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82)
배드 본 블러드-82화(82/197)
082
우리의 공중차량이 오토노바스의 연구소에 도착했다. 비행장에는 이미 공중차량 수십여 대가 보였다.
삑.
비행장에선 우리의 공중차량에 안내선을 전송해 착륙지점을 알렸다. 공중차량 전면에는 초록색 점선이 떠올랐다.
일레이가 공중차량을 조작해 안내선을 따라 착륙했다.
치이익.
착륙한 공중차량의 문이 열리자마자 녹색 안광의 안드로이드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반갑습니다, 지젤 쿠스토리아 님, 일레이 카르티카 님, 그리고 케이사 님. 저는 오토노바스의 자체 안드로이드 오토봇입니다.
오토봇은 제국의 범용규격 안드로이드가 아닌 독자규격 안드로이드였다. 상체는 별반 다를 것 없었지만, 하반신이 특이했다. 이족보행이 아니라 다리는 넷이었고, 발 대신에 바퀴가 달려 있었다.
오토봇이 시중 판매용이라면 독자규격 때문에 확장성과 호환성에 문제가 있겠지만, 오토노바스 사내에서만 쓰기에 상관없을 것이다…… 라고 지젤이 설명했다.
-지금부터 오토노바스 사의 내규에 따라 보안절차를 실행하겠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오토봇의 안광이 크게 빛났다. 그물망 같은 녹색 빛이 지젤과 일레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전산상 정보와 실제 신원이 맞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삑, 삑.
이상을 확인할 때마다 오토봇의 안광이 붉게 깜빡였다. 일레이에게서 두 번이었다.
-당사의 내규에 따라 일레이 카르티카 님에게 무장 해제를 권고합니다.
“난 경호 역으로 온 거야. 그리고…… 저쪽 사람들은 무장한 채로 내리잖아?”
일레이가 다른 공중차량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 말대로 총기류와 보호구로 무장한 경호원이 오토봇의 보안절차를 통과했다.
-당사 기준으로 비무장 상태의 일레이 님은 적색 등급의 위험요소가 됩니다. 저들은 완전무장해도 녹색 등급의 위험요소입니다. 상대적 조치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레이는 의체부터 무기나 다름없었다. 오토봇의 말처럼, 저 밖의 경호원 무리가 전부 덤벼도 맨손의 일레이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전투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오토봇의 판단이 불합리하진 않았다.
“……알았어.”
-감사합니다.
더 따져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일레이는 순순히 보호구를 벗고 칼과 권총을 공중차량에 수납했다.
위이잉.
오토봇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물망 모양의 녹색 빛이 나를 여러 차례 아래위로 훑었다. 조금 오랫동안 머무는 감이 있었다.
‘전파 교란기.’
오토봇의 센서에 투시된 내 몸의 형상은 여성의 체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보이도록 전파 교란기의 왜곡치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전파적 왜곡과 교란이기에 옷을 벗는다면 들통나겠지만 ‘쿠스토리아 가문의 하인’에게 그런 무례한 요구를 하진 않을 것이다. 오토노바스가 쿠스토리아 가문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당사를 대표해, 여러분의 양해와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오토봇이 그리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족 바퀴가 경쾌하게 후진했다.
“권총조차 떼고 다니는 건 오랜만이라 허전하네요.”
일레이는 가벼워진 몸으로 공중차량에서 내렸다. 나와 지젤도 그 뒤를 따랐다.
-제9연구소는 21년 전에 설립되어 강습 차량 샐러맨더를 시작으로…….
오토봇이 안내하며 떠들어댔다. 그 말을 제대로 듣는 이는 없었다. 관심 있는 사람이면 다 알 만한 내용이고, 모르는 이라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쿠아아아앙!
차량 모터 특유의 굉음이 저 멀리서 터져 나왔다. 비행장의 사람들은 굉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구소 바깥에는 돌산이나 다름없는 험지가 있었다. 그 위로 궤도차량이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량의 하부는 부드럽게 지형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며 충격을 상쇄했다. 벌레가 빠르게 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사는 그 어떤 험지에서도 최적의 성능을 보장하기 위해, 제국에서도 가장 가혹한 환경에서 제품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가혹한 환경이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거대기업의 연구소가 아크바란에서 한참 떨어진 오지에 있는 이유였다. 주변이 온통 개발되지 않은 험지인지라 시험 주행하기에 좋았다.
