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8)
배드 본 블러드-8화(8/197)
008
나는 드러누운 채로 밤하늘을 응시했다. 무릎을 꿇고 죽은 근위대원의 어깨 너머로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토록 깨끗한 밤하늘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제국의 수도 아크바란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밤하늘의 별이란 건 아름답구나.
어쩌면 이 풍경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아까부터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자마자 빚덩이처럼 고통과 죽음이 몰려왔다.
“하, 망할.”
나는 그제야 내 옆구리가 길게 찢긴 걸 보았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칫하면 내장도 바깥 구경을 할 것 같았다.
내 몸은 자력으로 일어나서 움직일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부서진 손으로 찢어진 옆구리를 틀어막으려 했다.
끼릭, 끼릭.
너덜너덜한 손가락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오히려 상처가 더 벌어질 것 같았다. 관두자, 젠장.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죽거나 말거나 별은 반짝반짝 빛났다. 저 별의 바다 너머에 우리의 선조가 살던 지구가 있겠지.
저벅, 저벅.
발자국이 들렸다. 나는 목을 살짝 들어서 앞을 응시했다. 나 말고도 생존자가 있었다. 난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살아있었네, 루카.”
한쪽 팔을 잃은 일레이가 비틀거리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내가 묻자 일레이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좌우로든 위아래로든 두 동강 났어.”
성기사의 검기가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생존자는 나와 일레이뿐이었다.
일레이가 내 머리맡에 섰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죽어있는 근위대원을 물끄러미 보더니 뒤로 밀어서 넘어뜨렸다.
“……루카, 상처가 심해. 이대로면 넌 죽을 거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일레이가 내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녀석의 표정이 묘했다. 그의 눈동자가 자꾸만 동쪽으로 힐끔힐끔 움직였다.
그래, 일레이 카르티카. 마음이 그쪽으로 동하는구나. 지금이 좋은 기회지. 임무 중 행방불명 처리라면 뒷일도 깔끔하다. 시체 하나 정도는 못 찾아도 이상할 게 없다.
“루카, 나는…….”
일레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가 고개를 돌려 동쪽을 응시했다. 나는 그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다. 우리의 제국은 서쪽에 있었다. 동쪽은 코라와 벨라토의 영토다.
일레이는 늘 제국을 떠나고 싶어 했다. 녀석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갈 거면 빨리 가라. 날 치료할 생각은 말고. 곧 후속대가 올 거야.”
나는 누운 채로 일레이를 응시했다. 일레이가 흐릿한 눈동자로 날 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저벅.
일레이가 내 곁을 지나쳐 걸었다. 그의 발걸음이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일레이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제국 신민이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능력과 배경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출세가 보장된 인생이었다.
일레이는 그 모든 걸 버리고 제국을 떠나려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널 이해할 수 없어, 일레이.’
그러나 존중은 할 수 있었다. 나는 일레이가 본인의 뜻대로 살아가길 바랐다.
운이 좋으면 나도 후속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운이 나쁘면 저승행이고.’
나는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며 별을 응시했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저벅, 저벅.
멀어졌던 발걸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이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아, 웃었더니 아프다.
“뭐 해? 등신아.”
나는 돌아온 일레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레이는 무릎을 꿇고 앉더니 내 옆구리의 출혈을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응급조치를 했다.
“네 말대로 내가 등신인가 보지.”
일레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 * *
제국으로 실려 간 나는 회복하자마자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이번 유적지 정찰은 상부에서도 큰 안건으로 다룬 듯했다.
직위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지는 고위층 인사까지 내 보고를 들으러 왔다. 그들은 내 앞에서 복잡한 정치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코라 신성국과 외교적 마찰이 있을 거라는 말이 오갔다.
근위대원 한 명이 죽었고, 생도도 세 명 사망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난리인 건 아니었다. 제국의 군인이 죽는 건 일상이다.
나는 사이버네틱 제품이 실린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다. 지금 내가 달고 있는 건 임시 의족과 의수였다. 전투용 출력이 아닌지라 일상생활 정도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역체감이 심해서 팔다리에 족쇄를 찬 느낌이다.
“우리가 갔던 유적지에서 유물이 발견됐잖아. 그 소유권을 두고 말이 많아.”
일레이가 말했다. 그는 명문가의 자제답게 이런저런 사정에 밝았다. 주워듣는 게 많은 모양이었다.
아케인 유물.
나는 유적지 중심에서 빙빙 돌던 정육면체를 떠올렸다.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곤 생각했지만, 그게 유물일 줄은 몰랐다.
“회수는?”
“전문가로 구성된 회수팀을 꾸리고 있다네. 일단은 근위대가 유적지를 지키고 있어. 그럴 가치가 있지. 어떤 유물은 국가의 전략자원으로도…….”
일레이가 유물에 대해 떠들어댔다. 미안하게도 나는 관심이 없기에 한 귀로 대충 넘겼다.
“……만약 신성국에서 이번 유적지와 유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꽤 큰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어. 전면전까지 번지진 않겠지만.”
전면전은 각 국가가 피하고 있었다.
아크레시아 제국, 코라 신성국, 벨라토 연방.
그중 두 국가가 전면전을 벌인다면 다른 한 국가가 큰 이득을 본다. 그렇기에 각 국가는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의 국지전만 반복했다.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다. 아니, 상관이야 있지. 그러나 관심은 없었다. 결국 정치를 하는 높으신 분들의 일이다.
