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 Cheo-yong, the shaman Park Soo-yeon RAW novel - Chapter 179
179
박수무당 백처용 179화
백처용은 관악산 앞에 주차한 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서람대사가 앞장섰고, 그 뒤로 백처용과 지윤이 쫓아갔다.
“이제 산 탈 일 없을 줄 알았더니, 바로 타네. 어휴, 힘들어.”
백처용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그 뒤에서 지윤이 빙긋 웃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재밌지 않아요?”
“퍽이나 재밌다.”
백처용이 시큰둥하게 말하는데, 앞장섰던 서람대사가 멈춰섰다.
“처용아. 이제 다 왔다. 여기야, 여기.”
“네, 갑니다.”
백처용이 대답한 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인적 드문 곳이지만 주변 풍경은 어딘가 익숙했다.
‘그때 거긴가.’
백처용이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곳은 예전 황룡을 찾기 위해 찾아왔던 곳. 백처용이 신돈과 혈전을 벌였던 곳이었다.
서람대사가 멈춰선 곳에 백처용이 멈춰서 잠시 숨을 골랐다.
“여기예요?”
“그래. 여기 봐.”
서람대사가 가리킨 곳은 나무가 다른 곳보다 더 울창한 곳이었다.
‘확실히 위화감이 느껴지긴 하는데.’
백처용이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나무가 울창했지만 어딘지 빈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치? 이상하지?”
서람대사가 백처용 옆으로 딱 붙으며 중얼거렸다.
백처용이 말없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가 멈춰섰다.
“지윤아. 너도 이상한 게 느껴져?”
“아니요. 저는 전혀….”
지윤의 말에 백처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윤이는 이제 일반인처럼 된 것 같고. 나도 예전 정도 신력은 생긴 건가.’
백처용이 생각하며 손을 뻗는 순간.
파직!
갑자기 불꽃이 앞에 튀었다.
백처용이 놀라서 뒤로 물러나려는데, 울창한 나무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갑자기 왜….”
백처용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서람대사와 지윤 역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앞으로 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울창했던 나무 중, 3분의 2 이상이 사라지자 위화감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백처용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람대사도 지윤이와 함께 백처용을 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잔뜩 긴장한 채 얼마나 걸었을까.
지금까지는 느껴지지 않던 음기가 점차 강해졌다.
‘이 음기는 역시….’
익숙한 음기에 백처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앞 공간에 금이 가더니, 이내 산산이 부서져 깨져 버렸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힘없이 축 늘어진 남자였다. 검은색 도포를 걸친 채 반만 남은 여우 가면을 얼굴에 걸친 남자.
신돈의 힘을 물려받은 귀태. 지금까지 백처용 등이 신돈으로 부른 자였다.
“너무 쉽게 들켰군.”
신돈이 반만 드러낸 얼굴로 피식 웃으며 힘없이 말했다.
백처용은 그런 신돈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지만….’
백처용이 속으로 생각하며 주머니 속에서 꼭 쥔 것은 비단 주머니였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떠나기 전. 무슨 일이 생기면 쓰라고 월하노인이 몰래 건넨 것으로 안에는 부적이 들어 있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부적 안의 힘을 이용해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돈의 상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음기는 저승에서 제거해 준 건가.”
신돈의 말에 백처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돈이 피식 웃더니 이번에는 지윤을 바라봤다.
“저 아이도 신력이 사라진 것 같군.”
“저승에서 없애줬다.”
“그렇다 해도 귀태라는 점은 변함없지 않나.”
신돈이 지윤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말했다.
“귀태는 결국 인간과도 요귀와도 섞일 수 없는 존재야. 저 아이라고 다를 것 같나.”
신돈이 힘줘서 말하기 무섭게 백처용은 돌아섰다.
“지윤이는 이제 평범하게 살 거야.”
백처용의 목소리는 약간 떨어진 지윤과 서람대사에게는 들리지 않을 크기였다.
“너도, 이제부터라도 인간으로 살아.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백처용의 말에 신돈은 콧방귀를 뀌었다.
“귀태는 본인뿐 아니라 주변까지 고통스럽게 하지. 과연 저 아이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지윤이 어머님은… 지윤이를 사랑하고 계셔.”
“…….”
신돈은 퀭한 눈으로 백처용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백처용은 잠시 주저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분명히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저승에서 날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텐데. 그게 가능할 거로 생각하나.”
“…….”
“천제를 눈앞에 두고, 실패했다는 게 원망스럽군.”
신돈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백처용은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지켜봤다.
