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51
〈 251화 〉 내가 너희의 미래다(1)
* * *
갈라할의 은퇴 소식을 접한 지 몇 주 뒤, 나는 전선에서 날라온 한 장의 편지를 받게 됐다. 편지의 내용은 간략했다.
갈라할의 아플리아 방문.
아직 갈라할의 은퇴소식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편지에 적힌 것도 극히 제한된 정보였다. 차기 용사 후보인 클로에를 만나겠다는 게 방문의 주요 목적이었다.
‘칼트가 말한 대로 됐네.’
편지를 읽으며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지난번, 칼트는 내게 말했었다.
기사단장 하인켈 아저씨가 갈라할을 아플리아로 보낼 거라고. 하인켈 아저씨는 한번 결정한 건 빠르게 추진하는 사람이니··· 갈라할의 방문은 그때부터 반쯤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딱히 놀랍진 않았다.
갈라할의 방문이 걱정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잘된 일이지.’
갈라할은 전장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용사다.
클로에나, 훗날 전장으로 향할 학생들에겐 갈라할과의 만남 자체가 큰 자극이 되리라.
‘비굴, 그 십새끼가 오면 때려죽여서라도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괜히 헛소리나 늘어놓으며, 쓰잘데 없는 사상이나 주입하는 데스텔과 달리 갈라할의 방문은 반길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아마 방문 일자는 다음 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기밀인 정보이니, 유출에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편지에서 눈을 뗐다.
‘애는 또 왔네.’
시선을 옮겨 앞을 바라보노라면, 요즘 들어 자주 보는듯한 인물이 내 앞에 앉아있다.
“그렇게 왕도랑 전장 오다니면 안 힘들어?”
“마차를 오래 타면 몸이 찌푸둥 하긴 하지만, 행군에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능청스럽게 질문을 받아치는 기사.
격동의 록스가 제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록스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행군이 좀 힘들긴 하지. 한번 하고 나면 발가락이 아려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니까···.”
“···예? 행군 경험이 있으십니까?”
“···말이 좀 잘못 나왔네. 힘들다고 들었어.”
전장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새어나오곤 한다. 나는 괜히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이거 편지 하나 전해주러 온 거야? 이건 굳이 네가 전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사실, 사전답사도 할 겸 겸사겸사 방문했습니다.”
“사전답사?”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록스는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갈라할 님의 방문에 앞서 머무를 곳, 이곳에 오셔서 받게 될 임시 통행증 등등··· 그런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고자 한발 먼저 방문했습니다.”
“너만 한 기사가?”
“갈라할 님을 보좌하는 게 기사단장님께 받은 임무니까요.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말입니다.”
록스가 쓰게 웃었다.
“아플리아가 제 모교잖습니까.”
오랜만에 들려볼까 싶었습니다.
그리 중얼거리며 록스가 나를 바라봤다.
“혹, 안내를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안될 거야 없지.”
근데 아플리아에 안내가 따로 필요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걸어둔 로브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다.
“뭐야. 록스 아니더냐.”
잠시 외출하셨던 스승님께서 돌아오셨다.
스승님은 나와 마주 앉아있는 록스를 보며 반가움을 표하셨다.
‘그러고보니 스승님이 가르치던 학생이었지.’
록스도 스승님을 반가워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록스를 바라봤지만··· 록스의 모습은 내 예상과는 제법 달랐다.
“어, 어엇··· 로, 로셀 교수님.”
록스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전장에서의 활약이 왕도까지 들려오더구나. 격동의 록스라니, 충격파 마법을 전공하겠다던 네게 어울리는 이명을 받았구나 싶었지.”
옛 학생이 반가워 보이는 스승님과 달리, 정작 록스 본인은 스승님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있다.
‘얘 왜 이래?’
어째 학기초에 학생들이 내게 보였던 반응과 비슷해 보인다. 내가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는 가운데, 스승님께서 입을 여셨다.
