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46
〈 146화 〉 초인, 한낱 인간(1)
* * *
델로힘 교단의 추기경, 베르딕트.
그는 자신의 손을 본다. 손가락을 따라 핏물이 흐른다. 손톱의 끝에 맺힌 핏물이 툭, 투욱 소리를 내며 눈밭 위에 붉은 점을 찍는다.
“······.”
그는 무표정히 핏방울을 본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본다. 놀랍게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살생을 저지르는 게 한번이 아닐뿐더러, 그가 보기에 이것은 옳은 일이었다.
‘무가치한 것들을 바쳐, 가치 있는 것을 되살린다.’
옳은 일이다. 추기경은 눈먼 아이의 생명을 제단에 올린다. 그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만 행한다. 그것이 추기경이 별에게 헌신하는 방법이다.
“아아···.”
추기경이 탄식한다.
비탄 어린 탄식은 아니다. 황홀함에 젖어 흘러나오는 탄식이다. 추기경은 설원을 둘러본다.
‘별빛.’
사방에서 성력이 흘러넘친다. 성유물과 성유물이 공명한다. 새하얀 빛의 입자가 피어오르는 이곳에서는 별의 축복이 당장이라도 범람할듯하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느끼는 건 전능감이다.
금술이자, 신께 닿는 회생(回?)의 기적도 지금이라면 가능하리란 확신이 든다. 최초의 성녀의 유해만 있다면 말이다.
“저, 추기경님.”
그렇게 추기경이 전능감에 젖어있을 무렵이다.
그의 몰입을 깨는 목소리가 있다. 추기경이 뒤를 돌아봤다. 그의 뒤에는 성기사 하나가 서 있다. 성황도 100인의 정예 중 제 2석, 철벽의 베를랑이었다.
“무슨 일이지, 베를랑.”
“바깥이 시끄럽습니다. 아무래도 북부의 전사들이 눈치채고 습격을 한 모양이군요.”
“그런가.”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지?”
“···예?”
“이곳은 성역이다. 넘치는 별빛이 그대의 눈에 보이지 않는가? 철벽이라 불리는 그대 또한··· 이곳에서 제대로 움직이긴 힘들 텐데.”
베를랑이 말없이 제 주먹을 보았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편다. 그 움직임이 평소보다 둔했다. 그것을 가리키며 추기경이 말했다.
“축복받은 그대조차 그렇다. 그런데, 신을 믿지 않는 북부의 야만인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제대로 움직일 수나 있을 것 같나?”
추기경이 비웃음을 흘린다.
“그럴 리가 없지.”
그는 마저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에 집중하겠다. 방해치 말도록.”
“예, 알겠습···.”
베를랑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거세게 고개를 돌렸다. 뒤를 바라본 그가, 철벽(??)이란 이명의 기원이 된 방패를 휘두른다.
까앙!
무언가 방패에 맞고 튕겨 나간다.
베를랑이 눈을 가늘게 뜬다. 허공을 맴도는 것은 날붙이다. 독특한 형태를 가진 날붙이.
‘···도끼?’
그것을 베를랑이 알아본 순간이다.
공중에 빙글, 도는 도끼를 누군가 붙잡는다.
“멈춰라.”
도끼의 주인이 입을 연다.
서늘한 목소리가 설원에 울린다. 베를랑과 추기경은 성역에 발을 디딘 이방인의 모습을 확인한다.
눈과 같은 새하얀 머리칼.
붉게 번들거리는 눈동자.
그 특징적인 외모를 가진 소년은 양손에 도끼를 쥐고 있다. 그 모습을 추기경은 알아본다. 베를랑도 마찬가지다.
‘라크 반 그레이스.’
북부 대공의 외동아들.
“거기서 비켜라.”
그가 눈을 가늘게 뜬다.
움켜쥔 도끼가 뿌득, 소리를 낸다. 도끼를 쥔 팔에 핏줄이 도드라진다. 라크는 주변을 둘러본다. 널브러진 시체가 한가득하다. 그중에는 북부의 주민들도 섞여 있다.
쿵.
라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멈추지 않겠다면, 당장이라도 부숴버릴 듯한 태도다. 그런 라크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
쿠웅!
베를랑이 거대한 방패를 내려찍는다.
그가 철벽(??)이 되어 라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라크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비키지 않겠다면···.”
라크가 땅을 박찬다.
짙은 마나 농도 속에서도, 라크의 움직임은 조금도 둔해지지 않는다. 라크가 핏발선 눈을 부릅뜬 채 도끼를 휘두른다.
“뚫고 지나가겠다.”
카아아앙!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2.
“후윽, 훅······.”
투두두둑.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피가 떨어진다. 온몸의 뼈가 삐걱거리는 것 같다. 넝마가 된 드라카는 비틀거리며 설산을 걷는다. 걸음을 옮기는 것도 녹록지 않다.
‘미친 마법사 같으니라고.’