신돈은 백처용은 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켜볼 수 있다면 지켜보겠다. 저 아이가, 귀태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신돈은 말하며 천천히 연기가 돼 사라졌다.
백처용은 그런 신돈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신돈이 완전히 사라진 뒤, 백처용은 다시 돌아서 지윤과 서람대사 쪽으로 다가왔다.
“저대로 보내도 되는 거야?”
서람대사의 걱정 어린 물음에 백처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죠. 뭐.”
백처용이 태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윤을 바라봤다. 지윤 역시 백처용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와 지윤이. 두 귀태를 떠올리며 백처용은 약간 씁쓸하게 웃다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휴. 이제 집에 가요. 피곤해 죽겠네.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오게 뭐야.”
백처용이 불만스럽게 말하며 숲 밖으로 걸어갔다.
“가서 뭐 좀 먹자. 처용아.”
“맞아요. 아저씨. 제가 쏠게요. 맛있는 거 먹어요.”
서람대사와 지윤이 합이라도 맞춘 듯 번갈아 말했다. 백처용이 얼른 지윤 쪽으로 돌아섰다.
“진짜지? 족발에 보쌈도 시킨다.”
“처용아. 치킨도 시키자.”
서람대사가 얼른 백처용의 말에 거들었다. 지윤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폴짝폴짝 뛰어 백처용을 쫓아갔다.
* * *
백처용과 서람대사, 지윤. 세 사람이 신당으로 돌아왔을 때, 어느덧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 근처였다.
“배고파 죽겠네.”
백처용이 얼른 차에서 내려, 신당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서람대사와 지윤이 졸졸 쫓아왔다.
“처용아. 치킨은 아까 내가 미리 시켰거든. 족발이랑 보쌈만 들어가서 얼른 시키면 된다.”
서람대사가 말하는데 갑자기 대문을 들어가자마자 우뚝 멈춰섰다.
그 덕에 쫓아오던 서람대사와 지윤도 움찔하며 멈췄다.
“어…?”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봤던 지윤이 놀란 얼굴로 앞을 가리켰다.
서람대사 역시 놀란 얼굴로 현관문 앞을 바라봤다.
세 사람의 시선이 향한 현관문 앞에는 와이셔츠 차림의 멀끔한 남자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오긴 왔었구나.”
고개를 들며 힘없이 중얼거린 그는 윤철이었다.
이어 그 옆에 똑같은 자세로 쭈그려 앉아 있던 청의동자도 고개를 들었다.
“그 비형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또 거짓말한 줄 알았다. 뚠뚠.”
청의동자 역시 힘없이 중얼거렸다.
백처용은 그 처량한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것을 꾹 참고 백처용이 윤철에게 다가갔다.
“아니,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괜찮은 거야?”
“…묘하게 목소리랑 표정이 기분 좋아 보이는데.”
“그럴 리가.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
백처용이 얼른 윤철을 일으킨 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야, 이거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백처용이 신당 한가운데, 신문지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족발, 보쌈을 비롯해 치킨 한 마리, 피자 한 판.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지윤은 이미 자리를 잡고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저씨 뭐해요. 얼른 먹어요.”
지윤이 말하며 나무젓가락을 백처용에게 건넸다.
백처용이 얼른 그것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이미 서람대사와 윤철, 청의동자까지 자리 잡고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와, 이거 평생 못 먹을 뻔한 거 아니야.”
백처용이 보쌈 한 조각에 새우젓을 찍어 먹으며 말했다.
그 말에 윤철이 콧방귀를 뀌었다.
“솔직히 저승 놈들만 아니었으면 진작 와서 먹었을 거다.”
윤철의 말에 옆에 앉은 청의동자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청의동자는 곧장 피자 한 조각을 통째로 입에 욱여넣었다.
“쿨럭! 죽는다, 뚠뚠! 목 막혀 죽는다!”
청의동자가 자기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윤철이 얼른 콜라를 건넸고, 청의동자는 그걸 벌컥벌컥 마시고서야 숨을 골랐다.
백처용이 슬쩍 옆에 앉은 지윤 쪽으로 입을 열었다.
“너 청자는 보여?”
“아, 아까 처음에는 안 보였는데, 지금은 보여요.”
지윤이 대답하는데, 청의동자가 씩 웃어 보였다.
“안 보인다기에 내가 보이게 했다. 뚠뚠. 이제 지윤이 너 귀안이 사라진 거냐?”
“응. 그렇대.”
