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50
〈 250화 〉 가장 용사다운 용사(2)
* * *
기사들은 제 앞에 나타난 용사를 바라본다.
성창(??)의 갈라할.
별에게 선택받은 용사 중 하나.
“갈라할 님···!”
팔이 잘린 채 바닥을 기던 기사가.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이들이.
죽음을 기다리던 기사들이 갈라할을 바라본다.
그들의 눈동자에 희망이 깃든다.
갈라할은 삶을 희망하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다. 창대를 고쳐 잡은 그가 앞으로 한걸음 내디딘다. 철퍽, 하고 기사들이 흘린 핏물이 하늘로 떠오른다.
그리고.
쩌어어어어어억!
휘두른 창대가 시체 수확자의 다리를 후려친다. 한순간 균형을 이룬 수확자를 향해 갈라할이 달려든다. 퉁, 하고 창대를 내려찍으며 뛰어오른 그가 공중에서 몸을 비튼다. 백금색의 창날이 난잡한 궤적을 그렸다.
촤아아아아앗!
창날은 수확자의 몸을 노리지 않는다.
창날이 노리는 것은 수확자의 팔이다. 창날은 집요하게 수확자의 손목을 찢어발긴다.
녹색 핏물이 튀어 오른다.
힘줄이 찢긴 수확자의 손아귀는 더이상 아무것도 쥐지 못한다. 이미 쥐고 있던 것마저 놓아버린다.
“컥, 커흑···.”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기사들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갈라할은 착지함과 동시에, 창대로 그들을 받아내 제 등 뒤로 보낸다.
그리곤, 다시 앞으로 한걸음.
이번에는 힘을 실어 더욱 강하게 창대를 휘두른다. 창대가 수확자의 몸통을 후려치고, 수확자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선다. 갈라할은 곧장 추격한다.
등뒤에 있는 이들에게 전투의 여파가 닿지 않도록, 갈라할은 계속해서 수확자를 뒤로 밀어냈다.
타격과 참격이 이어질수록 창날은 빛을 더한다. 마치, 별빛을 한곳에 모으듯이.
“후우···.”
충분한 거리가 확보됐을 때, 그제야 갈라할이 짧게 숨을 내뱉으며 어깨를 뒤로 젖혔다. 갈라할을 중심으로 쩍, 쩌적 소리를 내며 땅이 갈라졌다.
투창(??)의 자세.
백금색의 창날이 찬란히 빛나고, 갈라할이 허리를 비틀며 창을 내던진다.
쐐에에에에에엑!
한줄기의 섬광이 시체 수확자의 눈동자에 꽂힌다. 핏물이 터져 나오고, 수확자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진다. 갈라할이 창을 쥐었던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투확!
창날에서 백금색의 빛이 터져 나온다.
터져 나오는 별빛을 견디지 못한 수확자의 머리가 폭발하고, 살점이 후두둑 바닥으로 쏟아진다.
쏟아지는 핏물 사이로 창대가 댕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성창을 수거한 갈라할이 그제서야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간신히 살아남은 기사들이 있다. 만신창이인 그들을 바라보며 갈라할은 미소 지었다.
“잘 버텨주셨습니다.”
살아남은 기사들이 있다.
팔을 잃었더라도, 눈을 잃었더라도··· 버티고 버텨 간신히 살아남은 기사들이 있다.
잘 버텨주었다.
그 한마디가 자신들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살아남지 못한 동료들의 죽음이 허무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기사들은 고개를 숙이고 만다.
성창의 갈라할.
카일 토벤이 세간에서 승리의 상징이라고, 인류의 희망이라고 불린다면··· 갈라할은 전장의 기사들 사이에서 이렇게 불린다.
가장 용사다운 용사, 라고.
2.
“아니, 갈라할이 왜 은퇴를 해?”
나는 눈을 깜빡였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탓이었다.
성창의 갈라할, 그가 누구인가?
기사들이 부르기를, 가장 용사다운 용사.
단순히 기사들만이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었다. 나도, 칼트도, 그리고 기사단장 하인켈 아저씨조차 그렇게 생각하니까.
카일이 승리의 상징이며, 대부분의 전장을 승리로 이끈다면··· 갈라할은 카일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추구하곤 했다.
갈라할이 선 전장이 무조건 승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상자는 그 어떠한 전장보다 적게 발생한다. 그것이 우리가 갈라할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였다.
‘결코 버리는 법이 없다.’
목숨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조차, 갈라할은 제 신념을 굽히는 법이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갈라할은 쉬운 길을 놔두고 저 멀리 돌아가곤 했다.
