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93)
배드 본 블러드-93화(93/197)
093
나의 생도 생활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밀도 있는 4년을 보냈다. 다른 생도들의 얼굴에는 앳된 티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거울에 비친 나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쏴아아아.
나는 샤워실의 물줄기를 맞았다. 오늘은 정신이 맑았다.
‘내년이면 나는 근위대원이 된다.’
샤워를 마친 나는 재차 거울 앞에 섰다. 수술 자국과 전장의 흉터가 문신처럼 몸에 박혀있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몸도 많이 커졌다. 육체의 성장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어깨도 넓어지고 몸통은 단단해졌다.
‘살아남기 위해 단련했지만 버릴 몸이다.’
피와 살은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전투를 할 때마다 약점인 생체 부위를 보호해야 했다.
‘더 강해지려면 전신의체로 몸을 바꿔야 해.’
그러면 더는 자질구레한 공격에 죽을까 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근위대 사양의 전투의체는 기본적인 방호능력부터 압도적이었다. 평시에도 전투복을 입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육체를 버린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전신의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제국에는 수두룩하다.
하지만 전신의체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가끔 있다. 귀족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적 멸시와 손해를 감수하며 생체를 유지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전신의체로 몸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지.’
전신의체로 바꾸면서 얻는 이점은 대단히 많았다. 잘 관리한 전신의체 귀족이 장수하면 거의 이백 년 가까이 산다. 생물학적 수명의 두 배를 살아가는 셈이었다. 뇌를 제외하고선 온갖 질병과 부상에도 면역이고, 고장 나면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노화로 인한 기량 저하도 현저히 적었다.
외모도 나이를 따라 바꾸다가 중년 정도에서 고정한다. 가장 위엄이 있고 노련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젊거나 어린 외모는 무시당하기 쉽다.
‘뇌의 노화는 어쩔 수 없지만…….’
전신의체의 인간은 정신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불로불사였다.
……나도 피와 살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다.
위이이잉.
나는 샤워실 입구에 섰다. 문틈에서 건조 바람이 나오면서 물기를 날렸다.
스륵.
근위대 생도복을 입은 나는 방에서 나갔다. 복도에는 발소리가 많았다.
“안녕.”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드네.”
“뭐, 그렇지.”
나와 같은 기수의 생도가 복도에 많았다. 평소에는 임무 일정이 달라서 보기 힘든 이들이다. 그러나 오늘은 대부분 숙소에 있었다.
우린 약속한 듯 같은 방향을 걸었다. 익숙한 얼굴이 하나둘씩 합류했다. 동기 생도가 이렇게 다 모이는 건 간만이었다.
나는 저들과 등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전장을 누빌 것이다. 수십 년 뒤에 우리 중에 몇 명이나 살아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과거에 남은 자들을 종종 추억하겠지. 클로드 라모네스, 펠릭스 아이겐……. 어쩌면 나와 일레이도 과거의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저벅, 저벅.
우린 생도 숙소에서 벗어나 근위대 본부 건물로 이동했다. 현역 근위대원들이 매서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 루카.”
본부에 먼저 가 있던 일레이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다른 동기와 인사를 나누고선 내 옆에 섰다.
“또 임무를 마치고 온 거냐?”
내가 일레이에게 말했다. 전날에 쉴 만도 한데 참 부지런했다.
“놀아서 뭐 하겠어. 수석은 이미 그른 것 같지만 뭐라도 해봐야지.”
이번 기수의 수석은 나로 확정이다. 릭 실바 누네즈 사살은 그만큼 큰 공적이었다. 생도 임무를 홀로 깡그리 해치워도 그만한 공을 세우긴 힘들다.
‘일레이는 얼마나 강해졌을까.’
한번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다. 대련이 아니라 실전으로.
난 아직도 아케인 요새 지하의 경험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일레이를 압도했었다.
“네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인가?”
낯선 근위대원이 나와 일레이 앞에 섰다.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하면서 근위대원의 차림새를 살폈다. 근위대 제복만 봐서는 신원이 보이지 않았다.
