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5
〈 245화 〉 마법사들의 밤(7)
* * *
“네게는 인도자의 자격이 있구나.”
고룡의 마법사의 말에 광장이 술렁인다.
수만년의 세월을 살아온 태초의 마법사께서 내리는 이명은 다양하나, 그 갈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법이다.
현인, 현자, 대현자.
고룡께서 내리는 이명은 이 세 가지가 전부다. 그 예외가 존재하긴 하나, 그것은 재앙에게 붙어진 이름이므로 제외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인도자?』
『인도자가 무슨···?』
『처음 듣는 이명인데···.』
『인도자? 이끌어? 무엇을?』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이들 중, 그 누구도 ‘인도자’라는 이명을 들어보진 못했다. 색을 가진 마탑의 수장도, 인계의 끝자락에서 마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별종 마법사들도,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이명이다.
『별 아래 걷지 않는다?』
『진리에 근접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누구와도 다른 마도를 걷는다고.』
술렁임은 커져만 간다.
저마다의 목소리로 떠들던 마법사들의 시선은 다시 한곳으로 모여든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한 소녀가 앉아있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는 말없이 단상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비추는지 알지 못할 푸른 눈동자는 일견 신비롭기만 하다. 마치 인형 같은 소녀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금색을 비춘다.
고룡의 마법사를 똑바로 마주하는 소녀의 모습에, 술렁이던 마법사들은 침묵한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감돌기를 잠시.
“더 전할 말은 없군.”
고룡의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소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그가 쥐고 있던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두들겼다. 백금색의 별무리가 지팡이를 기점으로 퍼져 나간다.
퍼져나간 별무리가 만들어내는 것은 문.
그 문을 툭툭 건드리며 고룡이 미소 지었다.
“나는 이만 내려가도록 하지. 즐거운 축제였네, 이 시대를 대표할 마법사들이여.”
묻고 싶은 말은 많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고룡의 마법사의 걸음을 멈춰 세우지는 못한다. 신께서 걷는 길을 막는 것 자체를 불경이라 여긴 까닭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는 법이다.
멈춰서 있는 마법사들 사이로 누군가 걷는다. 불어온 바람에 그녀의 잿빛 머리칼이 흔들린다.
탁.
별도, 고룡의 마법사도, 그 무엇도 가벼이 신뢰하지 않는 마법사는 단상 위에 오른다. 고룡의 마법사가 들어선··· 사라지기 직전의 백금색 문의 문고리를 거칠게 잡아당긴다.
화악!
문이 열리고 빛이 범람한다.
빛이 잦아들었을 적, 단상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2.
문고리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한순간 시야가 백색으로 점멸했다. 두세 번 눈을 깜빡이고 나니 앞이 제대로 보였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초원에는 무너진 돌기둥들이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다. 마치 오래전에 부서진 유적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개중에는 무너진 신상도 보인다.
신전으로 보이는 유적의 흔적.
나는 고개를 들어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에는 한 명의 마법사가 있다. 가장 높은 돌기둥에 걸터앉은 그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 따라왔군. 자네라면 따라올 줄 알았네.”
“알지도 못할 말만 잔뜩 늘어놓고, 별다른 설명 없이 떠나는 건 무슨 경우랍니까?”
“남들 앞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게다가 말일세···.”
고룡의 마법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마냥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지. 가벼움 속에 종종 묻어나오는 신비함이야말로,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지.”
저건 또 무슨.
가벼움을 가장하려는 고룡의 모습에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만.”
고룡의 서늘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선은 넘지 말고 거기서 듣게. 이곳은 타인에게 침범받고 싶지 않은 영역이니까.”
“···그렇게 싫으시면 왜 여기로 불렀습니까?”
“이곳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니까.”
돌기둥에서 내려온 그가 부서진 신상의 앞에 섰다. 반쯤 무너진 신상을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내리며 고룡이 나를 바라봤다.
“이 신상이 무엇처럼 보이나?”
“일단 델로힘 처럼 보이진 않네요.”
“하하. 나는 내 친우를 소중히 여기긴 하나 숭배하진 않아. 이곳은 내가 진정으로 숭배하는 인물을 기리는 곳이지.”
델로힘 교단에서 본 신상과는 달랐다.
그곳에서 본 신상은 무성의 완벽한 인간을 표현했으나··· 눈앞에 놓인 신상은 분명한 여성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눈에는 안대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었으며.
세 개의 원이 겹쳐진 문양을 새긴 로브.
“뭡니까. 저게?”
“별의 인도자.”
고룡이 나를 보았다.
