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99)
배드 본 블러드-99화(99/197)
099
지하는 죽음으로 가득했다. 비명과 총성, 그리고 의체가 부서지는 소리가 퍼졌다.
전부 이스칸이 쓰레기를 청소하는 소리였다. 그는 이 업장의 고객을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 그게 누구든 말이다.
우린 제국의 쓰레기를 청소하고 있다.
으득!
나는 바오 자카난의 머리를 짓밟으며 방안을 살폈다. 톱칼과 망치, 못, 화염방사기, 살가죽을 도려내는 장치…… 징이 달린 채찍, 쓰임새가 알고 싶지 않은 도구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바닥에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얼룩덜룩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여기서 마감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역겨운 새끼.”
내가 바오 자카난을 내려다봤다. 당장이라도 발에 힘을 줘서 그의 머리를 터트리고 싶었다.
“히, 윽, 끄으으윽.”
바오 자카난이 울먹이고 있었다. 그는 여자처럼 화장하고 옷을 입고 있었다. 뒤집힌 치마 아래의 꼴은 가관이었다. 뭘 꽂고 있는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진동음이 간헐적으로 났다.
혐오스럽다.
단순한 학살이 문제가 아니다. 살인에 제대로 된 이유라도 있다면, 내가 이토록 짙은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대의와 명분도 없다. 도덕과 윤리조차 증발했다.
‘그저 욕망.’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갈망만으로 사람이 죽는 곳이다.
순수한 생체 인간을 찢어발기고 싶다는 뒤틀린 성벽.
나는 바오 자카난이 어두운 욕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 정도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곳의 손님은 모두가 전신의체를 갖춘 채로 오랫동안 살아온 귀족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구역질이 나와 입을 막았다.
위액이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나는 바오 자카난을 내려다봤다. 남부러울 것 없는 고급 전신의체를 가지고 있었다.
‘전신의체.’
피와 살을 잃은 채로 오랫동안 살아온 귀족들.
‘너흰 잃어버린 피와 살을 갈구하고 있는 건가?’
상실감, 그리고 선망과 질투가…… 괴악한 성벽으로 발현됐을지도 모른다.
이것 또한 제국의 어둠이다.
“너, 너는 근위대니 내, 내가 누군지 알, 잖아. 나는 정보보위…… 큭! 그, 그만! 터, 터진다고!”
난 발에 힘을 세게 바오 자카난의 머리를 더 세게 눌렀다. 금속으로 된 두개골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냉철하던 바오 자카난도 기겁했다. 그도 죽음 앞에선 기품을 유지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껍데기 하나 벗겨보면 하층민과 다를 바가 없다.
“난 지금 근위대가 아니라 쿠스토리아 가문의 입장으로 온 거다, 바오 자카난.”
“그게 나와 무슨 상…… 커어어어억!”
나는 다리에 힘을 더 줬다. 압축기가 누르듯 압력이 세졌다. 바오 자카난의 머리에 금이 가면서 부품 일부가 피부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놈의 머리가 터지는 꼴을 어서 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너와 말을 섞는 것 자체가 불쾌해.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아. 묻는 말에나 대답해. 니콜라오스를 왜 죽인 거지?”
죽였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난 놈이 죽였다고 확신하듯 말했다.
“하, 하하, 무슨 소리야? 내가? 니콜라오스를?”
아직 거짓말을 할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흠, 그래, 뭐, 잘못 짚었나 보지. 그럼 바깥의 다른 버러지들처럼 그냥 죽어.”
내가 발을 더 세게 짓눌렀다.
파직!
놈의 머리에서 균열이 번졌다. 머리와 맞닿은 바닥에서도 금이 가고 있었다.
“잠, 잠깐! 말할게! 말한다고오오오!”
그제야 난 발을 살짝 떼어냈다.
바오 자카난이 숨을 헐떡였다. 금이 간 머리에서 회로의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인공 피부 바깥까지 비치며 핏줄처럼 번졌다.
“그리고 네메시스와 어떻게 내통했는지도 말해.”
“그건 또 무슨……. 아니, 알, 알았다고!”
내가 발을 들자 바오 자카난이 소리를 질렀다.
탕! 콰아앙!
바깥에서 소란이 커졌다. 이스칸의 청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쓰레기가 많은 모양이다.
그 덕분에 바오 자카난을 협박하기가 더 쉬웠다. 그도 바깥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 것이다.
“너, 쿠스토리아 가문의 양자지? 그래, 그러면 니콜라오스가 어떤 인간인지는 모르겠군. 큭, 큭큭. 복수라도 하고 싶은 건가?”