지윤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월하노인이 준 환약을 다 먹은 후부터 지윤의 신력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백처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지윤의 옆구리를 툭 쳤다.
“봐. 내가 약속 지킨다고 했지.”
그 말에 지윤은 맨 처음 백처용의 신당으로 찾아왔던 날을 떠올렸다.
확신도 없이, 막연하게 귀안 없애는 것을 돕겠다고 했던 백처용이었다. 물론 지윤은 그것을 믿지 않았지만. 이후 지윤에게 접근한 동티귀를 백처용이 물리쳐 주면서.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됐었다.
“1년도 안 됐는데, 되게 오래된 느낌이네요.”
지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백처용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지윤의 귀안을 없애는 게 가능할까 싶었었다. 신력도 거의 떨어지고, 동자보살까지 떠난 와중에 그저 귀인인 지윤을 붙잡아둘 생각뿐이었다.
백처용은 잠시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리다,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이제 그럼 알바는 끝이네.”
“네?”
“귀안도 없어졌으니까 이제 굳이 알바할 필요 없잖아.”
“아….”
백처용의 말에 지윤이 얼굴이 침울해졌다.
그러나 백처용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바 안 한다고 나 안 볼 거냐?”
“아니요. 그건 아닌데. 뭔가 좀 아쉽네요.”
“너 이제 곧 고3인데 공부해야지. 어머님이랑도 지금까지 못 했던 일 다 하고.”
백처용은 덤덤하게 말하며 치킨 한 조각을 뜯어 먹었다.
지윤이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서람대사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이다.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백처용과 지윤, 윤철의 시선이 동시에 서람대사에게로 향했다.
뭔가 따가운 시선에 서람대사는 헛기침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백처용은 그런 서람대사를 보고 피식 웃었다.
“참 좋네요. 이렇게 다 같이 있으니까.”
백처용의 말에 그제야 서람대사도 미소를 지었다.
백처용은 말하며 태헌도인을 떠올렸으나, 굳이 그의 이름은 꺼내지 않았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였기에, 더더욱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잠시 백처용이 씁쓸한 얼굴로 있는데, 서람대사가 맥주잔을 내밀었다.
“우리 좋은 날 건배라도 할까?”
“참나. 건배는 무슨.”
윤철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나 지윤 역시 얼른 잔에 맥주를 따르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야, 너, 너!”
백처용이 당황해 얼른 잔을 빼앗았다. 그리고 자기 컵에 콜라를 채워 지윤에게 내밀었다.
“치, 한번 마셔보고 싶었는데.”
“대학 가고 나서 실컷 마셔라.”
백처용이 단호하게 말한 뒤 자연스럽게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결국, 윤철도 컵에 맥주를 채웠다.
“나도, 나도 할 거다! 뚠뚠!”
“알았어. 너도 줄게.”
윤철이 말하며 청의동자 잔에도 맥주를 따랐다.
“청자는 마셔도 돼요?”
“얘가 여기서 나이 제일 많아.”
지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윤철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섯 개 잔이 음식들 위, 한가운데로 모였다.
“처용이 네가 한마디 해라.”
“제가요?”
“그래. 너희 집이잖아.”
서람대사가 부추기자 백처용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부디 앞으로는 아무 일도 없기를 빌면서.”
백처용이 잔을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짠!”
지윤이 활기차게 소리치며 얼른 잔을 부딪쳤다. 이어 서람대사와 윤철, 청의동자까지.
다섯 잔이 깨끗한 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에필로그
“오셨다! 오셨어!”
한적한 시골 마을이 소란스러웠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굿판이었다.
제사상을 앞에 두고, 치렁치렁 한복을 입은 남자 무당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박수무당은 다름 아닌 백처용. 그리고 그 앞에 놓인 것은 서슬 퍼런 작두였다.
펄쩍펄쩍 뛰며 백처용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형님. 이거 진짜 되는 거죠?”
백처용은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옆에 스륵, 하고 나타난 남자. 붉은빛 도는 도포 차림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과 하얗고 예쁜 얼굴.
“그럼 걱정하지 말라니까.”
다름 아닌 비형랑이었다.
백처용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작두 앞에 우뚝 섰다.
“후.”
백처용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뒤. 부채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작두 위로 올라갔다.
“어허! 어허이! 잡귀는 물러나고, 떠나셨던 신령님은 돌아오시라!”
백처용이 말하며 위태롭게 작두 위에서 흔들거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뎠으나 백처용의 발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 * *
신당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백처용은 마루에 깔린 이불로 직행해 드러누워 버렸다.
“아이고. 이제 좀 살겠다.”
