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15
〈 315화 〉 후배, 그리고 후예(1)
* * *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이름은 더이상 젊은 나이에 뛰어난 성과를 올린 천재만을 의미하지 않게 됐다.
『트리아스 가문은 두 영웅을 배출한···.』
『단순한 마도 가문으로서의 취급이 아닌 국가, 더 나아가선 인류를 위해 헌신한···.』
『영웅, 라니아 반 트리아스.』
천재가 아닌, 영웅.
재앙에게서 인류를 수호할 수 있는 영웅은 한 줌에 불과하다. 초인의 경지에 오른 소수의 인물 조차 재앙을 몰아내지 못하는 가운데, 잿빛 마법사의 뒤를 이어줄 마법사가 나타났다.
성창의 용사, 갈라할이 죽었다.
검의 초인, 쿤텔은 영락한 지 오래다.
검귀, 드라카는 제정신이 아니다.
광인, 켈르할름 마저 약화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인류의 전력이 깎여나가는 가운데 나타난 새로운 인재다. 심지어 재앙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지닌 인재. 그 사실에 세간은 환호한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목말랐기에, 더욱더 큰 목소리로.
그녀가 전장에 나설 의사가 없어도 좋다.
그저 그만한 전력이 인류에게 존재한단 사실에, 인류에게도 재앙에게 통할 비장의 수가 있단 사실에 대중은 열광한다.
그 열광에는 그녀의 외모도, 그녀가 지닌 신비함 또한 한몫하리라. 그렇게 수많은 기자들이 라니아 반 트리아스에 대한 이야기를 찍어내는 가운데···.
“아, 뭔가 아닌데···.”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 본인이 하는 일은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라니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아, 진짜 하나도 없다.
언제나처럼 수업을 준비한다.
학생들에게 선물할 과제를 마련하고.
오늘 수업이 모자라다 싶으면 밥 먹으러 가려는 학생들을 붙잡아두고 연장 수업을 한다.
‘모자란 놈 있음 끌고 가서 보강하고.’
그냥 그런 일상의 반복이다.
1년 전과 비교해봤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아, 과목명만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마나의 거래학(기초)가 아닌 마나의 거래학(중급)으로.
「올해 2학년 수업은 네가 하거라.」
「예? 스승님이 안 하시고요?」
「저번에 보아하니 무슨 커리큘럼을 딱딱 맞춰 놓지 않았더냐? 괜히 특강이랍시고 하나 더 개설해다가 난리 피우지 말고, 그냥 네가 맡거라.」
본래 로셀이 담당하던 강의이나, 그것을 라니아에게 넘겨준 이유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네게 신입생들을 맡겼다가 무슨 일이 날지 나는 두렵구나. 그냥 곱게 가르치던 놈들이나 가르치거라. 내가 1학년을 가르칠 테니.」
악몽은 대물림 돼선 안된다.
라니아의 수업에 죽어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무언가 느낀 바가 있는 로셀이다. 그는 악몽의 칭호를 제 제자에게 완전히 넘겨줄 작정이었다.
「네가 하거라.」
라니아는 구태여 거부하지 않았다.
방긋 미소 지으며 그녀는 가르치던 학생들을 그대로 담당하게 됐고, 아플리아의 악몽을 2년째 마주하게 된 학생들은 비명을 지를 뿐이다.
“뭔가 좀 아니야.”
그렇게 2학년을 가르치는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라니아는 왠지 모를 불만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입 밖으로 꺼내긴 부끄러운 불만이다.
신입생들은 자신을 우러러본다.
저만한 분이 아플리아에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자꾸만 자신을 흘겨보는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라니아가 작년부터 가르치던 학생들은 어떠한가? 이만한 소문이 퍼졌는데도 그들의 반응은 심심하기 그지없다.
‘아니, 다 알려졌는데도 그래?’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이다지도 큰 사람이다.
좀 존경을 담아서 우러러보아도 좋다.
내 그리하도록 허락하마.
잿빛 마법사의 마도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정식 후계자란 것이 공표된 마당이다. 그런 마당인데, 학생들이 자길 보는 시선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쩝···.”
라니아는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극적인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령 ‘라니아 교수님께 배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같은 반응.
“에휴.”
그런 반응이 없으니 뭔가 아쉽다.
아쉬운 마음에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누군가 교수실의 문을 두들겼다. 라니아의 고개가 팍, 하고 돌아갔다.
‘혹시···.’
혹시 자신을 찾아온 학생인가?
남들 앞에서 부끄러운 나머지 ‘신문에 이 기사 정말이에요? 교수님이 정말?’ 이라고 묻지 못해, 따로 찾아온 학생일지도 모른다.
‘그래, 아무도 안 물어보는 게 이상하지.’
탁!
라니아가 환히 미소 지으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제가 갈게요 스승님!”
