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98)
배드 본 블러드-98화(98/197)
098
저벅, 저벅.
내게 협박을 당한 사내는 앞장서서 ‘진짜 사업장’으로 우릴 안내했다. 액체 붕대로 찔린 턱을 메운 상태라 피가 더 흐르진 않았다.
“확실히 그쪽 전투술의 훈련된 직감이라는 건 쓸만하군.”
이스칸이 내 뒤에서 말했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직관을 가리키는 것이다. 외부인이 앞에 있기에 우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만약 우리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면 사내를 죽여야 한다. 이스칸은 정말로 사내를 죽이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사용자는 처음 만나신 겁니까?”
“적으로만 자주 만났지. 너도 아는 유일한 사용자는 이미 은퇴했고.”
유일한 사용자, 키누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능력 덕분에 목숨을 여러 번 구했습니다.”
“그 유용성은 나도 잘 알아. 역량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진 못하지만, 안정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게 도와주지. 하지만 우린 역량의 최대치를 높이는 걸 선호해. 고점이 까마득히 높으면 저점에서도 상대를 능가할 수 있지.”
그게 바로 근위대가 레기온을 쓰는 이유였다. 모든 면에서 압도하면 자질구레한 기술은 필요가 없다.
내가 아키에스 빅티마를 극한까지 단련해도…… 레기온에 깃든 평범한 근위대원 한 명조차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내 씁쓸함을 읽었는지 이스칸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난 너보다 실전 경험이 수십 배는 많지. 그런 나보다 더 빨리 이변을 감지했다는 것은 놀랄 만해.”
“제가 없었더라도 함정을 알아채셨을 겁니다.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죠.”
이스칸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통찰력과 육감은 나와 비등하다.
‘근위대원에게 아키에스 빅티마가 필요 없다.’
이게 상부의 결론이다.
나와 이스칸은 대화를 멈추고 통로의 끝을 응시했다. 아주 작은 소음과 진동이 들렸다.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이들의 사업장.’
바오 자카난도 저기에 있을 것이다.
“고객의 신원과 이름은 다 알고 있나?”
이스칸이 사내에게 물었다. 목소리의 주파수가 저음으로 깔려서 위압감이 있었다.
“몇몇은 알지만…… 대부분은 윗선에서 명단을 관리, 아, 젠장, 하여튼 관리합니다. 저 같은 말단에게 내려오는 손님 명단은 가명이죠.”
사내는 말하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말해선 안 되는 정보를 토하고 있었다. 윗선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사업이 생각보다 체계적인 듯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의 목적만 달성하면 너희 사업장에 손댈 생각은 없어. 일이 커지는 건 우리도 바라지 않으니까.”
“누굴 찾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떠나주시면 저도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 위에서 알게 되면 저도 죽은 목숨이니까요. 참고로 내부엔 그 어떤 감시 장치와 시설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온 통로도 마찬가지고요. 고객의 사생활 보호가 최우선인 업장이죠. 사람 한둘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사내도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는 이스칸을 믿어볼 셈인 듯했다. 믿지 않더라도 그에게 남은 방법은 없었다.
우뚝.
사내가 지하 통로의 끝에 섰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꼬불꼬불했고 복잡했다. 제대로 된 굴착 기술도 없이 뚫어뜨린지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통로였다.
무법자들은 잘도 쥐새끼처럼 도시 지하를 뚫어뜨렸다. 여긴 도심지도 아니고 폐허 아래이니 제국도 찾아내기 힘든 시설이었다.
‘여긴 하층 구역의 사업장과는 전혀 다르다.’
하층 구역의 모든 사업은 기본적으로 회색 영역에 속했다.
상층과 하층은 교류하며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다. 정확히는 하층의 일방적인 희생에 가깝지만. 하층의 인력과 자원은 상층으로 올라가고, 상층에서 쓰다 남은 부산물은 하층에서 재활용한다.
그러나 폐허의 무법지대는 그야말로 아크바란의 모든 부산물이 모여 썩어가는 곳이다. 쉽게 말하자면 ‘똥통’이다. 여기선 하층 구역의 갱단조차 꺼리는 일을 태연하게 해치울 것이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사내가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문을 열었다. 우린 그가 허튼짓하지 않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끼이익.
