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48
〈 148화 〉 초인, 한낱 인간(3)
* * *
「경험과 끝없는 단련을 통해 벽을 느끼는 게 가장 일반적이긴 하지. 하지만 방법이 그것뿐인 건 아냐. 더 빠른 방법이 있긴 하니까.」
「위험하고, 또 어려운 방법이지.」
「감이 좋은 놈들이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스릉.
「다가오는 죽음을 느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을 두 눈으로 봐. 자신을 뭉개려 하는 그 순간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기억해.」
촤악.
「죽음 앞에서 사람은 판단하게 되거든.」
칼을 휘두른 쿤텔이 어깨를 으쓱였다.
바닥에 남은 검흔은 쿤텔의 검(?)과는 다르다. 거칠게 날뛰는듯한··· 마치, 재앙의 검과 같다.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이며,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돼.」
그러다 보면 말야.
「자연스레 깨달아진다.」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자신 안에 세워진 벽의 형태가 아주 정확하게 그려져.」
그걸 어떻게 아냐고?
「잘 알 수밖에.」
쿤텔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그랬거든.」
2.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라크의 직감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게 울린다. 귓가에 이명이 들리는 듯 하다. 쿵, 쿠웅 심장이 거칠게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검귀(??).’
라크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앞을 본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건 칼을 든 귀신이다.
‘검귀, 드라카.’
검의 초인.
한 자루의 칼로 인간의 한계를 넘은 존재.
“······.”
라크는 무심코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자신이 언제 물러선지 조차 알 수 없다. 본능이 몸을 움직인다. 그렇게 사박, 하고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을 무렵이다.
스릉.
검귀의 칼끝이 움직였다.
그가 들어 올린 칼끝이 하늘에 닿는다. 푸른 하늘과 일(一)자가 된 검이 햇살에 반짝인다.
넝마가 된 옷.
뼈가 부러진 듯 너덜거리는 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만신창이의 상태.
그러나, 그 붉게 충혈된 눈동자만큼은 흔들림이 없다. 햇살에 빛나는 칼끝이 아래를 향한다. 천천히,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아.’
라크는 죽음을 직감한다.
붉은 눈동자가 조금 더 붉어진다. 본능이 몸을 움직인다. 라크는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닌, 짓쳐 드는 섬광을 막기 위해서.
카아아아아아아아앙!
도끼가 튕겨 나간다. 부러지지 않는 철로 만들어진 도끼에 금이 간다. 도끼를 쥔 라크의 손가락이 우두둑, 끊어졌다.
부웅.
충격을 이기지 못한 라크의 몸이 공중에 떴다. 눈바닥을 몇 바퀴고 구르다가, 나무에 등허리를 부딪치고 나서야 라크는 멈춰섰다.
“커흑!”
피 섞인 침이 튀었다. 나무와 부딪치는 순간 우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라크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흐음.”
검귀가 제 손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동자는 무심하다. 방금의 일격 또한 그랬다.
‘제대로 검을 휘두른 게 아닌···.’
날벌레를 쫓듯 가볍게 휘두른 검이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라크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벽.’
라크는 직감한다.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
거대한 벽이다.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눈앞에 있다. 그런 상대를 처음 마주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상황이 조금 다르다.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붉게 충혈된 검귀의 눈동자.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명백한 살의다.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
목격자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거슬린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검의 초인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
살기.
숨통을 옥죄이는듯한 살기에 라크의 눈동자가 떨린다. 절대로 넘을 수 없을 벽 앞에 라크는 무력감을 느낀다.
터벅.
귀신이 자신에게 다가온다.
비틀거리면서도, 확실하게 한 걸음씩 다가온다. 낮게 내린 칼끝이 설원 위에 끌린다.
딱, 따닥.
온몸이 떨린다. 이와 이가 맞부딪친다.
죽음이 제게 다가온다.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에 라크는 공포를 느낀다.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나, 도끼를 놓지는 않는다.
「전사는 죽는 순간까지 전사입니다.」
눈동자는 요란스레 떨린다. 하지만, 감지는 않는다.
다가오는 죽음을 라크는 똑바로 응시한다.
「마지막까지 저항하십시오.」
다가오는 죽음 앞에 라크는 생각한다.
공포에 떨면서도 판단을 내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에게 허락된 것은 무엇인지. 라크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부러진 손으론 도끼를 쥘 수 없다.’
라크는 멀쩡한 손으로 제 옷깃을 붙잡았다.
부욱.
옷을 찢어 부러진 손과 도끼를 함께 묶었다. 서늘한 눈바람을 느끼며 라크는 눈에 힘을 줬다. 떨리는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
이를 악문다. 자세를 낮춘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한다.
터벅.
죽음은 다가온다.
다가오는 죽음에서 도망치리란 불가능 하다. 막아 세울 수조차 없다. 그렇기에, 라크는 저항하기를 선택한다. 단 1초라도 더 살고자 발버둥 친다.
빠득.
이를 악문 라크의 눈동자가 붉게 번들거린다.
눈동자에 확고한 의지가 깃든다. 그 눈동자를 마주한 검귀는 잠깐이지만 멈춰섰다.
“······.”
검사의 긍지는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한때는 긍지를 가지고 살아갔다. 드라카는 눈앞의 어린 소년에게서 빛을 본다.
‘···대단하군.’
그는 눈앞의 전사에게 순수히 감탄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숭고함을 간직한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찬란히 빛나는 법이다. 죽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드라카는 검을 고쳐 잡는다.