기잉.
난 감시자 권한으로 상위 네트워크에 접속해 상대의 이력을 확인했다.
‘제10백인대의 부장, 아라칸 펠리데아스’
즉, 제10백부장이다. 펠리데아스는 군인 가문 중 하나였다. 내 동기 중에서도 필리데아스 가문이 있었다.
“옆은 일레이로군. 소문은 많이 들었다. 나는 제10백부장 아라칸 펠리데아스다.”
제10백인대는 근위대에서도 가장 말단 부대다. 그러나 여기서 백부장은 생도로 따지면 수석이나 마찬가지다. 장차 근위대장이 될 수도 있는 재목 중 한 명이다.
‘제10백부장이면 우리보다 많아야 서넛 기수 위다. 안면을 트려고 온 거겠지.’
우리도 근위대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마 너희 둘 중 하나가 내 후임자가 되겠지. 상위 부대로 진급할 시기나 능력으로 보나 너희들이 적절해. 일단 내 부관은…… 일레이 카르티카, 네가 적격이군.”
옆에 듣던 내가 끼어들었다.
“제가 일레이보다 못하진 않을 겁니다.”
흠, 말하고 나니 괜히 발끈한 것 같았다.
“나는 너 같은 야생마를 다룰 기량까진 없다. 넌 너를 강하게 누를 수 있는 상급자를 만나야 해. 난 고삐만 잡으면 알아서 움직이는 부관이 좋거든.”
아라칸이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일레이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그건 제 특기가 맞죠. 봐봐, 루카. 넌 성질 좀 죽여야 한다니까. 그러면 출세가 더 쉬울 거야.”
분하지만, 아라칸의 통찰은 정답이었다. 능력으로 나를 납득시키는 상급자가 나도 편했다.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은 것 같군. 이만 가봐라. 오늘은 너희에게 중요한 날이니까.”
아라칸이 멋스럽게 코트 자락을 흘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계속 걸어간 우리는 본부의 분관에 도착했다. 기하학적인 직선으로 설계된 건물은 단순한 듯했으나 눈을 사로잡는 웅장함이 있었다.
‘무구 전시장.’
제국은 대게 직설적이지만, 군용 시설의 명칭은 특히나 더 명료했다. 이름만 들으면 어떤 목적의 시설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린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면 내부가 어두웠으나 들어서자마자 밝아졌다. 갑자기 전등이 켜진 건 아니었다. 바깥에서 관측이 힘들도록 차광입자가 입구에 커튼처럼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 예비 근위대원들이 왔군.”
입구 복도에서 헤일라스가 말했다. 그는 근위대원 네 명과 함께 서 있었다.
헤일라스는 건물로 들어선 생도들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도 알겠지만 여긴 제국의 1급 보안 시설이다.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기록 장치를 켜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끄도록.”
주변이 고요했다. 다행히 그런 머저리는 없었다.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헤일라스가 웃으며 우리에게 등을 내보였다. 걸어가던 그가 첫 번째 전시실 앞에 섰다.
“근위대 창설 초기의 범용 전투의체 베스티아다.”
유리 너머에는 머리가 없는 전신의체가 활짝 열린 채로 걸려 있었다. 온갖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기계부품일 뿐이지, 그 모습만 보면 인체를 해부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베스티아 옆에는 제원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당대에는 최첨단이었을지 모르나 지금 기준으로는 보급형 수준이었다.
헤일라스는 천천히 근위대의 역사와 함께한 전투의체를 소개했다.
“너희는 제국의 최정예 군인이다. 다른 군인과 다르지.”
근위대 생도의 자부심을 고취할 만한 말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우린 전갑의체만이 아니라 전투의체조차 최고를 사용한다.”
우린 일반적인 군인과 다르다. 그건 사실이다. 돈이 얼마 들어가든 최고의 장비와 의체로 무장한다.
“그리고 근위대의 현세대 범용 전투의체 칼리고다.”