헐레벌떡 달려가는 라니아를 보며 로셀이 제 미간을 짚었다.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 탓에. 음습한 기대감을 품은 채 달려가는 제 제자를 보며 로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큼, 흐음.”
문 앞에 선 라니아가 목을 가다듬더니, 올라간 입꼬리를 축 내렸다. 무표정을 유지한 채 라니아가 문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
“라니아 교수님.”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클로에다.
차기 용사 후보이자,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아이. 그 사실에 내심 실망하며 라니아가 힘주어 유지하던 무표정을 풀었다.
“뭐야, 클로에? 무슨일··· 어어?”
“교수님, 벨노아가. 벨노아가···!”
클로에가 훌쩍이고 있다.
습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클로에가 외쳤다.
“벨노아가 제가 싫은가 봐요···!”
이건 또 뭔 개소린가.
아플리아에서 너네 돌아다닐 때마다 눈꼴시려워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 일단 들어와 볼래?”
2.
훌쩍이는 클로에의 말에 라니아는 한동안 귀 기울였다. 그것은 차라리 연애 상담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라니아로서는 무척이나 난감할 따름이었다.
‘연애가··· 대체 뭐냐?’
연애라곤 28년의 인생동안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라니아다. 심지어 흔하디흔한 로맨스 소설조차 라니아는 읽어본 적이 없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랑은 당연히 느껴본 적도 없다.
‘아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느껴본 적이 많지.’
그리 달달한 상황은 아니고, 삐끗하면 뒤질 거 같을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긴 했다.
‘그럼 난 가니칼트랑 연애한 건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클로에의 말을 듣고 있자니, 라니아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벨노아가 저랑 이야기하는데 자꾸 다른 곳을 봐요.”
“어···.”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 하고···.”
“으응···.”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여요. 꼭, 다른 생각 하는 것처럼···.”
라니아가 탁, 하고 제 이마를 쳤다.
‘시발 이거···.’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라니아는 알 것만 같았다. 모를 수가 없다. 라니아는 벨노아의 옆에 붙어 다니는 묘령의 여인을 알고 있으니까.
“으음···.”
라니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클로에는 라니아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혹시,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뭔가 미움 받을만한 짓을 했을까요? 한 것 같기도 하고···.”
“어, 그 클로에?”
급기야 땅을 파려 하는 클로에다.
라니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아마도 네가 생각하는 거랑은 좀 다를 거다. 벨노아가 그럴 놈도 아니고.”
“그래도···.”
“진짜 괜찮을 거다. 걱정 마.”
클로에를 달래며 라니아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창밖으로 보이는 광장에 벨노아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벨노아는 제 귀를 틀어막은 채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그런 벨노아의 어깨에 누군가 올라타 있었다.
‘아, 눈 마주쳤다.’
벨노아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그림자 용의 군주가 라니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라니아는 마지못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 * *
【계약자여, 이곳의 이름이 무어라 하였지?】
“아플리아요. 아플리아.”
【이건 무엇이냐.】
“꽃이겠죠.”
【꽃에도 이름이 있지 않으냐. 이름없는 것은 없다. 이 노랗고 붉은 것의 이름이 무엇이냐.】
“저도 모릅니다.”
【그럼 이건?】
“나무겠죠. 이름은 모릅니다.”
【아는 게 없구나. 무식한 남자로고.】
벨노아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모시게 된 신은 지나치리만치 말이 많았는데, 문제는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도 없단 것이었다.
“그, 자꾸 귀가 울리는데 어떻게 안됩니까?”
【귀가 울려?】
“목소리가 많이 독특하십니다. 막 귀에 대고 속삭이는 거 같은···”
【실제로 속삭이고 있지 않느냐.】
불쑥, 벨노아에게 얼굴을 들이민 채 그녀가 미소 지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린 채 벨노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막 소리가 울립니다. 어떻게 안됩니까?”
【음, 기다려 보아라.】
그녀가 목을 몇 번 가다듬었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낫느냐?]“훨씬 낫네요.”
[그래서 계약자여.]“예.”
[이것의 이름이 뭐라고?]“저도 모릅니다. 궁금하신 게 뭐 그렇게 많으십니까. 신이나 되시는 분이.”
[이제는 신이라 부르기도 뭣하지. 나 또한 추락한 지 오래니까. 옛날처럼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그녀가 쓰게 웃었다.
[내가 왜 자꾸 이름을 묻는지 궁금하더냐?]“아뇨. 별로 안 궁금한데.”
[···뭐라?]“별로 안 궁금··· 궁금합니다. 예.”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견디지 못한 벨노아가 말꼬리를 틀었다. 그제야 그림자 용의 군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내게 이름이 없으니까.]“왜 없으십니까?”
[잃어버렸거든. 가지고 있을 이유도 없고.]그녀가 웃었다.
[이 땅엔 더는 나의 아이들이, 그림자 용이 없지 않으냐. 그러니,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도··· 이름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지. 그러다 보니 잊어버리고 말았지.]불어오는 바람이 메마르다.