오토봇은 우리를 이끌고 연구소의 전시장으로 향했다. 다른 오토봇의 안내를 받는 사람들도 모여서 어느덧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 지젤? 너도 왔구나.”
지젤에게 말을 거는 귀족 여인이 있었다. 그녀 말고도 지젤을 알아본 이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하곤 지나갔다.
나와 일레이는 수상한 자가 있는지 세심하게 주변을 관찰했다.
“일레이 카르티카! 자네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자네가 차량 쪽에 관심이 있었던가?”
이번엔 중년 사내가 일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경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레이가 완곡하게 대화 요청을 거부했다.
“뭐, 여긴 오토노바스의 사유지잖는가. 긴장 풀게. 자네 말고도 경호를 할 사람은 많으니까.”
일레이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중년 사내는 끈질기게 일레이에게 치근덕거렸다.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카르티카 가문의 유력한 차기 가주.’
일레이에게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는 무리가 가득했다. 일레이 입장에선 냉혹하게 그들을 쳐내기도 힘들었다. 귀족 사회에서 괜히 밉보였다간 좋을 게 없었다.
가장 여유가 있는 건 나였다.
‘분장이 잘되긴 했나 보네. 날 알아보는 이는 없어.’
난 지젤과 일레이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살폈다. 쿠스토리아의 연회에 왔던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날 훑어보며 지나갔다. 그저 지젤의 몸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기야 쿠스토리아 가문의 유망한 양자가 이런 꼴로 여기에 있을 거라 누가 생각하겠는가. 나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창피와 굴욕을 무릅쓸만했다. 내게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난 감시와 경계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내가 바바라라면…… 어디서 지젤을 납치하려고 할까.’
난 바바라의 입장에서 사고했다. 그러나 오류가 많았다. 바바라는 전자전 전문가다. 나와는 특기가 완전히 달랐다.
바바라가 어떤 수단을 통해 접근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아크바란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약 40시간.’
오토노바스 견학 일정은 이틀이었다. 첫날은 전시장에서 시제품 설명회를 듣고, 두 번째 날에 야외에서 직접 주행한다.
‘바바라가 나타난다면 내일이겠지.’
그러나 허를 찌르려고 오늘 감행할 수도 있다.
난 눈을 살짝 감으며 바바라의 개인정보를 떠올렸다. 원래라면 견습 감시자인 나조차도 볼 수 없는 기밀 정보지만, 헤일라스가 이번 임무를 위해 내게 보여줬다. 따지고 보면 월권행위였다.
‘……바바라는 이레귤러 중 이레귤러. 아니, 이레귤러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지. 준비된 존재니까.’
마녀 바바라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천재였다.
제국은 네메시스에 우수한 해커를 잠입시킨다는 계획, 즉 줄리엣 작전을 위해 적합한 인재를 다년간 찾아다녔다. 그런 꼼꼼한 선별의 결과물이 바바라였다.
헤일라스의 말에 따르면, 바바라는 나보다 더 희소한 인재였다.
‘바바라는 천재적 재능을 가졌지만, 성격장애와 반사회적 경향이 있다.’
놀랍게도, 제국은 바바라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네메시스에 잠입할 수 있는 인재였다.
제국은 반사회적인 바바라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거절하기 어려운 보상을 제안했을 것이다.
‘네메시스 내부에는 얼마나 많은 첩자가 있는 거지?’
네메시스와 오랫동안 내통한 키누안도 제국의 편이었다. 그들이 힘들게 영입한 바바라도 제국의 첩자다. 이들 말고도 네메시스에는 제국이 심은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테러 조직조차 제국의 감시 아래에 있는 거로군.’
아니, 생각해 보면 제국의 통제와 감시 아래에 있기에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거다.
네메시스가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제국은 그간 심어둔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네메시스를 응징할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할 숙청이다.
웅성, 웅성.
내가 상념에 빠진 사이에, 우리 일행은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주변이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내가 말했지? 사족 궤도차량이라고. 크레딧이나…….”
“사족이 아니잖아, 멍청아!”
“사족이 아니라면, 어? 어어?”
몇몇 귀족들은 시제품의 정체를 가지고 내기를 했던 모양이다. 오토노바스의 시제품은 사람들의 예상을 깬 차량이었다.
“이번 공개 전시회의 메인인 가변형 다족 보행 차량…… 아라크네입니다! ”
단상에 올라간 오토노바스의 간부가 자랑스레 외쳤다.
위잉.