나는 그저 명령을 받은 대로 싸우면 그만이다. 그게 제국의 군인이며 병사다.
‘근위대…….’
유적지에서 최후를 맞이한 근위대원이 떠올랐다. 그는 머리가 날아가고도 망령처럼 움직였다.
‘잔류 신호로 인한 팬텀 현상.’
내 보고를 들은 근위대장은 그렇게 일축했다. 뻔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답도 아니었다.
‘죽고 나서도 내 말을 듣고 반응했다. 팬텀 현상 따위가 아니야.’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내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상부에서 대답해 주지 않는 것을 파고들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나는 카탈로그를 한 장도 넘기지 못한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루카, 의수는 F-24 레우스 모델, 이걸 추천해. 적응 기간도 짧아서 복귀도 빠를 거고, 성능도 네가 쓰던 것보다 좋을걸.”
일레이가 얼굴을 옆으로 들이밀며 카탈로그를 가리켰다.
나는 일레이를 힐끗 보았다.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제국에서 도망치지 않고 날 살리는 길을 택했다.
“일레이, 너는…….”
“후회하지 않아. 내게 넌 그럴 가치가 있는 녀석이니까.”
일레이가 내 말의 의도를 읽고선 대답했다.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 * *
새로운 의수와 의족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나는 낯선 공간에 발을 내디뎠다.
생도 훈련시설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화사한 공간이었다. 벽은 따스한 색감의 백색이었고, 선반에는 화분도 드문드문 있었다. 유리창에서 갈라진 햇빛 덕분에 조명이 없어도 내부가 밝았다.
‘면회실.’
생도의 지인과 가족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보육원 출신인 나와는 정말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뭐…….”
나는 목을 긁적이며 앞을 응시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내 앞에는 나를 찾아온 소녀가 앉아있었다.
면회인의 신원은 이미 알고 있었다.
‘릴리안 라모네스.’
얼마 전에 죽은 클로드 라모네스의 여동생이었다.
릴리안은 아직도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내 인기척을 알아채더니 일어섰다. 살짝 감긴 눈동자가 나른한 느낌이었다.
“초면은…… 아니죠?”
릴리안이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앞에 앉았다.
“클로드의 장례식에서 봤으니까요.”
나는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했다. 어쨌거나 클로드가 사망한 임무의 대장은 나였다.
‘나를 추궁하더라도 받아주는 게 예의겠지.’
마음의 준비를 한 나는 릴리안의 말을 기다렸다. 릴리안은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클로드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루카.”
의외의 말이다. 나는 살짝 머리를 기울여 의문을 표했다.
“저에 대해서요?”
“동기 중에 유능한 친구가 있다고요. 제게 교제해 볼 생각이 없냐고 말하더라고요.”
클로드는 릴리안과 나를 엮으려 했다. 이미 릴리안에게도 나를 여러 번 언급한 모양이었다.
“제 출신은 알고 있으신가요?”
“그래서 오히려 좋은 거죠.”
더욱 의아했다. 릴리안 라모네스라면 더 좋은 가문의 도련님과 혼인할 수도 있을 터다. 이 넓은 제국에는 나보다 배경도 능력도 더 뛰어난 자가 분명히 있을 거다.
“더 좋다니요?”
“당신과 나 사이에 불필요한 절차가 줄어드니까요. 당신은 어떤가요?”
릴리안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나오니 내 마음은 더욱 불편했다. 차라리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이 속 편할 것 같았다.
“저는 당신에 대해 잘 모릅니다, 릴리안.”
내가 아는 표현 내에선 가장 정중한 거절이었다. 입에 맞지 않는 대화를 하다 보니 벌써 혓바닥이 근질근질했다.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아직 당신에 대해 잘 몰라요.”
이 여자, 쉽지 않다. 느슨한 표정과는 달리 집요했다. 거칠게 떼어놨다간 내 살점까지 같이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신에게도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도 부러워할걸요.”
나는 움찔했다. 남들도 부러워할 만한 조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릴리안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좋은 가문의 여자와 엮일 기회다.
내가 크게 출세하고자 한다면, 인맥과 가문의 힘이 필요했다. 그 부분을 릴리안은 제공해 줄 터다.
‘이상적이지.’
나와 같은 처지의 남자라면 릴리안 같은 여자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원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일레이 카르티카가 떠올랐다.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조건을 타고났으면서도 제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참으로 머저리 같은 짓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이런 거였군.’
릴리안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머저리 같은 짓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머저리 같은 짓을 하고 싶었다.
“루카?”
릴리안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확답을 내렸다.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고 짧게 말했다. 릴리안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녀도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터다.
드륵.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릴리안이 모욕이라고 느껴도 어쩔 수 없었다. 정중하게 돌려서 말하다간 그녀가 끝까지 들러붙을 것만 같았다.
덥썩!
릴리안이 내 손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생각보다 그녀의 힘이 억셌다.
“제가 너무 서둘렀나 보네요, 루카.”
“아닙…….”
릴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내 말을 잘랐다.
“우리 친구부터 시작하죠! 또 만나러 올게요.”
그녀가 내 손목을 놓으며 말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등을 보이며 면회실 바깥으로 먼저 나갔다.
“……쉽지 않네.”
내가 중얼거렸다. 여러모로 어려운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