녹슨 철문이 열리면서 내부의 소리가 커졌다. 기압의 차이로 공기가 술렁거리며 새어 나왔고, 고여 있던 냄새도 우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마스크의 옆부분을 눌러서 입마개를 일부 개방했다. 냄새가 선명하게 내 코로 흘러들어왔다.
‘이게 무슨…….’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악취였다. 분리와 분석조차 어려웠다. 너무나 많은 냄새가 서로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 감각을 이스칸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그의 미간에도 주름이 파였다.
소변과 대변, 그마저도 신선한 것과 부패한 것이 뒤섞여 있다. 그 너머로는 기름과 쇠 비린내. 주기적으로 뿌리는 세척용액의 독한 향. 그러고도 냄새를 완전히 지우지 못해 뒤덮으려고 향료를 여기저기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신의체로 인체를 흉내 내기 위해 분비하는 특유의 인공 체취들. 매캐한 화약 냄새, 에너지 입자의 알싸한 향, 어디선가 식사를 하는지 열에 익은 고기의 냄새, 알코올은 휘발해서 공기 중에 떠다니고…….
지끈, 지끈.
원래도 머리가 아플 만한 냄새인데, 발달한 감각 때문에 두통이 더 심했다. 내가 원치 않아도 뇌가 냄새의 입자를 분석하느라 뜨거워지고 있었다.
딸칵.
나는 참지 못하고 마스크의 마개를 닫았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아, 복도에는 환기장치가 없는지라…….”
사내가 내 눈치를 보더니 머쓱하게 말했다.
열린 문에서 통로는 일직선으로 길게 이어졌다. 사람 네 명 정도는 지나다닐 넓이였다. 좌우로는 굳게 닫힌 방이 길게 이어졌다.
덜컹, 쿵.
가끔 방 안에서 소리가 퍼졌다. 밖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우리가 오기 전전에 방문한 고객을…….”
이스칸이 드디어 명확하게 지목했다. 바오 자카난이 진입한 순서를 알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끝내주십쇼. 다른 고객에게 방해되지 않도록요.”
사내는 나름의 직업의식을 발휘하며 말했다. 그는 방문의 번호를 살피며 복도를 걸었다.
……그 순간이었다.
덜컹!
방문 중 하나가 열렸다.
찰칵!
나와 이스칸은 잽싸게 권총을 뽑아 열린 방문을 향해 겨누었다.
“살, 살려, 주, 세, 아……”
알몸의 소년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내가 근위대 입소할 무렵이 저 정도 나이였을 것이다.
소년은 겁에 잔뜩 질린 채로 바닥을 손으로 기고 있었다. 그가 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르륵, 주륵.
복도까지 기어 나온 소년의 다리는 막 잘렸는지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소년은 우리를 보더니 간절하게 손을 뻗었다.
“이, 시발, 씁, 거, 고객님! 문 좀 똑바로 닫고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우릴 여태 안내하던 사내가 욕설을 내뱉었다. 방 안쪽에서 둔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얘도 발버둥 칠 거 아니야. 어차피 도망가지도 못하는데, 뭘.”
방 내부에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안광만 드러나는 민무늬 가면을 쓰고 있어서 신원을 알 수 없었다.
여자는 피와 살점이 들러붙은 톱칼을 들고 있었다. 그걸로 소년의 다리를 자른 모양이었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저, 저리 가! 제, 제발요! 제발!”
소년이 여자를 보더니 기겁했다.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히히, 좋아, 좋아. 건강하게 발버둥 치는 게 참 좋네. 살도 말랑말랑하고. 이 정돈 돼야 돈 낸 보람이 있지.”
아아,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알 것 같았다. 하층 구역에서 종종 실종된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이 밑바닥의 인간들이 여기서 어떤 장사를 하는지도.
“물론이죠. 저흰 백 퍼센트 순도의 순수 생체 인간만 취급합니다.”
사내가 피식 웃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그들에겐 지금 상황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상식이 뒤틀린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여기서 사람들이 해소하는 건,
‘살인 욕구.’
그것도 순수한 피와 살로 된 인간을 향한…….
이곳 인간이 썩어 문드러진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하니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역했다.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을 벌써 수십 번은 참은 것 같았다.
끼익, 쿵.
여자가 소년을 질질 끌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굳게 문을 잠갔다.
“죄송합니다. 잠깐 사고가 있었군요. 저 손님은 늘 저런다니까요.”
사내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와 이스칸의 표정은 덤덤할 것이다. 우린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하니까. 이스칸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처럼 분노와 경멸을 억누르고 있는 걸까?
