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39
〈 339화 〉 주어진 시간(8)
* * *
재의 여신은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처음부터 그녀의 운명이 이리도 기구하진 않았다.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잠이 들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있었지만, 없게 됐다.
재의 여신.
라니엘 반 드라고닉.
그녀는 과거를 떠올렸다.
지금 이 시간대를 기준으로 하면 미래가 되겠지만, 라니엘의 시각에선 이것은 과거다. 자신이 견뎌내야만 했던 13년의 지옥. 그 지옥이 시작된 날을 라니엘은 결코 잊을 수 없다.
13년 전의 이곳.
카일이 계약을 완수하던 그날.
지금 시간대의 라니엘과 달리, 자신은 그날 깨 있었다. 잠에 들지 않은 채 카일과 마주했다.
「라니엘.」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던 자신에게 카일은 찾아왔다. 손을 내밀고, 빚을 갚으러 왔다며 라니엘에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에 라니엘은 속아 넘어갔다. 카일을 따라 저택 바깥으로 나섰다.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운 것투성이였다.
방법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아무런 근거도 없을 텐데.
분명 그랬을 텐데, 그때의 자신은 무턱대고 카일의 말을 신뢰했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 공포에 질린 나머지 그 손길을 내치지 못했다.
혹시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혹시, 이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정말로 답이 있는 게 아닐까.
평소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며 라니엘은 카일을 따라나섰고··· 그 착각에 대한 대가를 그녀는 비싸게 치러야만 했다.
「왜 여기로 오는데?」
「카일, 야. 카일.」
「말 좀 해봐 카일. 왜 여기로 오냐고. 여긴 마왕이 나타났던 장소잖아. 여기로 왜 오는데? 뭐? 교회···?」
셀레프 왕국의 옛터.
「야.」
교회의 제단.
그곳에 누운 자신.
카일이 불러낸 천칭.
「너.」
그리고.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자신의 몸에 깃들기 시작하는 별빛.
그 순간 라니엘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살릴 방법이 무엇인지, 카일이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는지 모두 깨닫고 말았다.
「너 지금. 잠깐, 멈춰봐. 멈추라고.」
계획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이 모든 게 끝났을 때 카일이 ‘어떻게’ 될 지까지 전부. 그 전부를 깨달았기에 라니엘은 소리를 질렀다.
「너 미쳤냐?」
「당장 그만둬. 그만두라고 말했다. 미친 새끼야, 이게 가능할 거라고 봐?」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을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라니엘은 카일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성을 높였다.
「너 죽어. 죽는다고.」
「누가 이런 걸 바란댔어? 필요 없어. 누가 너보고 빚을 갚으랬냐고. 전부 집어치워.」
「이런 건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몸을 움직일 힘은 남아있지 않아서, 카일을 노려보며 라니엘은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언성을 높여도 카일의 결정은 변함이 없었다.
「카일.」
시간이 흘렀다.
「카일, 이 미친 새끼야, 제발···.」
3일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지독하리만치 천천히.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라니엘은 카일을 말리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팔을 뻗어, 제단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 마.」
하지만 실패했다.
「하지 말라고, 미친 새끼야.」
카일은 눈을 감고 명상할 뿐이었다.
하다 안된 라니엘은 사라를 설득하려고도 해 보았으나, 사라 또한 라니엘을 외면할 뿐이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라니엘은 망가져 갔다.
「이렇게 살릴 필요 없어.」
「용사가 어울리지 않아? 내가 용사가 돼? 하지 마. 그냥 죽게 내버려두라고. 그냥, 그냥 네가 하면 되는 거잖아. 왜 나한테···.」
왜.
「왜, 너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질문에 카일은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빚을 갚을 뿐이다.」
그 한마디가 라니엘을 미치게 만들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마지막 하루가 지나가려 하는 날 라니엘은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겨우 짜낼 수 있게 된 마나를 머금은 손가락을 그녀는 제 입안에 집어넣었다.
강타(Smite).
제 머리를 뚫어버릴 작정으로 날렸으나, 조준에 실패해 목에 구멍이 뚫리는 것으로 그쳤다. 그마저도 사라의 축복 앞에 회복될 뿐이었다. 자살마저 실패한 라니엘은 카일의 팔목을 붙잡았다.
