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
〈 2화 〉 뭐야 돌려줘요(1)
* * *
라니엘, 내가 그때 말했던 거 기억나?
우리 마을이 마왕군한테 짓밟히고 너랑 나만 살아남았던 그때 말야. 그때 우리 약속했었잖아. 마왕군이고, 사천왕이고, 마왕이고 나발이고 다 조져버리자고.
너는··· 마법에 재능이 있었지.
좋은 스승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좋은 자리까지 내정된 거 잘 알고 있어. 그래도 염치없게 물어볼게.
나, 용사 파티를 꾸리고 있어.
믿을만한 동료도 둘 구하긴 했어.
힐러에, 척후 겸 사수.
이제 남은 건 마법사뿐 인데···.
아무리 해도 마법사가 모이질 않더라고. 알잖아. 마법사들은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 걸. 마왕 토벌이라는, 터무니없는 계획에 동참해 주질 않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내 파티에 들어와 주면 안 될까?
마왕을 잡자. 잡아서, 그 누구도 무시 못 할 업적을 세우는 거야. 우리 마을이 단순히 ‘마왕에게 멸망한 마을’이 아닌, ‘마왕을 토벌한 용사가 난 마을’로 기록되게 하는 거지!
부탁할게, 라니엘!
내 파티에 들어와주라!
“·····.”
타닥, 타다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 앞에 홀로 앉아있자니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썩 기분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다.
“···마왕 토벌은 지랄.”
한숨을 내쉬며 모닥불에 불쏘시개를 집어 던진다.
용사 파티에서 나온 지 사흘째.
나는 왕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장에 머무르던 곳이 최전선이었기에 왕도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기에, 중간중간 이렇게 야영을 하며 귀향길에 오르고 있었다.
뭐, 용사나 병사들을 위해 준비된 숙박시설을 이용하려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마는···. 그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이편이 더 익숙했고 말야.
카일 그 자식이 밤마다 사라, 레미아랑 떡 쳐댈 때마다 나는 이렇게 모닥불이나 피우며 주변을 망보고 있었거든.
생각하니까 갑자기 또 좆같네.
그때 모닥불 같은걸 피울게 아니라, 파이어볼을 천막으로 쏴갈겨버렸어야 했는데. 새삼 후회가 든다.
“하여간 시발.”
욕을 뇌까리며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새까만 밤하늘 위로 별자리들이 빛난다. 그 흐름을 헤아려보니 왕도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대충 이틀 정도면 도착하겠네.
그리고, 이틀 뒤면 스승님을 만날 수 있겠지.
“·····.”
스승님을 뵐 생각을 하자니 입안이 썼다.
마왕 모가지를 썰고 오겠다며,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나왔는데 결국엔 이 모양 이 꼴이다. 마왕 멱을 따긴커녕, 용사 파티에서 추방당한 꼴이라니.
차마 스승님의 얼굴을 볼 낯짝이 없었다.
“에휴.”
일단 무릎 꿇고 머리부터 조아려봐야지.
잘하면 썬더볼트 몇 방으로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타닥, 타다닥.
새까만 밤하늘 아래.
모닥불 소리만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2.
왕도로 향하던 도중 밤이 깊어져, 나는 잠시 근방 도시에 한 번 들렸다. 야영용 물품이 다 떨어져 한번 보충할 필요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근방에 있던 작은 도시에 발을 들였다.
밤의 도시, 카디낙.
이곳은 이전에도 한번 들린 적이 있는 도시였다.
도시에 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카디낙은 밤 문화로 유명한 도시였다. 내가 일전에 이 도시를 들렸던 이유도, 바로 이 밤 문화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자니 내가 꼭 밤 문화를 즐기러 이 도시에 왔던 것 같아 보이는데, 그런 거 아니었다. 사라, 레미아 그 미친년들이랑 같이 왔는데 즐기긴 뭘 즐겨.
오히려 깨부수러 왔었지.
카디낙의 환락가를 즐기기 위해 밤의 도시에 숨어든 서큐버스 퀸, 우리는 그 몽마를 사냥하기 위해 밤의 도시에 방문했었다.
“진짜 큰일이었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 잡아! 카일에게 꼬리친 저 불여우년 눈구멍에 화살 쑤시기전엔, 나 못 돌아가. 돌아갈 생각 없어.
