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16
〈 216화 〉 재앙이 할퀴고 간 흔적(3)
* * *
라니엘에게는 몇 가지 특기가 있다.
개중에선 마법사에게 몹시도 어울리지 않는 특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는 라니엘이 전장에서 터득하게 된 잡기술 중 하나였다.
챠르르르륵!
바로, 주문으로 소환한 사슬을 다루는 것.
사슬(Chain).
기초 주문인 사슬(Chain)은 짧은 시간 유지되는 사슬을 소환할 뿐인 간단한 주문이다. 당연하게도, 소환된 사슬에 별다른 기능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챠륵!
단순하기 짝이 없는 주문.
그러나, 라니엘의 손에 들린 순간··· 사슬은 만능에 가까운 도구가 된다. 라니엘은 전장에서 사슬을 다뤘던 기억을 떠올렸다.
징징대던 사라를 묶어서 카일에게 집어던지거나.
뛰어내리는 카일을 붙잡거나.
카일이 도약할 발판을 만들어내거나.
‘참 많이도 써댔네.’
어찌나 자주 썼는지, 이제는 사슬이 제 손발처럼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것이 혹 검사들이 말하는 신검합일의 경지가 아닐까,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라니엘이 팔을 휘둘렀다.
챠르르르륵!
느슨해졌던 사슬이 다시 팽팽해진다.
라니엘의 뒤로 뻗어있던 사슬이 크게 호선을 그리며 튀어 올랐다.
쐐엑!
공중을 떠다니는 돌무더기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오는 사슬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묘기를 부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뱉게 하는 장면이긴 하지만······.
“······.”
그 끝에 매달려있는 사람의 처지에선, 그저 속이 울렁거릴 뿐이다.
‘몹시도 울렁거리는군.’
사슬의 끝에 매달린 엘프, 카르디.
그는 극심한 메스꺼움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업힐래, 아니면 사슬에 묶여서 다닐래?」
조금전, 라니엘이 물었던 질문에 카르디는 후자를 선택했다. 모든 직책을 내려둔 지가 오래긴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의 등에 업혀 다니는 건 좀 모양새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뭣보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녀석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슬에 묶여 이동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카르디는 그 선택을 몹시도 후회하고 있었다.
훽!
사슬이 요동치고, 카르디의 고개가 휙 젖혀졌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카르디는 간신히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는 사슬을 휘두르며 도약을 거듭하는 라니엘이 있다.
탁.
그녀가 땅을 박차며 사슬을 휘두른다.
공중을 부유하는 잔해와의 충돌을 코앞에 두고, 카르디의 몸이 좌측으로 확 잡아당겨 졌다. 간신히 회피에 성공했지만, 피해야 할 것은 하나가 아니다.
아직도 한참은 남은 파편들.
그 파편들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라니엘이 사슬을 잡아당기고, 휘두르기를 반복한다.
챠륵, 챠르르륵!
사슬이 연달아 굽이친다.
카르디의 고개도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꺾였다가 제자리를 찾는다.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의 심정이 이러할까. 속이 무척 울렁거렸다.
사람을 묶고 다닌다는 자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아닌, 옮겨야 할 화물 취급을 받고 있다.
굉장히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카르디가 눈을 감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걸 칭찬해줘야 할까. 카르디가 몹시도 미묘한 감상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라니엘이 입을 열었다.
“야, 카르디.”
콰릉, 하고 연달아 치는 번개.
천둥소리 사이로 들려온 목소리에 카르디가 눈을 떴다.
“뭐냐.”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왕성에 결계가 쳐져 있는 거 같거든? 저거 어떻게 해야 하냐?”
카르디가 힘겹게 고개를 젖혔다.
그곳에는 왕성을 둘러싼 결계가 보인다. 별과의 계약을 맺은 그날 카르디가 직접 쳐둔 결계였다.
“내가 만든 거로군.”
“어떻게 풀어? 그냥 때려 부수는 식으로 뚫는 결계는 아닌 것 같은데.”