그의 실력을 우습게 보진 않았다. 우습게 보지 않았기에, 그만한 수단을 준비한 것이다. 지형의 유리함. 기습. 거기에 눈사태를 일으켜 양자택일의 상황까지 끌고 갔다.
그만한 수를 썼다.
그만한 수를 쓰고도 모자라서, 출혈을 감안하고 달려들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
‘그러나, 결과는 어땠지?’
드라카는 조금 전 벌어졌던 공방을 떠올린다.
설산이 뒤집혔다. 망막이 타들어 가는듯한 빛이 설산을 후려쳤다. 빛과 함께 몰아치는 열기 속으로··· 드라카는 제 발을 들이밀었다.
‘목을 칠 생각이었다.’
그가 보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그마저도 잿빛 마법사가 예상했다는 점이었다. 미리 깔아둔 하나의 주문이 드라카의 검을 흔들었다. 흔들린 칼끝은 닿지 않는다.
그렇기에, 드라카는 선택했다.
죽이지 못한다. 패배한다. 그렇다면··· 패배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드라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의미한 패배를 남기진 않는다.
촤아아아악!
드라카는 그 순간 칼끝을 틀었다.
밀려드는 열기 속에서 라니엘을 직접 노리지 않았다. 그녀가 어깨에 걸친 케이프를 노렸다. 아무리 드라카가 잿빛 마법사에게 밀린다 한들··· 한 뼘의 옷자락을 베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케이프를 찢는 순간, 보관 주문이 풀리며 무언가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것은 드라카가 예상한 것이다.
‘성녀의 유해가 담긴 목함.’
그것이 튀어나온 순간 드라카는 그것을 붙잡으며 검을 아래로 끌었다. 짓쳐 드는 폭발의 방향을 억지로 틀었다. 운이 좋았다, 드라카는 그렇게 생각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방향이 바뀐 폭발은 불안정하던 지반을 덮쳤다.
눈사태는 증발했으나, 잿빛 마법사는 무너지는 지반 너머로 추락했다. 고작 그걸로는 죽지도, 부상을 입지도 않을 테지만··· 당장 자신을 추격할 순 없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그렇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큽···.”
드라카는 숨을 참으며 옷깃을 꽉 조였다.
후두둑, 핏물이 떨어졌다. 넝마가 된 팔이 비명을 지른다. 팔 뿐이 아니다. 한쪽 다리에는 감각이 없다. 폭발에 휘말린 탓이었다.
“그래도, 실패는 아니다.”
드라카는 제 손에 쥔 목함을 본다.
성녀의 뼛조각이 그것과 반응하고 있다. 목함에는 몇 겹으로 봉인 주문이 걸려있어, 당장은 열어보지 못하지만··· 이것이 성녀의 유해임은 확실하다.
“······.”
그러나, 어째서인가.
드라카는 손에 쥔 목함에서 묘한 불쾌함을 느낀다. 본능적인 거부감이다. 그 이유를 드라카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 채 걸음을 옮긴다.
“훅, 후윽···.”
평소라면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드라카는 시야가 좁아져 있다. 여행의 종착점을 앞둔 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이제, 정말 곧이다.’
그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긴다.
비틀거리면서, 숨을 몰아쉬면서··· 계속해서 걸을 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르멜, 아르멜···.”
그는 떠나보낸 제 딸아이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이제는 머지않았다.
딸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견뎌왔던 수십 년이다. 그 수십 년의 결실이 맺어질 순간이 다가온다. 기나긴 여정의 종착점이 코앞에 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조금만 더 견디면.
그 아이를 다시 볼 수 있다.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가물해진 딸아이를 마주할 수 있다. 그 아이는 늙어버린 제 아비의 모습에 놀랄까, 아니면 쓰게 웃으며 꼴이 뭐냐고 칭얼댈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기에 드라카는 걸음을 옮긴다.
꾸욱.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양, 드라카는 검을 쥐어야 할 손으로 그는 목함을 쥔다. 지금의 드라카에겐, 그 무엇보다도 이 목함이 더 소중했다.
“아르멜···.”
그는 하염없이 걷는다.
자신의 종착점을 향하여.
3.
캉, 카앙!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가운데, 철벽의 베를랑은 놀라움을 느낀다. 순수한 놀라움이다.
캉!
그의 시선은 눈앞의 라크에게 향한다. 도끼를 휘두르는 라크를 보며, 베를랑은 혀를 내두른다.
‘정말인지 놀랍군.’
공기가 무겁다. 몸이 무겁다.
성력이 흘러넘치는 이 공간에선 제대로 호흡을 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단들과의 숱한 전쟁 속에서 ‘철벽’이라 불리게 된 베를랑에게 조차 그렇다.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도···.’
카앙, 캉!
저 소년은 정면에서 맞부딪쳐 온다.
물러섬이 없다. 흐트러짐이 없다. 소년의 호흡은 일견 고르며, 그 움직임이 딱히 둔해진 것 같지도 않다. 그 사실에 베를랑은 경의를 표한다.
‘어린 소년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베를랑이 쿵, 발을 구른다.
방패를 두른 새하얀 빛이 한층 진해진다.
