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09
〈 309화 〉 별이 바라는 것(2)
* * *
라니엘 반 트리아스는 별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그것이 혐오의 수준까지 가진 않았다.
라니엘은 켈르할름이나 배교자와 같이 별을 끌어내리겠단 생각까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보기에 별은 일종의 규칙에 불과하다. 세상을 이루는 섭리에 대고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신앙하지 않는다. 선호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혐오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껄끄러울 뿐. 별에 대한 라니엘의 인식은 딱 그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
“어이가 없네.”
그 인식이 조금 바뀌려고 한다.
라니엘이 빠득 이를 갈며 손에 힘을 주었다.
“다 끝나고 와서는 뭐? 계약? 지랄하고 있네.”
꾸준히 별에 대한 의심이 쌓여만 갔다.
그 공정성에 의심이 드는 마당이다.
그런 와중, 눈앞에 나타나는 별의 대리인에게 라니엘은 짜증을 느낀다. 우직, 소리를 내며 라니엘의 손에 붙잡힌 고목 지팡이가 우그러졌다.
“올 거면 빨리 오던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매번 도망치기만 하면서···.”
라니엘이 지팡이를 잡아당겼다.
고룡의 마법사에게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지.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네가 간섭할 바가 아니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은 무표정하게 라니엘을 바라본다. 세로로 갈라진 동공은 서늘하기 짝이 없다.
“용사, 카일 토벤은 별과 거래를 했다. 조건과 제약을 스스로의 의지로 받아들였다. 이제 와서 그 조건을 거부하려 든다면···.”
요르문의 금빛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처분해야지. 그 또한 계약의 조건이었으니.”
계약은 맺어졌다.
그를 거부할 시 처분된다.
‘···그것이, 조건이다.’
라니엘은 요르문의 말을 곱 씹는다.
그런 형식의 제약이 존재한다는 건 라니엘 또한 알고 있다. 강력한 제약을 붙임으로써 거래로 받을 수 있는 대가를 극대화 시키는 형태의 계약.
“······.”
라니엘이 말없이 카일을 흘겨봤다.
“너, 도대체 뭘 건 거야?”
“······.”
“도대체 뭘 받기로 했으면, 이런 조건을 받아 들인 거냐고. 너 호구야? 뭔 이딴···.”
의지와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긴다.
종속계약에 가까운 조건을 받아들였다.
거기에 온갖 불리한 제약을 전부 걸어놨다.
‘그렇게까지 해서 받아내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라니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용사가 별과 거래를 한 사례 자체가 극히 드물뿐더러, 이만한 제약을 걸어서라도 얻어야 할 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으니까.
“야, 카일.”
라니엘이 바닥에 무릎 꿇은 카일의 멱살을 붙잡았다. 질문에 답하지 않는 카일에게 라니엘은 다그치듯이 질문했다.
“너 도대체 뭘 맺은 거냐고.”
“······.”
“씨발, 뭘 알아야 지금 도와줄 거 아니야!”
참다 못한 라니엘이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계약의 내용이 잘못됐다. 계약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별의 대리인으로서 고룡의 마법사까지 나타난다니? 하물며 처분?
‘이미, 뭘 조금이라도 받은 건가?’
계약 당시에 선수금을 받는 형태의 거래도 존재한다. 그 경우 이런 강력한 제약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라니엘이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너 뭐 받았냐 이미?”
“···받았지.”
“별을 축적한 거? 아니면 가니칼트를 잡을 때 혹시 뭐라도···.”
카일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과는 다른 거다. 별을 축적한 것은 내 선택이었고, 가니칼트를 상대할 때는 별이 아예 끊겼으니.”
“그럼 도대체 뭘··· 아니, 됐다.”
라니엘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뭘 먼저 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포기해. 놔버리라고. 받은거 토해내고 계약 파기해 일단. 아무리 봐도 이거 조건이 이상하거든? 한번 파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맺어. 내가 봐줄 테니까···.”
카일은 말없이 라니엘을 보았다.
‘놔버려, 라니.’
그 말을 곱씹던 카일이 쓰게 웃었다.
“그럴 수는 없다.”
“···뭐?”
“일단, 비켜라 라니엘.”
“그게 무슨···.”
“안 비킬 거면 숙이기라도 해라.”
카일이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카일을 속박한 사슬이 툭, 투둑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요르문이 눈을 가늘게 뜬 순간이다. 카일이 손을 뻗어 라니엘의 팔을 잡아당겼다.
“베일 테니까.”
서걱, 하고 카일을 둘러싼 사슬이 잘려나갔다.
2.
어느새 카일의 손에는 성검이 붙들려있다.
성검으로 사슬을 끊어버리고선, 카일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신을 노려보는 고룡의 마법사를 똑바로 마주했다.
“뭐 하자는 거지? 카일 토벤.”
“초대 용사께서 그러시더군.”
카일이 짧게 숨을 뱉었다.
“별의 노예로 살지 말라고. 그래서 조금 당당해져 보고자 한다.”
성검을 쥔 채 카일이 입을 열었다.
