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 Cheo-yong, the shaman Park Soo-yeon RAW novel - Chapter 178
178
박수무당 백처용 178화
백처용과 지윤은 말없이 비형랑의 구름을 타고 앉아 있었다.
구름은 지하국에 갔을 때와 같은 길로 움직였다.
오색구름과 흰 구름을 헤치고 나와 다다른 곳은 역시 남산 상공이었다.
“곧장 신당으로 갈게.”
비형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름은 아래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주변 가득한 건물들, 평소 시끄럽다 여겼던 거리 스피커에서 들리는 음악,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소리,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편안하게 들렸다.
“구름에 타고 있는 동안 일반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비형랑이 뒤로 고개 돌려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구름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드디어 구름이 멈춰선 곳은, 백처용의 신당 현관문 앞. 마당 한가운데였다.
“하….”
백처용은 천천히 구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자신의 신당을 가만히 올려봤다.
낡아빠진 목조 건물. 자신이 떠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신당은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당 역시 잡초가 좀 자란 것 외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삐걱.
뒤에서 들린 소리에 백처용이 돌아봤다.
열려 있는 철제 대문이 바람에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문 밖으로 낡은 봉고차 앞부분이 살짝 보였다.
“참 오랜만이네.”
백처용이 감회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지윤 역시 백처용과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신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생했다. 신당 부서진 곳은 내가 다 고쳐놨어.”
비형랑이 그런 백처용과 지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백처용이 세천산으로 떠났던 사이 박살 났던 현관문과 신당 마루가 떠올렸다.
백처용이 얼른 현관문을 바라봤다. 그때 박살 났던 현관문은 멀쩡한 새 걸로 바뀌어 있었다.
“더 좋은 거로 좀 바꿔주지 그랬어요.”
백처용의 장난스러운 말에 비형랑이 피식 웃어 보였다.
“어울리는 거로 해준 거야. 인마.”
비형랑의 말에 백처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가만히 서 있던 백처용이 비형랑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고생했어요. 형님.”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비형랑이 활짝 웃으며 백처용의 손을 맞잡았다.
백처용과 악수 후, 비형랑이 이번에는 지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윤이 너도.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고.”
“네. 저도 고마웠어요.”
지윤 역시 해맑게 웃으며 비형랑의 손을 잡았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비형랑은 구름 위로 올라탔다.
“가끔 내 제사도 좀 지내주고. 간다.”
비형랑이 백처용과 지윤 쪽으로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더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구름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백처용과 지윤은 구름이 사라진 쪽을 잠시 바라봤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것인지조차 믿기지 않았다.
잠시 감회에 젖었던 백처용이 지윤을 바라봤다.
“이제 들어가자.”
백처용이 말하며 현관문 쪽으로 돌아서 걸어갔다.
지윤도 얼른 그런 백처용을 쫓아갔다.
덜컥.
백처용이 현관문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문고리가 저절로 돌아갔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데 이번에는 현관문이 저절로 열렸다.
“너…. 처용이, 처, 처용아!”
놀란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나온 것은 덩치 큰 스님. 서람대사였다.
“살아 있었구나. 처용아! 정말,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서람대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까지 보였다.
백처용은 당황한 얼굴로 서람대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가 왜 여기… 계세요?”
백처용이 묻자, 서람대사가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백중 때 네가 걱정돼서 밤잠을 못 이루다가…. 어휴, 그 이후에 어찌 됐나 아무리 연락을 해도 네가 받아야 말이지. 그래서 남산으로 가봤는데, 이미 다 끝난 후라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신당으로 와본 거야.”
“아….”
“한 달이나 어딜 가 있었던 거야.”
“한 달이요?”
“그래. 이제 곧 추석이잖아.”
서람대사의 말에 백처용과 지윤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저승으로 올라간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됐을까 싶었는데, 이승은 한 달이 지나 있었다.
잠시 놀랐었으나, 이내 백처용은 다시 서람대사 쪽으로 입을 열었다.
“한 달 동안 여기 계셨던 거예요?”
“청소도 하고 하면서… 네가 언젠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 여기 있었어.”
“네. 전 괜찮습니다. 일도 다 잘 끝났고요.”
“그래. 다행이구나. 참 다행이야.”
서람대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백처용은 서람대사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다시 현관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옆으로 비켜서며 서람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처용아.”
“네?”
“혹시 네 단서가 있을까 해서 서울 근처 산들을 뒤졌는데.”
백처용이 말없이 듣는 가운데. 서람대사가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백중이 지나고 며칠 뒤에, 관악산에 엄청난 음기가 잠깐 느껴졌다가 사라졌어. 그래서 내가 가봤는데, 뭔가 결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실력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더구나.”
“결계요?”
백처용이 되묻자 서람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과 이승의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승에서 백중이 지나고 며칠 뒤라면 천제의 앞에서 싸울 때쯤 아닐까 추측됐다.
백처용은 잠시 생각하다가 무엇인가 떠오른 듯 표정이 굳었다.
“어디죠. 같이 가 봐요.”
“어, 어? 괘, 괜찮을까?”
“무서우면 안 가셔도 돼요. 관악산이라고 하셨죠?”
