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6
〈 246화 〉 별을 다룬다는 것(1)
* * *
현인(?人), 그리고 인도자.
그것은 라니아 반 트리아스가 새로이 얻게 된 이름이다. 그녀가 두 개의 이명을 가지게 됨으로써, 트리아스 가문은 총 네 개의 이명을 보유하게 된다.
현인, 로셀 반 트리아스.
현자, 라니엘 반 트리아스.
현인이자 인도자, 라니아 반 트리아스.
···고룡의 마법사에게 이름을 하사받는 일은, 마법사에게 있어 그 어떠한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영광이다. 만약 가문의 소속원 중 이름을 받은 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가문의 격 자체가 몇 단계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이명을 네 개나 보유하고 있다.
현자를 양성해냄으로써 드높아졌던 트리아스 가문의 위광은 다시 한 번 찬란히 빛난다. 마도(??)를 업으로 삼는 마법사들의 가문 중, 그 어떠한 가문도 감히 트리아스의 위광에 도전하지 못한다.
『인도자가 대체 무엇인가?』
『라니아 반 트리아스.』
『도대체 그 소녀가 무엇을 이루었길래.』
그러는 와중, 소문의 중심에 서 있는 라니아에게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본래부터가 이목을 끌만한 요소는 두루 갖춘 소녀다.
뛰어난 외모와, 끝을 모를 마학 지식.
정작 그녀 본인이 아플리아의 교직 활동을 제외한다면, 대외적인 활동이 전혀 없다 보니 그녀에 대한 흥미는 식어갔지만···.
『마학연회에서 선보인 마공학.』
『단순한 마학지식 뿐만이 아닌, 마공학에도 재능이 있다. 부족함이 없는 소녀다.』
『교수로 있을 인재가 아니다.』
마학연회를 기점으로 사그라들었던 불길이 다시 타올랐다. 트리아스 가문을 향해 편지가 수십 통씩 날아들고, 그녀를 향한 제안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마탑주의 보좌관.
색(色)을 지닌 마탑의 최상층 관리직.
궁중 마학기관의 수석 연구원.
그런 제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정작 라니아는 심드렁히 제안을 거절할 뿐이다. 그저 아플리아에 남아있을 뿐이다.
『도대체 아플리아에서 무엇을 하려고?』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도대체 뭘 봤길래?』
여전히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었다.
2.
아플리아의 빈 강의실.
“뒤로 가지 말고 앞줄에 앉으세요. 클로에 너도 빨리. 앞줄. 그래, 거기.”
반 강제적으로 특강을 수강하게 된 두 소녀는, 머뭇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칠판에 새겨진 회로다.
‘어지럽다.’
슬쩍 흘겨보기만 해도 눈알이 빠질 것만 같은 회로다. 최상위 주문의 회로도 저렇게까지 기이하고, 또 복잡한 문양을 그리지는 않으리라.
“···라니아 교수님, 저게 뭔가요?”
아일라가 질문했다.
라니아는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왕녀님이 1학년이 끝날 때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회로입니다.”
“···예?”
“물론, 클로에 너도 마찬가지고.”
저걸 외우라고?
아일라는 눈을 깜빡이고, 클로에는 무심코 숨을 헛삼켰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까닭이었다.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저걸··· 외워요?”
“응.”
“뭐하는 데 쓰는 회로인데요?”
“개념을 다루는 데 쓰일 회로.”
라니아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셔츠의 맨윗 단추를 두세 개 풀었다. 그리곤 헐렁해진 목깃에 검지를 넣고, 셔츠를 앞으로 쭉 잡아당겼다.
“보여?”
아일라와 클로에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들은 드러난 라니아의 쇄골을 흘겨봤다. 쇄골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굴곡에는 회로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문신과도 같은 회로.
피부의 위를 지렁이처럼 기어 다니는 회로의 문양은··· 칠판에 새겨진 것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내가 새긴 건 ‘안정’을 위한 회로. 다른 말로는 통제하기 위한 회로이지.”
