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12
〈 312화 〉 별이 바라는 것(5)
* * *
용의 날개는 용의 긍지와도 같다.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격언이다.
날개가 있기에 하늘을 날 수 있으며, 그 거대한 몸으로 태양을 가리기에 하늘의 주인이라 불리는 것이다. 용에게 있어 날개란 긍지다.
그러니, 긍지를 잃은 용은 추락하는 법이다.
날개가 찢어진 저주룡은 추락한다.
추락한 용은 찢어진 날개를 퍼덕여 보나, 긍지를 잃은 이상 다시 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추한 몰골로 땅을 기며 용은 비명을 내지른다.
번쩍.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진 못한다.
팔을 들어 올린 클로에의 정면에 거대한 회로가 나타난다. 회로에는 집속된 별빛이 흐르고 있다. 응축된 별빛이 흐르는 회로는 찬란히 빛난다.
갈라할에게서 이어받은 힘.
아직은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그것을, 클로에는 간신히 다뤄내는 데 성공한다. 이윽고 집속된 별빛이 해방되고 섬광을 토해낸다.
완성된 주문은 격류(Swift).
한순간의 섬광과 함께 터져 나온 별빛의 파도가 땅에 떨어진 용을 덮친다. 바닥에 떨어졌던 구정물은 별빛이 닿는 순간 녹아 사라진다. 구정물로 이루어진 용에게 있어 클로에의 별빛은 상극과도 같다.
치이이이이이이익!
파도에 휩쓸린 용의 살점이 녹아내린다.
구정물로 이어붙인 살과 근육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것은, 제 몸의 태반을 잃은 용이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용은 빛의 격류 속에서 발버둥친다.
살아남기 위해 울부짖는다.
그 간절한 울부짖음을 듣는 이가 있다.
【딱한 것.】
모든 용의 어머니이자, 용의 주인 되는 고대의 신은 제 계약자의 어깨에 걸터앉은 채 혀를 찬다.
【긍지를 잃고서도 살고자 하는구나. 딱한 것. 네 목숨은 이미 끊어 진지 오래다.】
죽어가는 용은 애타게 제 신을 찾았지만, 신은 긍지 잃은 용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하다못해 용으로서 죽거라.】
이미 죽었어야 할 생명이다.
긍지를 잃은 채 추하게 연명된 생명을 신은 외면한다. 용이 땅 아래 드리운 그림자를 향해 비는 염원에 신은 끝까지 답하지 않는다.
별빛이 완전히 용을 집어삼켰다.
2.
별빛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 남은 것은 가루가 되어버린 용의 파편이다.
“정말 쓰러트렸···.”
숨 죽였던 기사들이 하나둘 입을 연다.
결코 쓰러트리지 못하리라 여겼던 용이 쓰러졌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 기사들은 자신들의 앞에 선 소녀를 바라본다.
처음 보았을 때는 듬직하긴커녕, 위태로워 보이는 뒷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어린 소녀의 뒷모습에서 기사들은 용사의 편린을 엿본다.
미숙하고, 아직 갈 길이 멀지언정.
어린 용사는 성공적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불가능하리라 여긴 위업을 이루어냈다.
자신을 위해 피 흘린 기사들의 희생에 답했다. 어떤 기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아.”
클로에는 뒤를 돌아본다.
용사는 살아남은 이들을 바라본다. 기사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시선을 의식한다. 그 시선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클로에가 머뭇거리는 와중이다.
“고개라도 끄덕여줘라. 큰 반응이 필요한 건 아니니.”
켈르할름이 클로에의 어깨를 두들기며 속삭였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클로에는 그리 중얼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뒤늦게 환호성이 쏟아진다. 그들이 부르짖는 것은 클로에와 켈르할름의 이름뿐만이 아니다.
그림자 주술사, 벨노아.
소문으로만 들었던 소년의 이름을 그들은 연달아 외친다. 켈르할름이 나타나기 전까지 몇 번이고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소년을 그들은 잊지 않는다.
쏟아지는 환호성을 흘려넘기며 벨노아는 걷는다.
그 걸음이 향한 것은 가루가 되어버린 용의 시체다. 가루 속에서 벨노아는 무언갈 발견했다. 손을 뻗어 벨노아가 가루 속에서 뼛조각 하나를 뽑아냈다.
