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
〈 24화 〉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3)
* * *
“이상이다.”
탁. 로셀 교수가 교본을 내려놓는다.
“2주 차 수업을 마치도록 하지. 오늘 수업에 나온 천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해보도록.”
네 시간 연달아 이어진 수업.
로셀 교수가 교실을 나가자마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책상에 엎어지거나, 고개를 뒤로 젖히는 등 그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미친 거 아니야? 또 과제야.
그래도 이번엔 2주나 줬잖아···.
투덜거리며 대부분의 학생은 교실을 떴다. 한산해진 교실에는 사각사각, 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만이 한동안 들려왔다.
십오분 후.
“후우···.”
레스티는 숨을 돌리며 펜을 놓았다.
그녀의 앞에는 지난 네 시간의 결과물이 놓여있다.
2주 차 수업을 정리한 노트.
무려 스무 장 짜리 정리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 정리했어.’
글자가 빼곡히 채워진 노트를 보고 있자니 묘한 뿌듯함마저 든다. 그러나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했다.
들리는 대로 적었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주석도 써넣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적었긴 했지만··· 이 전부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렵다.
너무 어려웠다.
분명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이다. 수업을 들을 때는 무언갈 깨달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문제는 수업이 끝난 다음이다.
‘···혼자 하려면 못하겠어.’
수업을 들으며 천칭의 구조를 짜내는 건 할만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혼자서 천칭의 구조를 짜내려 하니, 저울의 무게추 하나조차 만들지 못했다.
“후우···.”
더 연습해야겠지.
레스티는 짧게 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머지는 기숙사로 돌아가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교실을 나가려는 순간.
“·····.”
레스티는, 문 앞에 서 있는 로셀 교수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췄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가 자신을 내려다봤다.
“레스티.”
“···부르셨어요?”
레스티는 무심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로셀 교수··· 아니, 로셀 원로가 껄끄러웠다. 교수 대 학생으로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건 괜찮지만···.
이렇게 일대일로 마주하는 상황은 썩 달갑지 않았다.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 것 같았다.
“하나 묻겠다. 교수가 아닌, 잿빛 마탑의 원로로서.”
잿빛 마탑, 그 단어를 들은 순간부터 레스티의 눈동자는 자연스레 아래로 향한다.
네가, 차기 마탑주인가.
···그렇게 됐는가.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로셀 원로의 눈빛이 떠오른 까닭이다. 레스티는, 교수가 아닌 원로로서의 로셀의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잿빛 마탑 정기회의에 참가할 것이냐?”
“···정기 회의라면.”
“한 분기 단위로 열리는 그 회의가 맞다. 장로가 물어보더구나. 너도 참가할 것이냐고. 참가하겠다면 삼 주차 수업은 따로 빼주도록 하마.”
“···괜찮아요. 참가할 생각 없어요.”
그 대답에 망설임은 없다.
참가해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니까.
‘눈치만 받다 끝나겠지.’
그 자리는, 네 자리가 아니라는 듯한 눈초리.
지난 3년간 그녀가 지겹도록 받아온 시선이다.
‘그런 시선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참가 안 하는 게 나아.’
레스티는 그렇게 생각했다.
“장로에겐 내가 전달하도록 하지.”
로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떴다.
그 발걸음 소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레스티는 고개를 들었다. 배움을 청할 때와 달리, 그 눈빛은 차게 식어 있었다.
‘괜찮아.’
‘장로님도, 잿빛 마탑은 잊고 편하게 쉬다 오라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레스티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2.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그 평가에는 그녀를 바라보는 조교수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이 한몫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라니아는 아플리아의 졸업생이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조교수들 사이에, 그녀는 그저 외부인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라니아는 그 이름 높은 로셀 교수의 조교수다.
별다른 시험도 거치지 않고 그녀는 곧바로 조교수의 자리에 올랐다. 다른 조교수들이 보기에, 그것은 낙하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낙하산.’
‘로셀 교수만 믿고 나대는 년.’
그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조교수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들의 악의가 결정적으로 들끓게 된 계기가 있다.