「죽게 내버려 둬.」
「필요 없으니까,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고.」
카일에게 애원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이런 건 필요 없으니, 그냥 죽게 내버려두라고 빌어 보았다. 내 목숨을 대가로 계획을 모조리 지워버리라고 빌었다.
「······.」
이젠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니엘이 자살을 시도한 것을 보았을 때부터 카일의 눈동자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더는 교회의 안에 머물지 않았다.
비가 쏟아지는 바깥에서 그는 명상했다.
그리고, 기어코 그날이 다가왔다.
하늘이 검게 물들고 구정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날 사라와 카일은 라니엘을 교회에 내버려둔 채 떠났다. 라니엘은 공허한 눈동자로 열린 문의 너머를 보았다.
범람하는 그늘.
그 앞에 선 일인의 검사.
라니엘은 공허한 눈동자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카일의 최후를 목격했다. 그날 그곳에서 카일은 성공했으나 동시에 실패했다. 어째서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는가?
‘···아아.’
라니엘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최후의 순간 카일의 칼끝이 흔들렸다. 육체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심리적인 문제였다. 누군가 카일의 정신을 흔들어놨기에, 그에게 미련을 남겼기에 카일의 칼끝은 최후의 순간 흔들리고 말았다.
‘나 때문이구나.’
자신 때문에 카일은 실패했다.
어차피 막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입이라도 닥치고 있어야 했는데, 자신이 마지막까지 저항한 바람에 카일은 흔들리고 말았다.
‘내가 카일을 ■■으로 만들었구나.’
거기서부터였다.
거기서부터 모든 게 잘못됐다.
망가져 버린 라니엘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추락하고 또 추락했다. 자신을 위해 피 흘린 이들이 만들어낸 늪이 라니엘을 가라앉혔다.
잃고 또 잃었다.
놓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의 복수를 위해 움직였다.
죽이고, 불태우고, 학살했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아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잃었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라니엘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누구도 넘어진 라니엘을 향해 손을 뻗어주지 않았다. 손을 뻗어 줄 이들은 이미 라니엘의 곁을 떠나거나 죽고 말았으니까.
그래도 걸었다.
죽을 수 없어서 살았다.
어떻게든 희생에 답하고자 걸었다.
“네가.”
13년을 살았다.
“네가,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살아보았으나, 발버둥 쳐보았으나.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내가··· 내가 지난 13년 동안, 뭘 했는지 아냐고.”
여전히 세상은 지옥이었다.
“스승님이 살해당했어. 아플리아는 불타 사라졌어. 졸업하지도 못한 채 학생들은 전장으로 떠밀려나갔고, 미숙한 그 아이들은 모두 죽었어. 살아남은 애들이 있었는데, 그중 절반은 변절자였지.”
내 손으로 죽였어.
전부 다, 내 손으로.
“내가 길러 낸 아이들, 다음 세대를 책임지라고 가르친 아이들도 다 죽었어. 심지어 그 중 하나는 내 손으로 죽였어. 재앙이 됐거든. 나를 원망하는 그 애를 나는 죽여야만 했어.”
그게 용사의 역할이었으니까.
“내가, 내가···.”
라니엘이 제 손을 들어 올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는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으나, 그녀는 거기서 핏물을 보았다.
“나라는 멸망했지, 피난민들이 가득하지, 그들을 지키겠다고 다가가면···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용사가 아니었어. 광인으로 불리고 있었지.”
그래도 라니엘은 일어서서 걸었다.
아무도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아도, 자신에게 욕하고 돌을 던져도 라니엘은 걸었다.
“지옥이더라.”
책임을져야 하는데.
그 책임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어서.
“지옥인데, 죽지 못해서 살았어.”
밤이면 밤마다 악몽을 꿔서, 잠에 들 수도 없는 몸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걸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라니엘이 카일을 바라봤다.
“네가 한 말이 생각나더라.”
망가진 인간이 웃었다.
“너는 나를 신이라고 여겼잖아. 죽기 직전의 데스텔에게 들었어. 네가 나를 신이라고 여겼다며. 우상이라고. 나를 신앙했다고.”
그게 네 바람이었구나.
