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84
〈 184화 〉 전조(3)
* * *
칼트는 라니아를 등에 업은 채 숲속을 달렸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오랜 전장의 경험으로 인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칼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균형을 잡은 채 더 빠르게 숲속을 달렸다. 초인의 반열에 접어들기 시작한 육체는, 고작 사람 한 명을 등에 업었다고 지치지 않는다.
‘차갑다.’
목덜미에 닿은 라니아의 팔.
축 늘어진 팔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칼트는 조금 더 빠르게 달렸다. 땅을 박차고 숲을 벗어났으며, 아플리아를 가로질러 달렸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이 웅성거렸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칼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 그리고, 마법사인 선배님의 상태를 봐줄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선배님의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곳.
답은 금방 나왔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칼트가 고개를 들었다.
왕도에 세워진 구조물. 인간이 하늘의 진리에 닿기 위해 쌓아 올린 탑의 모습은 이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검은색의 탑.
이르기를, 마학자들의 탑.
그 탑을 바라보며 칼트는 중얼거렸다.
“흑색 마탑주.”
라니아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사건에 협력할 가능성이 큰 인물. 그가 있는 탑을 향해 칼트는 걸음을 재촉했다.
2.
“조심히 들어가 보세요. 클로에 양.”
“네,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소녀의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누가 봐도 긴장한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 아일라는 엷은 웃음을 흘렸다.
“편하게 행동하셔도 된다니까요. 벌써 세 번째 만나는데, 첫 번째와 달라진 게 없네요.”
“조,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할 것 까지야. 다음에 또 봐요, 그럼.”
덜덜 떨면서 클로에가 방 밖으로 나간다.
열렸던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아일라는 들어 올리고 있던 손을 축 늘어트렸다. 자애로운 웃음을 연기하던 가면이 한순간에 벗겨졌다.
“···후우.”
아일라는 한숨을 내쉬며 손거울을 들어 올렸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확인하는 것은 자신의 눈동자다.
왕가의 상징과도 같은 금빛의 눈동자.
그러나, 그곳에 아일라를 상징하는 빛무리는 담겨있지 않았다.
‘역시, 소용이 없구나.’
여전히 눈동자에는 백금색의 빛무리가 일지 않는다.
용사 후보생, 클로에.
별과 관련 있는 저 소녀와 가까이 있다 보면, 별이 다시 계시를 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형편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별은 여전히 침묵할 뿐이다.
별의 침묵 속에서 생활한 지 어언 2주가 다 되어 간다. 아일라는 그 14일간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사소한 사건 하나에 심장을 졸인다. 거리를 오가는 모두가 자신을 노리는 자객 같아 보였다. 별이 침묵하기 전에 던진 ‘예언’은 아일라에게 고독함만을 강요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시간만이 하염없이 흐른다.
그녀의 시간은 별의 언어에 속박당한 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일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후우···.”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
또다시 그녀가 한숨을 내쉰 순간이다. 문밖에서 호위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녀님. 로열 가드가 찾아왔습니다.
“···로열 가드요?”
예, 전해드릴 것이 있다고···.
로얄 가드.
왕가의 충실한 사냥개, 하운드(Hound).
‘로열 가드가 갑자기 왜?’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들여보내도 좋다고 말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하운드의 정복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왕녀님.”
무표정한 얼굴, 생기가 없는 목소리.
“드려야 할 물건이 있어 방문했습니다.”
그가 아일라에게 물건을 하나 건넸다.
“왕궁의 통신망 복구가 끝 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복구가 완료되면, 이 마도구로 왕성과 곧장 연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가 내민 것은 수정구슬이다.
아일라는 별 의심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검은색이네요?”
“활성화가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활성화가 되면 왕가의 색인 금빛으로 빛날 겁니다.”
그 말을 남긴 채 하운드가 자리를 뜬다.
그가 자리를 뜨고, 아일라는 한참이나 수정구슬을 바라봤다. 검은색의 수정구슬. 왠지 모르게 불길한 색의 수정구슬이었다.
‘수상하긴 하지만···.’
왕가의 번영을 위해, 제 목숨도 쉽게 버리는 충실한 사냥개인 하운드가 내민 물건이다. 그렇게 아일라가 의심을 거두려는 순간이다.
『그 무엇도 믿지 마라.』
별이 남긴 예언이 귓가에 맴돈다.
“하벨.”
아일라가 호위 기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하벨?”
다시 한번 불러도 대답은 없다.
아일라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그녀가 마른침을 삼킨 채,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컥, 커흡.”