치워야 할 장애물이 아닌 전사로.
애송이가 아닌 동등한 존재로.
드라카는 눈앞의 소년을 인정한다.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 그는 자세를 다잡는다. 눈발이 휘몰아치는 설원 위에서 검귀(??)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후우.”
잇새 사이로 서늘한 숨결이 빠져나온다.
드라카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낮게 끌리는 검 끝이 서서히 하늘을 향한다.
한발은 뒤로.
다른 한발은 앞으로.
요란스럽지 않게, 다만 차분히.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를 잡는다. 검의 길을 걸어온 초인이 자신의 기본을 선보인다. 상대에 대한 경의를 담아 검을 휘두른다.
스릉.
칼끝이 움직인다.
위에서 아래로. 마치 선고를 내리듯이.
‘온다.’
그리고, 라크는 보았다.
느려진 체감시간 속에서 라크는 드라카의 검을 본다. 휘두름은 한 번이나, 그 결과가 한번은 아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예리한 검기(??)가 설원을 할퀸다.
눈보라를 걷어낸다. 닿는 모든 것을 베어낸다. 벗어날 틈은 없다. 그것이, 자신에게 다가온다.
‘···아득하다.’
아득히 먼 경지다.
아득한 경지의 존재가 휘두른 검이다. 극한에 닿은 검(?)은 아름답다. 아름답기에 서늘한 검이다.
‘얼마나 먼 경지인가?’
그것을 가늠한다.
자신과귀신 사이의 거리가 보일 듯 하다. 그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 벽의 너머에 검귀는 서 있다.
라크는 눈에 힘을 준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결코 눈을 감지 않는다.
보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느낀다.
극한을 마주한 라크는 움직인다. 느리게 움직이는 팔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라크는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한다.
보아라.
눈을 돌리지 마라.
마지막까지 저항하라.
‘그것이 전사다.’
라크의 몸이 한순간이지만 한계를 넘어선다.
뿌드득, 소리를 내며 근육이 찢어진다. 우득, 뼈가 끊어진다. 코에서 주륵 피가 흐른다. 눈동자의 핏줄이 터져 시야가 붉어진다.
그 모든 것을 대가 삼아 라크는 약진한다.
찰나의 순간, 라크는 잠깐이나마 벽에 근접한다.
틱, 티디딕.
라크의 도끼가 검기를 가른다. 하나의 검기를 베었다. 수십 가닥의 검기 중, 고작 하나를 끊어냈을 뿐이나··· 그것은 무의미하진 않다.
탁.
누군가 도착할 시간을 벌었으므로.
찰나의 순간 누군가 라크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라크의 몸이 뒤로 기울어진다. 기울어지는 라크의 너머로 누군가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잿빛 머리칼이 나부꼈다.
잿가루가 사방에 흩날렸다.
잿빛 마나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분쇄(Smash).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이 검의 그물을 찢어발겼다.
3.
투두두두두둑!
주문이 검기를 찢어발긴다. 주문을 막아내는 드라카를 볼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곧장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라크를 보았다.
‘두 팔, 두 다리 다 붙어있고···.’
뼈가 끊어진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큰 부상은 없었다. 나는 어깨에 힘을 풀고 짧게 숨을 뱉었다.
“···후우.”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나는 안도했다.
“···라니아 교수님?”
당황한 듯 라크는 눈을 깜빡이고 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라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수고했다, 라크.”
검귀를 상대로 버티는 것을 보았다.
“정말로, 수고했다.”
아직 초인은커녕, 벽에 닿지도 못했으면서··· 초인을 상대로 몇 초의 시간을 버텨내는 라크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다. 정말로.
마음만 같아선 몇 마디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남은 말들을 삼킨 채 고개를 돌렸다. 앞을 바라보았다.
주문이 만들어낸 눈보라가 걷혔다.
걷힌 눈보라 사이로 드라카의 모습이 드러난다.
“···하.”
드라카의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그것은 조소였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웃음 같기도, 내게 날리는 비웃음 같기도 한 조소.
“도대체, 도대체가···.”
드라카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너는, 어디까지고···.”
굳이 들어줄 필요가 없는 말들이었다.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을 들어줄 가치를 나는 느끼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턱.
설원 위에 내 발자국이 찍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핏자국이 어지러이 찍혀있다. 라크의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끌려와 죽음을 맞이한 이름 모를 이들의 핏자국이었다.
아이의 시체가 있다.
노인의 시체가 있다.
이름 모를 이들의 시체가 많았다.
“···나는 말야.”
그것이, 꼭 과거의 어느 풍경을 연상케 하여서.
어렸을 적 보았던 내 고향의 최후와 같아서.
“누구든지 그럴 수 있다고, 사연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은 이해해 주려고 노력은 하는데.”
속이 들끓었다.
“너는.”
한걸음, 다시 한걸음.
“너만큼은 안 되겠다.”
길었던 악연에 종지부를 찍고자 걸음을 옮긴다.
내디딘 한걸음이 깊게 찍혔다.
“야.”
움켜쥔 주먹 사이로 잿가루가 바스러졌다.
손가락과 손가락 틈새로 불길이 일렁였다.
“좀, 끝내자. 제발.”
내가 주먹을 뻗었다.
드라카는 검을 휘둘렀다.
그 결과는 볼 필요가 없었다.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났었으니까. 이건, 그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에 불과했다.
쩌적.
드라카의 검이 박살 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