매일 같이 학사 내 카페에서 발견되는 라니아의 모습이 바로 그 계기였다.
그녀의 외모는 독특하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그 청초하면서도, 어딘가 가련해 보이는 인상은 어디 있던 눈에 띈다.
그런 인물이 매일같이 카페에서 보인다.
자신들은 서류 더미를 들고 뛰어다니고 있는데, 그녀는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조교수들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로셀 교수의 편애.’
‘아론 학장도 그녀를 편애한다는 소문이 있다.’
‘실력이라곤 없는 낙하산.’
‘아플리아의 오점.’
라니아에 대한 소문은 크기를 불려 나갔다.
몇몇 학생들에게 닿을 정도
*
“오늘 말야.”
마나의 거래학 3주차 강의실.
“그 조교수가 들어온다는데.”
“···그 낙하산이란 조교수?”
“어. 로셀 교수님이 오늘 마탑 회의에 참석하신다나··· 나도 잘은 몰라.”
“그 조교수라면··· 그거 맞지?”
그 이름을 입에 담는 학생들은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그들은 속삭인다.
“낙하산.”
그들 모두가 원소 마법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세자르와 친하게 지냈기에, 그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세자르 조교수님이 그랬잖아. 아플리아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었지.”
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특히나 세자르와 친하게 지내는 학생이었다.
끼익.
때마침, 문이 열리고 소문의 인물이 등장했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라니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강의실의 앞에 선다.
“반갑습니다.”
잿빛 머리칼에 차분한 푸른 눈동자.
단정한 로브 차림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로셀 교수님의 수업을 대신 하게 된, 라니아 반 트리아스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후,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문제지들을 가리켰다.
“오늘 수업은 각 자리에 놓인 문제를 푸시면 됩니다. 질문이 있다면 손을 들고 발언해주세요.”
맥이 손을 들었다.
“문제에 관한 질문도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가능하다, 그 대답에 맥은 입가를 씰룩였다.
그는 곧바로 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
‘더럽게 어렵긴 하네.’
그 로셀 교수가 낸 문제 답게, 한 문제 한 문제가 가히 난제라 부를만한 문제들이다. 맥의 눈동자는 빠르게 문제지를 훑고, 그 마지막 장으로 향한다.
30번.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운 문제.
보는것만으로도 어지러워지는, 도대체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알아보는 것 조차 힘든 문제였다.
‘사실상 풀지 말란 거지, 이건.’
그 대단하다는 상급반들조차, 30번은 못 푸는 문제라고 단언했다. 다음 수업에서 로셀 교수가 말하는 풀이를 듣기 위해 살펴보기만 한다던가.
‘이거다.’
맥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질문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이 문제, 풀이를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맥의 곁에 있던 학생들이 그 문제를 확인한다. 이윽고, 그의 계획을 눈치챈 학생들이 키득키득 들릴 듯 말 듯 한 웃음소리를 냈다.
로셀 교수가 아니면 못 푸는 문제.
다른 교수들조차, 한참이 걸리는 문제.
그 문제를 콕 찝어 질문하는 의도는 뻔했다.
‘낙하산이 풀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맥은, 다가온 라니아가 문제지를 볼 수 있도록 의자를 뒤로 뺐다.
“음.”
그녀는 말없이 문제지를 바라봤다.
계산할 때 쓰라고 펜과 종이를 내밀었음에도, 그녀는 펜을 쥘 생각 조차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맥은 속으로 비웃었다.
‘하긴, 어떻게 손대야 할지 감도 안 잡히겠지.’
비릿한 미소가 맥의 입가에 흐른다.
그의 곁에 있는 학생들도,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돌린 채 웃음을 흘리고 있다.
‘분명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문제겠지.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저 회로를 먼저 풀어야 할테니까.’
그러나, 저 조교수는 그런 문제를 멍하니 보고만 있다. 그렇게 봐서 풀릴 문제라면, 자신들이 그 고생을 하겠는가?
피식.
주변의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할 무렵.
맥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아, 뭐 조금 걸리시면 다른 문제 먼저 풀고 있을···.”
“천칭(Balance)의 거래 기본 이론이네요.”
“…예?”
