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67
〈 167화 〉 폭풍을 부르는 신입생(1)
* * *
찬바람이 감도는 복도를 거닐며 아일라는 생각에 잠긴다.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어느 책에서 마주하게 된 문장이다.
「만남은 뜬금없다.」
「사건 또한 만남과 같다.」
「뜬금없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그렇다.」
좋아하는 문장이었다.
사람은 사람과 얽히며 살아간다. 실타래가 꼬이고 얽히듯이 사람은 타인과 얽히고설킨다. 그 꼬임 속에서 사건은 발생하는 법이다.
“아, 스승님!”
“여기 있었군요, 라크.”
이를테면 지금 애써 평정을 가장한 채, 감격한 내심을 숨기는 저 여인과··· 사소한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저 소년이 그렇다.
‘스승과 제자.’
우연한 만남이 겹쳐 만들어진 인연이다.
사제의 연을 맺는 것이 평탄치만은 않았으리라. 서로 어울리지 않은 두 인물이, 서로를 스승과 제자라 부르기까지는 많은 사건이 있었을 테지.
“동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일라 왕녀님.”
“뭘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배웅한다.
복도를 따라 투닥거리며 멀어져가는 그들을 아일라는 한참 동안 바라봤다. 제자와 스승이라, 제법 부러운 관계였다.
‘우연’
세상 모든 만남이 우연이다.
우연한 만남 속에서 우연한 관계가 싹튼다. 누군가에겐 스승이, 누군가에겐 제자가, 누군가에겐 동료가 우연의 산물이 된다.
관계란 그렇게 쌓이는 것이다.
상상치 못한 곳에서 갑작스럽고 우연히.
‘그것이 당연한 것.’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일라는 아니었다.
제 4 왕녀, 아일라에겐 우연한 만남이란 없다. 있을 수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녀가 앉은 자리는 그녀에게 변수를 허락지 않는다.
‘우연한 만남에서 오는 행운이 있다면.’
우연한 만남에서 오는 불운도 있었으므로.
높은 자리에앉은 이들은···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이들은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이 땅에서 가장 고귀한 왕가의 핏줄을 타고난 이라면 더 말 할 것도 없다.
아일라는 철저한 통제하에 살아왔다.
통제되고, 계산되고, 철저한 검증 하에 만남은 이루어진다. 그곳에 우연이란 변수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우연 없는 삶은 지루했다.
정해진 길을 걷는다.
그저, 걸을 뿐이다.
양옆으로 높은 벽을 쌓아 올린 길이다. 주변을 둘러볼 수도 없다. 다른 길을 볼 수 없으니, 이 길이 틀린 지 맞는지 다른 길과 비교해볼 방법도 없다. 그저 누군가 시키는 대로 걸을 뿐이다.
하지만.
‘아주 간혹가다 있다.’
아일라는 손을 뻗었다.
‘높게 쌓아 올린 벽을 허물고, 멋대로 길 위에 발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문고리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그러니까.’
드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문이 열리고 바람이 불어온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흔들렸다.
찰랑.
아일라의 백금발이 나른한 오후의 햇살 아래 반짝였다. 찰랑이는 백금색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아일라는 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안녕하세요.”
자신이 마주한 두 번째 우연.
“라니아 교수님.”
벽을 허물고 멋대로 자신의 길 위에 나타난 인물. 첫 번째 우연과 같은 잿빛 머리칼을 가진 교수를 바라보며··· 아일라는 미소 짓는다.
“오랜만에 뵙는 느낌이네요.”
흔들리는 감정을 숨긴 채.
평정을 가장한 채 그녀는 미소 지었다.
2.
“······.”
나는 말없이 책상을 바라봤다.
책상에는 한 통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금화가루가 묻은 붉은 장미의 문양으로 봉(?)해둔 편지지다. 툭툭, 나는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툭, 그리고 다시 툭.
그렇게 테이블을 건드리다 말고 나는 짧게 숨을 뱉었다. 고개를 뒤로 확 젖혔다.
“···이게 대체 뭐길래?”
조금 전 양호실에서 아일라 왕녀가 내게 전해주고 간 편지였다. 그녀는 별말 없이 편지만을 전해주고 떠났다. 무언가 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일단 들고 오긴 했는데.’
마나 거래학 교무실.
내 테이블 위에 올려둔 편지를 나는 뚫어져라 바라봤다. 나로서는 이 편지의 의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거, 제 1 왕녀가 보내는 편지잖아.”
이 문양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나는 품 안에서 편지지를 꺼냈다. 제 1 왕녀와 연결된 마도구였다.
‘이걸 놔두고 굳이 왜?’
그녀에게 받은 마도구다.
보내면 곧장 답변할 수 있는 마도구를 놔두고, 왜 아일라 왕녀를 통해 편지를 보내오는가. 번거로운 일을 싫어하는 르뤼엘 왕녀가 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
그리고, 그 시점이다.
나는 다시 한번 위화감을 느낀다.
‘이거 왜 이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도구의 상태가 이상했다. 곧장 상대와 연결돼야 할 마나의 흐름이 박살 나 있었다. 박살 난 건 내 쪽이 아니었다.
‘편지를 받는 쪽.’
그러니까, 르뤼엘 왕녀가 가지고 있을 마도구에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단 뜻이다.
“······.”
눈동자가 조금 가늘어졌다.
나는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책상 위에 올려진 편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일단, 이 편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찌익.
봉인된 편지를 텄다. 편지지 안에서 툭, 하고 한 장의 편지가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펼쳐보았다.
