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1
〈 31화 〉 옛 인연(3)
* * *
어둡고 칙칙한 지하수로.
벨노아는 물기를 머금어 축축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 시킨 건 아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꿇었다.
“대뜸 왜 마법을 쏘고 난리야?”
“아니, 그게···.”
벨노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벨노아는 저 교수가 조금 무서웠다. 마나의 샘의 영역에 들어갔을 때를 벨노아는 기억한다.
모든 게 흔들리고, 일그러졌다.
그러는 와중 저 교수만큼은 홀로서 멀쩡했다.
‘꼭, 다른 존재처럼.’
이건 그 이질감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또 마나의 샘에 집어 넣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러겠어.
벨노아는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려 라니아를 흘겨봤다. 언제나와 같은 차림이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잿빛 머리칼에, 단정한 로브.
‘진짜 안 어울리네.’
아플리아에서는 별 감상을 못 느꼈지만, 이런 지하수로에서 마주하자니 심히 어색했다. 꼭 귀족 아가씨 같은 여인이다.
이런 칙칙하고 어두운 지하수로와는 전혀 연이 없을 것 같은 여인.
“흠.”
벨노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손가락을 펴 벨노아를 가리켰다.
“근데 왜 무릎 꿇고 있어?”
“···예?”
“난 꿇으라고 한마디도 안 했는데. 옷 더러워지잖아. 일어나.”
“아, 네에···.”
벨노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라니아의 눈치를 살피며 질문했다.
“그, 교수님은 이런 지하수로에 웬일로···.”
“옛 친구한테 지하수로 청소 좀 해달라고 부탁을 받아서.”
‘옛 친구? 부탁?’
벨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별난 영감 말고, 이 지하 수로에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 또 있단 말인가?
“혹시, 친구분 성함이···.”
“너도 알걸?”
“예?”
“듣자 하니, 네 양부라던데?”
벨노아에게 양부라 부를만한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하는 노인.
“혹시, 물약 상점의 카르디 영감 말씀하시는 겁니까?”
“카르디는 맞는데, 영감? 걔가?”
“예?”
“흠···. 뭐, 일단은 카르디한테 받은 거 맞아.”
그 노인네가 친구도 뒀던가?
벨노아는 라니아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반말할 만큼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는데···.’
게다가 로셀 교수의 양녀라 하지 않았던가? 그 영감을 이름으로 막 부를 정도면, 적어도 로셀 교수하고 동갑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벨노아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 교수님은 연세가 어떻게···.”
“스물 일···. 스물하나지.”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벨노아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슬럼가에서 단련된 직감이 ‘스물하나’라는 나이를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뭐.”
“······.”
“뭐, 임마. 말을 해. 뭐 할 말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마 ‘연배’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벨노아는 말을 아꼈다.
‘마나의 샘을 다시 체험하고 싶진 않아.’
그는 목숨 아까울 줄 아는 마법사였다.
“그래서, 얼마나 정리했는데?”
“일단 제가 온 길은 다 정리했습니다.”
벨노아는 자신의 뒤편을 가리켰다.
“나도 오면서 정리하긴 했어.”
그녀 역시, 자신이 지나온 길을 가리켰다. 그 길을 확인 할 필요는 없었다.
녹색 핏물.
그녀의 발치로 이어진 핏물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만큼의 언데드를 해치웠는지 얼추 짐작이 갔다.
“그럼 남은 건 이쪽 같은데.”
라니아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교차로에서 이어지는 갈림길이었다.
“같이 가지, 뭐.”
“···예.”
벨노아는 앞장서는 라니아를 뒤따라 걸었다.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캉, 카앙 하고 울리는 쇳소리가 심히 불길했다.
“저기, 그 신발은···.”
“아, 이거?”
그녀가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렸다.
“기어 다니는 언데드들이 많잖아. 굳이 손으로 잡아 죽일 필요 있나? 밟아 죽이면 되는데.”
툭툭, 발끝으로 가볍게 땅을 건드린다.
그러나 울려 퍼지는 소리는 전혀 가볍지가 않다.
캉, 카앙!
‘···철판?’
그 신발에는 철판이 덧대어져 있다.
꼭, 군화를 닮은 모양새다.