“루카.”
이스칸이 내 이름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정보를 노출하지 않던 이스칸이었다.
……그렇다.
이스칸은 마음을 바꿨다. 그는 사내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듣고 있습니다.”
내가 짧게 대답했다.
“넌 모든 방을 뒤져서 바오 자카난을 찾아라. 나는…….”
이스칸이 총구를 사내의 이마를 겨누곤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퍼져도 방에 틀어박힌 이들은 내다보지도 않았다. 저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총성 따윈 아주 사소한 문제일 테니까.
쿵!
사내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죽었다. 이마의 구멍에선 핏물이 쫄쫄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쓰레기를 청소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이스칸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인간성은 훌륭했다.
이스칸은 여자와 소년이 들어갔던 방문을 붙잡았다. 그의 완력 앞에선 잠금장치 따윈 무용하다.
텅!
장난감처럼 뜯겨나간 철문이 벽에 처박혔다. 이스칸은 내부를 향해 총구를 겨누더니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이, 너, 내, 내가 누군…….”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신물이 날 정도로 뻔한 말을 하고 있었다. 이레귤러인 이스칸은 저런 말을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듣고 살았을까.
“허, 쓰레기가 말도 하는군.”
권총탄만으로 전신의체의 여자는 죽지 않았다. 이스칸은 제자리에서 통통 뛰더니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콰지직!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마 여자의 머리통이겠지. 인공 두개골과 뇌를 같이 으깨버린 것일 터다. 어떻게 아냐면…… 나도 많이 들어본 소리니까.
나도 움직였다. 안내자가 없어도 바오 자카난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이곳 어디선가에서 욕구를 해소하고 있겠지.
소란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죽은 사내는 우리를 데리고 복도를 한참 걸었다. 지나온 방은 바오 자카난이 없다. 그렇다면 내 앞에 남은 다섯 개의 방 중 하나에 바오 자카난이 있을 것이다.
끼릭, 콰직.
난 잠금장치를 부수며 문을 열었다. 온몸에 똥칠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여자를 벽에 걸어두고 난도질하는 중이었다.
대단한 성벽이로군.
“뭐야? 추가 서비스?”
대변 인간이 히쭉히쭉 웃으며 말했다. 똥을 치덕치덕 바른 얼굴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앞니가 드러났다.
“서비스는 맞는데, 저승길 안내 서비스지.”
나는 가볍게 뛰어올랐다. 대변 인간의 옆까지 떠오른 나는 발뒤꿈치를 망치처럼 휘둘렀다. 안으로 감은 발차기가 그의 머리를 바닥까지 짓눌렀다.
콰직!
내 뒤꿈치에 짓눌린 머리가 바닥에 닿으며 화끈하게 터졌다. 그가 어떤 가문의 귀족이고 고위직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무리 제국이 타락했어도, 이딴 쓰레기들을 즉결 처형했다고 책임을 묻진 않을 것이다. 이런 쓰레기들마저 보호하지 않겠지.
만약…… 제국이 그러하다면, 나는 기꺼이, 불온분자가 될 각오가 되어있다.
끼릭, 쾅!
나는 다음 문을 열었다. 어떤 꼬락서니가 보이냐고? 설명하기 싫다.
“어, 허억, 내, 내가, 누구인지…….”
쓰레기겠지, 뭐.
나는 방아쇠를 가뿐히 당겼다.
콰득!
그리고 다음 방문을 부쉈을 때, 나는 바오 자카난을 볼 수 있었다.
“아…….”
바오 자카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나는 눈 밑이 움찔거릴 정도로 한쪽 입술을 씰룩였다. 레이스가 풍성하게 달린 옷을 입은 바오 자카난이 보였다. 그는 여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바오 자카난 앞에는 알몸의 사내가 십자가에 묶여 있었다. 사내의 얼굴이 확인한 나는 눈을 치켜떴다.
‘니콜라오스?’
묶인 사내의 니콜라오스와 닮아있었다. 그러나 당연히도 니콜라오스 본인은 아니다. 사내는 죽은 지 오래인지 생명 반응이 없었다.
‘니콜라오스와 닮은 사내의 시체.’
나는 어떤 역한 욕망이 이 사건에 작동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 이름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다.”
바오 자카난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총구를 겨누며 말을 이어갔다.
“쿠스토리아가 왜 찾아왔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