이어서 안내하던 오토봇들이 일제히 홀로그램 화면을 사람들 앞에 투사했다. 아라크네의 제원 성능이 상세히 나왔다.
“평시에는 사족 바퀴로 구동하고, 험지에서 접지력이 높은 보조 다리가 내려와…….”
사람들이 마저 읽기도 전에 아라크네의 보조 다리가 길어졌다. 보조까지 합치면 여덟 개의 다리가 있었다.
아라크네는 평지와 험지를 나눠서 다리 개수를 바꾸는 차량이었다. 속도와 안정성을 둘 다 갖춘 모델이었으나 가변형인지라 신뢰성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쌌다.
‘순전히 부유층을 위한 차량이로군.’
군용으로는 쓰기 힘들었다. 전장에서 신뢰성은 절대적이다. 고장과 오작동 확률이 높은 가변형 병기가 어지간해선 논의되지 않는 이유였다.
시제품 차량은 아라크네를 비롯해 여덟 대였다. 각자 다양한 목적을 위해 설계된 모델이었다. 이 중에서 몇이나 상용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잉, 기잉.
아라크네 말고도 눈길을 끄는 공사용 로봇 차량도 있었다. 로봇 전문 기업 로만과 협업한 차량이었다. 상반신은 탑승형 로봇이었고, 하체는 오토노바스의 기술이 들어간 무한궤도였다. 상체가 두 팔이 달린 로봇이기에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기존에도 있던 형태의 로봇 차량이었으나 성능과 반응성이 대단히 좋아졌다고…… 주변에서 떠들어댔다. 나야 잘 모르는 내용이다.
“로봇의 팔만 신경계와 직결하는 형태를 개발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젤이 시제품 앞에 있는 연구원에게 물었다.
“이 정도 출력과 크기면 반응성 면에서 손으로 조작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죠. 아직까진 연구 개발할 채산성이 안 나옵니다. 그리고 조작의 자유도를 높이려면 센서를 달아 사람의 움직임을 흉내 내는 게 낫죠.”
“역시…… 그렇긴 하죠.”
지젤은 오토노바스 전시회에 관심이 많았다. 임무가 아니더라도 와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질문을 던졌다.
지젤은 즐거운 듯했으나 내겐 전시회가 지루했다. 난 주변을 둘러보다가 유독 지젤을 응시하는 사내를 발견했다.
……초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위협적인 존재도 아니다. 난 쓴웃음을 지었다.
‘엔리코 라간.’
크라치아 아카데미에서 지젤에게 고백했던 남학생이었다. 내가 등을 떠민 탓에 그는 처참하게 차였다.
지금도 아련한 눈으로 지젤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도 만날 수 있으면서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정말로 스토커냐…….’
엔리코는 오토노바스 전시회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지젤만 쳐다보고 있었다.
‘음, 조금 불쌍하기도 하네.’
엔리코는 지젤에게 인사하긴커녕 다가오지도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난 지젤이 당시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관심이 없는 걸 넘어서 당신의 존재가 불편합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제 주변에 맴도는 걸 그만했으면 해요.’
지젤의 매몰찬 말이 아직도 엔리코의 가슴에 박혀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전시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견학자를 위한 숙소도 따로 있었다. 오늘을 위해 직원 숙소를 비워둔 모양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럼 전 옆방에 있겠습니다. 여자들만의 좋은 밤 되시길.”
일레이가 우리에게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난 일레이의 미소를 보고 등골이 오싹했다.
“아…….”
“음.”
나와 지젤은 머뭇거렸다.
……우린 같은 방을 써야 했다. 오토노바스 측에서 그렇게 방을 배정했다. 아가씨와 전담 시녀이니 당연하긴 했다.
그래, 뭐, 별거 아니다. 우린 남매다, 피는 통하지 않지만.
아니, 별거는 맞다. 솔직히 말하자면 곤란하다.
“아가씨, 오토노바스에게 말해서 다른 방을…….”
“무슨 소리야. 같은 방을 써야지, 케이사. 난 네가 없으면 옷도 갈아입기 힘들다고.”
지젤이 말했다. 나도 정신 차렸다.
이게 애초에 내가 여장까지 한 이유다. 이래야 누구의 의심도 없이 지젤과 24시간 붙어있을 수 있었다.
오늘의 머저리는 나였다.
끼익.
우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쿵.
문이 닫히면서 바깥과 차단됐다. 둘만의 공간이었다.
……미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