“이게 효율이 참 좋아. 살짝 힘만 줘서 밟아도 목뼈가 우득, 하고 꺾이거든? 무게도 적당해서 아끼는 신발이지.”
라니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린다.
그 웃음에서 벨노아는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 * *
찰박.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난다. 옆에 물이 흘러 습기가 찬 탓일까. 그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
벨노아는 라니아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군화가 녹빛으로 물들어있다. 언데드들이 흘린 피다. 뒤를 돌아봤다. 녹색 선이 쭉 이어져 있었다.
꿀꺽.
벨노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라니아를 따라 걸은 지 삼십 분.
벨노아는 그 동안 단 한발의 주문도 사용하지 않았다. 앞장서는 라니아를 따라 걷고 있을 뿐이었다.
몬스터가 안 나왔냐고?
아니, 그건 아니다.
‘나왔지, 그것도 엄청나게.’
여기서부터가 진짜라는 듯 좀비들이 미친 듯이 기어 나왔다. 이 정도 수라면, 손가락 한두 개 꺾는 거로는 모자라단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측면을 맡을 테니, 교수님은···.
비켜.
예?
방해되니까 비키라고.
그러나, 벨노아가 할 일은 없었다.
벨노아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
머리를 잃은 언데드들의 시체가 쌓여있다.
“또 오네. 뭔 끝이 없어?”
그리고.
콰직!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라니아가 가볍게 손을 뻗는다.
뻗어서, 좀비의 머리를 움켜쥔다.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준다.
콰직.
언데드의 머리가 터졌다. 파편은 요란스레 튀지 않는다. 그녀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후두둑, 수로에 뼛조각이 섞인 살점이 떨어졌다.
절도 있는 동작이다.
힘을 별로 들이는 것 같지도 않다.
‘···터뜨리면서 모아두는 건가?’
그 요령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저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듯싶었다.
동작이 요란스럽지도 않다.
팔을 뻗고, 머리를 움켜쥐고, 휘두른다. 일종의 공식 같은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실하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머리가 터진 언데드들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소모되는 마나는 극히 소량이다.
지독하리만치 효율적인 전투였다.
‘이건 마법사라기보단···.’
마치, 잘 훈련된 병사를 보는 것 같다.
“라니아 교수님.”
“왜.”
벨노아는 질문했다.
“그, 교수가 되시기 전에 뭘… 하다 오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교수들은 학자다. 오랜 기간 이론을 쌓아 올리고, 쌓아 올린 이론을 기반한 실력을 가진다.
그러나, 눈앞의 이 교수는 다르다.
벨노아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이론이 아닌 실전에서 쌓아 올린듯한 경험이 느껴졌다. 몸을 쓰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 움직임은 경쾌하나, 효율적이다.
‘실전에 능하다.’
슬럼가에서 실전을 통해 성장한 벨노아였기에, 그 움직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관절을 꺾고, 목을 붙들고, 머리를 터뜨리고.’
자연스레 무력화시킨다.
절대로 그냥 나올 수는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건 왜 물어보는데?”
“실전에 능하신 듯 해서···.”
“음···.”
그 질문에, 라니아는 침묵했다.
“글쎄.”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좀 더러운 데를 구르다 오긴 했지.”
“···더러운 곳, 말씀입니까?”
“더럽지. 아마 제일 더러울걸?”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더이상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벨노아도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대충 짐작 가는 곳이 한 곳 있었으니까.
‘제일 더러운 곳···.’
그 말에, 벨노아는 한 장소가 떠올랐다.
자신을 길러준 양부, 카르디에게 고향을 물어봤을 때 그가 말해준 곳이다.
내 고향 말이냐?
지금은 좀 다른 모양이 되긴 했지만···잿빛 황무지란 곳이 있다.
잿더미가 된 왕국의 잔해가 깔린 곳이지. 듣자 하니, 온갖 암흑가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더군.
잿빛 황무지.
벨노아가 무너트린, 어스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 조직들이 득실거리는 무법지.
그곳을 가리켜, 카르디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실 거기가 마경(??)이야.
마계만 아닐 뿐이지, 마경이 따로 없단 소리지.
인계에선 가장 더러운 곳이란 소리지.