‘···카일, 그 녀석과는 다르게.’
카일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지만.
마왕과 조우한 이후부터는··· 카일은 살릴 수 있는 이들도 필요에 따라 쉽게 버리곤 했으니까.
아무튼, 그런 갈라할이다.
신념도 신념이거니와, 그 인성에 가서야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게까지 책임감이 강한 갈라할이 전장에서 은퇴한단 소식이···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칼트가 난처한 듯 테이블을 툭툭 건드렸다.
“하인켈 기사단장님께서 보내주신 서신에는, 갈라할 님이 곧 은퇴를 하실 거란 소식만이 적혀 있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없었고요.”
“···물어는 봤어?”
“예. 곧장 서신을 보내 봤지만··· 답해주진 않으시더군요.”
···답해주질 않았다고?
칼트 정도 되는 기사에게 하인켈 아저씨가 정보를 숨길 리가 없었다. 칼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건, 다른 누가 물어봐도 침묵할 거란 뜻이었다.
“하인켈 아저씨가 이런 경우는 둘밖에 없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긍지와 관련된 문제거나.
인류를 위해 숨겨야 하는 정보이거나.
아무리 봐도 후자는 아닌 것 같으니, 남은 건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긍지.”
“······.”
“갈라할의 긍지와 관련된 것.”
내가 턱을 매만졌다.
“이런 걸 추측하는 것도 못할 짓이지. 그래서, 갈라할의 은퇴는 언제쯤이야?”
“정식적인 은퇴는 올해 봄쯤 일 거 같습니다. 그전부터 전장에선 조금씩 거리를 벌린다고 하셨구요.”
“···봄이면, 클로에 시련과 겹치네.”
“일부러 시간을 그렇게 맞춘듯합니다.”
전장에서 용사가 사라지는 게 아닌, 다음 세대의 용사와 자연스럽게 교체하는 것.
“확실히, 그런 게 필요하긴 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명의 용사가 전장에서 떠나는 건 전선의 흔들림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용사의 무력 때문이 아니다. 용사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니까.
‘하물며, 갈라할 같은 경우는···.’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곧장 갈라할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지만, 다음 용사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으리라.
“뭐만 하면 ‘불 꺼진 시대의 도래다!’ 라며, 이곳저곳에서 외치고 다니는 정신병자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선배님이 보시기엔 어떱니까?”
칼트가 내게 넌지시 물었다.
“클로에란 그 아이, 가능성이 보입니까?”
“차고 넘친다.”
“···예?”
“차고 넘친다고. 시간만 충분히 들이면··· 정말로 카일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정도입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이 역대 용사 중 가장 강한 출력을 지녔다면, 클로에의 경우 활용이야. 별을 다루는 걸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어.”
“저는 마법이나 별 쪽은 잘 몰라서···.”
“그냥,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다.”
손을 뻗어 내가 나를 가리켰다.
“내가 용사였다고 생각해봐. 어떨 거 같냐?”
“배교자 모가지는 진작 꺾었겠군요. 스케발은 피눈물을 흘릴 거고···.”
“클로에가 ‘완벽하게’ 성장할 수 있다면, 특정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그정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꿀꺽, 하고 칼트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닙니까?”
“뭐, 나랑 클로에는 계통이 다르긴 하지. 그 애는 배틀 메이지보단··· 순수 위자드 쪽이 더 잘 맞으니까. 대충 그정도 잠재력이란 거야.”
클로에를 지켜줄 전열.
앞에서 시선을 분산시킬 물량.
그리고, 주문을 완성시킬 충분한 시간.
이 세 조건만 완성된다면··· 클로에는 전장에서 나 이상의 화력을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건 배틀 메이지로서 재능이 좀 부족하단 거. 그거뿐이지.”
“배틀 메이지?”
“어. 왕가에선 클로에 그 애를 배틀 메이지로 키워서 내 자리를 대체하려는 모양인데··· 클로에는 그쪽이랑 잘 안 맞아.”
내가 손등에 스톡(Stock)해둔 회로를 툭툭 건드렸다.
“이 스톡(Stock)이란게 주문을 압축해서, 대기 상태로 들고 다니는 거거든. 적은 수면 몰라도, 나처럼 백 단위로 들고 다닐 거면 마나를 완벽하게 통제 해야 한다는 건데···.”
클로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클로에 그 애는 마나가 별빛 그 자체야. 그걸 매 순간 통제하고 다니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걘 순수 위자드(Wizard) 계열이 더 맞아.”