동감이에요. 레미아. 오늘밤은 길어지겠네요.
아니, 좀 적당히 날뛰라고 미친년들아!
라니엘은 입 다물고 뒤에서 마법이나 쏘세요. 낄 때 안 낄 때 몰라요? 하여간 눈치 없는 남자 같으니라고.
쯧. 눈치 없긴.
···생각해보니까 그때부터 지랄이었네.
나는 슬쩍 도시 한편을 바라봤다. 그때 사라와 레미아가 날뛰었던 곳. 벌써 2~3년은 더 됐지만 그 싸움의 여파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으, 으아아아악! 용사님들! 제발 도시 밖에서어어…!
문득 비명을 내지르던 영주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속으로 나는 사과를 올리며 로브를 꾹 눌러쓰곤 도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밤 특별히 초청받은 무희···.”
“여행자들에 한해서 술값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밤의 도시답게 카디낙은 시끌시끌했다. 여기저기서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나는 환락가에서 거리가 좀 있는, 주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아, 부르셨습니까.”
“여기 써진 물품 좀 구해다 줄 수 있어? 심부름 값은 지불하도록 하지.”
“음. 근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로군요. 더 시키실 건 있으십니까?”
“보리 맥주와 치킨 수프 정도면 충분하겠군.”
“심부름 값 포함하여 은화 5닢입니다.”
나는 주인장에게 은화 5닢을 건넸다.
주인장이 먼져 가져다준 맥주를 홀짝이며, 나는 어깨를 풀었다. 혼자 다니니까 확실히 편하긴 하네.
“크으.”
목울대를 넘어가는 맥주의 맛이 끝내줬다.
그렇게 한참 맥주를 들이키다 보니, 주변이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여자 한 명이 수십 명에 다다르는 남자들을 데리고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뭐야 저게.
나는 잔을 뽀득뽀득 소리 나게 닦던 점주에게 질문했다.
“주인장, 저건 뭐지?”
“아, 이 근방에서 유명한 여성분이십니다.”
“유명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요.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고들 하더군요. 저는 뵌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들 합니다.”
“흐응.”
어지간히도 예쁜 모양이네.
별 관심은 없었기에, 나는 마저 수프나 떠먹었다. 근데 뭔가 익숙한데. 저렇게 남자들을 끌고 다니는 여자의 모습을, 옛날에도 본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 맞다.
서큐버스 퀸이 딱 저랬었다.
사방에 매료를 뿌려놓고 쓸만한 남자가 있음 쏙쏙 골라다 정기를 빨아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
에이 설마.
여길 다시 찾아왔겠어?
그때 그렇게 줘 털리고 다시 찾아올 정도면, 그건 서큐버스 퀸이 아니라 남자에 눈 돌아간 미친년이겠지.
음···.
사라와 레미아 앞에서 카일을 건드린 걸 보면 남자에 눈 돌아간 미친년이 맞긴 했…었지?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남자들을 이끌고 걸어 나가는 여자를 바라본다. 진한 붉은색의 머리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독특한 양식의 모험가 복장.
그 얼굴이 뭔가 낯이 익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그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기억속의 서큐버스 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는 마기(??)는 서큐버스 퀸의 그것이었다.
“이런 미친.”
저년이 왜 저깄어, 시발.
“환장하겠네···.”
“음? 왜 그러십니까? 손님.”
“저기, 점주. 여기 위에 숙박시설도 쓸 수 있나?”
“예? 아. 가능합니다만.”
“오늘 하룻밤 묵도록 하지.”
아무래도, 오늘 밤은 조금 길어질 것 같았다.
*
몽마(夢?), 서큐버스.
그들이 누구인가.
솔직히 말하면 마인 치고 서큐버스들은 별로 해롭지는 않았다. 남자의 정기를 빼앗긴 하는데, 대부분의 서큐버스들은 쉽게 만족하고 쉽게 떠난다.
‘게다가, 그 피해라 해봤자 정말 별거 없기도 하고.’
서큐버스들이 입힌 피해라 해봤자, 정기가 빨린 남자들 정도나 있을 테지만···.
솔직히 그건 피해라 부르기도 뭐했다.