「주의해라.」
편지는 경고로 시작했다.
언제나 본론부터 말하고 보는 르뤼엘 왕녀다운 편지였다.
「현재, 굉장히 까다로운 상황에 처해 있어 ‘이런 식’으로 편지를 전해야 함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짧은 상황의 설명.
「교수, 그대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남긴다.」
시선을 내렸다.
다음 문장을 좇아 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제 1 왕자, 이자크가 움직였다.」
「내 오라비가 아플리아 아카데미에 흥미를 느낀다. 보다 정확하겐, 새로이 등장했다는 용사 후보생과··· 그곳에 재적 중인 아일라에게 시선을 둔 것이겠지.」
제 1 왕자, 이자크.
그 왕자에 대해서는 르뤼엘 왕녀의 입을 통해 들은 바가 꽤 있었다. 뒤가 구리며, 편집증을 가진 인물.
‘···왕자가 아플리아를 노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르뤼엘 왕녀 딴에는 제법 무게를 잡고 쓴 편지인 듯 싶었지만··· 내게 그것은 그닥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관심을 가져서 뭐 하게?”
진지한 의문이었다.
아플리아에서 왕가의 정치극이라도 할 셈이란 말인가? 음, 그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이곳은 학생들을 굴리는 곳이지 권력 투쟁의 장은 아니었으니까.
「내 오라비는 다양한 수를 쓸 것이다.」
「쓸 수 있는 패를 아낌없이 투자할 것이며,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정상적인 방향이라고 추측하긴 무리가 있군.」
다양한 수, 머릿속으로 나는 제 1 왕자가 부릴 수 있는 병력에 대해 대충 셈을 해 보았다.
‘최대 병력이라 해봐야··· 왕가의 기사단이랑, 하운드(Hound)정도인가?’
여전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본녀는 그대의 실력을 신뢰한다.」
그리고, 그것을 르뤼엘 왕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가 별궁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목격했으니까.
「내 오라비가 별의별 수단을 짜낸다 한들, 그대의 앞에서 무의미하리란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대에게 경고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 경고했다.
「내 오라비가 한 인물을 왕도로 불러들였다.」
그 인물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다음 문장에 쓰여 있었다. 나는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내 시선은 한 줄의 문장에 못 박혔다.
「광인(?人), 켈르할름.」
어느 초인의 이름이 편지에 적혀있었다.
3.
「광인(?人), 켈르할름.」
멸망한 나라의 마지막 마법사.
한때는 현인이었으나, 감당할 수 없는 것에 손을 뻗은 대가로 광인(?人)이 되어버린 존재.
광인, 켈르할름.
초인의 반열에 이른 마법사.
‘라니엘, 나는 용사가 싫다.’
‘용사뿐이 아니다. 난 별과 관련된 모든 게 싫다.’
‘별도, 용사도, 마왕도, 넷의 재앙도, 그 전부가 나는 가증스럽다. 나는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가 가증스럽다. 가증스러워, 미칠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는, 이 땅에 존재해선 안 된다.’
그 누구보다 별을 혐오하는 존재.
「그가 아플리아로 향하고 있다.」
그가 이곳으로 온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내 입가를 가렸다. 턱을 툭툭,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건 의문이었다. 정말로, 단순한 의문.
“어떻게?”
내가 주목한 건 광인 켈르할름이란 대목이 아니다. 제 1 왕자가 켈르할름을 왕도로 불러냈다는 대목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부른다고 오는 사람이 아닌데?’
광인, 켈르할름.
그가 어째서 광인(?人) 이겠는가?
그는 본인이 얻은 광기를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온갖 제약을 걸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행동 방침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 행동 방침 중 하나가, 전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전장에 묶었다. 그 또한 제 자신이 광인이란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사람을 무슨 수단으로?’
제 1 왕자가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를 무슨 목적으로 왕도로 불렀는지, 어째서 아플리아로 그를 보내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좋지 않은데.”
광인 켈르할름.
그가 아플리아에 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의 행동 방침을 아는 내게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심각하게 다가왔다.
「나는 용사를 증오한다.」
「배교자를 죽일 수 있다면, 그다음 내가 죽일 것은 다름 아닌 너다, 카일. 너희 용사들이다.」
「이 세상에, 인간이 아닌 것들은 필요 없다. 가증스러운 별과 연관된 것들은 전부 죽어야 한다.」
모든 제약을 풀고 광기에 휩싸이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 켈르할름이 카일에게 말했던 것.
켈르할름의 모든 행동의 제1원칙에 놓인 것.
‘켈르할름은 별과 배교자를 증오한다.’
그리고, 아플리아에는 별과 관련된 이들이 많다. 당장 내가 아는 인물만 해도 셋이다. 심지어, 켈르할름이 증오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인물마저 있었다.
똑똑.
때마침 누군가 교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것은 한 소녀다. 내가 교재를 나눠주기 위해 교무실로 호출했던 소녀였다.
“부르셔서 왔어요, 라니아 교수님.”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빙빙 꼬는 소녀는, 내가 이번 학기에 담당하게 된 아이였다.
“클로에.”
“네, 라니아 교수님?”
백발의 머리칼과 녹 빛의 눈동자.
배교자와 너무나도 닮은 외모를 가졌으며, 별에게 선택받아 용사가 되기를 앞둔 소녀.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입학하자마자 미안한데 말야.”
“네?”
“너, 이번 학기만 휴학할래?”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