백처용이 피곤함을 달래고 있는데 옆으로 비형랑이 스륵 나타났다.
“야. 너 이번 제사상에 묵 비빔밥 안 뒀더라.”
“…그놈의 묵 비빔밥 질렸을 것 같아서 이번에 갈비랑 잡채 사서 올려놨잖아요.”
“아, 그것도 놓고, 묵 비빔밥도 놔도 되잖아.”
“…질리지도 않아요?”
“하나도 안 질려.”
비형랑이 뚱한 표정으로 말한 뒤, 제단 근처로 가 앉았다.
백처용도 일어나 비형랑 옆에 앉았다.
“알았어요. 앞으로는 내가 묵 비빔밥 꼭 올려둘게요.”
백처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형랑이 끄덕이며 신당 안을 한 번 쓱 훑어봤다.
“이제 빚도 다 갚았고, 돈도 제법 버는데 이사라도 가는 게 어때?”
비형랑의 말에 백처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빚 있을 때도 안 판 덴데 인제 와서 어떻게 팔아요. 저희 할아버지 때부터 지낸 명당이에요. 여기가.”
백처용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둘이 앉아 있는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아저씨!”
안으로 해맑게 웃으며 들어온 것은 지윤이었다.
“왔냐? 이제 방학인가?”
“네. 그리고 이제 곧 대학생이죠.”
지윤이 씩 웃으며 말한 뒤, 백처용 앞에 와 앉았다.
백처용이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그렇게 됐네. 시간 참 빠르다. 빨라.”
백처용이 말하는데, 비형랑이 펑 소리와 함께 현신했다.
“지윤이 안녕?”
“어, 비형랑 아저씨도 있었네요.”
지윤이 비형랑 쪽으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이어 지윤이 다시 백처용 쪽으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 빚은 이제 다 갚은 거예요?”
“그럼. 다 갚았지.”
“윤철 오빠 것도요?”
“싹 다 갚았다니까, 싹 다.”
백처용이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지윤이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다행이네요. 생각보다 빨리 갚아서. 요즘 진짜 잘 되나 보네요.”
“뭐 나야 윤철 그 자식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백처용이 뚱한 얼굴로 말하자 지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윤철 오빠 또 뭐 한 대요?”
“그 자식 이번에 무슨 종편 예능 나온다고 광고 나오던데. 아주 잘 나가셔.”
“에이, 아저씨도 계속하면 TV도 나오고 할 거예요.”
“TV는 걔보다 내가 먼저 나왔었거든.”
백처용의 말에 지윤은 대충 끄덕인 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희정 언니는요?”
“걔는 이번에 소설 쓴 게 잘 돼서, 그거 계속 연재 중이라더라.”
“다행이네요. 다들 잘 돼서. 아저씨도 그렇고.”
지윤의 말에 백처용이 피식 웃으며 똑바로 앉았다.
“너는 수능 자신 있냐?”
“그럼요. 자신 있죠. 재수는 절대 없습니다.”
“부적이라도 하나 써줄까?”
“에이, 됐어요.”
지윤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백처용과 지윤, 비형랑. 셋은 차나 과자도 없이, 앉아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한 시간 정도 떠들다가 지윤이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아저씨! 저 수능 끝나고 여기서 알바 해도 돼요?”
“뭐? 알바? 등록금 벌려고?”
“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그냥 뭐랄까. 추억이라고 할까나.”
“에이. 필요 없어.”
백처용이 돌아앉으며 말했다. 그때 비형랑이 얼른 나섰다.
“왜. 너도 조수 하나 둬야겠다고 했잖아. 사람 구할 때까지 지윤이랑 다니면 되지!”
“아, 됐어요. 이제 대학 가고 하려면 바쁠 텐데. 무슨….”
백처용이 약간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윤이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수능 끝나면 놀 거라서 괜찮아요. 예전 생각도 나고, 괜찮지 않아요? 물론, 아저씨가 불편하시다면 안 할게요.”
“아니, 뭐…. 불편한 건 아닌데….”
“그럼 승낙한 거죠?”
지윤의 말에 백처용은 살짝 입꼬리가 달싹거렸다.
“그래, 뭐. 좋을 대로 해.”
백처용이 말하자마자 지윤은 신이 나서 활짝 웃었다.
그때 신당 현관문이 슬쩍 열렸고, 어떤 아줌마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저기…. 백 선생님… 계신가요?”
아줌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줌마 쪽으로 다가갔다.
지윤이 활짝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박수무당 백 선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