“···네 머릿속엔 부수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는 거냐?”
“그게 제일 간단하잖아.”
과연 마법사가 맞는 걸까.
사실 누구보다도 전사에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카르디가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결계에 닿으면, 결계가 해제될 테니까. 그러니 저 앞에···.”
내려주면 내가 결계를 풀겠다.
그렇게 말하려던 카르디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닿으면 결계가 해제···.’ 까지 들은 라니엘이 온 힘을 다해 사슬을 휘둘렀기에.
훽!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가 수면위로 튀어 오르듯, 혹은 포물선을 그리며 포탄이 쏘아지듯··· 카르디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챠르륵.
줄곧 자신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렸다. 그렇게 카르디는 때아닌 해방감과 부유감을 함께 느끼며, 눈앞을 바라봤다.
다가오는 성벽의 정문.
전혀 줄지 않는 속도.
자신이 결계를 해제하기 위한 포탄으로 사용됐음에, 카르디는 한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환장하겠군.”
콰아아앙!
결계를 해제하고서도 한참을 날아가, 성의 정문에 카르디가 처박혔다. 고대 엘프 포탄이 착탄 한 정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한다.
투두두둑.
떨어지든 돌 부스러기 사이로 카르디가 몸을 일으켰다. 한발의 포탄이 되어 부딪혔음에도, 놀랍게도 아프지는 않았다. 어째서?
우웅.
제 몸을 두르고 있는 푸르스름한 보호막.
아마도, 충돌 직전에 라니엘이 걸어준 보호주문 이리라. 선배의 몸을 걱정해주는 후배의 마음에 자신은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탁.
잠깐의 차이를 두고 라니엘이 카르디의 옆에 착지했다. 부드럽게 착지한 그녀가 손목을 털며 카르디를 바라봤다.
“하도 번개가 쳐대서. 벼락 맞기 싫잖아? 더했다간 번개 맞을 거 같았거든.”
“···그랬나.”
“응. 밑에 깔린 안개 보고 번개 칠 순간 계산하는 것도 머리 아프더라고. 왕성 근처에는 안개가 더 짙기도 했고···.”
요컨데 나름의 생각이 있다는 말이었다.
카르디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들어가도록 하지···.”
짐짝 주제에 뭘 바라겠는가.
2.
고대의 왕국, 아르카디아.
그곳의 중심에 위치한 왕성의 내부를 걸으며 라니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왕성은 어둠에 잠겨있었고, 불온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실 여기가 마왕성 아니야?”
옛 동화에선 용사가 마왕성에 쳐들어가는 장면이 자주 나오곤 했다. 하지만, 라니엘이 알기로 지금의 마왕에게는 성 같은 게 없었다.
‘분위기상으론 여기가 마왕 성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라니엘의 중얼거림을 들은 카르디가 쓰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로군. 어찌 보면 마왕성이 맞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카르디가 걸음을 옮겼다. 라니엘은 말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왕성은 거대했고, 여러 갈래로 나뉜 길이 몇 번이고 눈앞에 나타났다.
“이쪽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쪽이군. 비켜봐라. 결계를 해제할 테니.”
카르디가 앞장서 결계를 해제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결계가 많은데다가, 왕성의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것처럼.’
끼이익.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문의 너머로는 조금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복도에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짐을 라니엘은 느낀다.
그리고, 조금의 위화감 또한.
‘···뭔가 비슷한데.’
라니엘은 시야에 들어오는 복도의 풍경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분명히 처음 들어온 곳임에도, 언젠가 들려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 기시감의 정체를 그녀가 깨달은 건, 어느 문의 앞에 선 시점이었다.
“아.”
굳게 닫힌 문의 너머에서 라니엘은 불길함을 느낀다. 한층 더 무거워진 공기를 마주한 가운데,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이렇게 생긴 문을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적색궁.”
제 1 왕자, 이자크의 거처.
그곳에서 보았던 문과 똑같이 생긴 문이 그곳에 있었다. 라니엘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카르디가 눈살을 찌푸린 채 라니엘을 돌아봤다.