“그래서, 라니아. 어디 나가느냐?”
“아, 이 친구가 아플리아의 안내를 부탁해서···.”
“그거 잘됐군.”
스승님이 미소 지으셨다.
“따라나와라, 록스. 나도 마침 아플리아에 들릴 예정이었으니, 내가 안내해 주도록 하마.”
“괜, 괜찮습니다! 로셀 교수님. 저 혼자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
“네가 졸업하고 뭐가 많이 바뀌었다. 안내해줄 테니 사양하지 말고 따라오려무나.”
록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몹시도 간절한 시선으로 록스가 나를 바라봤는데,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잘 다녀와.”
나는 손을 흔들어 록스를 배웅했다.
록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2.
아플리아의 졸업생 출신의 기사, 록스.
그가 아플리아에 방문하며 수행해야 할 임무는 대략적으로 두 가지 정도가 있었다.
‘첫째는 갈라할 님의 방문에 앞선 사전답사.’
그리고, 둘은.
‘아플리아에 재적 중인 학생들의 수준을 확인.’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현재 전장은 새로운 전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아플리아 졸업생들은 고급 인력이었다.
모두가 전장으로 향하는 건 아니지만.
전투 마학과나, 평민 출신의 학생들은 전장의 기사로 장래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았다. 록스가 이번 방문으로 확인할 것은 바로 그런 학생들이었다.
전반적인 수준의 확인.
그리고, 주요 인물의 명단을 작성해볼 것.
사실 혼자 해도 되는 일이긴 했지만, 록스는 사심을 조금 담아 라니아의 안내를 받으려 했다.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전장에서 닳고 닳은 심신을 회복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사심을 품은 벌이라도 받는 걸까.
‘하필이면 로셀 교수님이···.’
지금 자신과 함께 걷고있는 것은 화사한 외모의 젊은 여교수가 아니라, 칙칙하고 깐깐한 옛 스승님이다. 록스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로셀 반 트리아스, 아플리아의 악몽.
로셀은 록스의 지도교수였고, 록스는 아플리아의 악몽 덕에 지옥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과제와 개인연구로 얼룩진 학창시절이었다.
남들 다 해보는 연애 한 번 못해봤다.
꽃다운 청춘을 연구실에 처박혀 보내야 했다.
학창생활을 떠올려보노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플리아의 아름다운 정경이 아니다. 벚꽃이고 나발이고, 록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차갑고 서늘한 주문 연구실의 풍경뿐이다.
‘그 덕에 엘리트 코스를 밟긴 했지.’
평민에서 기사 작위를 달았다.
지금은 기사단장의 보좌관을 맡고있다.
명예로운 직위이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여기가 새로 가꿔진 정원이라더군. 아론, 그 친구가 이런 쪽으로 투자를 많이 했지. 네가 다닐 때는 없던 풍경이지 않으냐?”
“그으···렇군요.”
아름다운 아플리아의 정경을 보고있자면 제 옆구리가 시려오는 것은··· 도대체 뭐 때문일까.
“······.”
록스는 썩어들어가는 눈동자로 아플리아의 정원을 바라봤다.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며 정원을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왜 다 줄줄 흘리면서 먹어? 칠칠치 못하게.”
“빵이 이렇게 만들어진 걸 어떡해? 그리고 좀 흘리면서 먹을 수도 있는거지···.”
“입이나 닦고 말해. 입이나.”
벤치에 앉아서 꿀빵을 뜯어먹는 두 학생이다.
새하얀 백발이 아름다운 소녀와, 온 세상의 쓴맛이란 쓴맛은 다 맛본듯한 소년이다. 소년이 손에 쥔 손수건으로 소녀의 입을 문댔다.
마치 청춘극의 한 장면이다.
학사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로맨스 소설의 한 장면에, 록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어린것들이 벌써부터···!’
보기에 아름다운 풍경이라 한들,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삶이 참으로 척박하다면··· 그것은 고문에 불과할 뿐이다.