문을 열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목을 붙잡힌 채 막힌 숨을 토하는 하벨의 모습이다. 아일라는 떨리는 눈동자로, 하벨의 목을 움켜쥔 인물을 바라보았다.
“당신···.”
왕가에 충성을 맹세하였을 하운드.
“······.”
그가 서늘한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별빛을 차단했을 텐데, 어찌?』”
말하는 것은 인간이나, 그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을 빌려 다른 무언가가 말하고 있다. 뼈를 긁는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아일라의 고막에 울렸다.
“『뭐, 아무래도 좋겠지.』”
그가 손을 휘둘렀다.
손가락을 따라 빛무리가 피어올랐다. 빛나는 것은, 검은색의 마나다. 심연과도 같은 칠흑색의 마나가 아일라를 덮쳤다.
“『그분을 배알할 준비를 하고 있거라, 별의 아이야.』”
아일라의 시야가 암전했다.
3.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당황스럽군.”
예투알은 피가 묻은 장갑을 벗으며, 제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하운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제법 살벌했지만, 할 말은 해야만 했다.
“도대체가 말일세···.”
흑색 마탑의 최상층.
예투알은 침대에 눕혀둔 소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겉보기에는 어리고, 순해 보이는 소녀이나··· 그 안에 들어찬 것이 잿빛 마법사임을 예투알은 알고 있다.
그 소녀를 가리키며 예투알이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잿빛 마법사가 저 지경이 됐단 말인가?”
잿빛 마법사가 누구인가?
그 악명높은 배교자(?者)마저 단독으로 상대했던 인물이다. 그만한 인물이, 지금은 혼절한 채 눈을 뜰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막 왔을 때만 해도, 토혈을 했었지?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군···.’
믿을 수가 없는 상황에 예투알을 난색을 표하고 있자니, 칼트가 입을 열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그래서, 선배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조금 안정된 것 같아 보입니다만···.”
“안정화? 이게?”
예투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한거라곤 출혈을 막은 것 뿐이야. 그것도 임시방편이지. 머지않아 곧 다시 시작될걸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상태가 어떻길래···.”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부가 완전히 엉망진창이야.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예투알이 누워있는 라니아를 가리켰다.
소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살아있는 게 신기한 수준이야. 겉보기에는 멀쩡하나, 속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더군.”
그의 손가락이 라니아의 심장을 향했다.
“심장에 알 수 없는 무언가 박혀있어. 그것이 주기적으로 마나를 오염시키지.”
마나의 오염.
그 단어에 칼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염··· 말입니까? 마기 중독 같은 겁니까?”
“달라. 마기 중독은 정화하면 그만이야. 마나의 오염은, 마법사에게 죽음과도 같은 것일세.”
오염된 마나가 통로를 지나는 순간, 모든 마나로 오염이 퍼진다. 마나를 순환하면 순환할수록 온몸의 통로가 박살 나고, 육체가 붕괴한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에게 마나의 오염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마나의 오염은 마나의 날뜀을 유도하지. 통제되지 않는 마나는 육체를 내부에서부터 찢어발겨. 가진 마나가 크면 클수록 그 정도 역시 거대하지. 그리고, 잿빛 마법사 수준이라면···.”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수준일걸세.
그렇게 말한 예투알이 미간을 짚었다.
“그러니, 본래대로라면 마나가 오염당하는 순간 끝이야. 몸 안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살아남을 사람이 어딨나?”
놀랍게도 있었다. 지금 여기에.
예투알은 소녀를 흘겨봤다.
보면 볼수록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걸 잿빛 마법사는 알 수 없는 수단으로 억제하고 있더군. 오염된 마나를 정화하고 있지. 오염당하고, 정화하고. 다시 오염당하고···.”
그가 라니아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얇은 셔츠 너머로 정교한 회로가 빛나고 있었다.
“이 알 수없는 회로가 그 미친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세. 그런데, 무언가에 자극받았는지 오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른게야. 그걸 이 회로가 정화하는 속도가 못 따라가니 이 사달이 난 거고.”
그게 지금 예투알이 낼 수 있는 결론이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나도 모르겠네. 모르는 것 투성이야. 심장에 박힌 게 뭔지도 모르겠고, 계속 차오르는 오염도 모르겠고, 이 회로는 더욱더 모르겠어.”
‘모르겠다.’
그런 대답을 반복하며 예투알은 무력함을 느낀다. 이런 결론밖에 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마저 느낀다.
‘이래 봬도 마탑주이거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미지의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예투알로서는 눈앞의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심장에 그거, 제거는 안 되는 겁니까?”
“할 수 있다면 잿빛 마법사가 진작에 했을 테지. 이건, 달라. 제거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야.”