메마른 바람 속에서 그림자 용의 주인은 웃었다.
[그러니, 자꾸 묻는 것이다. 어쩌면 다시 태어난 세상에서 꽃피운 것들에 내 이름이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이름.
“저 식물들의 이름은 모르지만···.”
벨노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벨노아입니다.”
[알고 있다. 저번에 말하지 않았느냐.]“버려진 아이라는 뜻이고요.”
[그런 뜻이 있었느냐?]“예, 뭐. 좋아하는 이름은 아닙니다. 이름 지어준 부모도 다 죽고 없고. 아니, 제 아들놈한테 이름 지어주는데 버려진 아이가 뭡니까? 버려진 아이가.”
툴툴거리며 벨노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뜻은 있습니다.”
싫은 이름이지만, 나름의 뜻은 있다.
벨노아는 제 곁에 머무는 추락한 신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가지고 계셨던 이름에 뜻이 있었습니까?”
[있었지.]그녀가 그립다는 듯 웃었다.
[있었을 테지. 잊어버렸지만.]“기억력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입니다.”
[오래 살면 다 그런 법이다.]피식, 웃음을 흘리며 벨노아가 걸음을 옮겼다.
“곧 시련을 치르게 됩니다.”
[시련?]“예, 좀 독특한 공간에서 보게 되는데··· 아마 벨리알이란 분과 마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죽어 바스러진 이와 어떻게?]“저도 모릅니다. 설명하기 좀 어려워서.”
아무튼, 하고 벨노아가 말했다.
“그 전에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무엇을?]“검은 폭풍, 벨리알. 당신과 두 번째로 계약을 맺었다는 그 사람에 대해서요.”
그림자 용의 군주가 피식 웃었다.
[그래, 뭐.]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 떠있는 별을 바라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저 깐깐한 아이가 허락하는 곳까진, 이야기해주도록 하마.]3.
라크 반 그레이스는 눈을 감고 떠올린다.
떠올리는 것은 성지에서 마주했던 인물이다.
인물의 이름은 그레이스다.
라크가 속한 가문의 이름, 상징, 그 외 모든 것을 이루고 잇게 한 인물. 시련을 앞두고 라크는 그 인물과의 해후를 떠올렸다.
「검의 초인이지만, 나는 검이란 무기를 그닥 좋아하진 않아. 오히려 도끼가 더 손에 맞지.」
무너진 석상.
빛이 물줄기가 되어 흐르는 곳.
그곳에서 그레이스는 라크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스승께선 내게 검을 가르치셨지.」
「내게는 재능이 있다고.」
「검을 쥐든, 도끼를 쥐든 이 가르침은 쓸모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검을 뽑았다.
뽑아든 검을 라크에게 겨누었다.
「그 말이 맞았다.」
「스승이 내게 가르친 것은 결국 검을 다루는 게 아니야. 베고자 하는 것을 베는 것. 쓰러트리고자 하는 것을 쓰러트리는 것. 그것을 가르쳐주셨던 게지.」
그가 검을 내던졌다.
「네게도 알려주마.」
「검이 어울리지 않는 내가, 어째서 검의 초인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곤 다시 허공을 움켜쥔다. 그곳에 잡힌 것은 검이 아니다. 투박한 형상의 도끼다.
「우선은 여기서부터다.」
그가 웃었다.
「나는, 북부의 사람들은 사람과 싸우지 않았다. 날 때부터 자연과 싸워왔지. 그러니,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검이 손에 맞을 리가.」
그레이스는 북부의 수호자다.
북부는, 언제나 자연과 싸워왔다.
「내가 마주한 것은 언제나 자연이다.」
「나를 막아선 것 또한, 자연이다.」
「나는 사람을 베지 않는다. 내가 베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 그 자체다.」
그가 도끼를 쥐고 펼쳤던 것을 라크는 떠올린다.
그것이 극성에 이르렀을 때, 대검을 통해 펼쳤던 기술 또한 보였다. 라크는 아직 후자의 것을 완전히 흉내 내진 못한다. 하지만, 전자의 것이라면.
손에 익은 도끼라면.
한 초식 정도는 완전히 펼쳐낼 수 있으리라.
“······.”
라크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그것을 떠올린다.
머릿속으로는 그 움직임을 그리며, 라크는 허리춤에서 도끼를 뽑았다. 이어서 짧게 숨을 내뱉으며 팔을 휘둘렀다.
갈라트릭류, 개(?).
제 1 식 초견살.
라크의 도끼가 기이한 궤도를 그린다.
뒤이어 쩌억, 하고 쪼개지는 소리가, 쿠웅, 하고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린다. 라크는 감았던 눈을 떴다.
“오.”
라크가 짧게 감탄을 내뱉었다.
울창했던 숲의 한 부분을 도려냈다. 나뭇가지에 가려들어 오지 않던 햇살이 지금은 쨍하니 라크의 도끼날을 비추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