벨노아는 추측했다.
‘그곳의 관련된··· 인물인가?’
그럼 뭔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노친네와 알고 지낸다는 점이나, 실전에 능한 점이나··· 그 무법지 출신이라면 이해가 된다.
‘살아남으려면 익숙해져야 했을 테니까.’
자신이 그러했듯이.
벨노아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살아남기 위한 버릇.’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쓸 수 있는 건 전부 쓴다.
효율을 추구한다. 망설이는 순간 죽는 건 자신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급소를 노린다.
날 것의 사고방식.
그 사고방식을 길러야만 했던 과거.
“·····.”
벨노아는 앞장서는 라니아를 흘겨봤다.
“음···.”
조금이지만.
벨노아는 그 뒷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2.
“·····.”
나는 걷다 말고 슬쩍 뒤를 돌아봤다.
“음···.”
벨노아는 무언갈 납득한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적당히 둘러대긴 했는데, 잘 먹힌 건가?
‘전장에서 구르다 왔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오해든 뭐든, 대충 납득 한 것 같으니 됐겠지.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본 채 발걸음을 옮겼다. 언데드가 쏟아져 나오고, 치우고 그것의 반복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벨노아가 말을 걸어왔다.
“···광역 주문으로 쓸어버리진 않습니까?”
“뭐?”
“대강당에서 보여주셨던 그거, 하나만 해방해도 일일이 상대할 필요 없이···.”
애가 뭐라는 거야.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여기서?”
“예?”
“잘못 쓰면 다 날아가잖아. 쥐새끼 잡으려다가 수로 무너트릴 일 있어?”
지하수로가 얼마나 튼튼할지는 모르겠지만, 아까전에 분쇄(Smash)를 썼을 때도 벽돌이 들썩였다.
‘분쇄도 간당간당한 데, 작정하고 광역기라도 썼다가는···.’
그대로 매장행이다.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잔해를 일일이 치우고 확인해야 할 테니까.
“이 끝에 뭐가 있는지는 봐야 될 거 아냐. 날려버리면 확인하기 귀찮아.”
“끝..이요?”
“넌 이게 정상이라 생각해?”
나는 어둠에 잠긴 수로의 안쪽을 가리켰다.
“지하수로에서 몬스터가 발생하긴 하지. 뭐, 마법사가 실험하다 만 회로를 버려놨다고 칠 수도 있어.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과해.”
이건, 좀 과했다.
“많아도 너무 많아.”
“·····.”
“게다가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이것 보면 답 나오지 않아?”
나는 방금 머리를 으깬 언데드의 몸을 발끝으로 툭 찼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거잖아.”
“···확실히.”
“저 안으로 갈수록 많아진다는 건, 저 안에 뭔가 있기는 한다는 거겠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에 잠겨있지만, 단순한 어둠은 아니다.
‘뭔가 있긴 해.’
육안으론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가.
“거 봐.”
나는 웃음을 흘렸다.
“저렇게까지 준비해놨는데, 뭐가 없을 리가 없지.”
어둠의 앞을 가리고 있는 것.
크륵, 크를륵.
단순한 언데드가 아니다.
수십 마리의 좀비가 뭉친듯한 무언가가, 통로의 끝을 가로막고 있었다.
“···욱.”
풍겨오는 악취에 벨노아는 코를 틀어막았다.
‘확실히 냄새가 좀 심하긴 하네.’
나는 주먹을 휘두르려다가, 잠시 멈춰 섰다. 면적이 좀 넓어 분쇄를 쓸 생각이었는데···.
‘파편이 이리저리 튈 거 같은데.’
전장에서 온갖 끔찍하고, 역거운걸 보며 비위가 좀 좋아지긴 했다. 그래도, 좀비였던 것의 육편(??)이 이리저리 튀는 꼴은 좀···.
상상해보니 속이 뭔가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에휴.”
쥐었던 주먹을 풀고손을 쫙 펴, 검지와 중지와 엄지를 맞댔다. 각 손가락에 스톡(Stock)된 주문이 마찰시킨다.
“저건 태워야겠네, 그냥.”
재(Ash).
점화(Ignite).
잿빛 불길이 치솟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