“계약은 이행하겠다. 단, 조건을 변경하지.”
“···조건을 변경한다니?”
“보면 알 텐데. 나는 초인이 됐다. 이건 별이 예언하지 못한 내용이며, 내 몸값이 더 올랐다는 이야기지. 내가 지불한 대가의 가치가 올랐단 뜻이고.”
“그래서?”
“조건의 변경을 요구하겠다.”
“될 것 같나?”
“될 것 같군.”
카일이 담담히 말했다.
“그쪽도마냥 당당한 입장은 아니니까.”
카일은 계약의 내용을 회고한다.
온갖 조건과 제약으로 도배된 계약.
하지만 그 중심에 놓인 것은 결국 거래다. 카일은 별에게 바라는 것을 말했다. 별은 두 개의 시련을 극복한다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답했다.
그 첫 번째 시련이 바로 죽음의 칼 가니칼트다.
“시련을 극복함에 있어 별은 내게 협력한다. 내가 제약을 지키는 한, 별은 그에 상응하는 힘을 내린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하고 카일이 말했다.
“나는 오직 나만의 힘으로 시련을 돌파했다. 지켜보았다면 알고 있을 텐데?”
죽음의 칼을 상대하기 위해 카일은 오랫동안 별빛을 축적했다. 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 순간 별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카일은 오롯이 자신의 힘과 기술만으로 죽음을 상대했다.
“별 또한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나, 하고 카일은 질문을 던졌다.
요르문은 말없이 카일을 바라본다. 그 시선은 카일의 뒤에 서 있는 라니엘에게 향한다. 자신과 같은 인도자의 자격을 얻은 인물.
인도자의 시선을 쉬이 흘러넘길 수는 없다.
“···정말이지 귀찮게 구는군.”
고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네는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뭔가? 내가 말하지 않았나? 확실한 상황에 날 부르라고. 내가 무슨 중개인인가? 이게 도대체 뭔···.”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무대에 불려 왔음을 깨달은 요르문이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다시 카일을 보았다.
“그래, 내가 듣기에 합리적인 제안이군. 변경할 조건이 합당하다면 수긍하도록 하지.”
요르문의 머리 위에서 별이 반짝였으나, 요르문은 ‘자네는 좀 닥치고 있게.’ 라고 중얼거리며 별의 목소리를 일축했다.
“바라는 것을 말하라.”
“육체의 주도권은 가져가도 좋다. 하지만, 의식에 대한 주도권은 내가 가져가고 싶군.”
“합당한 요구로군. 그래,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다 말고 요르문이 제 턱을 매만졌다.
“잠깐, 감정에 관한 것도 전부?”
“전부.”
“그건 자네가 부탁했던 것 일 텐데.”
카일은 쓰게 웃었다.
“상관없다. 전부.”
공포도, 분노도, 후회도.
온갖 감정을 거세한다면 라니엘과 같은 초인이 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카일은 후련한 듯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원한다면야, 그렇게 해주도록 하지.”
요르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지팡이로 땅을 두들겼다. 고룡의 도시로 향하는 통로가 열렸다. 그 너머에 보이는 것은, 요르문이 거하는 왕성의 알현실이다.
“남은 이야기는 안에서 하도록 하지. 자네에게 따로 전해야 할 말 또한 남아있고. 들어오게.”
고룡이 먼저 통로를 통과한다.
그 뒤를 따라 카일이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미심쩍은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라니엘이 있다.
“라니엘.”
변해버린 제 친구를 보며 카일이 말했다.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지. 그때는···.”
한동안 침묵하던 카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는, 네게 사과할 수 있을 것 같군.”
“사과를 미뤄서 하는 놈이 어딨냐?”
“글쎄. 얼굴에 주먹을 날리면서 미안하다고 말한 마법사도 있는데, 사과를 미뤄서 하는 사람도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르지.”
뜨끔한 라니엘이 제 어깨를 움찔 떨었다.
“···도대체 뭔 계약을 맺었는지, 말 안 해줄 거냐?”
“그것도 그때 말해주도록 하지.”
“숨기는 건 뒤지게 많네, 새끼.”
투덜거리는 라니엘을 뒤로하고, 카일이 문을 통과한다. 그 뒷모습을 보며 라니엘은 자신도 따라갈까 고민하다가, 남아서 상황을 보고할 사람이 한 명 쯤은 있어야 할 듯 싶어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야, 사라···?”
그렇게 라니엘이 사라를 데리고 자리를 뜨려던 와중이다. 휙, 하고 라니엘의 옆을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 분홍빛 머리칼이 라니엘의 시야를 가렸다.
“어딜 혼자 가려구요?”
카일이 지나간 통로가 닫히려는 순간, 사라가 통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사라까지 집어삼킨 통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뭐야?”
말릴 틈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꼭 따돌림당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멍하니 자리에 서 있기를 잠시, 들려온 인기척에 라니엘이 고개를 돌렸다.
“···너 있었냐?”
“아까부터 있었는데.”
신궁, 레미아.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라니엘을 바라봤다.
“그런데, 인간.”
“뭐.”