라니아가 옷깃을 여미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배워야 할 것도 이거랑 비슷합니다. 무조건 외우란 이야기는 아니고···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녀가 다시 단상에 오른다.
“왜 두 사람을 같이 불렀는지, 이유는 짐작 가십니까? 왕녀님.”
“···별과 관련된 이야기인가요?”
“네. 두사람 다 별에게 축복을 받았고, 얼마 전에 임계점을 넘은듯하니까요.”
라니아가 미소 지으며 아일라를 보았다.
“지난번 아플리아가 어둠에 잠겼을 때, 왕녀님께선 정체가 아닌 나아감을 선택했습니다. 별에게 보호받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닌, 앞으로 향하는 길을.”
이어서 클로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클로에, 너도 마찬가지야. 레스티가 별을 다루는 것을 보았고··· 레스티와 교류로 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았지. 마학에 대한 기초 지식도 지난 두 달간 충분히 학습했을 거고.”
짝, 하고 라니아가 박수를 쳤다.
“기초는 다져졌고, 가야 할 방향도 보입니다. 임계점을 막 넘어선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습니다.”
무엇을 위한 적기인가.
“성장.”
앞으로 나아갈 순간.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이해. 필요하다고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둘에게는 그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 의무에 대해 라니아는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다. 언급함으로써 부담감을 줄 생각은 없었으므로.
“클로에는 용사 후보이니, 내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생각하고···.”
“제게는 의무가 있죠. 이해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을 다 잇기 전에, 아일라가 입을 열었다. 아일라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재능을 가졌고, 축복을 받았으니 그에 따르는 의무가 제게는 있어요. 재능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저야 환영할 일이에요.”
지난번 사건을 겪으며 성숙한 아일라다.
그녀는 자신의 의무를 이해하고 있으며, 제게 주어진 재능을 더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얼마 전부터 체감하고 있었다.
“르뤼엘 언니께선 말을 아끼며 제게 강요하지 않으셨지만, 알고 있어요. ‘무언가’에 제 재능이 필요하단 것을요.”
르뤼엘은 아직 그녀를 보호하려 하지만, 아일라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녀 또한 어느정도 제 역할을 짐작하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거 아닌가요? 라니아 교수님.”
“···르뤼엘 왕녀님께 들으셨습니까?”
“제대로 듣진 못했어요. 그래도, 맥락으로 짐작은 할 수 있잖아요.”
아일라가 쓰게 웃었다.
“···그건, 사람이 벌일 짓이 아니니까요.”
그녀 또한 왕가에 펼쳐진 참상을 보았다.
제정신인 인간이 벌일만한 짓이 아니다. 인간의 가죽을 쓴 ‘무언가’ 벌인 짓이리라. 핏물이 이어진 곳에서 아일라는 직감했다.
“그걸 어떻게든 하는 게 제 역할이겠죠.”
별이 아닌스스로의 직감이었다.
“왕가에 축복이 이어지는 이유가 있었다고, 문득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대답에 라니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감이 좋으시네요.”
여전히, 감이 좋다.
지나치리만치 예리한 감에 라니아는 식겁했다.
‘뭐, 그거야 어쨌든 간.’
의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후우.”
라니아가 짧게 숨을 내뱉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것’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마나의 운용에 대해선 설명할 수 있다.
회로를 그리는 방법도, 주문의 요령도, 어떤 식으로 회로를 개찬해야 하는지도··· 그 누구보다 잘 설명할 자신이 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전투에 있어서 쓰일만한 잡기술도, 전부 가르쳐 줄 수 있어.’
뻘로 한 클래스의 모델이 된 게 아니다.
마학(??)과 주문을 활용한 전투의 영역에 있어, 라니아가 모르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그럴만한 지식과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별은 다르다.’
별과 관련된 것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 누구도 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재능을 가진 이들조차, 스스로의 재능을 전부 이해한 이는 극히 드물었다.
‘카일 조차 그랬다.’
라니아가 기억하는 카일 또한, 자신의 재능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다. 본능에 기대어 별을 활용했고··· 그것만으로도 그는 최강의 용사라 불렸다.
