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9)
배드 본 블러드-9화(9/197)
009
나는 격투술 교관 키누안을 찾아갔다. 생도가 개인 용무로 교관을 방문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나 기초 훈련이 끝난 3년 차 정도 되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자신만의 훈련 커리큘럼을 만든다.
“자네가 날 찾아오다니 별일이군.”
집무실 안쪽에 앉아있던 키누안이 날 보며 말했다. 그도 다른 교관과 마찬가지로 은퇴한 근위대원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일단 앉게. 차라도 마시겠나?”
키누안은 느슨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차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후릅.
차는 떫고 썼다. 나는 겨우 무표정을 유지했다. 상대가 상급자만 아니었으면 이딴 걸 돈 주고 처먹냐고 욕을 내뱉었을 것이다.
키누안은 뜨거운 차의 김을 코로 맡더니 조심스레 한 입 머금었다. 다도를 즐기는 유유자적한 모습이다.
나는 키누안을 살폈다. 그는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군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키누안은 강하다. 그의 밑에서 격투술을 배울 때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뭔가 달랐다.
“격투술이라면 자넨 더 배울 게 없어. 이미 훌륭하지. 역대 생도를 뒤져봐도 자네보다 격투술에 능했던 생도는 몇 없을 거네.”
다르게 해석하자면, 나보다 뛰어난 이가 없진 않았다는 뜻이다.
“생도 수준에서 우수한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질질 끌 것도 없다. 나는 용건을 꺼냈다.
“욕심을 부릴 건 없어.”
“저는 근위대원과 코라의 성기사가 싸우는 걸 구경만 하다시피 했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그러니까 생도 신분인 게 아닌가? 나도 기록과 보고서를 읽어봤네. 자넨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했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했지.”
키누안이 피식 웃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전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클로드를 비롯한 생도 동기들은 내 지휘 아래에서 사망했다. 근위대원의 개입이 없었다면 전멸했을 것이다
“최대치의 전력을 발휘해도 이기지 못할 상대였지. 자네 잘못은 아니야. 그건 상부의 실패네. 실제로 자네에 대한 평가는 저번 임무 이후로 더욱 높아졌어.”
“상부의 평가는 상관없습니다. 제겐 예상 밖의 강자를 만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키누안이 입을 다물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키누안의 말을 기다렸다.
“……시간은 자네의 것이네. 자네는 앞으로 경험을 더 많이 쌓을 거고, 더 좋은 의체를 받겠지. 서두르지 않아도 강해질 거야. 이번 오판으로 생도를 잃은 상부에서도 신중을 기할 거고.”
키누안이 타이르듯 말했다. 나는 꼿꼿하게 목과 등을 세워 그를 응시했다.
“교관님도 저와 같은 두 자리 숫자의 보육원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키누안도 나와 같다. 저 밑바닥에서 올라온 이레귤러였다.
한 자리 숫자의 보육원과 두 자리 숫자의 보육원은 질적으로 달랐다. 제1에서 9보육원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듣기론 귀족 가문의 사생아도 다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제국의 지원도 모자람 없이 받았다.
나와 키누안은 두 자리 숫자 보육원 출신이다. 인재가 될 가능성이 낮기에 제국의 지원이 열악했다.
하지만 소수의 뛰어난 자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제국은 공정하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그러했다.
그러나 일레이의 말에 따르면, 제국은 이레귤러를 통해 신민에게 그런 착각을 심어준 것에 불과했다.
……불온한 생각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 된다.
나는 침을 삼키며 키누안의 말을 들었다.
“루카, 자네는 나보다 나은 자질을 가졌네. 생도 시절의 나는 대부분 훈련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했어. 내 동기들은 날 보며 숙덕거렸지. 근위대원이 될 자격이 없는 놈이 들어왔다며 말이야.”
예상 밖의 말이었다. 교관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근위대에서도 공적을 인정받은 자만 교관이 될 수 있었다.
나는 키누안이 생도 시절에 열등생이었다는 걸 믿기 힘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생도 중에서 열등생이라는 이야기다. 제국 전체로 보면 특출난 인재였을 터다.
“믿기 힘든 모양이로군.”
키누안이 침묵하는 날 보며 웃었다.
“교관님의 이력을 본 적이 있으니까요. 특히…….”
키누안은 현역 시절에 굵직한 전투에서 빠짐없이 큰 전공을 세운 사내다. 근위대로 복무하면서 받은 무공훈장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비전투용 의체로 적진에 들어가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습니다.”
키누안은 벨라토 연방과 교착상태를 몇 달이나 유지하던 전선에서 위장 투항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키누안이 사용했던 의체는 출력이 낮아 전투용으로 부적합한 일상용이었다.
벨라토 연방은 비무장한 키누안을 보고 투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참사가 벌어졌다. 키누안은 자신을 심문하는 장교를 죽인 다음, 회의실로 쳐들어가 당시 야전을 맡던 장교들을 몰살해 전선의 일시적 마비를 끌어냈다.
제국은 그 틈을 타 공세를 펼쳤고, 연방은 전선을 물리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세부 기록은 내 권한으로 볼 수 없어.’