“아, 아니야. 괜찮아. 하하. 무섭긴.”
서람대사가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백처용은 이어 지윤을 바라봤다.
지윤은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억지로 웃었다.
“갔다 와요. 전 집에서 좀 쉴게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으나, 표정만 봐도 대충 지윤의 생각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따라간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혹시 자신이 갔다가 방해가 되진 않을까. 그 생각은 백처용에게도 훤히 보였다.
지윤이 말한 뒤 현관문으로 들어가려 할 때. 백처용이 입을 열었다.
“같이 가자.”
“네?”
“같이 가자고. 너 혼자 심심할 거 아냐.”
백처용은 말한 뒤, 앞장서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거 한 달이나 지났으면 방전됐을 거 같은데.”
백처용이 중얼거리며 자신의 봉고차 차 열쇠를 꺼내 들었다.
서람대사가 얼른 백처용을 쫓아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럴까 봐 내가 가끔 돌아다닐 때 썼다. 하하.”
“…네. 잘하셨네요.”
“그래도 내가 기름 채워 놨어.”
“네. 참 고맙습니다.”
백처용이 말하며 운전석으로 들여가려다 지윤을 바라봤다.
“지윤아. 빨리 와라.”
백처용이 웃으며 소리치자,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지윤이 정신 차리고 백처용을 바라봤다.
백처용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지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네!”
지윤이 활짝 웃으며 봉고차로 달려갔다.
* * *
비형랑은 곧장 저승으로 가지 않고 남산의 도깨비 촌에 잠시 들렀다.
비형랑은 도깨비 촌으로 들어가자마자 도깨비 왕 길달이 머물던 고목으로 향했다.
“그대가 새로 뽑힌 왕입니까.”
“비형랑 님이신 모양이군요.”
고목 안에 앉아 있던 나이 먹은 도깨비 하나가 일어나 비형랑을 맞이했다.
쭈글쭈글한 회색빛 얼굴에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 갈색 가죽옷을 걸친 도깨비였다.
“이곳에 머무는 매구는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오두막에 가만히 있습니다. 힘도 없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더군요.”
도깨비 왕의 말에 비형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도깨비 왕이 난감한 표정으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런데…. 여기 머무는….”
도깨비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목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이봐. 백처용이랑 지윤이 둘 다 금방 돌아올 거라며.”
뒤에서 들린 목소리. 비형랑이 얼른 돌아봤다.
고목 입구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윤철이었다.
비형랑이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게. 하하…. 지금 막 신당에 데려다주고 왔는데.”
“…뭐? 여기로 올 거라며.”
“그게, 깜빡해 버렸네. 하하.”
비형랑이 어색하게 웃자 윤철이 짜증 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이 자식. 일부러 그런 거지.”
“아니야. 진짜 아니야. 지금 고목 밖에 구름 있지. 그거 타면 금방 신당까지 갈 거야.”
“이번엔 확실한 거겠지?”
“그럼. 진짜야.”
“후, 마지막으로 믿는다.”
윤철이 말한 뒤 다시 고목 밖으로 나갔다.
비형랑이 안도의 한숨을 쉰 뒤. 다시 도깨비 왕 쪽으로 돌아봤다.
“그 아이만 만나고 돌아가겠습니다. 도깨비들에게는 고마운 점이 많습니다. 부디 혼란을 잘 수습해 주십시오.”
“예. 노력하겠습니다.”
도깨비 왕과 비형랑. 둘 다 서로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비형랑은 고목을 나와 천천히 정솔이 머무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두막 앞에 선 비형랑은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문고리로 손을 가져갔다가 다시 거두기를 두어 번 반복했으나 쉽게 열 수 없었다.
비형랑이 머뭇거리다가 문고리를 잡는 순간.
덜컥.
비형랑이 힘을 주기도 전에 문고리가 돌아갔다.
비형랑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것은 덤덤한 표정의 정솔이었다.
“…들어 와.”
정솔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문을 열어놓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비형랑은 문이 열렸음에도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오두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둘은 작은 나무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정솔은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깟 편지로 내가 널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솔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비형랑은 차마 정솔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 숙였다.
편지에 적은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이 과거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황룡의 여의주, 그러니까 정솔의 여우 구슬을 저승에 전했으니, 더는 저승에서 쫓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도깨비 촌에서 지내라는 내용이었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비형랑이었다.
“…미안해.”
“…길달이 죽었다며.”
정솔의 말에 비형랑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정솔은 탁자 아래서 주먹을 꽉 쥐었다.
“하…. 빌어먹을, 빌어먹을….”
정솔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비형랑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제 다 끝났어. 어차피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옛날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편하게. 널 위해서 살아. 제발.”
“하, 옛날은 생각하지 말라고?”
비형랑의 말에 정솔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정솔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죽은 길달 때문에 참는 거야. 그 녀석이 죽어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한 건, 너도 포함이니까.”
“…….”
“평생 괴로워하면서 살아 봐.”
정솔이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비형랑은 살짝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한 번 문질러 지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너에게도, 길달에게도.”
비형랑은 중얼거리듯 말한 뒤,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정솔은 침대에 누워 소리 없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비형랑은 밖으로 나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오두막과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