칼리고 앞에서 생도들은 한참이나 멈춰 섰다. 헤일라스도 우릴 기다리듯 한쪽 벽에 기대서 다른 근위대원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칼리고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도 임무 수행을 지속할 수 있게 생존과 방어 위주로 설계된 의체였다.
‘쥬페의 의체에 달려 있던 보조 신경계도 기본 사양으로 탑재되어 있네.’
……즉, 칼리고를 사용하는 근위대원을 죽이려면 머리를 박살 내야 했다. 그전까진 온갖 보조 기능의 도움으로 악착같이 전투 수행이 가능했다. 여러모로 전투의체라는 분류에 잘 어울렸다.
우린 칼리고를 지나쳤다. 복도의 문을 하나 더 지나자 천장의 높이가 아까보다 2배는 더 커졌다.
우우웅.
환기구 작동음이 금속 벽과 바닥을 타고 울렸다.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내 가슴의 고동도 커졌다.
근위대의 상징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갑의체 레기온.’
레기온들이 유리창 너머에 갇힌 듯이 서 있었다. 투구 안쪽은 안광이 없어 허전하리만큼 어두웠다.
레기온들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가장 익숙한 레기온을 응시했다.
‘근접 전문화 레기온, 모델명은 헥토르.’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코라의 성기사와 싸우던 레기온이었다.
헥토르는 다른 레기온보다 출력도 더 높고 방호력도 우수했다. 구조와 기능도 단순화해서 신뢰성이 높았다. 가장 험하게 다룰 수 있는 레기온이다.
옆을 보니 일레이는 아까부터 다른 모델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경량화 레기온, 아킬레우스.’
나도 일레이 곁에서 아킬레우스를 응시했다.
“말이 경량형이지.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모델이야. 기동성이 좋다는 건 모든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일레이가 내게 설명하듯 말했다. 녀석은 아킬레우스가 끌리는 듯했다. 내가 생각해도 일레이에게 적합할 것 같았다.
실제로도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근위대 레기온의 절반을 차지했다. 헥토르도 근접 전문화라지만 전천후로 사용 가능한 범용 레기온에 속했다.
나는 다른 레기온도 살폈다.
‘원격 전문화 레기온, 헤라클레스.’
포격과 저격을 위한 레기온이었다. 거포나 장비할 수 있게 어깨와 옆구리에는 별도의 거치대가 있었고, 다른 레기온보다 다리가 굵었다. 그것도 모자라 유사시에는 고정 지지대가 다리에서 나와 바닥에 꽂혔다.
‘원거리 전문 주제에 덩치는 헥토르보다 더 크군.’
헤라클레스는 어차피 기동성이 떨어지기에 회피를 포기하고 갑주를 오히려 더 덧댄 형태였다.
나는 다른 레기온 모델도 쭉 훑어봤다.
생도들은 들뜬 얼굴로 레기온을 보고 있었다. 레기온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레기온은 다른 무기와는 다르다.
‘레기온은 우리의 정신을 좀먹는다.’
이젠 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 이 자리의 생도 중에서 나보다 레기온의 본질을 잘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키에스 전투술과 레기온.
본질적으론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양립이 불가능하다. 둘 다 인간의 뇌를 고장 날 때까지 반복해서 혹사한다.
그 대단한 키누안조차 아키에스 전투술의 후유증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헤일라스도 내게 레기온을 경계하라는 투로 조언했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근위대원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루카, 대장님께서 부르신다.”
근위대원이 내게 말했다. 일레이가 힐끗 나를 쳐다봤다.
나를 특별히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특혜라고 생각하는 이도 이젠 없다. 나는 근위대장의 양자이니까.
그리고 암묵적으로 난 동기 생도의 대장이기도 했다. 나와 같은 기수를 모아 행동하거나 전달할 일이 생기면 나를 통하는 게 당연했다.
날 부른 헤일라스는 말없이 전시장 안쪽에 따로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갔다.
끼익, 쿵.
문이 닫혔다.
“바오 자카난에 대해 이야기할 게 있다, 루카.”
