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97)
배드 본 블러드-97화(97/197)
097
나와 이스칸은 폐건물 진입 전에 장비를 점검했다.
‘충격권총은 파괴력이 너무 강해.’
충격권총 루이나는 대인전에서 자주 쓸 총이 아니다. 애초에 릭 실바 누네즈를 상대하려고 만든 전용무장이었다.
키릭.
난 근위대의 보급권총을 매만졌다. 매끄럽게 부품이 움직였다. 잡다한 기능이 없어 신뢰성이 높은 구조의 권총이다. 위력이 약한 게 흠이지만 정밀사격으로 극복하면 그만이다.
키이잉.
난 칼날을 반쯤 뽑았다. 크루시스의 날이 시퍼렇게 빛났다. 나는 총보단 이쪽을 선호했다.
휘릭.
그리고 일레이의 선물, 그라켄 부트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단검 그라켄 부트는 별다른 관리가 없어도 새하얀 날을 날카롭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라켄 부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에퀘시안에게서 노획했나?”
이스칸이 그라켄 부트를 알아보며 말했다.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습니다.”
“귀한 물건이야. 좋은 친구를 두고 있나 보군.”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이스칸은 내 긍정이 의외인지 눈을 살짝 치켜떴다가 웃었다.
우우우웅!
아크바란 방향의 상공에서 비행체의 울림이 퍼졌다.
우린 몸을 움츠리며 소리가 난 곳을 응시했다. 공중차량 한 대가 폐건물 앞에 서더니 사내 한 명이 내렸다. 그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다가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안에 뭔가 있긴 있나 보군. 계속 사람이 들어가는 걸 보니 말이야.”
우린 뜸을 들이다가 폐건물로 걸어갔다. 외벽에는 감시 장치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우린 어두운 내부로 걸어갔다. 불빛조차 없이 서늘한 복도가 보였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통로다.’
버려진 건물이 아니었다. 사람이 오간 흔적이 보였다. 바닥의 먼지도 발자국을 따라 찍혀 있었다.
“저 앞에 누가 있습니다.”
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 정도는 이스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내가 신호할 때까지 폭력은 집어넣어둬. 대화로 해결할 수도 있으니까.”
복도가 지나자 공간이 드러났다. 사방이 막혔고 창문조차 없어서 일반적인 생체 시야로는 한 치도 보기 힘든 곳이었다.
기잉.
사이버네틱 의안의 안광만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내부에는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우릴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 벌써 오셨습니까? 예약 시간까진 좀 남았으…….”
“등신 새끼야! 손님이 아니잖아!”
“뭣!”
사내들이 뒤늦게 소리를 질러대더니 총구를 우리에게 겨누었다. 광학식 조준기의 붉은 점이 우리의 이마에 찍혔다.
“워, 워, 진정하시죠. 저도 손님으로 온 거니까요.”
이스칸이 양손을 들며 항복하듯 말했다.
“이 새끼, 넌 누구야? 손님? 우린 백 퍼센트 예약제야, 병신아.”
세 명의 사내 중에서 대장인 듯한 자가 권총을 삐딱하게 이스칸에게 겨누었다. 그는 눈앞의 사내가 상급 근위대원인지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협박하려면 총이 아니라 이 방을 통째로 날릴 수 있는 폭탄을 들고 있어야 한다.
“오늘은 좀 예외로 해주시죠. 저도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찾아온 겁니다. 여기 말곤 제대로 서비스해 주는 곳이 없다고 들어서요.”
이스칸은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그는 그저 그럴싸하게 말을 던져서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근데 왜 둘이서 와? 장난해?”
사내는 총을 단단히 겨누고 있기에 바로 공격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어디서 정보를 듣고 찾아왔는지 궁금하겠지.’
그걸 알기 전까지 우리를 무작정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구슬리는 척이라도 할 터다.
“이쪽은 제 경호원입니다. 처음인데 혼자서 올 순 없지 않습니까.”
“이 애새끼가?”
“실력은 좋습니다. 이 녀석 머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한번 당겨보시죠.”
“뭐? 우리가 못할 줄 알아?”
“죽어도 괜찮습니다.”
“하, 하하하, 미친 새끼. 뭐…….”
사내가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 그는 말하다가 순식간에 총구의 방향을 바꿔서 나를 조준했다.
탕!
총성이 일었다. 나는 진작 손가락의 움직임을 읽고 머리를 기울였다. 총알이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내들의 안광이 커졌다. 그들은 놀란 듯이 숙덕거렸다.