나를 보는 고룡의 눈동자에는 신상에 새겨진 것과 같은 세 개의 원이 떠올라 있었다.
“이곳은 인도자의 사원일세. 일찍이 인도자였던 나와 그녀를 기리는 곳이지. 이제는 그녀만을 기리게 된 곳이지만.”
“···그녀?”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릿속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름은 고룡의 마법사의 입을 통해 발음됐다.
“규율의 글레투스.”
규율(?).
“그대는 인도자에 대해 물으러 온 것이겠지?”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룡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에,나는 이곳에서 인도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가장 완벽했던 인도자였던 그녀를 기리는 이곳에서 말이야.”
고룡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반쯤 가려진 백금색의 빛 고리가 번들거렸다.
“인도자의 다른 이름은 길잡이. 또 다른 이름은 개척자다.”
길과 관련된 이름들.
“일찍이 글레투스는 하나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의 끝에 글레투스는 세상에 규율을 새겨넣었지. 나 또한 내가 정한 길을 걸었고···.”
고룡의 마법사 곁에 별빛이 맴돌았다.
“길의 끝에서, 나는 나의 친우를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걸었지.”
그렇게 중얼거린 고룡이 손가락을 뻗어 나를 가리켰다. 언제나와 같은 장난스러운 모습은 없었다.
“별에게 선택받지 않았음에도, 별을 다룰 줄 알게 된 아이야. 별과 그늘을 이해한 아이야.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한 길을, 감히 떠올리려 하는 아이야.”
그가 내게 속삭였다.
“네가 인도할 길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는 한가지 경고하도록 하마.”
금빛 눈동자가 시퍼렇게 번들거렸다.
“금기를 어기지 마라.”
서슬퍼런 목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그르렁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글레투스가 이 세상에 새겨넣은 규율을 감히 어지럽히려 들지 마라. 나 또한 그 규율에 속박된 몸. 나로 하여금 규율을 어기게 하지 마라.”
무심코, 내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고룡의 마법사가 이렇게까지 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 한순간의 당황함에 뒤로 걸음을 물러섰고···.
“···여기까지가, 전해야 했던 말.”
고룡의 마법사는 그런 나를 보며 쓰게 웃었다.
“규율과 규칙, 안정을 수호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자네에게 전해야 할 말이었다네.”
언제 그랬냐는 듯 고룡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두 목소리 사이에 느껴지는 온도 차는 쉽사리 적응이 되질 않았다.
“경고하시려고 따라오라는 것처럼 문을 남겨뒀던 겁니까?”
“그런 형태가 되긴 했지만, 새로운 동포를 환영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네.”
“···환영인사치곤 목소리를 긁으시던데.”
“텃세 좀 부렸다고 생각하게나.”
고룡이 너스레를 떨며 내게 다가왔다.
“사실, 인도자란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주고 싶긴 했지. 고룡의 마법사가 선정한 세기의 미녀, 그 네 번째라느니··· 뭐, 그런 이름들 말일세.”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예비로 생각해놨던 이름들을 차례로 부르기 시작했다. 후보군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내 눈살은 조금씩 찌푸려졌다.
“마지막으로, 자네가 나와 같은 길을 선택했다면 다름 아닌 고룡의 동반··· 흐어어억!”
고룡이 황급히 고개를 틀었다.
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내 주먹을 피해낸 능글맞은 마법사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더 말했다간 내 얼굴이 남아나질 않겠군. 매콤한 레이디 앞에서 입을 놀리는 것만큼 스릴 넘치는 일이 없긴 하지만, 이쯤 하겠네.”
그가 지팡이로 내 발밑을 툭, 건드렸다.
“어찌 됐든, 인도자가 된 것을 축하하네. 자네가 금기를 어기지만 않는다면··· 나 또한 자네가 걸을 길을 축복하겠네.”
백금색의 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문을 열려다 말고 나는 고룡의 마법사를 흘겨봤다. 궁금한 게 아직 남아있었으므로.
“인도자라는 거, 역사서에 남아 있어요?”
“아니. 오직 나와 그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
“그런데 그걸 왜 광장에서 밝힌 겁니까?”
어차피 알아들을 사람도 없는데, 도대체 왜?
따로 불러서 말해도 되는 것 아닌가?
내 질문에 고룡은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야, 자네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함이지.”
“···예?”
“일찍이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는 자네가 ‘라니아’로서 마법사의 사회에 잘 정착하길 바란다고.”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
말하다 말고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고룡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도 모르기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고룡의 마법사가 ‘특별하다’고 직접 밝힌 거나 마찬가지이니··· 마법사들은 술렁이지 않겠나?”