‘같은 전사로 보아야 한다.’
빛의 장벽이 베를랑을 에워싼다.
벽을 두른 베를랑의 육체는 그 자체가 무기다. 그가 빛을 두른 주먹을 휘둘렀다.
카앙!
황급히 도끼를 휘둘러 막아낸 라크의 몸이 공중에 붕 뜬다. 공중에 뜬 라크를 노리는 것은 추기경이다. 추기경이 주문을 읊자 빛의 화살이 라크를 향해 쏟아진다.
핏!
옷이 베인다. 핏물이 튄다.
몸을 비틀어 피해냈음에도 상처는 늘어만 간다. 그러나, 라크의 눈동자는 여전히 빛난다.
“후우.”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한 라크가 짧게 숨을 뱉는다. 라크는 제 심장에 손을 얹었다.
쿵, 쿠웅.
요란스레 심장이 뛰고 있다.
흥분한 탓일까, 몸에 피가 빠르게 도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사실이 라크는 기껍다.
‘효과가 있다.’
라니아 교수님과 훈련했던 것들.
성역에서 몇 번이고 기절하며 몸에 새긴 것들.
그 지옥 같던 훈련의 성과를, 라크는 몸소 체감하고 있다.
‘평소라면 숨도 쉬기 힘든 곳.’
그런 곳에서 지금은 원하는 대로 날뛰고 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자신의 성장을 느끼며 라크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
방패를 든 성기사가 자신을 노려본다.
그를 중심으로 펼쳐진 빛의 벽은 견고하다.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만 같다. 벽의 뒤로는 빛의 화살을 메기는 노인이 있다.
‘단순하다.’
단순하기에 뚫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러나, 그 공략법 또한 단순하다. 저 벽을 뚫어버리면 그만이다. 라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준비는 됐는가.’
스스로의 물음에 라크는 답한다.
‘적응은 마쳤다.’
몸을 거칠게 움직임에도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정신도 멀쩡하다. 마나의 배열도 견고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갈 차례다.
라크는 도끼를 심장 앞으로 들어 올린다. 도낏자루에 스톡(Stock)된 주문을 감각한다. 최적의 상황에서도 사용하는 것을 주의해야 할 주문이지만···.
‘북방의 전사는 뜨거운 불이요.’
라크는 망설임 없이 주문을 해방한다.
툭, 하고 도낏자루로 제 심장을 건드린다.
‘영원히 담금질 되는 식지 않는 철이다.’
주문이 해방된다.
가열(Heating).
쿵, 하고 라크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붉은 눈동자가 뜨겁게 달구어진다.
라크의 몸 위로 증기가 피어오른다. 흡사 불길과도 같은 눈동자로, 라크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빛의 화살을 바라본다.
느리다.
너무나도 느린 것들 뿐이었다.
탁, 하고 라크가 땅을 박찼다.
그 속도는 이전과 비할 바가 못됐다. 눈발이 튀어 오른다. 바람이 짓쳐 든다. 파바바박, 하고 빛의 화살은 엄한 곳에 박힐 뿐이다.
후웅.
한순간에 열 걸음의 거리를 좁힌 라크가 도끼를 휘두른다. 도끼가 철벽과 맞부딪친다. 그 결과는 이전과는 다르다.
카아아아아아앙!
공기가 울린다. 철벽이 뒤흔들린다.
“······!”
베를랑의 눈동자가 커진다.
쩌적, 견고하던 철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 * *
“이건 예상을 못했는걸.”
나는 절벽에 사슬을 걸어, 대롱대롱 매달린 채 중얼거렸다. 절벽은 제법 깊었다. 올라가려면 조금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챠르륵.
사슬을 끌어 절벽을 기어 올라가며 나는 생각한다.
예상을 못 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드라카가 거기서 달려들 거란 예상은 했다.
그렇기에 강타 한발을 미리 깔아두었고, 드라카는 보란 듯이 함정에 걸려들었다.
‘거기까진 좋았어.’
그다음이 문제였다.
드라카는 그 순간 검로를 틀었다. 내 옷자락을 베어내고, 폭발의 방향을 아래로 바꿨다. 그건, 내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죽더라도 내 목을 찌를 줄 알았는데 말야.’
기껏 목덜미에 걸어둔 보호 주문은 쓸모가 없게 됐다. 그 점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내가 아는 드라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으니까.
검귀(??), 드라카가 누구인가?
집념 하나로 초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집념이 강한 인물이다. 막히는 한이 있더라도, 더 깊게 파고드는 인물이다.
“음···.”
내가 아는 드라카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드라카가 보인 행동은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기에 허를 찔렸다.
“그래도 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반쯤 찢긴 로브 안에서 나는 목함을 꺼내 보았다. 빛이 새어 나오는 목함이었다.
“상관없나.”
내가 드라카를 예상치 못하긴 했지만, 그건 드라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진 목함은 하나가 아니었고, 그 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중요한 수는 이중으로 숨긴다.’
가장 기본적인 전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