“……경호할 실력은 되는군. 이 정도 실력자를 고용할 정도면 꽤 부유하신가 봅니다?”
사내의 말투가 바뀌었다. 당장 우리와 싸우면 승산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다.
“크레딧이 아닌 현물 지급도 가능합니다.”
디지털 자산인 크레딧은 쉽게 추적을 당한다. 음지일수록 크레딧보단 다른 방식의 대금을 선호했다.
“그래서 어디서 소개받고 오셨습니까?”
이야기가 풀리고 있었다. 그러나 경계심은 여전했다.
“비밀로 해달라고 하더군요.”
“흐음, 그거 이상하네요. 다른 손님에게 소개를 받은 거면, 이런 불필요한 마찰도 없었을 텐데요.”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비밀로 해달라길래 비밀로 하는 것뿐이죠.”
이스칸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일었다. 나는 세 사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의 태도가 바뀌면 단번에 제압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이런 식의 방문은 곤란하니까요. 제대로 소개받아 같이 오시면 받아 주겠습니다.”
사내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우리가 나가면 그들은 바로 장소를 바꿀 것이다. 그리고 ‘단골’에게만 따로 연락해 새로운 장소로 언질을 주겠지.
‘철벽같은 태도로군. 음지에서 장사하려면 저래야겠지.’
이쯤 되면 저들이 무얼 팔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매춘과 약물 따윈 하층 구역에서도 실컷 할 수 있었다.
나는 이스칸의 신호를 기다렸다. 두 명을 죽이고, 한 놈만 살려서 고문하면 그만이다.
“절 여기서 내치시면 계속 장사하시기 힘들 겁니다. 전 앙심이 많은 성격이라서요.”
이스칸이 아직도 말로 해결하려는 듯이 대화를 시도했다.
“뭐, 이 시발놈이!”
대장이 욕설을 내뱉으며 이스칸을 겨누려 했다. 그리고 내 손도 움직였다.
“너흰 눈앞에 계신 분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총을 겨눌 생각도 못 할 거다. 후회하고 싶다면 덤벼봐. 가족이나 친구가 있나? 다 같이 뒈질 거야. 너 하나 때문에.”
난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이스칸이 대단히 높은 신분의 귀족인 것처럼 꾸미며 말했다. 그리고 내 말은 대부분 사실이다.
대화로 끝나지 않으면 죽는 건 저쪽이다.
사내들이 고민하더니 총구를 내렸다. 나도 총구를 느슨하게 떨어뜨리며 관망했다.
“……우리가 뭘 파는지 알곤 있습니까?”
우린 모른다. 이걸 어떻게 받아칠지는 이스칸의 역할이다.
“쾌락을 사러 왔죠. 저도 공범이 되는 게 그쪽 입장에서도 안전하지 않습니까?”
음지의 사업이라면 다 통용되는 두리뭉실한 말이다. 이게 먹힐지 말지는 모르겠다.
“후우,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이렇게 해주는 경우는 원래 없습니다. 예약도 아니고 정식 소개도 아닌 사람을 손님으로 받는 일은 결코 없죠.”
“사례는 넉넉하게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사내가 문을 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지긋지긋한 지하로군.’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지하 통로를 쓰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난 아케인 요새를 경험한 이후로 지하 통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내는 혼자서 우리를 안내했다. 나머지 둘은 다른 손님을 안내해야 하는 듯했다.
저벅, 저벅.
지하 통로로 들어선 사내가 전기 랜턴을 들었다. 아무리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어도 조명 아래보다 편한 시야는 없다.
“예약하신 게 아니니 남는 애를 밀어 넣어 드리겠습니다. 바꿔 달라고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사내가 앞서가며 말했다.
“제가 무리하게 찾아왔으니, 그 정도 염치는 있습니다.”
“좋아하시는 설비와 장비는 있습니까?”
이스칸도 머리를 힘껏 굴리고 있을 것이다.
‘매춘인가? 하지만 설비와 장비라면…….’
어휘가 묘하게 차가웠다.
그러나 내 사고가 그 말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걷는 통로를 파악하는데 뇌의 자원을 쏟아부었다. 대화는 이스칸의 몫이다.
“따로 준비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제걸 쓸 테니까요.”
“흐음, 그런 타입이시군요. 평소 생각해 두신 게 있나 봅니다.”
