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78
〈 178화 〉 서명하시오, 배틀 메이지!(4)
* * *
왕가의 사냥개, 하운드(Hound).
한평생 왕가에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한 병사들은 어렸을 적부터 훈련을 받는다. 그들이 받는 교육은 기사들의 교육과는 다르다. 명예는 없다. 긍지도 없다. 그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술만을 배운다.
투척술, 은신, 위장, 잠입.
기사들이라면 배우지 않을 기술을 배운다. 검(?)을 다루기보다는 암기를 다루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은 기사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수행한다. 주로, 더러운 것들. 더럽지만 실용적인 것들이다.
그렇게 뼈를 깎는 훈련을 견뎌낸 하운드들은 훌륭한 병사가 된다. 그들은 기사들이 하지 못하는 음습한 임무를 수행한다. 암살과 미행 따위의 일이다. 그들의 작전 수행 능력은 놀라울 수준이다.
백병전의 대가.
마법사들의 천적.
왕가가 부리는 사냥개인 그들에게 긍지는 없지만, 실력에 대한 자신은 있다. 여럿이 모인다면 검의 초인까진 아니더라도, 마법사 계열의 초인을 상대로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으리라고 하운드들은 생각해왔다.
“그 눈동자.”
그리고, 지금.
“별의 축복을 받았군.”
하운드들은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광인(?人), 켈르할름.
오래된 초인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그 목소리에는 옅지만 분노가 느껴진다. 광인이 제 감정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운드들이 가장 경계하던 상황이다.
‘광인이 감정을 드러내면, 곧장 제압해야 한다. 달려들어서 마나를 억제하는 마도구를 채우고, 광인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버텨야 하지.’
일찍이 들었던 지시가 있다.
지시에 따르는 것이 훌륭한 병사의 덕목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하운드도 지시를 따를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나.”
공기가 무거워진다.
숨통을 옥죄여오는 듯하다. 끼긱, 하고 장비하고 있는 마도구들이 오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경고하도록 하지.”
켈르할름이 손을 뻗는다.
막아야 함을 알지만 하운드들은 제 발이 바닥에 묶이는듯한 착각마저 느낀다. 맹수를 마주한 듯한 공포다.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리고, 그 순간이다.
탁, 하고 누군가 땅을 박찼다.
풀숲과 건물 틈새에 모습을 숨기던 하운드 중 하나가, 광인을 향해 뛰어든다. 짓눌리는 공기 속에서도 그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다.
추적자, 칼트.
훈련생 기간을 걸쳐 하운드가 된 인물이 아닌, 전장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하운드로 발탁된 전장의 병사. 그는 여타 하운드들과는 다르다. 넷의 재앙과 마주하고도 살아남은 그는 이따위 압박감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칼트의 움직임은 부드럽다.
촥,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는다.
긴 기장의 코트의 소매 틈새로 단검을 숨긴 채 조용히 땅을 박찬다. 광인을 향해 접근한다. 그리고, 움직인 것은 칼트 뿐만이 아니다.
“야.”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 다가온지는 모른다.
시야의 사각, 혹은 인지의 바깥에서 다가온 인물이 있다. 그녀가 켈르할름의 손을 낚아챘다.
“너, 뭐하냐?”
잿빛 머리칼이 나부낀다.
광인보다 더욱 흉흉한 기운을 풍기는, 어느 소녀의 푸른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확!
주변을 짓누르던 마나가 한순간에 흩어진다. 그제서야 하운드들은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왕가의 사냥개들은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저 소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2.
“너, 뭐하냐?”
라니엘은 눈을 부릅뜨고 켈르할름을 노려봤다. 광인이 별을 증오함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광인과 별의 축복을 받은 레스티가 붙어있을 때 모종의 불길함을 느꼈다.
다만, 어디까지나 감일 뿐이었다.
광인으로 불린다 한들 켈르할름은 철저한 원칙을 지켜 행동한다.
그렇기에, 거리를 두고 볼 생각이었다.
그가 감정을 드러내기 직전까지는, 그러했다.
「그 눈동자.」
「별의 축복을 받았군.」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분노다. 켈르할름이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둔 감정이자,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감정. 그리고 그가 감정을 드러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결코.
‘제약의 흔들림.’
목소리에 감정이 서렸고, 제약이 흔들렸다.
제약이 느슨해지며 한순간 흘러나온 마나가 주변의 공기를 휘어잡았다. 그 순간 라니엘은 땅을 박차고 달리고 있었다.
“미쳤냐?”
켈르할름의 손목을 쥔 손아귀에 힘이 실린다. 이건, 라니엘로서도 상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왜?’
별의 축복에 반응해서?
아니, 그건 아니었다.