너는, 내가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랐구나.
“그래서 신이 됐어.”
이미 대가는 바쳐진 지 오래였다.
수많은 것들을 잃어버려서, 너무 많은 걸 잃고 바쳐버려서 공허해진 라니엘이다. 비어버린 인간은 신이 될 자격을 이미 손에 쥐고 있었다.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 신이 됐어. 신이 되면 뭐든지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오히려 더 제약이 많아졌지.”
결국에 답은 없었다.
최선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다 허구에 불과했다. 신이 되어버린 인간은 재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침묵 속에서 또다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렸다.
제 모든 걸 바쳐서,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 미래가 오지 않도록 그녀는 회귀했다.
“그런데.”
주저앉은 라니엘이 말했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보고···.”
라니엘은 카일을 올려다봤다.
카일은 여전히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카일에게 라니엘은 질문했다.
“일어서라고 말하는 거야?”
카일은 여전히 라니엘의 팔을 놓지 않았다.
과거, 라니엘이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결코 그녀가 스스로를 놔버리게 두지 않았다.
“그래.”
카일이 다시 한번 말했다.
“일어서라, 라니엘.”
2.
라니엘은 편안한 여생도, 행복한 미래도 바라지 않았다. 그게 불가능하단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바란 게 있다면···.
“내가 바란 건 그런 거창한 게 아니야.”
고개 숙인 라니엘이 중얼거렸다.
“무언갈 이루고, 혹은 무언갈 남기고 죽을 수 있는 삶. 그거면 족했어. 그거면 만족할 수 있었단 말야. 갈라할과 같은 빛나는 업적도 바라지 않아. 그저 내 죽음이 무언가 의미가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죽음을 바라며 라니엘은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뭐야?”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닌 것 같기에 카일은 침묵했다. 라니엘은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
“······.”
“그저 살아있을 뿐이야. 죽지 못해 사는 삶. 그런 미래가 약속돼 있는 나를··· 너는 왜 살리려고 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어?”
카일은 천천히 숨을 삼켰다.
카일은 눈앞의 라니엘에게 동정한다. 그녀가 겪었던 지옥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라니엘의 처지를 이해한다.
이해하고 있음에도···.
저 옆에 함께 주저앉아 줄 수는 없다.
함께 추락할 수는 없는 법이니. 누군가는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고 걸어야 하니까. 그 사실을 이젠 카일도 안다.
‘···네가 이런 기분이었군.’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해야 한단 사실이 달갑지 않으면서도 카일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너의 이야기다.”
움찔, 하고 라니엘의 어깨가 떨렸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일을 올려다봤다.
“뭐··· 라고?”
“그건 너의 이야기지, 라니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너는 라니엘이 아니지 않나.”
라니엘의 표정이 흔들렸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그 표정을 바라보다가, 카일이 짧게 숨을 뱉었다.
“···라고, 과거의 나라면 말했을 테지.”
카일이 쓰게 웃었다.
조금 표정을 푼 카일이 무릎을 굽혀 라니엘과 같은 높이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어떻게 그러겠냐.”
용사로서의 말투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직위를 얻게 되며 카일이 연습했던 말투가 아닌··· 본래 카일의 말투로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안다. 네가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너도 나와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걸. 나도 이제는 알게 됐어.”
카일이 라니엘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넘어지겠지. 흔들리겠지. 주저앉겠지. 내가 꼴사납게 그랬던 것처럼 너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다, 라니엘.”
카일이 웃었다.
“내가 아는 너는 그래도 일어서는 놈이다.”
언제나 그랬다.
“너는 그런 녀석이잖냐.”
그런 라니엘을 카일은 한때는 질투했고, 선망했으며, 때로는 숭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비뚤어진 카일은 라니엘에게 못 할 짓을 참 많이도 했다.
그 수많은 만행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렇기에 카일은 이 자리에 섰다.
비록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라니엘이 자신을 원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 빌어먹을 녀석에게 졌던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아니야 카일, 나는···.”
“아니긴 뭐가 아니냐?”
카일이 피식 웃었다.
