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87)
배드 본 블러드-87화(87/197)
087
나는 쿠스토리아 저택에 마련된 내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군인 가문답게 방에도 단련시설이 있었다. 나는 철봉을 한 손으로 쥔 채로 천천히 몸을 끌어올렸다.
스륵.
반동도 없이 왼팔 하나만으로 몸을 거꾸로 세웠다. 내 몸통은 생체인지라 배와 등 근육이 끊어질 듯이 저렸다.
이윽고, 몸과 발끝이 땅과 수직이 되었다. 난 기계처럼 미동을 멈추고 자세를 유지했다.
“후우.”
속으로 숫자를 센 나는 숨을 내쉬었다.
툭.
난 왼손으로 철봉을 밀어서 몸을 낮게 띄었다. 그 사이에 왼팔로 뒷짐을 지고, 오른팔을 뻗어 철봉을 잡았다. 이젠 내려올 차례였다.
나는 단단하게 뻗은 오른팔을 축으로 시곗바늘처럼 바닥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것도 중력의 영향에 벗어난 듯이 느릿했다.
탁.
발부터 깔끔하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동작 수행 능력을 확인한 나는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오늘의 상태는 좋았다. 균형감과 통제력이 훌륭했다. 신경계의 결합 상태와 신호 피드백 수준이 괜찮다는 뜻이다.
조금만 상태가 나빠도 크게 흔들리거나 넘어졌을 것이다.
‘의체를 생체처럼.’
사이버네틱 의체를 타고난 육체처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훈련이다.
나는 격투 자세를 잡고선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탄력을 붙인 나는 주먹을 뻗었다.
휙!
묵직한 의수가 빠르게 움직였다. 의수를 구성하는 난해한 부품들은 내 뇌의 신호를 받으며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호응했다.
기잉, 기이이잉!
사이버네틱 의체는 안드로이드보다 부품 숫자도 많고 구조도 훨씬 복잡하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을 사이버네틱 의체에 탑재하긴 힘들다. 인공지능이 사이버네틱 의체를 써봐야 금세 오류가 나거나 고장이 난다.
오류의 이유는 간단하다. 사이버네틱 의체는 인간의 생체 육신을 모방했다. 그렇기에 인간의 뇌 신경계를 통해서만 다룰 수 있다.
인공지능이 특정 분야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지만, 근본적인 구조 차이로 인해 범용성 측면에서는 인간의 뇌에 미치지 못했다.
‘아직까진 우리의 뇌가 가장 우수한 컴퓨터다. 만약, 생체 두뇌보다 더 뛰어난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건 우리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겠지.’
이것 역시 일레이에게서 들은 말이다.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면 있을 수 있다는 뜻은 아케인 문명을 넌지시 가리키는 말이었다.
쩌억!
내가 뻗은 발아래로 대리석 바닥이 갈라졌다. 딴생각하다 보니 출력을 과하게 올라간 탓이었다. 이것 역시 컴퓨터나 인공지능이라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뭐, 여기까지.”
내가 혼잣말하며 호흡을 조절했다.
훈련은 매일매일 거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전투력이란 어느 날 갑자기 상승하는 게 아니다. 꾸준히 쌓아온 노력과 땀의 결정체다. 강해지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하루아침에 강해질 수가 없다.
설사 막대한 돈을 지불해 더 좋은 의체를 가지더라도 훈련과 노력 없이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건 이미 수없이 실전에서 증명됐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혼잣말하는 이유가 있다.
‘쥬페도 정말 무의미한 도전을 하는군.’
나는 외투를 걸치며 방을 나섰다. 내 망막에 오늘의 일정이 떠올랐다.
-쥬페 쿠스토리아와 대련.
20분 뒤에 있을 예정이었다.
‘쥬페가 자산을 탈탈 털어 최신형 전투의체를 새로 구입했다지…….’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거절했다간 내가 겁을 먹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전투 전문가라면 나와 쥬페의 차이를 잘 알겠지만, 대다수는 그저 문외한이니까.
‘쥬페도 군인이야. 나와의 역량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쥬페와의 대련은 내게 자그마한 사건이었다.
“아, 도련님. 일어나셨군요. 아까 소리가 들리던데…….”
하인이 내 방문 앞을 지나가다가 말을 걸었다.
“실수로 바닥을 좀 깼습니다.”
“그렇군요. 보수해 놓겠습니다.”
하인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복도를 걷다가 헤일라스의 서재를 응시했다. 헤일라스는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바바라의 정보에 따르면, 네메시스와 내통하며 니콜라오스 암살을 계획하고 사주한 사람은 바오 자카난이다.’
바오 자카난은 제국의 고위 관료다.