“···뼈?”
“사역마의 중심을 이루는 물질이지.”
옆으로 다가온 켈르할름이 중얼거렸다.
켈르할름이 벨노아가 쥔 뼈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게 전부였던 것 같군.”
벨노아가 눈을 깜빡였다.
켈르할름은 짧게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배교자는 사역마를 만듦에 있어 중심이 될 물질을 선택한다. 그리곤, 그것에 살점을 이어붙이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자면···.”
그가 눈짓했다.
“우리가 상대한건 흑룡의 새끼가 아니라··· 그것의 일부를 심은 배교자의 마수에 불과하단 이야기다.”
“···일부라고요? 저만한 출력을 내는 게?”
“흑룡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버틸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
마법사와 용()의 상성은 최악에 가깝다.
그들은 마나를 거부하며, 별빛을 두르지 않은 공격은 쉬이 흘려보내곤 한다. 제 주문이 통할 때부터 켈르할름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용들을 잡아다가 마구잡이로 섞은 거겠지. 거기에 흑룡의 새끼의 뼛조각을 심은 것 일 거고.”
“그게 말이 되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 그러니 재앙인 거고. 전장에 있다 보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그냥 그러려니 해라.”
켈르할름이 한숨을 내쉬었다.
“벨리알의 뼈대를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버린 게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군.”
큰 부상을 입고 모든 마수를 잃었다곤 하나, 재앙은 여전히 재앙이다.
“대책을 마련해야겠군.”
그리 중얼거리며 켈르할름이 벨노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수고했다. 보고는 내가 할 테니 쉬어라.”
멀어지는 켈르할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선, 벨노아는 제 옆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켈르할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싶었으나···.
【무얼 보느냐?】
벨노아의 눈에는 보인다.
제 옆에 서 있는, 자신이 모시게 된 신이.
【할 말이라도 있느냐?】
“그, 사라지신 거 아니었습니까?”
【나는 어디에나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곧 내 몸이자 영혼이니 나는 세상 만물···.】
“계속 있으시게요?”
【그대가 원한다면?】
그림자 용의 군주가 미소 지었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미소였다.
3.
죽음의 칼, 가니칼트.
가장 두려운 재앙을 용사, 카일 토벤이 막아냈다. 죽음을 격퇴한 것도 모자라 죽음에게 상처를 입혔다. 왕국 수백 년의 역사 아래 처음 일어난 일이며, 위업이라 부를만한 일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세간이 떠들썩해질 정보이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차기 용사 후보, 성류의 용사 클로에.
흑색 마탑주의 수제자, 그림자 주술사 벨노아.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 또한 입소문을 타고 왕도로 전해진다. 피난민을 덮친 저주룡을 토벌한 그들의 이야기는 북부의 주인, 그레이스의 귓가에까지 들어갔고···.
“고맙다. 그대들이 곧 북부의 영웅이다.”
그레이스는 둘에게 큰 보상을 내리고 연회를 준비했다. 백야성이 연회 준비로 떠들썩 한가운데, 벨노아는 홀로 백야성의 복도를 걸었다.
짧은 시간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레 달라진 시선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새로이 손에 넣은 힘이 신경 쓰이기도 하다. 벨노아는 문득 제 손가락을 바라봤다.
공양을 거듭해 너덜너덜해진 손가락.
그중 하나, 검지의 마디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무언가의 증표라는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누군가 벨노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계약의 증표다. 자랑스레 여겨라, 아이야.】
깜짝이야. 벨노아는 눈살을 찌푸린 채 제 고개를 옆으로 휙 틀었다. 그곳에는 허공에 반쯤 떠있는 여인이 있다. 요 며칠 시도때도없이 찾아오는 손님에 벨노아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 신호 좀 하고 오시면···.”
【언제나 곁에 있는데 굳이?】
“예, 굳이. 제발···.”
【거 까칠하구나. 몇백 년 만의 세상구경 이거늘.】
그녀가 실망한 듯중얼거렸다.
【알고 있느냐? 수백년 전까지만 해도 내게 기도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아. 염원이 없으니 당연히 의식을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신께선 이리 답하셨다.