“그 지경이 되면서까지 너는, 이 상황을 해결해보겠답시고 과거로 돌아왔지 않냐. 그런 너를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너도 지금 이곳에 있는 과거의 너를 믿어봐라. 그래도 말이 통하는 녀석일 테니까. 잘 이야기해보면 다른 답을 찾을지도 모르지.”
라니엘이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카일은 쓰게 웃으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
“라니엘.”
아직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
라니엘이 천천히 카일을 올려다봤다. 카일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넘어질 수 있다. 당연히 넘어지겠지. 너도 사람인데 어떻게 쉬지 않고 달리겠냐.”
카일은 말했다.
“그래도 힘들면 좀 쉬어라. 주저앉아서 쉬어도 좋고. 다른 거에 눈을 돌리며 숨을 돌리는 것도 괜찮겠지. 가끔은 그래도 된다.”
과거 라니엘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카일은 자신의 입을 통해 미래의 라니엘에게 말했다. 물론 그때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것쯤은 카일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쉰다는 건 곧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쓰러져서 쉴 수는 없었으니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카일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주저앉았다. 모든 것에 허무함을 느껴 지금 제 눈앞에 있는 라니엘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자신을 대신하듯 과거의 라니엘은 더 많은 전장에 나섰다. 카일을 대신해 의무를 짊어졌다.
언젠가 자신이 일어날 거라 믿으며.
녀석은 최선을 다해 제 의무를 다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빚을 갚을 차례겠지.
카일이 라니엘의 어깨를 툭,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를 스쳐 지나가듯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쉬어라. 천천히 일어서도 되니까.”
어느새 주어진 시간은 끝이 났다.
바깥에서 쏟아지는 비는 거세졌다.
카일이 앞으로 걸음을 내딛고, 줄곧 대화를 듣고 있던 사라가 카일의 옆으로 다가갔다. 미래의 라니엘은 허망이 두 사람을 바라봤다.
“카일, 잠깐···.”
카일이 교회의 문 앞에 멈춰 섰다.
굳게 닫힌 문을 열며 카일이 뒤를 돌아봤다.
“······.”
고개만을 살짝 돌린 채, 무언갈 물어보려던 카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고 만다. 마치 그걸 물어보는 건 양심이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아.’
카일은 모르지만.
미래에서 온 라니엘은 저 표정을 알고 있다.
최후의 순간, 교회의 문을 열고 나서던 카일이 자신을 바라보며 지었던 표정이니까. 그때, 자신은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 과거를 얼마나 후회했던가.
꾸욱.
라니엘이 제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 이미 결정을 내린 카일을 붙잡을 수 없음을 라니엘은 알고 있다.
알고 있으므로.
그때와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진 않았으므로.
라니엘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진짜.”
그녀가 울면서 웃었다.
“진짜, 빌어먹을 새끼.”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 제법 살벌하군.”
“닥쳐, 미친놈아. 너 때문에 내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해야 했는데.”
라니엘이 카일을 향해 중지를 들어 올렸다.
“좆같은 새끼.”
그녀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너, 아직도 날 친구로 여기냐고 물어보려 그랬지? 그거 계속 물어보려 했잖아.”
“···어떻게 알았나?”
“네 생각을 내가 모를 거 같아? 진짜, 좆같은 새끼. 마지막에 물어 보는 게 그거뿐이야?”
카일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대답은?”
“꼭 말로 해야 아냐, 개새끼야?”
라니엘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 같이 성격 지랄 맞은 새끼랑 친구로 남을 놈이, 너처럼 좆같은 놈 말고 또 어딨는데?”
“네 성격이 지랄 맞은 건 알고 있군.”
“끝까지 진짜···.”
엉망이 된 라니엘의 얼굴을 흘겨보던 카일은, 이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다시 앞을 바라본 채 그는 걷기 시작했다.
그리곤 입을 열어 말했다.
언젠가 꼭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대사를.
“야, 라니엘.”
「뭐.」
“나 없이 잘 먹고 잘 살아라.”
「나 없이 잘 먹고 잘 살아라.」
“빌어먹을 자식아.”
「빌어먹을 자식아.」
카일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인간 카일 토벤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났다.
이젠, 용사가 될 시간이었다.
미래에서 온 책무를 다하지 못한 용사를 대신해, 오늘 이 자리에서 카일 토벤은 용사가 되리라.
* * *