“그렇습니까?”
“그래, 뭐 아무튼···.”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갈라할이 은퇴한다면야 뭐··· 시련 일자가 당겨진 걸로 뭐라 할 순 없겠네. 정말 필요한 일이니까.”
갈라할의 은퇴.
「저는 용사 일 거고, 용사로 남고 싶습니다.」
문득 갈라할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내게 말했던 것, 갈라할의 신념, 그런 것들을 떠올리다 말고··· 내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클로에랑 한 번쯤은 만나게 해주고 싶네.”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분명.
“아, 그거 말입니다.”
칼트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갈라할 님께서 한번 아플리아를 방문하시게 될 것 같긴 합니다.”
“뭐?”
“기사단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갈라할 님이 은퇴한 이후에 딴 곳으로 새지 않게 아플리아로 보내볼까 한다고. 아마도, 오게 되실 것 같습니다”
결정한건 하시는 분이니까요.
칼트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눈을 깜빡였다.
“야, 칼트.”
“네?”
“너 그걸 왜 이제 말하냐?”
“······.”
후웅, 하고 내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본능적인 회피였는지 칼트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기를 잠깐, 칼트가 입가를 씨익 틀어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선배님, 제가 누굽니까. 저도 이제 초인···.”
강타(Smite).
“끄아아아악!”
3.
“아, 갈라할 님.”
이른 새벽, 막사로 돌아온 갈라할은 막사의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와 마주했다.
“록스?”
“예, 록스입니다. 격동의 록스.”
록스가 과장된 동작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언제나 같은 모습에 갈라할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성창을 막사 한 쪽에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죠. 록스.”
“은퇴를 하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멈칫.
갈라할이 고개를 돌려 록스를 보았다. 록스는 조금 죄송스럽다는 듯한 눈동자로 갈라할을 보고 있었다.
“하인켈 기사단장님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은퇴 절차를 돕는 역할로··· 제가 선택됐고요.”
“록스, 당신도 바쁠 텐데.”
“제 살을 깎아가며 인류를 수호한 영웅께, 이 정도 대우는 해드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턱없이 부족한 편이죠.”
록스가 쓰게 웃었다.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어째서 은퇴를 하는 것인가.
큰 부상이라도 입었는가.
당신 같은 용사가 어째서.
궁금할만 할 텐데도, 록스는 갈라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째서 록스가 하인켈의 수행원이 됐는지를 이해하는 한편··· 갈라할은 록스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
“혹시 은퇴하고 방문하실 곳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제가 아는 한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당장 세워둔 계획은 없습니다. 아마 전장과 인근 한 마을을 조금 순회해볼까 생각 중인데···.”
“으음.”
록스가 난처한 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 하인켈 기사단장님께서 당부하시길··· 제발 전장과 관련된 곳을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발, 제발이라고 몇 번을 강조하시면서.”
갈라할이 쓰게 웃었다.
“그렇습니까?”
“예, 부디···.”
“그럼 록스, 당신의 추천을 한번 받아볼까요. 추천하는 곳이라도 있나요?”
“요양지? 관광지?”
“제가 그런 곳을 가겠습니까.”
“저도 그냥 한번 던져봤습니다.”
갈라할과 같은 전장에 몇 번이고 섰던 록스였기에, 둘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기를 잠깐, 록스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용사 후보생을 만나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긴 했죠. 예전에.”
“그럼 이번 기회에 만나러 가 보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때마침 용사 후보생이 머무르고 있는 곳도 방문하시기에 적당하고요.”
갈라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록스는 제 가슴팍을 탕탕 두들기며 말했다.
“제 모교입니다. 아플리아 아카데미.”
“오.”
“그곳에 용사 후보생이 재적 중입니다. 그리고, 이건 덤이지만요···.”
록스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엄청 아름다우신 교수님도 계십니다. 무려, 그 잿빛 마법사님과 같은 가문의 아가씨가요.”
잿빛 마법사.
그 단어에 갈라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생각해 보면, 라니엘과 만난지도 오래됐군요. 은퇴하기 전에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약속했거늘···.”
“그러셨습니까?”
“뭐, 좋습니다.”
갈라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친구의 누이에게, 친구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괜찮겠군요.”
“라니엘 님의 안부를 말씀이십니까?”
“예.”
갈라할이 제 손을 바라봤다.
아주 작은, 갈라할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갈라할은 중얼거렸다.
“라니엘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물어야 할 이야기.
그리고,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
콱, 하고 갈라할이 손을 움켜쥐었다.
파삭.
무언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