“굳이 부끄러운 망상을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하,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일이긴 하죠. 하물며 저희도 그렇습니다. 직접 언급하기보다 에둘러 말하죠.”
분위기가 한결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나는 아까부터 뭔가 턱턱 걸렸다.
난 천천히 입술을 뗐다.
“……실례지만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사내가 걸음을 멈췄다.
“경호원님께서 여기에 대해 궁금한 건 없을 텐데요?”
사내는 다소 짜증스레 대응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지하 통로를 살폈다. 내 의체에선 미미한 모터음이 퍼지고 있었다. 이스칸은 내가 출력을 끌어올렸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여긴 사람이 평소에 지나다니지 않습니까?”
내가 느낀 이질감이 이거였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이 두 명이다. 그들이 지나갔다면 사람이 오간 흔적이 있어야 한다.
‘손님마다 다른 지하 통로를 쓴다면 이해가 간다.’
사내는 대답을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무력을 쓰냐 안 쓰냐가 결정될 테니까.
“무슨 소리십니까? 매번 오가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행동했다.
어색한 미소와 땀방울, 그리고 뻔한 거짓말. 그게 전부 맞물리자, 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저 사내는 우릴 함정으로 유인하고 있다.
휘릭.
나는 사내의 뒤로 돌아서 목을 감았다. 어느덧 단검 그라켄 부트가 그의 턱밑에 닿아있었다.
이스칸은 내 행동을 가만히 지켜봤다.
“목구멍을 찢어버리기 전에 신중히 말해.”
“이, 이보쇼. 손, 손님. 이게 무슨…… 컥! 크우우웁!”
나는 그라켄 부트로 사내의 턱을 찔렀다. 뾰족한 칼끝이 그의 혓바닥에 닿았다. 피가 그의 목을 타고 넥타이처럼 쏟아졌다.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협박은 자칫하면 허풍처럼 들린다.
‘나는 너를 죽일 수 있다.’
그 사실을 상대가 몸으로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네가 움직인 걸 보니 역시 예감이 맞았군. 여긴 손님용 통로가 아니지?”
이스칸이 사내 앞에 서며 말했다.
“이, 쉬, 발. 새, 카악!”
나는 그라켄 부트를 살짝 비틀었다. 상처가 벌어지면서 출혈이 커졌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우린 네가 죽어도 상관없어. 일을 좀 더 편하게 하려고 살려둔 거니까. 네게서 대답을 얻는 게 더 번거롭다고 판단되면…… 이 자리에서 널 죽이고 움직이면 그만이지.”
“알, 알았, 습니다. 그러니까, 칼, 칼부터 치워 주십, 쇼.”
사내가 간신히 말했다.
휙!
그라켄 부트를 빼내서 가볍게 털었다. 핏물이 떨어지자마자 새하얀 칼날은 새것처럼 빛났다.
철커덕, 캉!
나는 사내의 무기를 빼앗아서 바닥에 내던졌다. 비무장이 된 사내가 구멍이 뚫린 턱을 붙잡으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스칸이 차분히 사내를 응시했다.
“우린 너희가 뭘 하든 간에 관심이 없어. 너희 손님 중 한 명에게 볼일이 있으니까. 순순히 우리 부탁을 들어준다면 아무런 일도 없을 거야. 손님 하나만 사라지고, 하던 대로 장사하면 돼. 알았어?”
사내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똑바로 손님용 통로로 안내해. 우린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진 않아, 너를 포함해서.”
나는 이스칸의 말을 듣다가 의문이 들었다.
‘이스칸은 되도록 평화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나였으면 세 명의 사내가 등장했을 때부터 무력으로 제압해 다짜고짜 협박부터 했을 것이다. 두 명부터 빠르게 죽이고 나면, 다른 하나는 두려움에 떨 테니까.
갑작스러운 죽음과 폭력은 사람을 패닉에 빠뜨린다, 패닉에 빠진 사람은 쉽게 진실을 토하는 법이고.
이스칸도 그런 방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번거로운 유화책을 택했다. 근위대원으로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을 자가 말이다.
‘우린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진 않아.’
나는 이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나는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진 않아.’
이스칸은 비살상적인 방법을 선호했다. 아마도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진심일 것이다.
근위대원은 타고난 공격성을 훈련으로 강화한 전투 기계다. 그런 그가 살인을 꺼리고 있었다.
‘레기온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인간성.’
나는 이스칸의 방어기제를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