예투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나의 중심에 얽혀있어. 영혼의 근간에 뒤얽혀 있단 뜻이야. 이것을 제거하는 순간···.”
그가 단언했다.
“죽을걸세. 무조건.”
빠득, 하고 칼트가 이를 갈았다.
“그럼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습니까?”
“나도 모르겠네. 어떻게 해야 할···.”
거기까지 말한 시점이다.
끼이익, 하고 침대가 눌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칼트와 예투알이 동시에 옆을 돌아봤다. 침상에 누워있던 소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선배님!”
“시끄러우니까, 입 좀 닥쳐, 봐.”
그녀가 비틀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다섯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운 채, 그녀가 자신의 가슴팍에 손가락을 찔러넣었다. 푹! 손톱의 절반쯤이 피부에 파고들고, 그 끝에 피가 스며들었다.
뿌득, 뿌드드득.
그대로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인다.
새하얀 피부를 찢으며 회로가 새겨진다. 치이이익, 하고 타는듯한 소리가 들린다. 몇 번이고 검붉은 핏덩어리를 토하면서도 그녀는 손가락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쳤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투알이 중얼거렸다.
맨정신으로 몸에 회로를 새기고 있다. 타는듯한 고통을 인내하는 것은 물론이요, 날뛰며 몸을 난도질하고 있을 마나를 억지로 휘어잡아 회로를 그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
차마 짐작도 가지 않는 고통이다.
그만한 고통 속에서, 저 소녀는 제정신을 유지한 채 정교한 회로를 보강하고 있다. 부릅뜬 푸른 눈동자는 가슴팍의 회로를 정확하게 보고 있다. 그 시선에선 광기 마저 느껴졌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윽고 그녀가 제 손가락을 뽑는다.
후두둑, 하고 침상 위로 핏물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핏덩이를 뱉었다.
“후윽, 후우우···.”
그녀가 숨을 뱉으며 핏물이 묻은 손을 들어 올렸다. 엄지와 중지를 천천히 맞대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파직!
푸른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 파지지직. 하고 튀어 오른 스파크는 예투알의 집무실인 이곳에 새겨진 통신 회로와 반응한다. 방안의 회로가 붉게 과열되었다.
콰릉!
이윽고 번개와 같은 소리가 울리며 통신 회로가 전부 박살 났다. 예투알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운데, 라니아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흑색, 마탑주.”
반쯤 감긴 눈동자.
흘러내려 턱에 맺힌 식은땀.
말하기는커녕, 의식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도, 그녀는 기어코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곧, 손님 하나가 올 겁니다.”
“···손님?”
“신호를 보냈으니, 올 겁니다. 노인이든, 젊은 엘프든, 아무튼 독특해 보이는 인물이 오면···.”
문 좀 열어주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라니아가 털썩, 하고 쓰러졌다. 끝까지 할 말을 다하는 그 모습에 예투알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손님 하나가 온다고?”
노인이던, 젊은이던 아무튼 독특해 보이는 인물.
그 애매한 설명은 대체 무엇인가.
예투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만, 그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 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탑주님, 손님분께서 오셨습니다.
대략 삼십 분쯤 후, 마탑의 로비에서 통신이 왔다.
본인을 ‘카르디’ 라고 소개하시는 노인··· 아니 젊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알 수 없는 분이 오셔서 최상층으로 올려보내 주지 않으면, 마탑을 박살 내겠다는 되지도 않는 협박을···.
예투알이 미간을 짚었다.
“···그냥 올려보내 드리도록.”
잿빛 마법사의 지인.
이 상황에 도움을 줄만한 인물.
그런 인물이라면, ‘되지도 않는 협박’이 아니라 정말로 마탑을 무너트려 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되도록 신속히, 예의를 갖추어서 안내해 드려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예투알은 통신을 끊었다.
정말인지, 오늘 하루는 혼란스러운 날이었다.
“···거기 하운드.”
“예?”
“잿빛 마법사의 지인들은, 도대체가 원만한 해결법이란걸 모르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니 됐네···.”
자네도 마찬가지였지.
예투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급합니다. 당장 도움이 필요합니다.」
눈앞의 이 남자 또한 조금 전 앞길을 막는 경비병을 죽일 듯이 쥐어팬 뒤, 통신기를 강탈해 당장 길을 열라고 협박한 인물이다.
‘환장하겠군. 정말.’
예투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금을 들여 새긴 통신 회로는 박살 났고, 마탑의 위신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초인 혹은, 초인에 가까운 인간들 사이에 낀 예투알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고 있었다.
‘···백색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가는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