바오 자카난이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그는 관자놀이에서 삐져나온 금속 조각을 뽑으며 나를 쳐다봤다. 썩어도 준치라고, 고위 관료답게 벌써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조그마한 빚이 있는 것뿐이야. 저 뒤에 시체는 왜 니콜라오스를 닮은 거지? 네 끔찍한 욕망을 벌써 알 것 같네.”
“끔찍한 욕망?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 시발. 진짜. 내가 왜 여기서 이런 꼴을…….”
바오 자카난이 천박한 하층민처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니콜라오스를 닮은 시체를 쳐다보다가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게 먼저 접근한 건 니콜라오스, 그 창놈 새끼라고. 믿든 말든 상관없어. 날 통해 빠르게 출세하고 싶었던 모양이지. 실제로 나는 놈을 연인이라 생각하고 밀어줬고. 능력도 있는지라 문제가 없었지.”
“무슨 개소리를…….”
“난 너희처럼 뇌를 개조한 괴물과 달라. 고속 사고도 불가능해. 그런 내가 그럴싸한 이야기를 빠르게 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은 금방 티가 나지.”
바오 자카난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무표정하게 말을 내뱉었다. 총구는 여전히 바오 자카난을 겨누고 있었다.
“그 쓰레기 같은 새끼가…… 날 제꼈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애송이? 난 먹힌 거라고! 시발, 난 나름 진심이었는데, 그 새끼는…… 내 도움이 필요 없어지자마자…… 날 버렸어!”
바오 자카난이 울먹이듯 말했다.
“애초에 그런 의도로 접근한 걸 알았잖아.”
니콜라오스가 정말로 출세를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게 과감한 방식으로 접근했을 때도 느꼈지만, 그는 비범한 인간이었다.
“알지. 하지만, 그러니까 네가 어린 애새끼인 거다. 사랑에 빠지면 거짓말도 믿고 싶어지거든.”
바오 자카난이 자조하며 말했다. 나도 이젠 짜증이 났다. 늙다리의 사랑 이야기 따위에는 관심 없다.
“난 네 신세한탄이나 듣고 싶은 게 아니야. 그래서 널 버린 니콜라오스가 미워진 건가? 그래서 네메시스에게 니콜라오스의 암살을 사주했고?”
난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번 임무의 목적이기도 했다.
바오 자카난이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내 손도 같이 움직였다.
콰직!
난 바오 자카난의 머리채를 잡아서 벽까지 내던졌다.
“커억, 컥, 끕.”
바오 자카난이 비명이 섞인 숨을 내뱉었다. 붉은 색소가 섞인 인공 체액이 그의 코와 입에서 새어 나왔다.
바오 자카난은 영리한 인간이다. 머리를 굴리지 못하게 계속 압박을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놈을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정확히 말하면 내통은 아니야. 정말로 테러리스트와 내가 내통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겠어? 그리고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밑바닥 버러지 새끼들과 내통하겠어?”
직접적인 내통이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내통인 셈이다. 그냥 말장난인 거지.
“말장난이나 계속하고 싶다는 거지?”
“여, 여기가 네메시스의 돈줄 중 하나일 거야. 물론 증거는 없어. 확실하지도 않아.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한 짓을 다 찍어놨더라고. 그 비열한 쓰레기들이 함정을 파두고 나 같은 관료와 귀족들의 약점을 잡은 거지. 내가 내통자라면, 여길 방문한 사람들도 전부 내통자인 셈이라고!”
난 눈을 찌푸렸다. 누가 누구를 비열하다고 말하는지 웃길 따름이었다.
“그래서 네메시스에게 쿠스토리아의 암살을 사주한 건가?”
나는 이 질문을 두 번째하고 있었다. 세 번째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쿠스토리아 가문에는 입을 통하지 않고 정보를 빼내는 방법이 있었다. 그걸 사용하면 그만이다.
“이봐, 애송이. 넌 양자잖아. 출세를 위해 쿠스토리아 가문을 지키고 싶다면 이 이상은 파고들지 마. 이게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여기서 끝내.”
바오 자카난이 입을 다물었다. 처음으로 그에게서 결의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건 쉽게 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군.’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머릿속에선 제국의 거미줄이 복잡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니콜라오스 암살은…….’
내 고속 사고가 답을 향해 도달하고 있다. 염두에 두고 있던 결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길 바랐기에 다른 답을 찾으려고 여기에 온 것이다.
“그리고 나도 보험 정돈 들어놨어. 제국의 경호업체에겐 내 이동 경로를 말할 순 없지. 이런 곳을 방문한다고 떠벌릴 순 없으니까. 가끔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이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겨야 할 때가 있어.”