키누안이 어떻게 그런 재주를 부렸는지는 나는 모른다. 벨라토 연방의 군인도 바보가 아닐 터다. 상식에서 벗어난 무언가가 키누안에게 있었기에 그들이 당한 것이다.
“자넨 호기심이 많군.”
이건 칭찬이 아니다. 근위대에서 호기심이 많다는 것, 아니, 제국의 군인에게 저 말은 경고였다.
권한 이상의 것을 알려고 하지 말 것.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황제에게 충성하고, 제국 신민을 보호할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불과 일이 년 전의 나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나는 변하고 있다.’
제국의 군인이 가져야 할 덕목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망할 일레이 때문이다. 녀석이 내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례했습니다, 교관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교관 중에선 키누안이 가장 우수했다. 그러나 설득당하지 않는 상대에게 집요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교관을 찾아갈 생각인 거냐?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이도 많을 거다. 실력 못지않게 평판도 중요하지.”
“남에게 아부하며 출세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제힘으로 올라설 생각입니다. 제겐 아무런 배경도 없으니까요.”
키누안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무릎을 잡으며 일어섰다.
“따라오게, 루카.”
* * *
키누안은 일정이 비어있는 훈련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틀 위의 렌즈가 열리면서 방문자 식별을 시작했다. 곧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훈련실의 벽과 바닥은 전부 차가운 재질의 금속 타일이었다. 비어있는 공간이 많아서 숨소리조차 울릴 것 같았다.
“넌 항상 우수한 생도였지.”
키누안은 훈련실 중앙까지 걸어가며 말했다. 그는 뒷짐을 진 채로 나를 보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특히 격투술 성적이 좋으니 담당 교관으로서 뿌듯했어. 지금까지 내게 배운 걸 써보게, 루카.”
나는 바로 자세를 잡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의아할 것도 없었다. 이게 시험이라면 통과해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키누안의 전투 기술을 배울 기회였다.
기이잉.
내 오른쪽 의안이 키누안의 전신의체를 분석했다. 출력이 낮은 일상용 의체였다.
다른 교관이나 근위대원은 평시에도 전투용 수준의 사양을 사용한다.
‘의수의 완력만 따져도 내가 열 배는 강하다.’
전반적으로 내가 훨씬 더 좋은 사양이었다. 내게 불리한 점이라곤 전신의체가 아니기에 생체 부위의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뿐이다.
나는 호흡까지 가다듬으며 전력을 끌어 올렸다.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키누안은 저런 낮은 사양의 의체로도 나 같은 생도는 우습게 해치울 수 있는 강자다.
“나는 뜸 들이는 걸 가르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기본부터 까먹은 모양이로군.”
키누안이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말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또각.
금속 타일이 차갑게 울렸다.
제국의 격투술은 살상력과 효율을 추구한다. 타격은 최단 최속으로 급소를 노린다.
휙!
나는 모범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발을 구르며 몸의 탄력을 붙였다. 견제용으로 뻗은 주먹은 키누안의 안면을 노렸다. 가볍다곤 하지만, 제대로 맞는다면 머리통이 박살 날 터다.
스륵!
키누안이 부드럽게 고개를 기울여 내 주먹을 피했다. 나도 이런 공격에 키누안이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타격하며 거리를 좁히고…….’
나는 반대편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손가락은 언제든 키누안을 잡을 수 있게 느슨하게 벌렸다.
내 손아귀에 키누안의 팔다리가 걸리면 관절 채로 비틀어서 뽑아버릴 수 있었다.
탁!
키누안은 자신의 손등으로 내 손목 안쪽을 가볍게 치며 밀었다. 별거 아닌 동작에 내 몸이 기울었다.
‘어?’
내 팔과 몸은 궤도를 벗어난 열차처럼 휘청거렸다. 균형을 잃은 발이 주춤거렸다.
나는 넘어지는 몸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공격의 연속성이 끊어지면 내가 당할 터다. 이미 나는 키누안의 공격 범위 안에 들어선 상태였다.
휘릭!
나는 더 힘껏 넘어지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발을 끌어 올려 키누안의 턱을 노렸다.
내 생각에도 날카로운 임기응변이었다. 키누안도 이건 피하지 못할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나는 눈동자를 움직여 키누안을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나는 내가 당할 거라고 확신했다.
툭!
키누안이 손바닥 아래로 밀 듯이 내 발차기를 쳐냈다.
휘리리리릭!
내 몸은 수레바퀴처럼 허공에서 빙빙 돌았다.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벌러덩 넘어졌다.
“도대체…….”
나는 의문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일종의 감탄이었다.
키누안은 나를 가볍게 툭툭 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 몸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내 발차기 공격을 받아치면서 힘의 방향을 비틀었다. 제국의 교범에는 없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키누안을 찾아온 게 정답이었다.
“개인적인 호신술이네.”
키누안이 넘어진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제가 배울 수 있…….”
나는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키누안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손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의 몸이 통제를 잃고 흔들리며 떨렸다. 뇌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편법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키누안이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