정기가 빨린 남자들은 하루 이틀 피곤함을 호소하다 이내 일상으로 복귀하곤 했으니까.
아무튼간, 서큐버스는 그런 종족이었다.
딱히 해롭지도 않은데, 굳이 토벌하자니 귀찮은 종족. 그 탓에 대부분의 서큐버스는 성역까지 기어들어 가지 않는 이상 인간들에게 공격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서큐버스 퀸 레페가 바로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녀는 만족하지 않는다. 정말로 남자가 말라 뒈질 때까지 정기를 빤다.
무해를 넘어, 유해해진 박쥐 새끼.
내게는 그녀를 사냥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돌려 받아야 할 것도 있고 말야.’
나는 숨을 죽인 채 레페의 뒤를 미행했다.
“이쪽이야.”
단체로 매혹에 걸린 남자들을 이끌고 레페는 어느 허름한 건물로 향한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골목길에서 튀어나와 남자 하나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억!”
“입 다물어.”
그대로 남자의 마나를 역류시켜 기절시킨다. 다들 매혹이 걸려 시야가 좁아진 탓인지, 꽤 눈에 띄는 행동을 했음에도 내게 향히는 시선은 없다.
나는 남자가 빠진 자리에 껴들어 자연스레 그녀의 뒤로 접근한다.
“흐응,흥.”
내가 인파에 섞인줄은 꿈에도 모른채, 레페는 흥얼거리며 문을 매만진다. 아무래도 문에도 이것저것 주문을 걸어둔 모양이었다.
찰칵.
이윽고 주문이 하나씩 풀려나간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녀가 문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뛰쳐나갈 타이밍을 속으로 가늠한다.
“자! 다들 들어···.”
지금.
탁.
그녀가 문을 연순 간, 나는 인파를 제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뛰쳐나가며 미리 스톡(Stock)해둔 주문을 차례로 해방한다. 몸에 마나가 감돌고, 육체능력이 대폭 상승한다.
콰앙!
한걸음.
내디딘 보도블록이 반파되며 파편이 튀어 오른다.
“어?”
두 걸음.
손을 뻗는다. 뻗어서, 눈을 크게 뜬 박쥐 년의 목덜미를 붙잡는다. 붙잡음과 동시에 건물 안으로 밀어 붙인다.
다중 캐스팅(MultiCasting).
주문 가속(Magic Boost).
가장 기본이 되는 주문들이 마나를 가속시킨다.
그 흐름을 감각하며, 나는 레페의 목덜미를 움겨쥔 손가락 하나하나에 스톡(Stock)해두었던 주문을 차례로 해방했다.
주문 해제(AntiSpell).
방벽 해제(AntiShield).
엄지와 검지에 새겨둔 주문이 동시에 해방된다. 첫번째 주문이 그녀의 폴리모프를 해제했고, 두번째 주문이 그녀가 두르고 있던 푸른 마나 방벽을 박살낸다.
파삭!
“읏…!”
폴리모프가 해제되며 돋아나는 박쥐 날개가 나를 밀쳐내는 것보다 먼저, 남은 세 손가락에 담긴 주문이 빛을 발한다.
쇠약(Weakness).
중급 구속(Restriction).
강타(Smite).
허공에서 사출된 쇠사슬이 레페의 몸을 구속한다. 쇠약이 걸린 그녀는 사슬에 저항하지 못했고, 사지가 구속된 그녀의 복부에 무형의 힘이 충돌한다.
“커흡!”
헛구역질하며 레페는 무릎을 꿇는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를 내버려 둔채, 나는 문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잠금(Lock).
한동안 문밖에선 소란스러움이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문을 열고 건물의 안으로 들어오진 못했다. 얼마안가 레페가 걸어두었던 세뇌마저 풀린듯, 그 인기척 마저 흩어졌다.
“커윽,흐으읍…”
나는 방구석에 놓여있던 의자 하나를 가져와 레페의 앞으로 끌고 왔다. 저 박쥐 년을 앉힐 건 아니고, 내가 앉을 의자였다.
“서큐버스 퀸, 레페.”
의자에 걸터앉아 허리를 살짝 숙인다.
두 손을 깍지껴 턱을 괸 채, 나는 입을 연다.
“오랜만이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