별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 몇 있다는 것이야, 이미 켈르할름에게 말해둔 상황이다. 광인은 그 사실에 별다른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애초에, 켈르할름은 별을 증오하면서도 그는 용사들과 협력하여 몇 번이고 작전을 수행했다.
켈르할름은 그런 인물이다.
자신의 광기를 이해하고 있기에, 그 무엇보다 광기를 다스리고자 주의하는 인물.
‘그런 켈르할름이, 갑자기 왜?’
라니엘은 당황스러움 마저 느낀다.
“갑자기 뭔 짓이야?”
“······.”
라니엘의 질문에 켈르할름은 침묵했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라니엘을 보았고, 뒤이어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레스티를 보았다. 레스티는 겁에 질려있었다.
“···후우.”
켈르할름이 짧게 숨을 뱉었다.
새어 나오던 마나는 사라지고, 잿빛 눈동자 너머에서 흔들리던 불길은 사그라든다. 그렇게 제약을 더욱 단단히 묶은 켈르할름이 라니엘을 흘겨봤다.
“···미안하다.”
그가 말했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군.”
“···쯧.”
라니엘이 짧게 혀를 찼다.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이곳을 지켜보는 학생이 많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라니엘의 귓가에 맴돌았다. 보는 눈이 많았다.
무슨 일이야?
아니, 갑자기 여기저기서···.
저 사람들은 다 누구야?
르티아 교수님이랑 라니아 교수님이 왜···.
풀숲, 건물의 옥상, 건물의 틈새.
온갖 곳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하운드들이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가 켈르할름을 향해 제 무기를 겨누고 있다.
“···죄송합니다.”
라니엘의 귓가에만 울릴 만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켈르할름의 뒤에 서 있는 칼트의 목소리였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칼트는 무기를 숨긴 채, 기척을 지우고 접근했지만··· 다른 하운드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호흡이 거칠다.
한순간의 당황, 대응이 늦어짐을 자각한 그들은 차분함조차 잊고 수칙을 어겼다.
그 결과, 이목이 쏠린다.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커져만 간다.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라니엘이 표정을 구긴 채 칼트에게 중얼거렸다.
“···적당히 둘러대.”
칼트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걸음 물러선다.
그가 하운드들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내려.”
서늘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귀빈(??)께선 문제가 없으시다. 이쪽의 교수분께서 잠시 오해하신 것 같군.”
라니엘이 켈르할름의 손목을 놓았다. 켈르할름은 손목을 문지르며 적당히 말을 받았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행동을 했다. 사과하지.”
임기응변으로 꾸며낸 말이 오간다.
학생들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켈르할름을 제압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하운드들은, 어느새 켈르할름의 호위로 탈바꿈한다.
“괜찮으십니까.”
“문제없다. 다만···.”
칼트의 물음에 켈르할름이 답했다.
“이 교수는 내게 할 말이 남아 있어 보이는군.”
“그럼 따로 접견실을 안내···.”
“그럴 필요 없어.”
라니엘이 칼트의 말을 끊었다.
그녀가 제 장갑과 손목의 틈새에 손가락을 비집어 넣고선, 그대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탁!
라니엘의 장갑이 테이블 위에 내팽개쳐진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와도 같다. 칼트의 동공이 흔들린다. 켈르할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결투다.”
라니엘이 무표정히 말했다.
“거절하진 않겠지.”
학생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라니엘이 결투를 신청한다. 칼트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당연히 거절하겠지? 그런 생각으로 칼트가 켈르할름을 흘겨봤으나···.
“···승낙하지.”
켈르할름은 결투를 승낙했다.
칼트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3.
“선배님 미치셨습니까?”
“너 요즘 말을 쫌 막 하는 것 같다?”
“아니, 선배님. 혀를 차시면서 ‘적당히 둘러대’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래서 둘러댔잖습니까. 상황 딱 깔끔하게 넘어가고! 없던 일로 하고! 광인이 ‘귀한 신분’임을 알려서 학생들 접근도 좀 막아보고!”
그림 좋지 않았습니까아아아악!
칼트가 내 귀에 대고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귀를 틀어막았다. 물론, 틀어막는다고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결투라니.”
칼트가 눈을 부릅떴다.
“광인과 결투라니. 그것도 학생들 앞에서 선언하신 걸 보면, 아플리아 내에서 치르실 생각입니까? 설마 그러진 않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로.”
“그럴 건데.”
“으아아아아아악!”
아플리아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칼트가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쥐어뜯는 가운데··· 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채 턱을 괬다.
“···후우.”
겨우 진정을 한 듯, 칼트가 숨을 가다듬고선 다시 나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켈르할름은 왜 거절을 안 한 겁니까?”
“그게 계약이니까.”
“예?”
“아플리아에 들어왔을 때 맺은 계약의 조건 중 하나라고. 만에 하나라도 제약이 흔들릴 경우, 원칙에 반하지 않는 이상 내 제안을 수락하는 것.”