현인이란 이름 하나론 임팩트가 부족할 것 같았다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고룡의 마법사를 보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될 수 있으면 앞으로 얼굴 볼 일이 없음 좋겠네요.”
“될 수 있으면 자주 만나도록 하지.”
“제발 찾아오지 마세요.”
딱 잘라 말하며 내가 문을 열어젖혔다.
얽히지 말자,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근거 없는 확신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얽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선 적대하게 될 것이다.
백금색의 빛이 나를 집어삼키기 직전, 나는 빛의 너머로 고룡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그곳에 서 있는 고룡은 마치 불변함의 상징과도 같다.
늙지 않는다.
변치 않는다.
수만년의 세월 동안 불변함을 지켜온 존재.
그 존재는 하나의 벽처럼 느껴진다. 거추장스러울 뿐인 벽. 내가 도착할 길의 끝에 무언가 놓여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눈앞의 저 마법사이리라.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 * *
잿빛 마법사가 떠난 초원.
신전의 돌기둥에 기대어 선 요르문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입가에는 쓴웃음이 가득하다.
“글러 먹었군.”
경고를 해 보았다.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설지언정··· 끝끝내 소녀의 눈동자는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정도로 생각을 고쳐먹으리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상상 이상이다.
불변함을 신봉하는 건 자신이지만, 자신과 마주했던 어린 마법사는 또 다른 불변함을 지니고 있다.
아니, 불변이 아니다.
불굴이라 불러야 함이 옳으리라.
“후우···.”
요르문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는 손을 뻗어 제 눈가를 매만졌다. 세 개의 백금색 고리가 맞물린 눈에는 수많은 것들이 보인다.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 반 드라고닉.
그는 별의 친우이자, 규율을 지키는 한 모든 별의 축복을 대가 없이 누릴 수 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별의 축복을 가진 이가 가능한 일이라면··· 그것은 요르문 또한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수많고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만약의 가능성이 요르문의 눈동자에는 보인다.
『비켜.』
그곳에는 잿빛 머리칼의 여인이 서 있다.
앳된 티를 벗은 여인의 머리칼이 불어오는 바람에 사납게 흔들린다.
『나는 돌아가야 해.』
불투명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서려 있다. 타들어 가는 화염과도 같은, 열기를 지닌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반드시.』
가장 어겨선 안 될 금기를 어기고자 한다.
가능성은 그곳에서 끝이 난다.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지고, 잿빛의 마법사는 기어코 금기를 범하고 만다.
그 미래가 고룡을 왕도에 오게 하였다.
‘···당장은 수많은 미래 중 하나에 불과하다.’
수천, 수만, 수십만 가지의 미래.
그 중 하나에 불과한 가능성이다.
일어날 확률보다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으며,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규율은 고룡을 속박하고 있다.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지.”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허나, 그 조짐이 보인다면.
“네가 하지 않더라도 내가 꺼트릴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그러니, 그 입 닥치게.”
불을 꺼트려야 하리라.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직접.
3.
마법사들의 밤이 끝나고 며칠 뒤.
축제 분위기로 한창 들떠있던 분위기도 잦아들고,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올 무렵이다. 한적한 복도를 걷는 두 소녀가 있다.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나요? 클로에양.”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스텔라(Stella).
“아니요, 그때도 자세한 건 말 안 해주셔서···.”
별에게 선택받은 아이, 용사(Brave).
두 사람은 라니아의 부름에 강의실로 향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둘을 같이 불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수업에 관련된 내용이리라.
“아, 왔니?”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고 또 걸어 강의실로 향한 그들은··· 강의실 안에 펼쳐진 광경에 한순간 숨을 헛삼켰다.
따로 마련된 강의실.
몇개의 칠판을 겹쳐서 만들어 둔 큼지막한 칠판에··· 한눈에 채 담기도 힘든 거대한 회로가 새겨져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회로다.
복잡하고, 난해하며, 현기증마저 유발하는 회로의 앞에 선 라니아가 손등으로 툭툭 칠판을 두들겼다.
“어서 들어와.”
강의실의 문을 열지 않은 채, 문턱만을 밟고 서 있던 클로에가 슬그머니 뒷걸음질친다. 감이 좋은 아일라도 덩달아 한걸음 물러선다.
“어허.”
그러나, 교수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방긋 미소 지으며 라니아는 문턱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들어와.”
안 들어오면 잡아끌어서라도 들일 기세다.
교수의 총애를 받는 두 학생은 피눈물을 삼키며 강의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