직위는 정보보위부 수석 서기관이니 뭐니 했는데, 근위대장보단 밑이라도 꽤 높은 직위인 건 확실했다. 다짜고짜 찾아가 추궁할 지위는 아니었다.
‘머리가 복잡하겠지. 특히나 헤일라스는 신중한 성격이니까.’
바바라의 정보가 거짓일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리고 제국은 바오 자카난이 내통자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훗날의 더 큰 계획을 위해서 말이지.’
헤일라스가 모르는 계획도 제국엔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여기서 헤일라스가 바오 자카난을 추궁해서 내통자인 걸 밝혔다간 상부에서 준비한 계획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제국은…… 근위대장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반역자’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등골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난 근위대의 생도이자 쿠스토리아 가문의 양자다.’
그러나 다른 비공식 직위도 있었다. 갑자기 몸이 떨렸다.
‘아키에스 도미니, 황제의 감시자.’
조만간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키누안에게 전부 보고해야 한다.
‘내가 보고하면, 쿠스토리아 가문이 제국에게 숨기려고 했던 사적 임무가…… 황실의 귀에 들어간다.’
나 역시도 제국의 감시 체계 중 하나였다.
‘제국은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다.’
어쩌면 나와 일레이의 일탈도 낱낱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면 알수록 두려웠다. 차라리 힘과 폭력으로 인한 억압이라면 이토록 겁먹지 않을 것이다.
제국의 통치력은 억압과 폭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철저한 감시와 통제에 있었다.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조차 모호했다. 믿고 있던 자가 내통자이고, 적대하던 자는 아군이다. 이런 정보 교란과 위장이 제국에는 비일비재할 것이다.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건 황제뿐이었다.
내가 중요한 생각을 하는 동안, 사소한 일이 눈앞에 닥쳤다.
난 쿠스토리아 가문의 훈련실에 도착했다. 쥬페가 몸을 풀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쥬페의 추종자들이 서 있었다.
“루카, 형님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구나.”
“무리하다니요. 저도 형님과 이런 자리를 한번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건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 힘의 격차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싶긴 했다.
퉁, 퉁.
난 가볍게 발을 굴렀다. 합성금속으로 이뤄진 바닥의 반발력이 좋았다.
쿠스토리아 가문의 훈련시설은 근위대 못지않게 뛰어났다. 바닥은 금속이라 내가 전력을 다해 뛰어도 부서지지 않을 수준이었고, 천장의 높이는 어지간한 2층 건물만 해서 펄쩍 뛰어도 머리가 부딪치지 않는다.
웅성, 웅성.
훈련실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내 양어머니 에바 쿠스토리아도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눈매는 서글서글했으나 동공 안쪽의 눈빛은 항상 차가웠다.
난 에바가 참으로 불편했다. 그녀에게선 그 어떤 유대감도 느끼지 못했다. 내게 너무나 머나먼 남이었다. 차라리 사사건건 부딪치는 쥬페가 더 편하고 정이 갔다.
키이잉, 킹!
요란한 소리가 났다. 쥬페는 새로운 전신의체를 자랑하듯 출력을 높였다가 줄이길 반복했다.
‘신경계 과부하 지점까지 성능을 절묘하게 끌어낸 전투의체.’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섬세하게 조율한 모양이었다. 돈이 많은 귀족이기에 할 수 있는 짓이었다.
캉!
앞으로 나온 쥬페가 두 주먹을 부딪쳤다. 손등의 인공 피부가 찢어지면서 불티가 튀었다.
“루카, 준비는 됐나?”
쥬페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형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요.”
나도 훈련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몸은 아까 충분히 풀어뒀다. 신경계 활성화도 끝났고, 감각도 최고조였다.
우린 자세를 취하며 거리를 좁혔다. 난 쥬페를 관찰했다.
‘쥬페는 기본기에 충실한 제식 전투술을 구사하는군. 꾸준히 단련했는지 단단한 느낌이 있어.’
쥬페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듯했다.
기잉!
우리의 손발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공수를 교환하는 식이었다.
‘완급 조절도 수준급이고, 동작의 끝마다 제동도 확실하게 걸려. 이 정도면 제국의 군인이라고 말할 만해.’
나는 냉정하게 쥬페의 동작을 꿰뚫어 봤다.
휘릭!
공방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점차 빨라졌다. 조만간 둘 중 하나는 흐름에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내가 못 따라가진 않겠지.
키이잉!
쥬페가 의체 출력을 높였다.
카- 앙!
의수와 의족이 부딪힐 때마다 거친 소리가 났다.
휙!
나는 내 안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보았다. 나는 머리를 젖히며 피했다.
쥬페는 내 약점인 생체 부위를 노렸다. 전신의체인 쥬페와 달리 나는 머리와 몸통이 생체다. 자칫하면 일격에 죽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된다.