나는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그냥 이대로 쫓아내 버릴까 싶었는데, 그건 들어주지 않을 것 같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너 걔 눈빛 못 봤냐? 뭔가 있어. 이대로 떠나라 해봤자 말은 안 들어 쳐먹을거고··· 그러기도 애매한 상황이지.”
노리는 게 있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참에 알아보려고.”
“뭐를 말씀이십니까.”
“방문 목적. 그리고, 노리는 거.”
“그걸 결투로 어떻게 알아봅니까?”
다 방법이 있다. 나는 그렇게 말을 아끼며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요 근래 들어 초인과 치고받을 일이 많아진 듯한 기분이 든다.
“······.”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칼트가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이 무척이나 많은 표정이었다. 하긴, 애 입장에선 상황이 꼬인 거겠지.
“죽일 듯이 안 싸울 거니까 걱정 마.”
“···예?”
“내가 설마 학사 부지 내에서 최상위 주문을 갈기고 그러겠냐? 끽해봐야 기초 주문이나 주고받고 그러겠지. 결투 전에 서로 제약 걸고 할 거야.”
“···그런 보여주기식 결투에 의미가 있습니까?”
“있으니까 하겠지.”
여전히 칼트가 의문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적당히 말을 이었다.
“이건 네가 모르는 쪽 지식이라 말해봐도 소용이 없긴 한데···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주자면 대충 이런 거야.”
내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손가락 위로 피어오른 마나가 일렁였다.
“접근해서 흐름을 읽을 거야. 치고받으면서 그놈이 몸에 걸어둔 사슬에 새긴 정보를 볼 거라고.”
“···본다니요?”
“켈르할름은 잘 만들어진 기계 장치라고 보면 돼. 몸에 묶어둔 사슬에 입력된 ‘명령문’에 따라 움직이니까. 나는 그 명령문을 전부 읽을 거야.”
옛날에도 한 번 해본 일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제약이 모두 풀린 켈르할름을 상대로 읽어야 했다는 점이지만.
“옛날에 봐둔 거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만 확인하면, 노리는 게 뭔지 딱 나오겠지.”
“으음···.”
“더 자세히 설명해봐야 넌 못 알아먹는다니까. 왜, 여기서 회로의 패턴을 읽는 방법이라도 강의해 줄까? 니가 해볼래?”
칼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뇨,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배님?”
“···없는데.”
“···있는가 보군요.”
“없다니까.”
“없다면, 굳이 왜 학생들의 앞에서 ‘대놓고’ 결투를 신청하신 겁니까? 그냥 조용히 물러나서 이런 숲속에서 결투라도 했으면 되지 않았습니까.”
“쯧.”
내가 짧게 혀를 찼다.
‘시발, 이 새끼 눈치 빠른 거 봐.’
내가 침묵했다.
칼트는 조금 더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칼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배님.”
“···뭐.”
“설마 하는건데.”
“아니야.”
“아직 말 안 했습니다만.”
“아무튼 아니라고.”
위자드를 제압하는 배틀 메이지의 ‘우월함’을, 학생들 앞에서 보여주겠다는··· 그런 음습한 욕구에서 온 제안은 아니었다. 결코.
“애들 보여주면 도움도 될 거 아냐.”
기초 주문만 쓰기야 하겠다지만, 근본이란 가장 기초되는 것에 깃드는 법이다. 기본과 기본이 맞부딪치는 결투는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지.
“기왕 결투 해야 하는 김에, 애들한테 보여주면 좋잖아. 너는 잘 모를 텐데, 요즘 내가 특강을 한 단 말야? 거기서 다루는 게···.”
이리저리 설명을 늘어놓았다. 내 설명을 다 들은 칼트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그렇지.”
“하지만 지셔야 할 겁니다.”
“···뭐?”
내가 눈을 부릅떴다.
칼트는 심드렁히 답했다.
“선배님 말마따나 보는 눈이 많지 않습니까. 하운드들의 앞에서 나 잿빛 마법사다, 하고 광고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건.”
“초인을 상대로 승리라도 따냈다간 발뺌할 길도 없습니다. 왜, 이미 그런 식으로 제자 한 분에게 들키지 않았습니까.”
칼트가 딱 잘라 말했다.
“적당히 지시면 될 문제 아닙니까.”
“······.”
“목적이 제약에 붙은 명령어인지 뭔지를 읽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럼 승패야 중요치 않겠죠.”
정론이었다.
“아니면, 다른 목적이라도 있으십니까?”
칼트가 나를 흘겨봤다.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니, 뭐··· 없지···. 원래 질 생각이었고···.”
“하긴, 선배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셨을 텐데, 제가 괜한 참견을 한 모양이군요.”
“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