“왜 다들 널 라니엘이라 불러? 혹시 네가 라니엘이야? 카일이 하는 것 보면 맞는 것 같은데.”
라니엘이 입을 살짝 벌렸다.
탁, 하고 라니엘이 제 이마를 가볍게 후려쳤다.
“진짜 빨리도 물어본다, 그치?”
3.
벨노아는 보았다.
하늘을 나는 저주룡에게 맞서 싸우고자, 별빛을 끌어올렸던 클로에를. 그녀를 지키고자 몰려든 기사들을.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이 무가치해지는 장면을 벨노아는 보았다.
투확.
저주룡이 뿜은 불길이 기사들을 불태웠다.
불꽃은 열선으로 뒤바뀌었고, 뒤바뀐 열선이 클로에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클로에!」
밀려드는 구울을 마구잡이로 해치우며 벨노아가 클로에에게 도착했을 때, 그녀는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녀를 등에 업은 채 벨노아는 도망쳤다.
양손가락, 그걸로 모자라면 양팔. 그걸로도 안된다면 부러진 손가락을 다시 한번.
있는 대로 저울에 올리며 벨노아는 도망쳤다.
클로에를 업은 채 구울의 군세를 뚫어내고, 하늘에서 쏘아지는 저주룡의 브레스에게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왔다.
우득.
모든걸 바치고, 열선의 궤도를 비틀기 위해 제 두 다리 마저 뒤틀어버린 벨노아는 더는 도망칠 수 없게 됐다. 바닥을 기어서 도망칠 수는 없는 법이니.
벨노아는 바닥에 쓰러진 클로에를 보았다.
바닥을 기고 기어서, 부러진 팔로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 몸이 차가웠다. 클로에의 안색이 창백했다. 벨노아가 클로에를 안아 든 제 손을 보았다.
질척.
붉은 피가 묻어나온다.
자신의 피가 아니다.
클로에의 피다. 출혈량이 심상치 않았다. 벨노아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는 와중, 클로에가 천천히 눈을 떴다.
“벨···노아.”
“클로에!”
“이거, 놔봐.”
그녀가 천천히 벨노아를 밀어냈다.
클로에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두둑, 하고 떨어진 피가 눈밭을 붉게 물들였다.
“클로에, 너···.”
“막아야지.”
클로에가 고개를 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녀는 하늘에 떠있는 저주룡을 노려보고 있다. 그 시선은 흔들리지 않는다. 구멍 뚫린 제 옆구리를 움켜쥔 채, 클로에가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회로를 그리려 한다.
확.
벨노아가 회로를 그리려는 클로에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부러진 다리로 땅을 디디고 선 벨노아가, 클로에를 잡아당겨 넘어트렸다.
키이이이잉!
쏘아진 열선이 방금까지 클로에가 서 있던 위치를 스치고 지나간다.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려 증발하여 드러난 땅이 자글자글 끓고 있다.
“저걸.”
클로에를 넘어트린 채 벨노아가 말했다.
“저걸, 상대하겠다고?”
“···응.”
“마나를 끌어 올렸다 하면 곧장 반응하는 저걸? 너, 죽어. 진짜 죽는다고.”
마나를 모으려는 클로에의 손가락을 벨노아가 콱 움켜쥐었다. 벨노아가 외쳤다.
“도망쳐야 해.”
“못 도망가.”
“도망쳐야 한다고. 못 이겨. 상대가 안 돼.”
“그래도, 해야만 해.”
“죽는다고!”
벨노아가 소리를 질렀다.
벨노아에게 있어 최우선시되는 가치는 살아남는 것이다. 위험하면 도망치고, 상대가 안 될 것 같으면 제 몸을 숨겨 다음을 기약한다.
그것이 벨노아의 방식이다.
“보이잖아.”
하지만.
“들리잖아.”
그것은 용사의 방식은 아니다.
클로에가 손을 뻗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피난민들이 있다. 구울들을 막아 세우는 기사들이 있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클로에에게 향한다.
이 자리에 있는 어린 용사를 본다.
무언가를 해주리라는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낸다. 클로에는 차마 그 시선을 회피하지 못한다. 과거, 어떤 용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클로에가 벨노아를 밀어냈다.
“나는, 용사여야 하니까.”
벨노아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가 클로에를 향해 소리 지르려는 순간이다.
“도착이 늦어진다 했더니, 역시 이렇게 됐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박, 하고 눈이 밟히는 소리가 울린다. 벨노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오래된 양식의 로브를 차려입은 청년이 서 있다.
“흑룡의 새끼인가. 고성에 매장당했다고 들었거늘, 기어코 부활시킨 모양이군. 당연하게도 그 미친년의 소행일 테고.”
목소리의 고저가 없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벨노아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르티아란 이름으로 아플리아에 머물렀던 교수.
그리고, 벨노아는 그 정체를 들은 적이 있다.
망국(?國)의 마법사.
광기로 벽을 허물고 초인이 된 인물.
“가세하겠다.”
광인(?人), 켈르할름.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수백의 회로가 일대를 가득 메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