“···네가 이 궁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적색궁이 맞아?”
“그래. 국왕께서 마학에 뜻을 둔 왕자께 선물한 궁이니까. 그래서, 네가 이곳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게···.”
라니엘이 짧게 설명을 이었다.
왕성에서 마주한 고대 왕국의 존재, 육체와 육체를 갈아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서.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설명을 들은 카르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자는이미 죽었을 텐데. 가니칼트의 성검에 베여 영혼이 아예···.”
중얼거리다 말고, 카르디가 눈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성문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계속 가도록 하지.”
끼기긱.
무언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성문이 열린다.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온 바람에선 썩은 내와 함께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라니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건.’
공기가 진득하다.
호흡이 끈적하게 늘어졌다.
“라니엘, 내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었지.”
걸음을 옮기며 카르디가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균형을 이룬다. 삶은 죽음으로서, 시작은 끝으로, 모든 것은 반대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별만큼은 아니다.”
언젠가 들어봤던 이야기.
“별에게는 균형을 이룰 존재가 없어야 했다. 누군가, 그것을 관측하지 않았더라면. 개념으로서 끌어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태어나고 만 무언가.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개념.”
존재해선 안 되는 무언가.
“완벽한, 섭리를 주관하는 별에 반대되는 개념. 불균형과 불규칙함을 상징하는 개념.”
복도를 따라 걷던 카르디가 걸음을 멈췄다.
“그늘.”
어둠속에서 잿빛 결계가 빛난다.
은은한 빛을 흘리는 결계는 한두 개가 아니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불투명한 결계가 공간을 통째로 붙들어 두고 있었다.
“그 개념은 한 미치광이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불균형과 불규칙함은, 인간의 내부에 있다고 믿으며 인간을 재료로 금술을 벌였지.”
잿빛 결계.
카르디가 결계를 건드리자, 결계가 서서히 투명해진다. 불투명해 속이 비춰 보이지 않았던 결계가, 그 속을 비추기 시작한다.
라니엘이 숨을 헛삼켰다.
그녀의 동공이 한순간 크게 떨렸다.
‘이게, 무슨.’
결계의 너머에 펼쳐진 것.
그것은, 하나의 지옥이다.
“그 속에서 그늘은 탄생했다.”
온갖 전장을 떠돌며 숱한 참상을 목격한 라니엘이지만, 그런 그녀마저 결계의 내부에 있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무언가.
망가져 버린 인간의 시체.
그 시체들은 손을 뻗고 있다. 뻗은 손길은 바닥을 할퀴고 있다. 할퀴고 할퀴어진 시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것은, 시체로 만들어진 길이다.
손길.
무언가를 끌어내리고, 할퀴려는 손길.
라니엘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마왕과 마주했을 때 그 구정물 덩어리에서 솟구친 셀 수 없는 검은 손아귀다. 그것과 닮은 것이 눈앞에 있었다.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마기가 진동할 수 밖에 없다
수백년이 흘렀음에도 그곳에 잔류한 사념은 건재하다. 라니엘이 눈을 가늘게 뜬 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언제나와 같은 표정의 카르디가 있다.
“이게.”
라니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딴 게, 왜 왕궁에 있는 거냐?”
“말했지 않나, 라니엘.”
카르디가 담담히 말했다.
“아르카디아는 마왕과 가장 깊은 곳까지 관여된 곳이라고.”
3.
“그게 무슨 소리야.”
잿빛 마법사 라니엘.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선 카르디를 노려본다. 카르디의 멱살을 잡은 채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거듭하여 질문을 던진다.
“설명해, 카르디. 이게 다 뭔데? 왜 이게 네 왕국에 있는 거고, 그 미치광이란 존재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전부 알려줬다.”
그 질문에 카르디는 답할 수 없다.
“이곳에 모든 단서가 있다.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내가 더이상 말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보고, 이해하고, 알아내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게 두 번째 계약에 닿는 방법이니.”
그것이 진실로 닿을 길이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