“···요즘 학생들 수준이 별론가 보군요.”
“갑자기 무슨 말이냐, 록스.”
“저리 여유롭게 연애할 시간도 있고, 로셀 교수님도 많이 유해지셨나 봅니다.”
“내가?”
록스가 퀭해진 눈동자로 로셀을 흘겨봤다.
“아플리아의 악몽이라 불리던 로셀 교수님 아니십니까.”
“너희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부르곤 했지.”
“저희, 제법 진심으로 그렇게 불렀···.”
“그 별명도 이젠 내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로셀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플리아의 악몽이란 이름도 놓아줬으니, 어찌 보면 네 말마따나 내가 유해진 것도 맞겠군.”
“로셀 교수님 것이 아니라면···?”
“요즘은 나 대신 내 제자가 그렇게 불린다. 아플리아의 악몽이라고.”
아플리아의 악몽, 라니아 반 트리아스.
학생들 사이에 퍼진 소문을 로셀이 담담히 말했다.
록스는 눈을 깜빡이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로셀 교수님, 농담이 느셨습니다..”
“농담이라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교단에 서서 살짝 웃어주기만 해도, 학생들이 좋아 죽으려 그럴 텐데 악몽은 무슨.
‘그런 얼굴로, 그런 미성으로 악몽이라 불리는 게 가능이나 하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로.
“부럽습니다. 부러워.”
록스가 툴툴대며 걸음을 옮겼다.
“저 때는 상상도 못해본 일인데.”
그 걸음이 멈춰선 곳은, 벤치에 앉아있던 두 학생의 앞이다. 둘은 고개를 들어 록스를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록스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벨노아, 맞습니까?”
한눈에 알아보진 못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두 사람의 정체를 록스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쪽은 차기 용사 클로에.
다른 한 쪽은, 흑 마탑주의 수제자 벨노아다.
연애를 즐기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록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록스가 고개를 돌려 로셀을 바라봤다.
“로셀 교수님.”
“뭐냐, 록스.”
“후배님들 실력을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괘씸한 후배님들에게 쓴맛을 보여주리라.
3.
수업이 없는 날.
합법적인 휴일에, 느긋하게 즐기는 디저트.
몇 안 되는 취미를 즐기기 위해 라니아는 흥얼거리며 아플리아로 향했다. 그녀가 단골이 된 가게, 아플리아 내에 위치한 카페로 향하는 그녀의 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최근 카페의 점주, 알렌이 새로운 디저트를 개발했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도는 것을 엿들어보니, 그 맛이 심상치 않다고 하더라.
‘평소에는 수업시간이랑 겹쳐서 한정 수량인 그걸 먹어보지 못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카페의 오픈 시기에 맞춰서 도착할 예정이었으므로, 갓 구운 디저트를 맛볼 수 있으리라. 괜스래 입맛을 다시며 라니아가 아플리아의 정문을 지난 시점이다.
“···응?”
아플리아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이며··· 본래대로라면 카페 앞에서 오픈을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 대신이라는 듯, 학생들이 줄지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라니아는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이야기 들었어?』
『아플리아의 졸업생, 그것도 전장에서 활동 중인 기사분께서 오셔서···.』
『지도를 해주시겠다고···.』
아마도, 록스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오···.”
선배로서 후배들을 봐주려는 걸까.
라니아가 보기에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카페 안으로 들어서려던 라니아의 걸음을,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가 멈춰 세웠다.
『지도 상대는?』
『벨노아하고 라크래!』
『둘을 동시에 봐주시겠다는데?』
라니아가 걸음을 멈춘 채, 고개만을 돌려 학생들의 행렬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그 끝에는 투기장이 있다. 제법 본격적인 모습이었다.
“음.”
벨노아와 라크.
격동의 록스.
“으음···.”
잠깐 고민하던 라니아는 이내 학생들의 행렬에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