【오랫동안 세상을 의식없이 떠돌다, 그대가 불러서 겨우 일어났단 소리다. 조금 들뜨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딱히 이해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자꾸만 나타나 속삭이는 신의 목소리를 흘려 들으며 벨노아는 걸었다. 처음처럼 시간이 멈추지도 않으니,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자신을 미친놈처럼 보는 사람이 제법 있었으나···.
‘···뭐 될 대로 되라지.’
생각했던 것보다 가벼운 신을 모신 채 걷던 벨노아는 어느 방 앞에 걸음을 멈췄다. 똑똑, 가볍게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와도 좋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 벨노아.”
방 안에 있는 것은 라니엘이다.
마나를 바닥까지 끌어다 쓴 탓에, 몸을 추스르고 있던 라니엘이 손을 들어 벨노아를 반겼다.
“소문은 들었다. 용을 쓰러트렸다며?”
대단하네.
그리 중얼거리며 미소 짓던 라니엘이, 문득 눈을 깜빡이며 팔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손끝으로 가리킨 것은 벨노아의 옆에 떠있는 여인이다.
“근데 너 옆에는 누구냐?”
“···어? 보이십니까?”
라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푸르게 번들거렸다.
* * *
“어, 음··· 그래서···.”
내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벨노아가 바람으로 용의 날개를 찢어버렸단 소문은 이미 들었기에, 무언가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예상하긴 했으나···.
‘이건··· 예상 못 한 부분인데.’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분이 네가 모시게 된 신이라고?”
“예, 그게··· 그렇게 됐습니다.”
고개를 든 곳에는 검은 원피스를 두른 여인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밤하늘을 닮은 머리칼이 찰랑였다.
【그대는 내가 보이는 모양이로군?】
“어, 보이니까 말하는 거겠죠?”
【목소리도 들리고?】
“그런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대는 인도자인가 보군.】
인도자.
고룡의 마법사에게서 받았던 칭호.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룡의 마법사에게 그런 이름을 받긴 했습니다. 그거하고, 제가 당신을 볼 수 있는 것하고 뭔가 관련이 있습니까?”
벨노아에게 들은 바로는 클로에 조차도 제 옆에 떠다니는 신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내 눈에만 보인다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뜻이고.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
“예, 요르문 반 드라고닉.”
【여전히 그 이름을 써?】
어이없다는듯 웃으며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헤엄치듯 다가온 그녀가 내게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고룡의 마법사와 같은 금색의 동공이, 용안(?)이라 불리는 그것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과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거짓말쟁이가 거품을 물 법한 눈이야.】
내게서 멀어진 그녀가 벨노아의 어깨에 걸터앉은 채, 손가락을 쭉 뻗어 나를 가리켰다.
【사고를 쳐도 거하게 칠 인간이로군.】
그리 말하고선,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벨노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주 저러십니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 갑자기 나타나고.”
“굉장히··· 독특하신 분이네.”
또라이 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꾹 참으며 벨노아를 흘겨봤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 모양이다?”
폭풍으로 용을 떨궜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그림자 주술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예. 정말 다행히도···.”
벨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입가에는 숨기지 못한 미소가 배여 있었다. 나는 품 안에서 성배가 떨려옴을 느꼈다. 라크에 이어 벨노아까지 계기를 맞이했다.
성배의 시련이 벨노아와 라크를 부른다.
마치, 전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처럼.
나와 카일을 비롯한 현세대의 전력이 죽음을 막아 세우는 가운데, 차세대 용사들 또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듯 싶었다. 제자의 성장에 미소 지으며 나는 벨노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일로 와봐.”
“예? 갑자기 왜···.”
내가 벨노아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손가락 또 죄다 부러트렸잖아.”
벨노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치, 공포에 질린 것처럼.
그 이유를 딱히 모르겠어서 나는 벨노아에게 손짓했다.
“맞춰줄 테니까 가까이 와.”
“괜, 괜찮습니다.”
“쓰읍.”
안 그래도 사라한테 뼈를 효율적으로 맞추는 방법을 새로 배워온 참이다. 내가 손을 뻗어 벨노아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오라니까.”
금방 끝난다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