방금 뭐라고?
“천칭의 거래 기준에 관해 묻는 문제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시험지에 그려진 회로를 허공에 똑같이 그려낸다.
“문제를 왜 이렇게 숨겨놨어?”
그녀는 갈고리 모양으로 굽힌 손가락을 그 회로의 중심에 건다. 이윽고 휙 잡아당겼다.
촤락!
그것만으로.
복잡했던 회로가 간결하게 정리된다.
차라라락!
그 요란한 회로의 움직임에, 학생들의 시선이 라니아에게로 쏠렸다. 맥은 멍하니 눈 앞에 떠있는 회로를 올려다 보았다.
“이제 좀 보이나요?”
“예, 예에?”
“1의 마나(mana)로 천칭에 완성된 주문을 요구하려면 몇 개의 제약을 써야 하는가. 그거 물어보는 문제 같은데요?”
평탄한 어조.
“거래의 기본이네요. 제약으로 대가를 매기는 형식.”
그리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
“한번 보는 게 빠르겠군요.”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인다.
별빛을 닮은듯한 마나가 저울의 형상을 띈다.
모의 천칭(ImitationBalance).
거래의 대가를 측정하기 위한 저울.
“여기 모형 만들어둘 테니 실험해 보고 답 적으심 될 것 같네요. 아, 천칭 만드실 수 있는 분은 만들어서 직접 실험해봐도 좋아요.”
그 말에 답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학생들은 눈을 크게 뜨고, 라니아가 만들어낸 천칭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런 건 직접 만들어보는 게 이해가 빠르니까요.”
어려울 것 없다는 듯한 말투다.
그 말투에, 학생들은 할 말을 잃었다.
‘직접 만들어 보라고?’
모의 천칭을 만들어내는 건 나중의, 나중에야 나오는 개념이다. 그들이 배우는 건 제약에 따른 비용의 감소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대뜸 모의 천칭을 만들어 보라니?
덧셈과 뺄셈의 원리를 막 배우고 있는 그들에게, 그 질문은 고도의 연산장치를 만들라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더 질문 없나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
침묵이 퍼진다.
“더 없으시다면 내려가 보겠습니다.”
본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맥은 할 말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의자리로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와, 이게 뭔···.”
“빨리 누가 마나 좀 올려봐봐!”
“나 이렇게 깔끔한거 처음 봐. 이게 뭐야…?”
그 소란은, 수업이 끝날때까지 이어졌다.
3.
“···라니엘.”
“네, 부르셨어요, 스승님?”
마탑에서 돌아온 로셀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자신의 제자를 불러세웠다.
“너, 도대체 뭘 가르친 거냐?”
“예?”
“이것 말이다, 이것.”
로셀이 가리키는 건 학생들이 낸 문제지다.
풀린 문제는 제각각이다. 그러나, 모든 학생의 문제지에 30번만큼은 풀려 있다.
그것도, 전원 정답인 채로.
‘풀 수 있을 리가 없는 문제일 텐데.’
그 문제를 확인하는 데만 해도 몇 겹으로 쌓아둔 회로를 해체해야 하는 문제다. 문제의 확인만 해도 점수를 주겠다고 써놓은 문제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걸 다 풀었다고? 모든 학생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것이 말이 됐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이윽고, 그 원인이 입을 열었다.
“아 그거요? 저울 모형 만들어줬는데요.”
“·····.”
“요즘은 마나 활용 초급보다 그런 거 먼저 배우나 봐요? 전 한참 나중에 배웠던 거 같은데. 요즘 애들 머리가 좋나 보네.”
“···라니엘.”
“네?”
“이 문제는, 문제를 확인하기만 해도 점수를 주는 문제였고, 마나의 거래의 기본 개념을 묻는 문제였다.”
“오···.”
“기본적인 개념으로 풀어야 할 문제에, 모의 천칭을 만들어주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덧셈 뺄셈도 잘 못 하는 이들에게, 누르기만 하면 답이 나오는 연산장치를 주면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아니, 물어보길래···.”
그렇게 대답하는 제자의 모습에.
로셀은 이마를 탁하고 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