그러나 카일은 실패했다.
이해하지 않았기에 결정적인 순간 별을 다루지 못했고, 다루지 못했기에 카일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라니아는 다른 방향을 추구한다.
‘이해.’
깨달아서.
‘그리고 활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다루는 것.
마법사의 기본이라 부르는 것.
단순히 감각적인 영역에 기대는 게 아니라, 체계화하고 구체화하여 정의내리는 것.
그것을 위한 첫걸음이 바로 이 회로였다.
라니아는 말없이 칠판에 새겨진 회로를 흘겨보았다. 고대의 도시인 아르카디아를 여행하며, 그녀는 그늘에 대해 이해했다.
‘그늘은 본질적으로 별과 같다.’
그러니.
‘그늘을 다루기 위한 수단은, 결국 별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니아는 별을 몸에 품고 있진 않다.
별에게 축복을 받지 않았기에, 별의 축복이 어떤 식으로 육신을 순환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알고 있다.
그늘이 어떤 식으로 육체를 좀먹고, 파괴하고, 망가트리는지 그녀는 알고있다. 직접 경험했으므로 모를 수가 없다.
‘그것을 막기 위한 회로.’
제 심장에 새겨진 회로.
그것을 새겼을 때 자신이 그늘을 ‘어떻게’ 통제해냈는지. 그늘을 삼키는 마나를 ‘어떤식’으로 만들어냈는지를 떠올리며··· 라니아는 입을 열었다.
“우선.”
그녀가 미소 지었다.
“별을 잡아 족치겠단 생각으로 시작해봅시다.”
3.
클로에는 제 마나를 통제하지 못한다.
통제하지 못하기에, 그녀는 기본적인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서도 어마어마한 노력을 들여야 했다.
별을 품은 마나는 그 본질부터가 다르다.
별빛은 자유분방하며, 통제받지 않으며, 휘어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기 일쑤다. 그런 클로에가 주문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주문이란 건 고도의 연산과정이니까···.’
별에게 바칠 거래서인 회로를 작성한다. 별이 요구하는 만큼의 마나를 회로에 정확하게 담아낸다. 그 과정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매끄러우면 매끄러울수록 주문의 질은 올라간다.
클로에는 회로를 작성하는 건 된다.
그러나, 마나를 담는 과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통제하자는 거야.”
클로에가 고개를 들었다.
“클로에 너, 아직 주문을 못쓰고 있지?”
“···네.”
“별이 통제되지 않으니까, 그저 마나의 덩어리 채로 집어던지고 있을 테고. 물론 그것만 해도 위력적이긴 할 테지만···.”
라니아가 미소 지었다.
“제대로 별을 담게 되면, 그건 비교도 안될 거야. 써봐서 알거든.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그녀가 클로에의 앞에 하나의 선을 그렸다.
모든 회로의 기초가 되는 일획(一?).
“첫 수업은, 여기에 흔들리지 않게 마나를 담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라니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아일라다.
그녀의 손에는 별빛으로 만들어진 지휘봉이 쥐어져 있다. 클로에도 본 적이 있던 것이다.
‘그때 어둠 속에서 썼던 것.’
별을 지휘하는 지휘봉.
자신의 마나가 흐를 방향을 알려주었던 지휘봉의 모습이었다. 아일라가 클로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울게요.”
꿀꺽.
클로에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눈을 감고 제 심장에 고인 마나에 집중한다. 요동치는 별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라니아가 말했다.
“처음에는 일획(一?)부터.”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저 회로를 완성시킬 것.”
칠판에 새겨진 회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별과 관련된 개념을 통제하는 주문을, 제 육신에 새겨넣음으로써··· 별빛을 ‘일반적인 마나’처럼 다룰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이 수업의 목적이야.”
그것이 라니아의 목적이었다.
“그럼···.”
클로에가 질문했다.
“저걸 제 것으로 만들게 되면, 별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되긴.”
라니아가 답했다.
“그 무엇보다 강한 무기를 얻게 되는거지.”
그녀가 덧붙였다.
“재앙에게도 닿을 무기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