헤일라스가 휴게실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바오 자카난.’
니콜라오스 암살의 사주범이라고 추측되는 인물.
그러나 그 이야기를 여기서 해도 된단 말인가? 지금 우리 주변에는 근위대원 네 명이 서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헤일라스는 진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들은 믿을 수 있어.”
헤일라스의 말이니 거짓은 아니겠지.
‘그럼 이 자리의 근위대원들은 제국보다 헤일라스에게 더 충성하는 건가?’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좋아해야 할지 화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들은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제국에 봉사한 근위대원이다. 그러나 같은 가문도 아닌 헤일라스를 위해 비밀을 지킬 것이다.
“……일레이의 허물을 덮은 자네가 제국에 충성하지 않아서 그랬던가? 수 년을 같이 지낸 너희도 그러한데, 수십 년을 전장에서 같이 뒹군 우리가 자네와 일레이보다 더 짙은 유대를 가지면 가졌지 덜하진 않아.”
아아, 그렇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여전히 난 경험이 부족하다. 그레이스의 말이 떠올랐다. 난 어리다. 방금 그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헤일라스에겐 ‘일레이’가 몇 명이나 더 있을 것이다. 위험한 비밀을 공유하고 믿을 수 있는 전우 말이다.
“터놓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저와 일레이가 아케인 요새에서 했던 일탈을 알고 계신 겁니까?”
“정황을 보면 뻔하지. 그 정도는 내 재량으로 넘어가 줄 수 있는 사안이네. 그 의도가 제국에 대한 반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처분하기에 자네들은 아까운 인재였거든.”
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튕겼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싶은 자해 충동을 겨우 참았다. 우리의 필사적인 노력이 갑자기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졌다.
“이 자리에서 바오 자카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근위대의 공권력을 쓰시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쿠스토리아 가문의 선에서 해결하려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네. 우린 바오 자카난이 테러리스트와 내통한 증거를 찾아 정식으로 체포할 생각이네. 그러면 공적인 일로 만들 수 있지.”
헤일라스가 균형을 깨뜨렸다. 그는 사적인 일에 공적인 역량을 사용했다.
“주제넘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자네가 주제넘은 언행을 하는 건 익숙하니 해도 되네.”
헤일라스의 농에 다른 근위대원이 어깨만 들썩이며 낮게 웃었다.
“바바라의 정보가 거짓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바라는 바오 자카난이 배신자라는 걸 제국에 보고했고, 상부에서 어떤 큰 계획을 위해 방치해 두는 것일 수도 있죠. 우리가 개입하면 제국의 계획이 흐트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바오 자카난을 계속 조사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제국 황실은 이미 쿠스토리아 가문의 동향을 다 알고 있다. 내가 직접 보고했다. 그리고 내 보고가 없더라도 쿠스토리아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끝내, 헤일라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잖아. 이 정도 노력이면 니콜라오스도 만족할 거야.’
난 헤일라스가 멈추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자네의 말이 백번 맞네. 훌륭한 통찰이야. 만약 내가 상부에 니콜라오스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보고한다면…… 더는 손대지 말라고 말하겠지. 바오 자카난 정도 되는 고위직이 내통자인데 아직 숙청당하지 않은 걸 보면, 내가 모르는 다른 계획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봐도 되네.”
내 설득이 먹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루카, 니콜라오스는 내 아들이네.”
헤일라스가 단 한마디로 주장을 관철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들이 죽었다. 그 감정의 깊이를 내가 알 순 없겠지. 헤일라스가 감정을 쉽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니 더더욱이.
헤일라스는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제국을 들쑤시고 싶은 심정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권력과 정보력을 총동원해 제국을 들쑤신다면 관련자들을 진즉 모조리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헤일라스는 그러지 않았다. 근위대장이기 때문이다. 그도 제국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난 자네가 니콜라오스처럼 죽어도 똑같이 행동할 거네.”
헤일라스가 덧붙였다. 난 저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감시자는 지켜보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