바오 자카난이 중얼거렸다.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 했다. 그보다 먼저 내 직감이 위험을 감지했다.
찌이잉.
등골부터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주변엔 위기라고 말할 요소가 없었다.
내 등 뒤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불안감이 스멀스멀 커졌다.
위기에 대응해라. 싸움을 위해 움직여라.
뇌가 내 신체에 명령을 연거푸 내리고 있었다. 내 손끝이 떨린다. 내 동공은 한없이 커졌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뇌’와 ‘신체’가 반응했다.
프로그래밍 된 기계처럼, 나는 상황에 대응했다.
지금의 위기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 뇌와 신체는 알고 있다. 상황의 해석과 설명은 뒤늦게 따라온다. 그때가 돼서야, 나는 내가 맞닥뜨린 위기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겠지.
우리의 의식과 자아란 뇌의 일부일 뿐이다.
스륵.
나는 오른쪽 벽을 쳐다봤다. 벽이 갈라지면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에너지 빔이 벽을 관통하며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래, 적이 나타났다. 전투 시작이다.
난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몸을 던졌다. 어깨부터 바닥에 닿은 나는 세 번 뒹굴며 구석까지 날아갔다. 그 와중에 마스크를 해제하며 닫아둔 후각을 깨웠다.
치이이이익!
빔이 벽을 관통하며 새빨간 잔열을 남겼다. 민간 시장에서 보기 힘든 고출력 에너지 무기였다.
키잉!
나는 충격권총 루이나의 예열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론 이미 크루시스를 뽑았다.
적의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 맡는 낯선 냄새가 났다. 아마도 적은 인간이 아닐 것이다.
우웅.
내 손에서 진동이 일었다. 충격권총의 예열이 끝났다. 난 적이 있을 지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퉁!
둔탁한 소리가 났다. 에너지를 머금은 실탄이 벽에 부딪혔다.
콰아앙!
벽이 폭발하듯 터졌다. 나는 잔해가 미처 다 날아가기도 전에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흐트러지는 잔해 속에서 적의 모습이 보였다. 놈을 향해 충격탄이 날아가고 있었다. 이걸 피한다면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키이이잉!
내 예상이 빗나갔다.
놈은 피하지 않았다. 그의 팔뚝에서 에너지 형태의 방패가 나왔다. 반투명한 에너지 방패가 충격탄을 막아냈다. 에너지 중화반응으로 생긴 푸른 연기가 빼곡하게 방을 채우고 있었다.
“어쭈.”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솔직히 경박한 말이 나올 정도로 놀랐다.
스으으, 스으으.
적은 안면을 전부 가리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헬멧으로도 머리의 윤곽이 특이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주둥이는 인간이 아닌 듯이 툭 튀어나와 있었고, 팔은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갑옷 사이로 드러난 푸른 피부에 흉터처럼 새겨진 주황색 줄무늬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놈은 외계인이었다.
‘……에퀘시안.’
영상과 자료로만 본 적이 있다.
에퀘시안은 용병을 업으로 삼는 전투 종족이다. 그리고 내 단검인 그라켄 부트도 원래 저들의 물건이다.
나는 칼을 든 오른팔을 보지도 않고 휘둘렀다. 내 칼은 단숨에 바오 자카난의 두 다리를 잘라냈다.
“컥!”
바오 자카난이 신음했다. 통각을 낮춰도 느낌은 있을 테니까,
“어이, 외계인. 고용주를 데려가려면 나부터 죽여야 할 거다.”
저 외계인은 바오 자카난과 계약한 경호원일 것이다. 아마도 이스칸에게도 비슷한 놈이 붙었겠지.
스스스.
외계인, 에퀘시안의 마스크에서 이질적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럴 생각이다, 인간.
번역기의 기계 음성이 흘러나왔다.
키잉!
에퀘시안은 길쭉한 총기를 등에 수납했다. 대신에 그는 막대기를 꺼내 휘둘렀다. 막대가 늘어지면서 창날이 튀어나왔다.
휘릭.
에퀘시안은 무너진 벽을 넘으며 내 앞에 섰다. 그는 빙글빙글 돌리던 창을 곧추세워 나를 겨누었다.
종족은 다르지만 나와 똑같은 전사다.
“흐음, 첫 만남이지만…… 꽤 마음에 들어.”
나도 총기를 집어넣고선 크루시스를 앞으로 뻗었다. 칼날에 비친 내 입술은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고 있었다. 이것도 참 고질병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