‘현명한 판단이다, 쥬페. 대련이라고 봐줄 건 없어.’
이 정도로 악착같이 덤벼야 나를 이길 승산이 조금이나마 올라갈 테니까.
‘내게 도전한 이유가 있긴 하네.’
근위대 생도 기준으로 1, 2년 차는 충분히 꺾을 실력이 쥬페에게 있었다. 잘 조율된 전투의체 출력과 성능만 보자면 수료를 앞둔 생도와도 비등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쥬페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실전 경험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는 경험해 보지 못한 변칙적인 상황이나 행동에 금방 무너질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놀아줬어.’
쥬페가 힘겹게 갈고 닦은 칼날은 애석하게도…… 내 목덜미에 닿기엔 턱없이 무뎠다.
명문가의 도련님에게 현실을 알려줄 차례가 되었다.
나는 쥬페의 눈을 쳐다보며 주먹을 뻗는 척했다. 그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방어를 위한 준비였다.
그러나 내 진짜 공격은 하단이다.
탁!
난 보지도 않고 쥬페의 발목을 걷어차듯 걸었다. 시선을 빼앗으며 사각에서 공격하는 기본적인 속임수다.
“커억!”
쥬페가 비틀거리다가 넘어졌다. 의체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기에 이런 공격으로도 넘어지는 것이다.
나는 쥬페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크읍.”
쥬페가 벌떡 일어나며 눈을 부릅떴다. 각오를 다진 듯이 그의 전신의체가 비명에 가까운 굉음을 질러댔다. 진동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도 이제는 합을 맞추듯 움직이지 않았다. 쥬페의 공격을 살짝 피하며 어깨로 그를 밀었다. 그의 균형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재빠르게 주먹을 날렸다.
내 주먹이 쥬페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직!
쥬페의 가슴에서 금속 파편만 튀었다. 내 주먹이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건 나도 놀랐다.
‘최신형은 최신형인가.’
방호력만큼은 값어치를 하는군.
“으아아아아-!!”
쥬페가 이때다 싶었는지 내 팔을 잡아당겨서 바닥으로 내던지려 했다.
키이이잉!
나는 순간적으로 사고보다 빠르게 행동했다. 실전과 훈련으로 새겨진 전투 본능이었다.
휘릭!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파악한 사람은 이 자리에 몇 없을 것이다. 나는 뒤로 돌면서 쥬페의 목을 팔로 감았다.
콰드득!
그리고 꺾는다. 동작이 화려할 필요는 없었다. 부품이 뒤틀리며 척추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전신의체니까 목이 꺾인다 해서 생명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나는 쥬페 목을 꺾고 나서 한 걸음 물러났다. 곧 쥬페가 고꾸라지며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
휙!
내 코앞으로 쥬페의 주먹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 정도의 반사신경이 아니었으면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방심했다. 아직 멀었구나, 루카.
“후욱, 후욱.”
쥬페는 목이 반쯤 꺾인 채로 서 있었다.
“흠, 기능이…… 많네요. 저도 가지고 싶을 정도로요.”
난 중얼거리며 감탄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인공 척추 말고 다른 경로로 신경계 신호를 보내는 기관이 쥬페의 의체에 있는 모양이었다. 저런 기능이 있다면 불리한 상황을 역전할 방책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끼릭, 끼릭.
불쾌한 소음이 쥬페에게서 흘러나왔다. 움직인다고 해서 꺾인 목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아, 아직, 끝, 나지 않았다, 루, 루카.”
쥬페의 전신의체는 기능 저하가 두드러졌다. 보조 신경계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심지어 쥬페의 추종자들마저 안색이 나빴다.
우린 본디 인간이다. 아무리 기계 신체라지만 ‘인간의 형태’에서 벗어난 꼴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쥬페의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 기괴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아드님들.”
보다 못한 에바가 나섰다.
에바는 쥬페의 추종자에게 눈짓하더니 서둘러 이송하라는 뜻을 보냈다. 저 꼴로 더 싸웠다간 쥬페의 평판에 악영향이 올 것이다.
“루카, 직접 보니 실력이 더 대단하구나. 그 능력으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네. 그이도 슬슬 늙어가고 있거든…….”
에바는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는 놀랍게도 가슴이 닿을 정도로 날 깊게 끌어안았다. 겉보기엔 다정다감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야. 더는 안 돼. 넌 영특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 거라 믿는다.”
단내 나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끈적거리며 들러붙었다. 에바의 경고였다.
내가 에바에게 줄곧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날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경쟁자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아버지 헤일라스, 죽은 니콜라오스, 질투하는 쥬페, 그리고 지젤. 그들은 싫든 좋든 간에 나를 내부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에바 쿠스토리아에게 나란 존재는 그저 외부인이었다. 그녀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