라스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둘러멘 사내를 파이곤에게 넘겼다. 나도 눈치껏 파이곤에게 사내를 넘겼다.
“내가 다시 찾아갈 때까지 ‘처리’를 끝내두게.”
헤일라스가 말했다. 난 ‘처리’가 무슨 의미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꽤 끔찍한 상상이 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알겠습니다.”
파이곤이 양어깨에 사내를 메고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불안감이 들었다. 헤일라스가 생포한 자는 몰라도, 내가 붙잡은 자는 제법 강했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생긴다면 파이곤이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파이곤이 제 실력을 발휘하면 자네도 쉽사리 이기진 못할 거네.”
내 불안감을 읽었다는 듯이 헤일라스가 낮게 말했다.
“파이곤을 통해서 키누안의 뒷조사를 해도 되지 않습니까? 다방면으로 뛰어난 자 같습니다.”
내가 의문을 표했다. 파이곤 같은 이가 있는데, 내가 키누안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루카, 자네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키누안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지. 파이곤이라도 키누안의 뒤를 멋대로 캐다간 죽을 거야. 그리고…… 파이곤은 쿠스토리아 가문의 일에만 써야 하네. 공적 업무에 투입해선 안 돼. 그게 규칙이네.”
헤일라스가 강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붙잡았다.
“하아!”
지상으로 올라간 나는 숨을 깊게 내뱉고 마셨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하수도에 한참 있다 보니 모래가 섞여 서걱서걱한 공기마저 반가웠다.
우린 착륙했던 공터 말고 다른 폐허로 향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쿠스토리아 가문의 공중차량이 우릴 마중 나왔다.
‘쿠스토리아 가문의 임무를 마쳤다.’
헤일라스는 비밀리 임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제국은 오늘의 일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제국의 감시자이기 때문이지.
* * *
비밀 임무가 끝나고 사흘이 지났다.
나와 헤일라스가 헛수고를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생포한 사내는 제국의 수배범이었고, 헤일라스가 잡은 이는 네메시스의 연락책이었다.
근위대장 업무로 바쁜 헤일라스를 대신해 내가 파이곤을 만나러 갔다. 접선 장소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다. 거기서 나는 우리가 붙잡은 연락책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부글, 부글.
난 원통형 용기를 응시했다. 질감이 있는 녹색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뇌’가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뇌에는 전극이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통 속의 뇌’입니다. 까다로운 처리 방식입죠. 하지만 이 상태에서 심문을 견딜 자는 몇 없습니다.”
파이곤이 원통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원통 용기 상단에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있었다.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뇌 해부도의 일부가 충격에 반응하듯 반짝였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저 꼴로도 살아있다.’
신체를 잃은 뇌는 물리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뇌가 느끼는 외부 정보와 자극은 파이곤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과연…… 효과적이겠군.”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감탄과 혐오가 동시에 나왔다. 저 상태의 인간을 살려두는 것도 굉장한 실력이 필요했다.
인간은 적절한 수준의 외부 자극을 받지 못하면 미쳐버린다. 신체 없이 뇌만 동동 뜬 채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파이곤의 실력이 놀랍군.’
파이곤은 저들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한 자극을 주면서도 끝없이 고문했다. 고문에서 제일 중요한 건 죽기 직전까지 몰아세우면서도 죽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파이곤은 고문의 전문가였다. 그는 각종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자극 신호를 조절하고 있었다.
‘파이곤은 얼마나 많은 인간을 저 꼴로 만들어본 거지?’
누가 봐도 경험으로 익힌 실력이었다.
“이 장치로는 무의식 영역의 기억과 정보조차 짜낼 수 있죠. 도련님, 인간은 자신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파이곤이 자랑하듯 말했다. 적이 아닌 아군인데도 섬뜩할 정도였다.
“아아, 실례했습니다, 도련님. 제겐 익숙한 일인지라.”
파이곤은 내 감정을 헤아리듯 말했다.
“……아닙니다.”
내가 낮게 말했다.
파이곤은 원통 용기를 천으로 덮어 가리더니 데이터칩을 내게 내밀었다.
“이걸 헤일라스 주인님에게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터칩을 받았다. 난 말 없이 장소를 벗어났다.
근위대 훈련으로 감정 통제에 익숙한 나조차도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컵 밑바닥에 눌어붙은 끈적한 음료처럼, 아무리 뒤집어 흔들어도 부정적인 감정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